그 질문에 안리영은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조시언... 내가 차 안에 있는 걸 진작 알았던 거지? 그러면서 모른 척한 거야?”조시언은 작은 주먹으로 본인을 내려치는 안리영을 귀엽게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몸을 숙여 안리영에게 다가가 얘기했다.“네가 장난을 먼저 치길래.”하긴, 조시언은 어릴 때부터 안리영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은 거절하지 않았다.안리영이 조시언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 “여자랑 같이 당구쳐 본 적 있어?”“없어.”조시언이 솔직하게 대답했다.“왜?”“그럼 앞으로도 그러지 마.”안리영의 손가락이 가볍게 조시언의 허리를 훑었다.조시언은 웃으면서 되물었다.“왜?”안리영은 몸을 세워 조시언에게 가까이 붙어서 속삭였다.“너무 야하니까.”그 말에 조시언은 입이 찢어질 것처럼 웃었다.“우리 칠칠이가 날 그렇게 볼 줄은 몰랐네.”안리영은 얼굴이 약간 붉어져서 조시언의 셔츠를 잡고 얘기했다.“내가 와서 방해한 거라면 미안해. 난 먼저 차에 가서 기다릴 테니까 볼일 봐.”“아니야. 다들 그저 놀려고 모인 거야. 중요한 일은 없어.”조시언이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하지만 안리영은 아까 그들의 대화를 통해 대충 알 수 있었다. 조시언이 해외에서 준비한 모든 사업을 포기하려 한다는 것을.“조시언, 날 위해서 뭔가를 포기하려고 하지 마. 한 사람이라면 빠르게 걸어갈 수 있겠지만 두 사람이라면 오랫동안 걸어갈 수 있으니까.”조시언은 손을 안리영의 허리 위에 올리고 안리영을 당구 테이블 위에 앉혔다.“너 때문에 포기하는 거 아니야. 원래부터 접으려고 했어.”하지만 그 말에도 안리영은 약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조시언을 쳐다보았다.“요즘 국제 형세가 좋지 않아. 난 그저 해외의 것을 국내로 돌릴 생각이야. 아무래도..”조시언이 뜸을 들이고 얘기했다.“내 아내랑 아이가 여기 있을 텐데. 기러기 아빠는 하고 싶지 않거든.”그 말에 안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알아서 결정해. 나는 짐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조시언이 안리영
안리영은 묵묵히 눈을 흘겼다. 매일 여자를 바꾸다가는 발기부전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조시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옮겨 또 당구를 쳤다. 당구공이 구르는 소리는 아주 부드러웠다.“올해 좋은 날이 언제지?”조시언이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다.“설마 올해 결혼하려고요?”맑은 목소리의 남자가 물었다.또 옆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러게 말이야. 아직 부모님도 못 만났잖아. 날을 받기에는 이른 것 같은데?”“좋은 날은 많지 않아요. 형의 사주팔자를 생각해 보면 10월이 좋겠어요.”조시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갑자기 얘기했다.“다들 눈치껏 축의금 준비해.”“그래, 축의금이 적으면 결혼식에 안 들여보내 줄 거니까.”문밖에 서 있던 안리영은 저도 모르게 심장이 뛰었다.조시언은 정말 안리영과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연애도 공개하지 않았지만 말이다.조시언의 마음은 아주 명확했다. 하지만 안리영은 오히려 도둑고양이처럼 그를 따라왔다.만약 안리영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안리영은 억울해 미칠 것이다.그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두 사람은 그렇게 어색하게 서서 서로를 쳐다보았다.“누구세요? 깜짝 놀랐네.”그 목소리에 모두 시선을 돌렸다. 안리영은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었다.고개를 든 안리영은 사람들을 슥 훑어보았다.조시언이 담담한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미소를 짓고 손을 내밀었다.“이리 와.”안리영은 사탕을 훔쳐먹다가 걸린 아이처럼 고개를 숙인 채 조시언의 앞에 왔다. 조시언은 그런 안리영을 품에 안았다.“내 여자 친구야. 이제 모르는 사람 없지?”조시언의 목소리가 안리영의 불안함을 안아주었다.“형수님!”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안리영은 그 호칭에 어색해하면서 조시언의 품속으로 얼굴을 묻었다.“너 때문에 놀라겠어.”조시언은 안리영을 데리고 방 안으로 끌어당겼다.“당구 쳐볼래?”안리영이 나와 당구를 자주 쳤다는 걸, 조시언은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안리영은 고개를 저
‘어디로 가는 거지? 선약이 있었나? 혹시... 여자?’안리영은 본능적으로 나쁜 생각을 했다. 하지만 또 본인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조시언이 정말 그런 사람이라면 안리영이 여기 누워있을 수 있겠는가.아마도 중요한 일 때문에 나간 것 같았다.‘하지만 이 늦은 시간에 샤워를 다 마치고 누구를 보러 가는 거지?’공기 속에 조시언의 향기가 남아있었다. 웬만한 방향제보다 더욱 향긋했다.안리영은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듣고 조시언이 떠났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얼른 이불을 걷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지금이라도 당장 따라가서 조시언이 누구를 만나는지 알고 싶었다.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걱정이 되니까 말이다.안리영은 얼른 옷을 입고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살짝 열었다.하지만 나가기도 전에 조시언이 다시 돌아왔기에 안리영은 깜짝 놀라서 돌아갔다.조시언은 침실로 돌아오지 않고 서재로 갔다. 안리영은 살짝 열린 문틈을 보면서 이 기회에 도망가려고 했다.조시언 차 앞으로 달려가 얼른 뒷좌석에 몸을 숙여넣었다.조시언이 돌아와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했다. 그리고 음악까지 띄웠다.조시언은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안리영이 왜 노래를 듣지 않냐고 물었을 때는 너무 시끄러워서 그렇다고 대답하기도 했다.하지만 오늘은 노래까지 듣는 걸 보니 상황이 많이 다른 모양이었다.안리영은 도둑고양이처럼 뒷좌석에 앉아 오늘의 조시언이 많이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하지만 이미 따라왔으니 멈출 수는 없었다.20여 분이 지났다. 조시언의 차는 공간이 아주 컸지만 안리영은 움직이면 들킬까 봐 그대로 웅크리고 있었다. 조시언은 한 당구장에 도착해 차를 맡기고 떠났다. 안리영은 그사이에 기지개를 폈다. 발렛파킹을 맡은 직원은 갑자기 나타난 안리영을 보고 깜짝 놀랐다.“주차해요.”안리영은 그렇게 얘기하고 눈앞의 직원에게 돈을 준 뒤 얘기했다.“그리고 나를 데리고 아까 저 남자를 찾아가 줘요. 아무 말도 하지 말고요.”직원은 무슨 일인지 바로 알았다. 그리
자신만만해하는 안성수를 보면서 조수민이 가볍게 그를 발로 차버렸다.“그러게 눈을 다른 데로 좀 돌려볼걸. 못난 사람 중에 덜 못난 사람을 골랐으니.”“그래도 못난 사람 중에는 내가 제일 잘났지.”안성수는 또 조수민을 어르고 달래면서 얘기했다.조수민은 화제를 돌리는 안성수를 보면서 얘기했다.“지금 리영이 얘기를 하는데 왜 갑자기 말이 거기로 새는 거야.”“이상한 남자라는 게 어떤 걸 말하는지 모르겠어. 뭔가를 눈치챈 거야? 아니면 리영이가 뭐라고 한 거야? 리영이도 성인인데 너무 걱정하지 마. 지금 시대는 부모의 결정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야.”안성수는 열려있는 사람이었다.조수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얘기했다.“시언이는 내 동생이지만 나는 시언이를 아들처럼 키웠어.”화제가 갑자기 안리영에서 조시언으로 돌아갔다. 안성수는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내일 병원 가보는 게 좋겠어.”그러자 조수민이 또 발로 안성수를 찼다.“갑자기 병원은 왜 가. 난 멀쩡해. 만약에 말이야, 리영이랑 시언이가 사귀면 어떨 것 같아?”안성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어서 손을 들어 조수민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얘기했다.“오늘 무슨 약을 잘못 먹었길래 이런 얘기를 하는 거야?”조수민은 안성수를 보다니 확 불을 끄고 누웠다.한참 있다가 안성수가 대답했다.“두 사람이 사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시언이는 우리가 예전부터 봐 온 아이니까.”공기는 아주 조용했고 아무 소리도 없었다.안리영은 집에서 나온 뒤 조시언에게 문자나 전화를 하지 않고 바로 찾아가서 서프라이즈를 하고 싶었다.침실 전등이 켜져 있는 것을 본 안리영은 표정이 확 밝아졌다.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니 거실에 무드등이 켜져 있었다. 안리영은 가방과 외투를 현관에 두고 슬리퍼도 신지 않은 후 맨발로 침실 문을 열었다.침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화장실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안에서는 샤워 소리가 들려왔다.안리영은 침대로 들어가 조시언을 기다렸다.평소의 조시언을 생각하면 10분 정도면 샤워가 끝날
그 차가운 눈빛은 조수민을 대표할 수 있을 정도였다.안리영은 그 눈빛을 견디지 못하고 두손 두발 다 들뻔했지만 조수민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우유 마시고 일찍 자.”말을 마친 조수민이 방을 나갔다.안리영은 굳게 닫힌 문을 보면서 중얼거렸다.“끝인가?”안리영은 오늘 저녁 조수민에게 모든 사실을 낱낱이 얘기해야 하는 줄 알았다.하지만 안리영이 느끼기에 조수민은 이미 무언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이상하게 행동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왜 여기서 그친 것이지?안리영은 이해되지 않았지만 다시 침대에 누워서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다.물론 조수민이 안리영에게 각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조수민의 사랑 방식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안리영은 조수민에게 본인의 연애 사실을 숨기는 사람이 되었다.어릴 때부터 조수민은 안리영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조수민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엄마로서 딸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보고 싶다면서 말이다.그때 안리영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결국 먼저 저지르고 뒤늦게 알리는 꼴이 되었다.안리영은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집을 떠나지 않기로 했다.[내일 아침에 가서 배웅할게.]그 문자를 본 조시언은 이상함을 느끼고 대답했다.[너 괜찮아?]안리영은 조시언이 걱정한다는 것을 알고 조수민의 반응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약간 양심이 찔리긴 해.][그럼 다른 생각하지 말고 집에서 푹 쉬고 있어. 내가 돌아오길 기다려.]안리영은 더 대답하지 않고 씻은 뒤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다.그러다 보니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었다. 세 번째로 화장실을 갈 때, 조수민이 방에서 나와 물었다.“배탈 났어?”“아니. 우유를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아.”그 대답에 조수민이 어이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안리영이 또 해명했다.“엄마를 탓하는 건 아니야.”“너 때문에 시끄러워 죽겠어. 얼른 네 집으로 가.”조수민이 갑자기 안리영을 향해
“나는? 엄마 친딸은 그 사람보다 많이 모자라?”안리영은 일부러 질투하는 듯이 물었다.“많이 모자라지는 않지. 그래도 네 삼촌이 너보다 대단한 건 사실이야.”“...”안리영은 조수민이 예전에 잃었던 아이를 떠올렸다. 아마 조수민에게 있어 조시언은 아들 같은 존재일 것이다.“조시언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긴 해. 내가 아는 남자들 중에서 가장 대단하니까.”“조시언, 조시언. 네 삼촌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조수민이 안리영을 혼냈다. 안리영은 그저 장난스레 웃었다.“어릴 때부터 이렇게 불렀는데.”“이제는 어리지 않잖아.”조수민은 힘주어 얘기했다.안리영은 조수민의 뜻을 알아차렸지만 대답하지 않았다.두 집은 아주 가까웠기에 10분 걸어서 도착할 수 있었다. 집에 들어와 방에 도착한 안리영이 조시언의 문자에 답장했다.그리고 넌지시 알려주었다.[엄마가 우리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아.][그러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겠네.]조시언이 긍정적으로 대답했다.안리영은 침대에 누워서 얘기했다.[오늘 밤은 어떡해?]안리영은 조시언이 보고 싶었다. 오늘이 지나면 며칠 동안 떨어져야 했으니까.연애는 정말 사람의 감정을 쥐락펴락했다. [늦은 시간에 데리러 갈게.]조시언의 대답에 안리영이 피식 웃었다.[우리 엄마한테 들킬까 봐 두렵지도 않아?][무섭지.]“...”[그래도 너랑 함께 있고 싶어.]마음 한편이 달달해졌다. 안리영은 침대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문자를 보냈다.[병원에 일이 있다고 하고 가야겠어.][그럼 앞에서 미리 기다릴게.]안리영은 해맑게 웃는 이모티콘을 보낸 뒤 핸드폰을 놓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조수민은 들어오자마자 헤헤 웃는 안리영을 보면서 얘기했다.“쯧쯧, 이 나이 먹고도 그렇게 자는 거야?”안리영은 자세를 단정히하고 우유를 가져온 조수민을 보면서 얘기했다.“왜 나를 집으로 데려온 건지 이유나 얘기해 봐.”조수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리영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