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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대군의 딸

Author: 이스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5 10:31:54

“오랜만이구나, 조카야.”

영성대군은 포위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여유로웠다.

이헌은 연화의 앞을 가로막았다.

“숙부께서는 십팔 년 전에 죽었다.”

“네 아비가 그리 만들었지.”

“선왕께서는 역모를 일으킨 아우를 벌하셨을 뿐이다.”

영성대군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역모라.”

그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왕좌를 차지한 자가 패한 자에게 붙이는 편리한 이름이지.”

강무영이 검을 겨눴다.

“궤변은 옥에 들어가서 늘어놓으십시오.”

“강무영.”

영성대군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십팔 년 전에도 네가 내 앞을 막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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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은 대신 업어치기를 했습니다   78화. 대군의 딸

    “오랜만이구나, 조카야.”영성대군은 포위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여유로웠다.이헌은 연화의 앞을 가로막았다.“숙부께서는 십팔 년 전에 죽었다.”“네 아비가 그리 만들었지.”“선왕께서는 역모를 일으킨 아우를 벌하셨을 뿐이다.”영성대군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역모라.”그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왕좌를 차지한 자가 패한 자에게 붙이는 편리한 이름이지.”강무영이 검을 겨눴다.“궤변은 옥에 들어가서 늘어놓으십시오.”“강무영.”영성대군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십팔 년 전에도 네가 내 앞을 막았지.”“이번에는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그때도 같은 말을 했다.”강무영의 턱이 굳었다.영성대군은 다시 이헌을 바라봤다.“나를 만나고 싶었을 텐데, 어째서 반갑다는 인사조차 없느냐?”“죽은 줄 알았던 역적이 살아 돌아왔으니 반갑기보다는 번거롭구나.”이헌의 냉담한 대답에 영성대군이 웃음을 터뜨렸다.“선왕을 많이 닮았어. 특히 소중한 것을 잃기 전까지 태연한 척하는 모습이.”그의 시선이 이헌의 어깨 너머로 움직였다.연화는 이헌의 등 뒤에서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저 아이가 네 약점이더냐?”“소인은 약점치고는 힘이 셉니다.”연화가 불쑥 대답했다.

  • 승은 대신 업어치기를 했습니다   77화. 혼자 나오라 하였으니

    공주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져 보았다.오른쪽 귀 뒤의 머리카락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짧게 잘려 있었다.“별궁에서 잠든 사이에 자른 모양이구나.”공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그제야 서찰의 뜻을 모두가 알아차렸다.공주를 이미 납치했다는 뜻이 아니었다.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데려갈 수 있다는 경고였다.이헌은 곧장 공주의 처소를 강녕전 가까이 옮기고 호위를 두 배로 늘리라 명했다.연화는 서찰을 다시 읽었다.“오늘 밤 혼자 나오라 하였습니다.”“안 된다.”“아직 어디로 나오라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어디든 안 된다.”이헌은 서찰을 빼앗아 등잔불에 태웠다.“답은 정해졌다. 너는 오늘 밤 내 곁에 있을 것이다.”공주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나 때문에 네가 위험한 곳에 갈 필요는 없다.”“공주마마 때문만은 아닙니다.”영성대군은 연화를 불러내려 하고 있었다.그렇다면 그가 직접 나타나거나, 적어도 그에게 닿을 수 있는 사람을 보낼 터였다.“잡을 기회입니다.”“네 목숨을 걸고 얻는 기회는 필요 없다.”이헌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연화도 물러서지 않았다.“소인은 계속 숨어 있고 싶지 않습니다.”“연화.”“누군가를 지키겠다고 매번 전하 뒤에만 있으면, 소인은 아무도 지킬 수 없습니다.”연화는 붕대 감긴 손을 내려다봤다.“전하께서 소인을 지켜 주시는 것은 압니다. 그래도 소인도 제 사람은 직접 지키고 싶습니다.”한동안 침묵이 흘렀다.이헌은 화를 내는 대신 연화를 바라봤다. 예전 같으면 겁도 없이 나선다며 억지로 가둬 두었을 것이다.

  • 승은 대신 업어치기를 했습니다   76화. 공주마마가 돌아왔다

    “후궁 간택을 구경하기 위해서 말입니다.”문 상선의 말에 이헌의 표정이 굳었다.간택 후보들이 입궁하면서 그들의 가족과 수행원도 여러 차례 궁문을 드나들었다. 영성대군이 그 틈에 섞였다면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강무영이 문 상선의 멱살을 움켜쥐었다.“누구로 들어왔느냐?”“그것까지 말씀드릴 것 같습니까?”문 상선은 피가 맺힌 입술로 웃었다.“대군마마께서는 이미 전하의 얼굴을 보셨습니다. 전하께서는 바로 앞에 있는 숙부도 알아보지 못하셨고요.”강무영이 주먹을 들자 연화가 급히 팔을 붙잡았다.“아버지, 얼굴은 남겨 두십시오.”“이놈은 맞아야 입을 연다.”“이를 다 부러뜨리면 말을 못 하지 않습니까.”강무영은 잠시 고민하다 주먹을 내렸다.문 상선의 웃음도 사라졌다.이헌은 그를 의금부가 아닌 강녕전 지하 밀실에 가두라고 명했다. 의금부 안에도 영성대군의 사람이 있을 수 있었다.문 상선이 끌려간 뒤 연화가 물었다.“영성대군마마의 얼굴을 기억하십니까?”“십팔 년 전 얼굴이라면.”강무영의 대답에 화공이 불려 왔다.그는 강무영의 설명을 들으며 영성대군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눈매가 날카로웠습니다.”화공이 눈을 그렸다.“코는 높았고, 턱은 단단했습니다.”코와 턱이 더해졌다.“무예를 익혀 어깨가 넓었습니다.”연화가 완성되어 가는 그림을 들여다봤다.“아버지.”“왜 그러느냐?”“이대로라면 궁에 있는 사내 절반을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그림 속에는 눈이 날카롭고 코가 높으며 턱이 단단한 사내가 있었다. 수염까지 붙이면 웬만한 무관은 모두 비슷해 보일 듯했다.

  • 승은 대신 업어치기를 했습니다   75화. 세 개의 거짓말

    “내 사람 안에도 있다.”이헌의 말이 떨어지자 약방에 있던 모두가 굳었다.강무영은 금군들을 물리고 직접 문을 닫았다. 이곳까지 함께 온 사람 가운데 누가 영성대군과 연결되어 있을지 알 수 없었다.연화가 이헌의 손에 들린 명령서를 바라봤다.“범인을 찾을 방법이 있습니까?”“있다.”이헌은 명령서를 천천히 접었다.“저들이 내 명을 훔쳐 쓴다면, 이번에는 내가 거짓 명을 내려 주어야지.”궁으로 돌아온 이헌은 가장 가까이에서 자신을 보필하는 세 사람을 따로 불렀다.금군 별장에게는 붙잡힌 자를 동문 감옥으로 옮긴다고 말했다.도승지에게는 죄인을 의금부 지하 옥사로 보낼 것이라 알렸다.마지막으로 문 상선에게는 자정에 서문 밖 별궁으로 압송하라는 밀명을 내렸다.세 사람에게 전한 장소는 모두 달랐다.연화는 침전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문 상선이 물러나자 이헌이 물었다.“누가 수상해 보였느냐?”“모두 수상해 보였습니다.”“어째서?”“전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왕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렇습니까?”연화가 잠시 생각하더니 덧붙였다.“그럼 소인이 평소 너무 당당했던 것이군요.”“이제야 알았느냐?”“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연화가 곧장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이헌은 오히려 심기가 불편해졌다.&

  • 승은 대신 업어치기를 했습니다   74화. 내 사람 안에 있다

    왕 이헌 시해.종이 위의 네 글자를 확인한 순간, 침전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강무영이 명단을 살폈다.“글씨가 번져 이름은 알아보기 어렵습니다.”종이에는 여러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피와 습기에 젖어 대부분 뭉개져 있었다. 온전히 남은 것은 간택 최종일이라는 날짜와 이헌을 죽이라는 명뿐이었다.이헌은 종이를 접어 품에 넣었다.“간택을 중단하면 저들이 숨어 버릴 것이다.”연화가 놀라 그를 바라봤다.“계속하시려고요?”“그래.”“죽이겠다고 날짜까지 알려 주었는데요?”“그러니 더더욱 계속해야지. 기다리는 곳을 알았으니 잡기도 쉬울 테니까.”이헌은 태연했지만 연화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전하께서는 가끔 목숨을 너무 가볍게 여기십니다.”“네가 지켜 줄 것 아니냐.”“소인은 지금 손도 다쳤습니다.”연화가 붕대 감긴 손을 들어 보였다.“한 손으로는 한 명밖에 업어치지 못합니다.”강무영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 점은 큰 문제입니다.”“왜 두 사람이 같은 표정을 짓는 것이냐?”이헌의 물음에도 부녀는 대답하지 않았다.연화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다니의 동생부터 구하러 가겠습니다.”“너는 여기에 있어라.”“싫습니다.”즉답이었다.이헌의 눈썹이 올라갔다.연화는 조금 늦게 허리를 숙였다.“송구하오나 싫습니다.”“뒤에 송구하다는 말만 붙이면 다 되는 줄 아느냐?”“아니옵니다. 그래도 안 붙이는 것보다는 나을 듯하여서요.”강무영이 웃음을 참으려 고개를 돌렸다.이헌은 관자놀이를 누르다가 내관에게 연화의 겉옷을

  • 승은 대신 업어치기를 했습니다   73화. 피에 젖은 명단

    “해가 뜨기 전에 죽습니다.”옥련의 말에 연화의 얼굴이 굳었다.서진우의 숨은 빠르게 가빠지고 있었다.연화가 그의 팔 위를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의원을 부르십시오!”“이미 오고 있다.”이헌은 금군에게 옥련의 입부터 막으라고 명했다.“독약을 삼키지 못하게 하라. 죽기 전에 반드시 입을 열게 할 것이다.”다니는 찻주전자를 떨어뜨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깨진 주전자에서 맑은 차가 흘러나왔다.강무영이 다니의 멱살을 움켜잡았다.“네가 옥련을 들여보냈느냐?”“소인이 잘못했습니다.”“왜 그랬지?”다니는 울기만 할 뿐 대답하지 못했다.의원이 달려와 서진우의 상처를 살폈다.“독이 빠르게 번지고 있사옵니다. 어떤 독인지 알아야 해독할 수 있습니다.”연화는 옥련에게 다가갔다.“독의 이름을 말하십시오.”옥련이 입을 다문 채 그녀를 노려봤다.연화는 허리춤에서 옥련의 비녀를 빼앗았다.“말하지 않으면 이걸로 당신을 찌르겠습니다.”옥련의 얼굴이 처음으로 흔들렸다.“그러면 당신도 해독약이 필요해질 테니 숨긴 곳을 말하겠지요.”“네가 감히…….”“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면 괜찮겠군요.”연화가 비녀 끝을 옥련의 팔에 가까이 가져갔다.옥련이 몸을 뒤틀었다.“학정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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