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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북문 밖 주막

Author: 지호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9-06 07:23:20

해가 기울 무렵, 북문 밖 주막에는 장사꾼과 행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채원은 주막 맞은편 포목전 이층 창가에 앉아 있었다.

평민 차림으로 갈아입었지만 목에는 아직 얇은 천을 둘렀다. 창틀 옆에서 골목을 살피는 건 이운이었다.

백건의 사람들은 손님과 장사꾼 틈에 흩어져 있었고, 백건 자신은 뒤뜰이 보이는 골목 입구에 자리를 잡았다.

채원이 창가로 바싹 다가가자 이운이 낮게 말했다.

“너무 앞으로 나가지 마라.”

“여기서 봐야 놓치지 않죠.”

이운이 창문을 조금 닫자, 찬바람이 막힌 자리에서 채원이 그를 올려다봤다.

“감기라도 들면 또 사흘을 누워 있을 테니까.”

“이번에는 안 그럴 겁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채원은 웃을 뻔하다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쪽지에 적힌 시각이 가까워지자,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사내가 뒤뜰로 들어섰다.

그는 빈 평상 앞에 서서 주변을 살폈다.

이내 왼쪽 뺨에 긴 흉터가 난 사내가 골목에서 모습을 드러내더니, 회색 두루마기 사내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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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55. 거짓의 값

    편전 앞뜰의 국문장은 전날보다 더 엄중했다.임금이 편전 문턱 앞에 앉자 의금부 당상과 기록 관리들이 양옆에 섰다.뜰 가운데에는 나인 둘과 한도겸, 귀비전 최 내관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조필규와 신태오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지 못하도록 조금 떨어진 곳에 앉혀 두었다.채원은 이운의 곁에 섰다. 탄 서찰 조각과 출입 장부, 죄인들의 입이 오늘 한데 맞물려야 했다.오늘의 국문장은 한 사람의 자백만 듣고 끝낼 자리가 아니었다.같은 밤을 본 이들의 말이 맞물릴 때까지, 누구도 이 뜰을 벗어날 수 없었다.임금은 먼저 박칠성을 죽이라는 쪽지를 받은 나인을 불렀다.“쪽지를 누가 주었지.”“귀비전 최 내관이었습니다. 박칠성이 입을 열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최 내관이 고개를 들었다.“거짓말이다. 내가 언제 네게 그런 쪽지를 주었느냐.”나인은 몸을 떨며 대답했다.“귀비마마의 심부름이라 하셨습니다.”“내가 귀비마마의 이름을 댄 증거가 있느냐.”나인은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임금의 시선이 두 번째 나인에게 옮겨 갔다.“너는 세자빈의 처소를 뒤졌지.”“예, 전하.”“무엇을 찾았느냐.”“세자빈마마의 경대 안쪽 틈에서 서찰 한 장을 찾았습니다.”“누가 찾으라 했지.”나인은 한도겸을 바라봤다.“한도겸 나리께서 시키셨습니다. 찾은 서찰은 곧바로 나리께 드렸습니다.”채원의 손끝이 굳었다.임금이 한도겸에게 물었다.“그 서찰은 어떻게 했느냐.”“태웠습니다, 전하.”“왜 태웠지.”한도겸은 한참 고개를 들지 못했다.“최 내관이 제게 찾으라 했습니다. 세자빈마마의 경대에서 나온 글은 한 글자도 남기지 말라 했습니다.”“그 편지가 누구의 것인지 알고도 태웠느냐.”“펴 보았습니다. 윤정명 대감께서 세자빈마마께 보내신 서찰이었습니다.”한도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제가 붙잡혔을 때 나온 불에 탄 조각이 그 서찰입니다.”최 내관이 급히 소리쳤다.“한도겸은 동궁에서 쫓겨난 자입니다. 세자저하께 앙심을 품고 아무 말이나 하는 것입니다!”이운이 낮게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54. 거짓의 값

    다음 날 아침, 편전 앞뜰에는 국문장이 마련되어 있었다.편전의 문이 열린 곳에는 임금의 자리가 놓였고, 그 아래로 의금부 당상과 기록 관리들이 차례로 섰다.뜰 한가운데에는 박칠성, 최억쇠, 신태오, 조필규, 귀비전 최 내관, 그리고 뒷쪽에는 나인둘과 한도겸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이운은 임금의 오른편에 섰다.채원은 조금 뒤에 서서, 죄인들 앞에 놓인 장부들을 바라봤다.궁문 출입부.병조 군령 장부.윤정명 사가 수색 기록.귀비전 약재 창고 장부.그리고 그들의 진술서.장부는 많았고, 증인도 늘어났다.하지만 어느 것도 결론이 되지는 못했다.신태오는 병조 쪽의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김태겸이 직접 명령을 내렸다는 글이나 서명은 없었다.최 내관은 조필규에게 붉은 비단 꾸러미를 받았다고 했다.하지만 귀비가 인장을 숨기라 지시하는 모습을 본 것은 아니었다.조필규는 윤재경의 이름을 끌어들였다가 거짓이 드러났지만, 끝내 누구에게서 말을 들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정황은 모두 병조판서와 귀비를 가리켰다.그러나 손에 쥔 것은 서로 얽힌 의심뿐이었다.임금이 앞에 놓인 장부를 펼쳤다.“박칠성.”박칠성이 몸을 떨었다.“네가 윤정명 사가에서 칼 서른 자루를 보았다고 한 밤은 초여드레다.”“예, 전하.”“칼 서른 자루가 대장간을 나간 날은 초아흐레 새벽이다.”박칠성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네가 본 것이 칼이 아니라면 무엇이었느냐.”“저는… 어두워서 정확히 보지 못했습니다.”“처음 진술에는 정확히 서른 자루라고 적혀 있다.”박칠성은 바닥에 이마를 댔다.“누가 그렇게 말하라 하였느냐.”“모르옵니다. 저는 그저….”“그저 무엇이냐.”박칠성은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임금은 신태오를 불렀다.“너는 세자빈이 초여드레 밤 서문으로 궁을 나갔다고 적었다.”“예, 전하.”“직접 보았느냐.”신태오가 고개를 숙였다.“보지 못했습니다.”“그럼 왜 적었지.”“궁문 기록을 정리하라며… 날짜와 시각이 적힌 종이를 받았습니다.”채원의 시선이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53. 죽은 자의 이름

    “인장을 가져온 사람은 윤정명 대감의 아들이었습니다.”조필규의 말이 끝나자 대전 안이 술렁였다.채원은 그를 바라봤다.죽은 사람에게 죄를 떠넘기는 얼굴이었다.이운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어느 아들이지.”조필규가 잠시 눈을 굴렸다.“둘째 아들입니다.”“언제 보았느냐.”“초여드레 밤입니다.”“어디에서.”“윤정명 사가 서쪽 담 근처에서 보았습니다.”“무엇을 들고 있었지.”“붉은 비단에 싼 물건이었습니다.”이운의 물음은 짧았지만 멈추지 않았다.“그날 밤에는 달이 없었다. 담 밖에서 얼굴을 알아볼 만큼 가까이 있었느냐.”조필규의 입술이 굳었다.“가까이 있었습니다.”“그럼 그가 입은 옷은.”“푸른 도포였습니다.”“허리띠 색은.”조필규가 대답하지 못했다.이운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윤정명 대감의 둘째 아들 윤재경은 체포될 때 검은 도포를 입고 있었다. 의금부의 체포 기록에도 적혀 있다.”조필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채원이 낮게 말했다.“모르는 사람의 모습을 지어내다 보니, 그날과 체포된 날이 뒤섞였구나.”“아닙니다.”조필규가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분명 보았습니다.”“무엇을 보고 그가 윤정명 대감의 아들이라 여겼지.”“얼굴을 알았습니다.”“네가 윤재경을 몇 번이나 보았는데.”조필규는 대답하지 못했다.채원은 조필규에게 다가갔다.“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이 죽은 뒤에야, 너는 우리 집 문턱을 넘었어. 그런데 어느 날의 어떤 옷을 입었는지까지 안다고?”조필규가 시선을 피했다.“죽은 사람의 이름을 들먹이면 아무도 반박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세자빈마마께서도 그 밤에 사가에 없었다는 증거는 없지 않습니까.”조필규가 겨우 말을 꺼냈다.채원의 눈이 서늘해졌다.“그래서 내 이름을 궁문 장부에 적었구나.”“저는 시킨 대로....”“누가 시켰지.”조필규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임금이 손을 들어 그 말을 끊었다.“조필규.”낮은 목소리였지만, 대전 안의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너는 윤정명과 두 아들이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52. 서로의 죄

    다음 날 아침, 대전 바닥에는 붉은 비단 꾸러미와 문서 뭉치가 놓여 있었다.윤정명의 인장과 병조의 관인이 나란히 놓인 모습에 대신들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임금은 문서 한 장을 들어 올렸다.“세자를 폐하고 새로운 국본을 세운다.”낮게 읽은 문장이 대전 안에 떨어졌다.“윤정명의 인장과 병조의 관인이 함께 찍혔다. 누가 이 문서를 만들었는지, 오늘 여기서 밝히겠다.”나장이 조필규와 최 내관을 차례로 끌고 들어왔다.조필규는 밤새 심문을 받은 듯 얼굴이 푸석했다. 최 내관은 무릎을 꿇자마자 바닥에 이마를 댔다.“최 내관.”임금이 불렀다.“네가 귀비전 약재 창고에 인장을 숨겼느냐.”최 내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그, 그렇습니다.”대신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귀비전의 내관이 직접 인정한 이상, 귀비를 향한 의심도 피할 수 없었다.“누구의 명이었지.”최 내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운이 문서 한 장을 그의 앞에 던졌다.“이 글을 보아라. 네가 숨긴 인장으로 세자를 폐하겠다는 문서를 만들었다. 그래도 누구의 명인지 말하지 못하겠느냐.”“읽었습니다. 하지만 그 문서를 제가 만든 것은 아닙니다.”이운이 차갑게 물었다.“읽고도 윤정명 대감의 인장과 함께 숨겼군.”최 내관의 어깨가 움찔했다.채원이 앞으로 나왔다.“조필규가 네게 건넸지.”최 내관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대답해라.”“예.”“언제.”“초여드레 밤입니다.”“어디에서.”“후원 서쪽 길입니다.”조필규가 고개를 들었다.“거짓입니다. 저는 최 내관에게 인장을 건넨 적이 없습니다.”“네가 거짓말을 한다.”최 내관이 처음으로 조필규를 보았다.“네가 붉은 비단에 싸서 내게 주지 않았느냐. 귀비전 창고에 잠시 두라고 했잖느냐.”“내가 왜 그리하겠느냐.”“약속한 돈도 주지 않았습니다!”최 내관이 다급하게 말을 쏟아 냈다.“사건이 끝나면 내게 은전 백 냥을 준다 했습니다. 인장은 잠시만 맡기면 된다 했고, 일이 끝나면 가져가겠다 했습니다.”조필규의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51. 귀비전의 인장

    “궁 안으로 들어왔다고 했느냐.”임금의 물음에 신태오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그 인장을 누가 받아 갔는지 보았느냐.”“보았습니다.”대전의 시선이 다시 신태오에게 쏠렸다.“말해라.”“귀비전의 최 내관이었습니다.”내관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와 있던 임금의 손이 멈췄다.이운이 물었다.“조필규가 직접 넘겼지.”“예. 궁 서쪽 후원 길입니다. 조필규 나리가 붉은 비단 꾸러미를 내밀었고, 최 내관이 받았습니다.저는 그 곁을 지나가다 보았습니다.”“그 뒤 어디로 가져갔는지는.”“귀비전 쪽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보았습니다.”김태겸이 굳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전하, 죄인의 말 하나로 귀비전까지 뒤지는 것은 무리입니다. 최 내관이 무엇을 받았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았습니다.”채원이 김태겸을 바라봤다.“출궁 장부를 고친 자의 말이라서 못 믿겠다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귀비전에서 나올 물건이 두려우신 겁니까.”“세자빈마마.”“대감은 박칠성의 말 한마디로 제 사가를 뒤졌습니다. 그때는 증거가 충분했습니까.”김태겸의 입가가 굳었다.채원은 임금에게 시선을 돌렸다.“신태오의 말만 믿자는 것이 아닙니다. 전하의 명으로 확인하자는 것입니다.인장이 없다면 귀비전의 억울함도 그 자리에서 풀릴 일입니다.”임금은 잠시 말이 없었다.그러다 내관을 불렀다.“금군을 보내라. 귀비전의 최 내관을 잡아들이고, 전각과 창고를 모두 봉하라.”“예, 전하.”“세자와 세자빈도 함께 가 보아라. 의금부 당상을 보내고, 수색한 물건은 누구 손에도 건네지 말고 내 앞에 가져오라.”이운이 고개를 숙였다.“명을 받들겠습니다.”귀비전의 문이 열렸을 때, 귀비는 이미 뜰에 나와 있었다.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귀비는 급히 끌려 나온 사람이 아니었다.옷매무새는 흐트러짐이 없었고, 손에는 아직도 향이 밴 비단 손수건이 들려 있었다.“전하께서 제 전각을 뒤지라 하셨다지요.”“그렇습니다.”이운의 대답은 짧았다.귀비는 채원을 바라봤다.“빈궁이 드디어 내 전각까지 발을 들이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50. 신태오의 말

    임금은 의금부 당상의 보고를 듣자마자 손을 들었다.“신태오를 대전으로 들라.”잠시 뒤 나장들이 사내 하나를 끌고 들어왔다.신태오는 두 손이 등 뒤로 묶인 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왼손의 엄지가 잘린 자리와 검지 사이의 붉은 점이 등불 아래 그대로 드러났다.대전 양옆에 선 대신들이 낮게 술렁였다.이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초여드레 밤, 세자빈의 출궁 기록을 네가 적었지.”신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임금의 목소리가 대전을 눌렀다.“궁문 장부를 고친 죄만으로도 네 목숨은 남기기 어렵다. 네가 누구의 명을 받았는지, 지금 이 자리에서 모두 말해라.”신태오의 입술이 잠깐 떨렸다.김태겸이 앞으로 나섰다.“전하, 죄인이 살길을 찾으려 거짓을 꾸밀 수도 있습니다. 장부 하나가 잘못되었다 하여 윤정명 사건을 다시...”“병조판서는 물러서라.”임금의 말에 김태겸의 입이 다물렸다.“지금은 이 자의 말을 듣겠다.”이운은 신태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누가 시켰지.”신태오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조필규의 사람입니다.”“이름을 말해라.”“모릅니다. 밤에 왔고, 얼굴을 가리고 있었습니다.”“조필규의 사람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지.”“그자가 조필규 나리의 명이라고 했습니다. 초여드레 자시 전, 세자빈마마께서 서문을 나갔다고 적으라 했습니다.서문을 지키던 사람들에게는 왕명으로 궁 안쪽의 순찰을 도우라 했고요.”채원이 차분히 물었다.“통행패는.”신태오가 고개를 들었다.“없었습니다.”“수행한 나인은.”“적지 않았습니다.”“그런데도 내 출궁을 장부에 적었다.”“예.”채원의 손이 천천히 쥐어졌다.그날 밤 자신은 궁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장부 속의 윤서아는 서문을 지나 윤정명 사가로 향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김태겸이 다시 입을 열었다.“세자빈마마께서 궁을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과 윤정명 사가에 역모의 물건이 없었다는 사실은 별개입니다.죄인의 장부 한 줄을 물고 늘어져...”“대감께서는 이미 답을 알고 계신 듯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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