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이헌이 연화의 귓가에서 물러났다.
“다음에는 누구도 오해하지 않게 해 주마.”
연화는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렸다.
“다음은 없습니다.”
“조금 전에는 아쉬워하지 않았느냐?”
“아쉬워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분명히 들었다.”
“전하께서 잠결에 잘못 들으신 것입니다.”
“나는 깨어 있었는데.”
“그러면 아직 약기운이 남은 것입니다.”
이헌이 웃자 옆구리의 상처가 당겼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는 것을 본 연화가 곧장 이불을 걷었다.
“아프십니까?”
“괜찮다.”
“민 숙의마마를 부르겠습니다.&
이틀 뒤, 민서령은 이헌의 옆구리에서 실을 풀었다.“상처가 잘 아물었습니다.”이헌이 곁에 선 연화를 바라봤다.“들었느냐?”“예. 이제 조회에 빠지실 이유가 없습니다.”“그 이야기가 아니잖아.”“소인은 그것만 들었습니다.”민서령이 약상자를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격한 움직임만 삼가시면 됩니다.”이헌이 다시 연화를 바라봤다.연화는 민서령의 뒤를 따라 나가려 했다.“어디로 가느냐?”“민 숙의마마를 배웅하려고요.”“궁 밖으로 떠나는 것도 아닌데 무슨 배웅이냐?”“예의입니다.”“평소에는 없던 예의를 오늘 갑자기 찾는군.”연화가 대답하지 않고 문을 나섰다.민서령이 웃으며 그녀를 돌아봤다.“전하께서 기다리시는 것 같습니다.”“소인도 압니다.”“싫으십니까?”&
이헌이 연화의 귓가에서 물러났다.“다음에는 누구도 오해하지 않게 해 주마.”연화는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렸다.“다음은 없습니다.”“조금 전에는 아쉬워하지 않았느냐?”“아쉬워하지 않았습니다.”“내가 분명히 들었다.”“전하께서 잠결에 잘못 들으신 것입니다.”“나는 깨어 있었는데.”“그러면 아직 약기운이 남은 것입니다.”이헌이 웃자 옆구리의 상처가 당겼다.그가 미간을 찌푸리는 것을 본 연화가 곧장 이불을 걷었다.“아프십니까?”“괜찮다.”“민 숙의마마를 부르겠습니다.”“아침부터 다른 후궁을 내 침상으로 부르려는 것이냐?”공주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민 숙의는 의원으로 부르는 것이잖습니까.”“연화는 자꾸 중요한 부분을 빼고 말한다.”“전하께서 이상하게 들으시는 것입니다.”밖에서 기다리던 상궁이 조심스럽게 아뢰었다.“전하, 민 숙의마마께서 진맥을 위해 기다리고 계시옵니다.”“들라 하라.”민서령이 들어오자 이헌은 마지못해 연화를 놓아주었다.연화는 곧장 침상 밖으로 나왔지만 이미 늦었다.헝클어진 머리카락과 구겨진 속적삼을 본 궁녀들의 눈빛이 달라졌다.연화가 다급하게 해명했다.“정말 잠만 잤습니다.”
“오늘도 나를 돌려보낼 것이냐?”연화는 대답 대신 이헌의 옆구리를 바라봤다.옷 위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돌아가실 수는 있습니까?”“걸어서 왔다.”“오는 것과 가는 것은 다릅니다.”“무엇이 다르지?”“이미 오셨으니 가는 길만 남았습니다.”이헌의 눈썹이 움직였다.연화는 그가 화를 내기 전에 얼른 말을 덧붙였다.“돌려보내겠다는 뜻은 아닙니다.”“그럼?”“여기서 주무십시오.”이헌이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잠만 자라고?”“다치셨으니까요.”“옆구리를 다쳤다고 말했을 텐데.”“알고 있습니다.”“그런데 왜 자꾸 다친 곳이 더 있는 사람처럼 대하느냐?”연화의 시선이 잠시 아래로 내려갔다가 황급히 올라왔다.이헌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방금 어디를 본 것이냐?”“아무 데도 보지 않았습니다.”“분명히 봤다.”“바닥을 봤습니다.”“바닥에 무엇이 있었지?”“먼지가 있었습니다.”“내 처소보다 관리가 엉망이군.”연화는 결국 몸을 돌려 궁녀를 불렀다.“전하의 잠자리를 준비해 주세요.&rdqu
다음 날, 이헌은 연화의 품계를 정하는 자리에 대신들을 불렀다.예조판서가 준비한 문서를 펼쳤다.“승은상궁 연화는 강무영 대감의 적녀로 신분이 확인되었고, 전하를 오래 모신 공이 있으니 종사품 숙원으로 봉함이 마땅하옵니다.”숙원은 후궁이 처음 받는 품계였다.대신들도 별다른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이헌이 문서를 내려다봤다.“종사품이라.”“전례에 따른 것이옵니다.”“내가 전례대로 하라고 했느냐?”예조판서가 고개를 들었다.“그러면 어느 품계를 생각하고 계시옵니까?”“종이품 숙의.”전각 안이 술렁였다.백소화와 같은 품계였다.승은상궁이 한 번에 종이품에 오르는 일은 드물었다.대사헌이 즉시 앞으로 나섰다.“전하, 지나치게 높은 품계이옵니다.”“무엇에 비해 지나치다는 것이냐?”“승은상궁은 내명부를 이끈 경험이 없습니다.”“왕을 노린 약을 알아보고, 조작된 장부를 밝혔으며, 금부에 갇힌 죄인들을 구했다.”이헌이 연화의 공을 하나씩 짚었다.“그 정도로 부족한가?”“후궁의 품계는 공로만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옵니다.”“그럼 무엇으로 정하지?”대사헌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왕의 총애 역시 품계를 정하는 중요한 이유였다.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면 이헌이 연화를 얼마나 아끼는지 인정하는 셈이었다.영의정이 먼저 허리를 숙였다.
이헌의 몸이 연화 쪽으로 기울었다.연화는 반사적으로 그를 받아 안았다.“전하!”전각 안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강무영이 금부도사의 손목을 걷어찼다. 단검을 놓친 금부도사가 달아나려 했지만, 서진우가 그의 어깨를 눌러 바닥에 엎었다.“움직이면 팔을 꺾겠습니다.”“놓아라! 나는 금부도사다!”“지금부터는 죄인입니다.”강무영은 금부도사의 두 팔을 뒤로 묶었다.연화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이헌의 옆구리를 눌렀다.손바닥 사이로 피가 번졌다.“의원을 부르십시오!”“이미 갔다.”이헌이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일어나시면 안 됩니다.”“조회가 끝나지 않았다.”“전하께서 끝나게 생기셨습니다.”전각이 조용해졌다.연화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뒤늦게 깨달았지만 사과하지 않았다.“누워 계십시오.”“왕에게 누우라고 명하는 것이냐?”“예.”“제법 당당하군.”“지금은 소인이 더 멀쩡합니다.”이헌이 웃으려다 상처를 누르고 얼굴을 찌푸렸다.연화의 눈에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그것을 본 이헌이 낮게 말했다.“깊지 않다.”“전하께서 의원도 아니면서 어찌 아십니까?”“아픈 정도는 내가 안다.”“참는 정도만 아시겠지요.”연화가 자신의 치맛자락을 찢어 그의 옆구리를 감쌌다.아침에 공주가 골라 준 비싼 옷이었다.이헌이 찢어진 치마를 내려다봤다.“논 열 마지기 값일 수도 있는데.”“지금 농담하십니까?”“네가 좋아할 말인 줄 알았다.”“전하보다 비싸지는 않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연화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공주가 조회에 입고 갈 옷을 직접 골라 주었다.짙은 붉은색 치마와 금실로 수놓은 저고리였다.“오늘은 기죽어 보이면 안 돼.”연화는 소매를 들어 올렸다.“옷이 무겁습니다.”“그래야 함부로 보지 못하지.”“도망갈 때 불편할 것 같습니다.”“오늘은 도망가는 날이 아니라 대신들과 싸우는 날이야.”공주가 머리에 비녀를 꽂아 주자 연화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평소와 달리 제법 후궁처럼 보였다.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품 안에 주먹밥 두 개를 넣었다.공주가 기가 막힌 얼굴로 물었다.“그것은 왜 가져가?”“싸우려면 든든해야 합니다.”“조회 중에 먹으면 안 된다.”“끝날 때까지 참겠습니다.”“하나만 가져가.”“싸움이 길어지면 어쩝니까?”결국 연화는 주먹밥 두 개를 모두 챙겼다.근정전 앞에는 조회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대신들이 모여 있었다.강무영이 예조참의를 죽이고 달아났다는 격문이 도성 곳곳에 붙었다.연화가 그를 도왔다는 소문까지 이미 사실처럼 퍼진 상태였다.연화가 이헌과 함께 전각 안으로 들어서자 대신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대사헌이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섰다.“전하, 내명부의 궁인을 조회에 들이시는 것은 법도에 어긋나옵니다.”“연화가 역적의 도주를 도왔다고 한 것은 그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