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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피 묻은 검을 든 두 번째 주인

Author: 미셀1278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1 20:02:31

2화. 피 묻은 검을 든 두 번째 주인

안개 사이로 다가오던 남자는 가까워질수록 또렷해졌다. 젖은 검은 장포가 넓은 어깨를 따라 내려앉아 있었고, 허리에는 긴 장검이 걸려 있었다.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그의 걸음이었다.

수월별궁을 처음 찾은 사람이라면 복잡하게 이어진 회랑을 한 번쯤 살필 법했지만, 남자는 어느 길을 택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문령의 시선이 검끝에 머물렀다.

뚝.

피 한 방울이 돌바닥에 떨어졌다.

“당신이…….”

생각보다 목소리가 작게 나왔다.

문령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시 물었다.

“이 사람을 죽였나요?”

남자가 걸음을 멈췄다. 차갑고 깊은 눈이 문령을 스친 뒤 바닥의 시신과 피로 적힌 문장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두 번째 주인을 들이지 마라.

아주 잠깐 그의 표정이 변했다.

“그 질문은 내가 해야겠는데.”

“뭐라고요?”

“네가 저자를 안으로 들였나?”

“제가 문은 열었지만, 이미 밖에 쓰러져 있었어요.”

“그게 문제다.”

남자가 한 걸음 다가왔다.

문령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려다가 멈췄다.

수월별궁에는 나이가 지긋한 관리들과 무사들은 많았지만 문령과 비슷한 또래의 젊은 사내는 거의 없었다. 그 때문인지 문령은 자신도 모르게 눈앞의 남자를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키가 컸고, 문령이 눈을 맞추려면 턱을 조금 들어야 했다. 눈매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얼굴선은 지나치게 거칠지 않았고, 비에 젖은 검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이마에 내려와 있었다.

문령은 잠시 엉뚱한 생각을 했다.

‘또래 남자들은 원래 이렇게 큰가?’

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자신이 낯선 남자의 얼굴을 너무 오래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령은 황급히 시선을 내렸다.

그의 검에서는 아직 옅은 피 냄새가 남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보다 먼저 느껴진 것은 차갑고 씁쓸한 약초 향이었다.

두 사람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한 걸음만 더 가까워지면 검보다 그의 숨결이 먼저 닿을 것 같았다.

문령은 진침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거기서 멈춰요.”

남자가 다시 움직이려는 순간 진침을 바닥에 꽂았다.

탁.

푸른빛이 회랑을 가르며 세 갈래로 퍼졌다.

삼중호월진.

기맥을 눌러 침입자의 움직임을 묶는 진이었지만 남자는 검조차 뽑지 않았다. 발끝을 반 치 틀어 첫 번째 진선을 흘려보내고, 다음 선이 가장 약해지는 순간을 골라 자연스럽게 지나갔다.

문령의 눈이 커졌다.

진을 부순 것이 아니었다.

읽은 것이다.

“어설픈 진은 아니군.”

두려움보다 자존심이 먼저 건드려졌다.

“그쪽도 평범한 침입자는 아닌 것 같네요.”

“침입자?”

남자의 눈빛이 낮게 가라앉았다.

“내 별궁에 들어오는데 허락이 필요한가?”

문령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뭐라고요?”

남자는 품에서 어둡게 빛나는 금패를 꺼냈다.

금패 중앙에는 검 한 자루가 달을 가르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문령은 어머니의 오래된 서책에서 같은 표식을 본 기억을 떠올렸다.

단가.

“단하륜.”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수월별궁의 계승자다.”

문령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품에서 옥패를 꺼냈다.

“말도 안 돼요.”

물결과 반달이 새겨진 옥패는 어머니가 죽기 직전 직접 손에 쥐여준 것이었다.

“수월별궁은 어머니가 제게 남긴 곳이에요.”

하륜의 시선이 옥패에 머물렀다가 다시 문령의 얼굴로 올라왔다.

처음 봤을 때 그는 문령을 별궁을 지키는 어린 아가씨 정도로 생각했다. 진침을 쥔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낯선 사람을 바라보는 눈에는 경계와 불안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물러서지는 않았다.

겁먹은 사람이 보통 택하는 것은 도망이었지만, 이 여자는 자신보다 훨씬 강해 보이는 상대 앞에서도 진부터 펼쳤다.

하륜의 눈빛이 아주 조금 달라졌다.

“그 패를 어디서 얻었지?”

문령의 표정이 굳었다.

“얻은 게 아니에요.”

“그럼?”

“제 거예요.”

그 순간 옥패가 낮게 떨렸다.

우웅.

거의 동시에 하륜의 금패도 울렸다.

푸른빛과 금빛이 각자의 손에서 피어나 서로를 향해 번졌다.

“잠깐…….”

문령이 손을 거두려 했지만 늦었다.

두 빛이 맞닿았다.

콰앙!

수월별궁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회랑의 기둥과 처마, 마당을 이루는 돌 사이로 오래 잠들어 있던 진문이 차례로 깨어났고, 잔잔하던 호수는 바람도 없는데 거칠게 출렁였다.

그와 동시에 죽은 사내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문령의 얼굴이 굳었다.

검은 기운은 살아 있는 것처럼 바닥을 기어 두 패의 빛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제야 문령은 알아차렸다.

“미끼였어…….”

하륜이 그녀를 보았다.

“뭐?”

“이 사람은 도움을 청하러 온 게 아니에요.”

문령의 시선이 시신으로 향했다.

“우리가 만나기를 기다린 거예요.”

별궁 깊은 곳에서 둔탁한 울림이 일었다.

쿵.

그리고 다시 한 번.

쿵.

누군가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을 안쪽에서 두드리는 듯한 소리였다.

그때 회랑 너머에서 백유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나 침착하던 노인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백 총관님?”

백유겸은 두 사람의 패를 바라보다 한쪽 무릎을 꿇었다.

“늦었습니다.”

“뭐가요?”

그의 입술이 굳었다.

“첫 번째 봉인이 풀렸습니다.”

그 순간,

바닥에 쓰러져 있던 사내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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