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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네가 보는 곳으로

Author: 미셀1278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9 17:23:34

10화. 네가 보는 곳으로

검은 손이 수면을 뚫고 올라온 순간, 호수의 달빛이 산산이 흔들렸다.

조금 전까지 잔잔하던 수심각 아래로 먹빛 파문이 번지더니, 물속에서 사람의 형상을 닮은 그림자들이 하나둘 기어올랐다. 얼굴도 눈도 없는 검은 몸이 물에 젖은 천처럼 늘어졌다가 다시 일어섰다.

문령은 난간 가까이에 서서 숨을 낮췄다.

하륜의 검이 가장 먼저 달려든 그림자의 몸을 갈랐다.

검은 형체가 양쪽으로 찢어졌다.

그러나 쓰러지지는 않았다.

바닥으로 흩어진 검은 물방울들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하나였던 그림자가 둘이 되어 일어났다.

문령의 얼굴이 굳었다.

“베면 안 돼요.”

하륜의 검끝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럼?”

짧은 한마디였다.

문령은 그림자를 보지 않고 그 아래를 보았다.

수면 위에서 끊어지는 달빛, 기둥 아래로 모였다 흩어지는 물결, 검은 형체가 올라오기 직전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는 파문.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아무 의미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진은 언제나 흐름을 남겼다.

문령의 시선이 동쪽 기둥 아래에서 멈췄다.

“오른쪽으로 두 걸음.”

하륜이 바로 움직였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서 검은 팔 하나가 솟구쳤다.

문령은 손에 쥔 진침을 조금 더 세게 움켜쥐었다.

“검을 세우지 말고 눕혀요. 달빛 밖으로 밀어내듯이.”

하륜의 손목이 돌아갔다.

세워져 있던 검날이 비스듬히 누웠다. 검은 그림자의 옆구리를 밀어내자, 형체가 수심각 기둥이 드리운 그늘로 미끄러졌다.

그 순간 몸이 힘을 잃었다.

검은 물처럼 바닥에 흩어지더니 그대로 수면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문령의 눈빛이 선명해졌다.

“맞아요.”

“다음.”

하륜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

문령은 다시 호수를 읽었다.

“왼쪽 한 걸음.”

하륜이 움직였다.

“조금 뒤로.”

이번에는 문령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이 먼저 돌아갔다.

두 번째 그림자가 밀려났다.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쯤 이어졌을 때, 문령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하륜이 너무 빨랐다.

자신이 끝까지 말하기 전에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북쪽 기둥 아래…….”

문령이 말을 멈췄다.

하륜의 검은 이미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조금 커졌다.

하륜은 그림자 하나를 밀어낸 뒤 짧게 물었다.

“왜.”

“아니에요.”

문령은 대답하면서도 그를 계속 바라보았다.

하륜은 자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먼저 보고 있었다.

문령의 눈이 어느 쪽으로 향하는지, 진침을 쥔 손끝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숨이 끊기는 순간이 언제인지.

그가 자신의 움직임을 읽고 있었다.

문령이 진의 길을 찾으면 하륜의 검이 그 자리로 들어왔다.

그의 검이 길을 막으면 문령은 비워진 곳에 진침을 꽂았다.

처음에는 전투의 호흡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반복될수록 이상했다.

너무 정확했다.

문령은 수심각 바닥에 흩어진 푸른 진문과 하륜의 발밑에서 번지는 금빛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 문득 오래된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월영서고 깊숙한 곳에서 어머니의 글씨로 적혀 있던 문장.

진은 길을 읽고, 검은 그 길을 지킨다.

그때는 별다른 의미 없이 넘겼다.

진법가와 검사의 역할을 적어놓은 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그 문장이 움직이고 있었다.

문령은 무심코 품 안의 옥패를 꺼냈다.

옥패가 뜨거웠다.

거의 동시에 하륜의 금패에서도 낮은 울림이 났다.

웅—

두 패 사이로 아주 얇은 빛의 선 하나가 이어졌다.

문령은 숨을 멈췄다.

“단 공자.”

하륜이 검을 낮춘 채 그녀를 돌아보았다.

“왜.”

문령은 한동안 말을 고르지 못했다.

“아까부터 제가 말을 다 하지 않아도 움직이고 있었죠.”

하륜은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네가 보는 곳을 보면 되니까.”

문령의 손끝이 아주 조금 멈췄다.

그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서 오히려 더 오래 남았다.

문령은 다시 두 패 사이의 빛을 바라보았다.

하나가 길을 읽고.

하나는 그 길을 지킨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왜 두 패가 서로를 부르는지.

왜 자신의 진과 하륜의 검이 함께 있을 때만 봉인이 반응하는지.

“우리가 같은 주인인 게 아니었어요.”

하륜의 눈이 조금 좁아졌다.

문령은 수면 아래 흐르는 진의 선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둘이 있어야 하나의 진이 돼요.”

잠시 바람이 멎었다.

수심각 아래에서 검은 물결이 크게 흔들렸다.

하륜은 문령을 바라보다 낮게 물었다.

“그래서 두 주인인가.”

문령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요.”

확실한 것은 아직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하나의 답이 보였다.

계속해서 비밀만 늘어가던 수월별궁에서, 문령은 처음으로 이유 하나를 손에 넣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륜이 검을 다시 들었다.

“그럼 됐군.”

문령이 그를 보았다.

“뭐가요?”

“네가 길을 봐.”

그의 시선이 문령에게 곧게 닿았다.

“나는 그쪽으로 갈 테니까.”

문령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말은 짧았고 얼굴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따뜻해졌다.

자신은 진을 읽을 때조차 몇 번씩 스스로를 의심했다.

혹시 틀렸으면 어쩌나.

한 획을 잘못 봤으면 어쩌나.

그런데 하륜은 한 번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문령이 가리키면 갔다.

멈추라 하면 멈췄고, 베지 말라 하면 검을 눕혔다.

그 믿음이 이상하게 마음을 놓이게 했다.

“왼쪽이에요.”

문령이 말했다.

하륜이 몸을 돌렸다.

그 뒤부터 두 사람의 움직임은 조금 달라졌다.

문령이 고개를 드는 순간 하륜이 먼저 자리를 옮겼고, 하륜이 검집으로 그림자를 밀어내면 문령은 그가 만들어놓은 틈으로 진침을 던졌다.

말이 줄어들수록 오히려 호흡은 더 맞았다.

하륜이 가까이 지나갈 때마다 검은 옷자락이 문령의 소매 끝을 스쳤다.

한 번은 검을 돌리며 몸을 틀던 하륜의 어깨가 거의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

문령은 무심코 숨을 멈췄다.

달빛 아래에서 젖은 검은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검을 쥔 손과 단단한 팔의 움직임, 집중할 때 더 날카로워지는 눈매가 가까운 거리에서 선명하게 들어왔다.

문령은 자신의 시선이 필요 이상으로 오래 머물렀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호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하륜이 불렀다.

“서문령.”

문령의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네?”

“진.”

“알아요.”

대답이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

문령은 괜히 진침만 다시 고쳐 쥐었다.

이름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심장이 한 번 늦게 따라오는 것 같았다.

그 감정을 생각할 틈은 없었다.

물 아래의 문이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은빛으로 흔들리던 물속의 달이 검게 물들었다.

문령의 얼굴이 굳었다.

“단 공자, 잠깐—”

검은 기운이 먼저 솟아올랐다.

하륜이 검을 들어 막았다.

검은 빛이 검날에 닿는 순간 흩어지지 않고 쇠를 타고 올라왔다.

하륜의 몸이 굳었다.

문령의 눈이 커졌다.

“단하륜!”

검끝에서 시작된 검은 기운이 손등을 타고 팔목으로 번졌다.

피부 아래로 먹물이 스며드는 것처럼 검은 선이 길게 퍼졌다.

하륜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

문령은 숨을 삼켰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보는 곳을 바라보던 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안에 자신이 없었다.

하륜의 손이 검자루를 더 깊이 움켜쥐었다.

어디선가 낮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네가 옳았다.

하륜의 눈썹이 굳었다.

네가 버리려 했던 검보다 더 강한 검을 줄 수 있다.

문령은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대신 하륜의 검기가 변하는 것은 보였다.

맑고 날카롭던 금빛 아래로 검은 기운이 번졌다.

하륜의 검끝이 천천히 돌아갔다.

자신을 향해서였다.

강무결이 창을 들었다.

“사형!”

문령은 움직이지 않았다.

무서웠다.

검끝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보다, 하륜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더 무서웠다.

문령은 떨리는 숨을 삼키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단하륜.”

하륜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문령은 그것을 보았다.

그래서 한 걸음 다가갔다.

“저 검이 정말 당신 검이에요?”

하륜의 입술이 움직였다.

“……비켜.”

문령은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그의 검끝이 조금 떨렸다.

문령의 눈앞에 낮의 장면이 스쳤다.

약초를 빼앗긴 아이 앞에서 몸을 낮추던 모습.

세 사람을 순식간에 눌러놓고도 검을 뽑지 않았던 사람.

흩어진 약초를 손으로 하나씩 주워주던 사람.

그리고 조금 전, 자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움직이던 사람.

“그 검.”

문령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당신답지 않아요.”

하륜의 눈동자가 다시 흔들렸다.

문령은 조금 더 가까이 갔다.

“제가 본 단하륜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 순간 발밑의 진이 크게 흔들렸다.

중심 진침이 푸른빛을 토해냈다.

문령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진을 지켜야 했다.

침을 놓치면 봉인이 더 열릴 수 있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다시 하륜을 보았다.

검은 기운이 그의 팔을 더 깊게 타고 있었다.

문령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중심 진침을 뽑았다.

“서 소저!”

백유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령은 돌아보지 않았다.

진침을 쥔 채 하륜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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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화. 네가 보는 곳으로검은 손이 수면을 뚫고 올라온 순간, 호수의 달빛이 산산이 흔들렸다.조금 전까지 잔잔하던 수심각 아래로 먹빛 파문이 번지더니, 물속에서 사람의 형상을 닮은 그림자들이 하나둘 기어올랐다. 얼굴도 눈도 없는 검은 몸이 물에 젖은 천처럼 늘어졌다가 다시 일어섰다.문령은 난간 가까이에 서서 숨을 낮췄다.하륜의 검이 가장 먼저 달려든 그림자의 몸을 갈랐다.검은 형체가 양쪽으로 찢어졌다.그러나 쓰러지지는 않았다.바닥으로 흩어진 검은 물방울들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하나였던 그림자가 둘이 되어 일어났다.문령의 얼굴이 굳었다.“베면 안 돼요.”하륜의 검끝이 허공에서 멈췄다.그는 돌아보지 않았다.“그럼?”짧은 한마디였다.문령은 그림자를 보지 않고 그 아래를 보았다.수면 위에서 끊어지는 달빛, 기둥 아래로 모였다 흩어지는 물결, 검은 형체가 올라오기 직전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는 파문.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아무 의미 없는 움직임이었다.그러나 진은 언제나 흐름을 남겼다.문령의 시선이 동쪽 기둥 아래에서 멈췄다.“오른쪽으로 두 걸음.”하륜이 바로 움직였다.그가 서 있던 자리에서 검은 팔 하나가 솟구쳤다.문령은 손에 쥔 진침을 조금 더 세게 움켜쥐었다.“검을 세우지 말고 눕혀요. 달빛 밖으로 밀어내듯이.”하륜의 손목이 돌아갔다.세워져 있던 검날이 비스듬히 누웠다. 검은 그림자의 옆구리를 밀어내자, 형체가 수심각 기둥이 드리운 그늘로 미끄러졌다.그 순간 몸이 힘을 잃었다.검은 물처럼 바닥에 흩어지더니 그대로 수면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문령의 눈빛이 선명해졌다.“맞아요.”“다음.”하륜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문령은 다시 호수를 읽었다.“왼쪽 한 걸음.”하륜이 움직였다.“조금 뒤로.”이번에는 문령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이 먼저 돌아갔다.두 번째 그림자가 밀려났다.세 번째도 마찬가지였다.몇 번쯤 이어졌을 때, 문령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하륜이 너무 빨랐다.자신이 끝까지 말하기 전에

  • 수월별궁의 두 주인   9화. 물 아래의 달

    9화. 물 아래의 달별궁으로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조용했다.강무결은 단가의 명령서가 하륜의 손에서 찢어진 뒤부터 거의 입을 열지 않았고, 하륜 역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서문령은 두 사람 사이를 걷다가 몇 번이나 앞선 하륜의 등을 바라보았다.며칠 함께 지내며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단하륜은 화가 날수록 오히려 조용해지는 사람이었다. 목소리를 높이거나 주변 사람에게 감정을 쏟는 대신 입을 다물었고, 생각이 많아질수록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처음에는 자신에게만 무뚝뚝한 줄 알았다. 하지만 강무결에게도, 백유겸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필요한 말 이상은 하지 않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람을 함부로 몰아붙이지도 않았다. 말투는 거칠어도 행동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문령은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몇 걸음 앞서가던 하륜의 보폭이 어느 순간 느려졌다.동쪽 회랑을 지나 수심각으로 이어지는 돌길에 들어서자 그와 문령의 거리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하륜의 한 걸음은 자신보다 훨씬 컸는데도 이상하게 계속 같은 간격이었다.“저 때문에 천천히 걷는 거예요?”하륜이 고개만 조금 돌렸다.“아니다.”“아까는 더 빨리 걸었잖아요.”잠깐의 침묵 뒤 그가 앞을 보며 말했다.“밤길이 미끄럽다.”문령은 저도 모르게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비는 오지 않았고 돌길은 말라 있었다. 그 사실을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수심각은 수월별궁의 가장 동쪽, 호수 안쪽으로 길게 뻗어 나온 자리에 세워져 있었다. 낮이라면 푸른 물결과 낡은 기둥이 어우러져 고즈넉하게 보였겠지만, 달이 뜬 뒤의 수심각은 전혀 다른 곳처럼 느껴졌다. 검푸른 호수 위로 은빛이 길게 부서졌고 처마 끝의 풍경은 바람도 없는데 이따금 낮게 울었다.문령은 좁은 나무다리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수심각 아래 물고기를 보고 싶어 호숫가까지 내려갔던 날, 평소 좀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던 어머니가 멀리서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문령아. 저곳에는 가지 마라.왜냐고 묻자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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