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다음 날 아침, 연화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공주가 조회에 입고 갈 옷을 직접 골라 주었다.
짙은 붉은색 치마와 금실로 수놓은 저고리였다.
“오늘은 기죽어 보이면 안 돼.”
연화는 소매를 들어 올렸다.
“옷이 무겁습니다.”
“그래야 함부로 보지 못하지.”
“도망갈 때 불편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도망가는 날이 아니라 대신들과 싸우는 날이야.”
공주가 머리에 비녀를 꽂아 주자 연화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평소와 달리 제법 후궁처럼 보였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품 안에 주먹밥 두 개를 넣었다.
공주가 기가 막힌 얼굴로 물었다.
“그것은 왜 가져가?”
“싸우려
다음 날, 이헌은 연화의 품계를 정하는 자리에 대신들을 불렀다.예조판서가 준비한 문서를 펼쳤다.“승은상궁 연화는 강무영 대감의 적녀로 신분이 확인되었고, 전하를 오래 모신 공이 있으니 종사품 숙원으로 봉함이 마땅하옵니다.”숙원은 후궁이 처음 받는 품계였다.대신들도 별다른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이헌이 문서를 내려다봤다.“종사품이라.”“전례에 따른 것이옵니다.”“내가 전례대로 하라고 했느냐?”예조판서가 고개를 들었다.“그러면 어느 품계를 생각하고 계시옵니까?”“종이품 숙의.”전각 안이 술렁였다.백소화와 같은 품계였다.승은상궁이 한 번에 종이품에 오르는 일은 드물었다.대사헌이 즉시 앞으로 나섰다.“전하, 지나치게 높은 품계이옵니다.”“무엇에 비해 지나치다는 것이냐?”“승은상궁은 내명부를 이끈 경험이 없습니다.”“왕을 노린 약을 알아보고, 조작된 장부를 밝혔으며, 금부에 갇힌 죄인들을 구했다.”이헌이 연화의 공을 하나씩 짚었다.“그 정도로 부족한가?”“후궁의 품계는 공로만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옵니다.”“그럼 무엇으로 정하지?”대사헌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왕의 총애 역시 품계를 정하는 중요한 이유였다.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면 이헌이 연화를 얼마나 아끼는지 인정하는 셈이었다.영의정이 먼저 허리를 숙였다.
이헌의 몸이 연화 쪽으로 기울었다.연화는 반사적으로 그를 받아 안았다.“전하!”전각 안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강무영이 금부도사의 손목을 걷어찼다. 단검을 놓친 금부도사가 달아나려 했지만, 서진우가 그의 어깨를 눌러 바닥에 엎었다.“움직이면 팔을 꺾겠습니다.”“놓아라! 나는 금부도사다!”“지금부터는 죄인입니다.”강무영은 금부도사의 두 팔을 뒤로 묶었다.연화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이헌의 옆구리를 눌렀다.손바닥 사이로 피가 번졌다.“의원을 부르십시오!”“이미 갔다.”이헌이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일어나시면 안 됩니다.”“조회가 끝나지 않았다.”“전하께서 끝나게 생기셨습니다.”전각이 조용해졌다.연화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뒤늦게 깨달았지만 사과하지 않았다.“누워 계십시오.”“왕에게 누우라고 명하는 것이냐?”“예.”“제법 당당하군.”“지금은 소인이 더 멀쩡합니다.”이헌이 웃으려다 상처를 누르고 얼굴을 찌푸렸다.연화의 눈에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그것을 본 이헌이 낮게 말했다.“깊지 않다.”“전하께서 의원도 아니면서 어찌 아십니까?”“아픈 정도는 내가 안다.”“참는 정도만 아시겠지요.”연화가 자신의 치맛자락을 찢어 그의 옆구리를 감쌌다.아침에 공주가 골라 준 비싼 옷이었다.이헌이 찢어진 치마를 내려다봤다.“논 열 마지기 값일 수도 있는데.”“지금 농담하십니까?”“네가 좋아할 말인 줄 알았다.”“전하보다 비싸지는 않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연화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공주가 조회에 입고 갈 옷을 직접 골라 주었다.짙은 붉은색 치마와 금실로 수놓은 저고리였다.“오늘은 기죽어 보이면 안 돼.”연화는 소매를 들어 올렸다.“옷이 무겁습니다.”“그래야 함부로 보지 못하지.”“도망갈 때 불편할 것 같습니다.”“오늘은 도망가는 날이 아니라 대신들과 싸우는 날이야.”공주가 머리에 비녀를 꽂아 주자 연화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평소와 달리 제법 후궁처럼 보였다.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품 안에 주먹밥 두 개를 넣었다.공주가 기가 막힌 얼굴로 물었다.“그것은 왜 가져가?”“싸우려면 든든해야 합니다.”“조회 중에 먹으면 안 된다.”“끝날 때까지 참겠습니다.”“하나만 가져가.”“싸움이 길어지면 어쩝니까?”결국 연화는 주먹밥 두 개를 모두 챙겼다.근정전 앞에는 조회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대신들이 모여 있었다.강무영이 예조참의를 죽이고 달아났다는 격문이 도성 곳곳에 붙었다.연화가 그를 도왔다는 소문까지 이미 사실처럼 퍼진 상태였다.연화가 이헌과 함께 전각 안으로 들어서자 대신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대사헌이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섰다.“전하, 내명부의 궁인을 조회에 들이시는 것은 법도에 어긋나옵니다.”“연화가 역적의 도주를 도왔다고 한 것은 그대들이다.”
금부 쪽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이헌은 연화를 놓고 곧장 말에 올랐다.“서진우, 잡은 자를 강녕전 지하에 가둬라. 누구와도 만나게 하지 마라.”“명을 받들겠습니다.”“금군 절반은 이곳에 남겨 연화를 지켜라.”연화가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소인도 가겠습니다.”“안 된다.”“아버지가 있는 곳입니다.”“불이 난 곳이다.”“그래서 가야 합니다.”이헌은 말 위에서 연화를 내려다봤다.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물러날 기색은 없었다.연화는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말안장을 붙잡았다.“혼자 올라올 수 있느냐?”“시도해 보겠습니다.”연화가 발을 걸고 힘껏 몸을 일으켰다.절반쯤 올라갔다가 그대로 미끄러졌다.이헌이 허리를 붙잡아 앞에 앉혔다.“못 올라오는군.”“거의 올라왔습니다.”“내가 잡지 않았으면 바닥에 떨어졌다.”“그래도 출발은 했습니다.”말이 달리기 시작하자 연화는 곧 입을 다물었다.이헌의 팔이 허리를 단단히 감쌌다.“무서우면 눈을 감아라.”“전하께서 떨어뜨리지만 않으시면 됩니다.”“내가 너를 왜 떨어뜨리느냐?”“아까 소인을 두고 가려고 하셨으니까요.”“두고 가는 것
연화는 허리춤을 내려다봤다.매일 달고 다니던 노리개가 보이지 않았다.“공주마마.”“왜 그러느냐?”“소인의 노리개를 보셨습니까?”“전하께서 준 것 말이냐?”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아침에 옷을 갈아입을 때까지만 해도 분명히 달려 있었다.민서령과 장부를 살피고, 문서고까지 다녀오는 동안 누군가 가져간 것이다.공주가 궁녀들을 불러 노리개의 행방을 물었지만 본 사람은 없었다.연화는 잠시 생각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전하께 가야겠습니다.”“장신구 하나 잃어버렸다고?”“논 열 마지기 값이라고 하셨습니다.”“그것은 비유였어.”“그럼 몇 마지기입니까?”“지금 그게 중요하니?”“한 마지기라도 소인에게는 중요합니다.”연화가 강녕전에 도착했을 때 이헌은 서진우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중궁전 궁녀의 신원은 거짓이었습니다. 반년 전 병으로 죽은 여인의 호패를 사용했습니다.”“중전은 알고 있었느냐?”“모르고 계셨습니다. 현재 그 궁녀도 사라진 상태입니다.”연화가 두 사람 사이로 들어왔다.“소인의 노리개도 사라졌습니다.”이헌이 고개를 돌렸다.“언제부터 없었지?”“조문석의 집에 갈 때까지는 있었습니다.”서진우가 품에서 같은 모양의 노리개를 꺼냈다.
강무영은 장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십칠 년 전, 북방에 역병이 돌았습니다.”“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하십니까?”연화가 묻자 강무영이 장부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군량을 내보낼 때마다 제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서명한 빈 출납서를 조문석에게 맡겼습니다.”“내용이 없는 종이에 이름부터 쓰셨다고요?”“하루에도 수십 곳에서 군량을 요청하던 때였다.”이헌이 장부를 받아 살폈다.각 장의 글씨는 비슷하게 낡아 있었지만, 강무영의 서명이 적힌 부분만 종이 결이 달랐다.“서명한 출납서를 오려 붙였군.”“조문석이 보관하던 서류라면 가능했을 것입니다.”“조문석이 아버지를 배신한 것입니까?”강무영은 고개를 저었다.“그랬다면 옥사에서 죽을 이유가 없다.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으니.”그가 죽은 뒤 누군가 서류를 가져간 것이다.금부도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전하, 장부가 발견된 이상 강무영을 금부로 압송해야 하옵니다.”연화가 곧장 강무영 앞을 막았다.“아버지는 장부가 이곳에 있는지도 몰랐습니다.”“승은상궁께서 나설 일이 아닙니다.”“제 아버지를 잡아간다는데 어찌 제 일이 아닙니까?”“법도에 따라 조사하는 것입니다.”“그 법도는 궁을 떠나기도 전에 체포 문서부터 만들어 둡니까?”금부도사의 입이 다물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