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7화

Auteur: 강시아
맹경운은 여동생을 힐끗 보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며칠 전에 상왕비께서 너에게 시비를 걸었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사이가 좋아진 이유가 대체 무엇이냐?”

맹영은이 답했다.

“그건 오해였어요. 오라버니, 저를 상왕부에 데려가 주세요. 제가 직접 왕야께 해명하겠습니다. 이번 일은 왕비의 잘못이 절대 아닙니다.”

맹경운은 단호히 거절했다.

“상왕과 왕비 사이의 일은 끼어들지 말거라. 상왕비는 조용히 지낼 성격이 아니니 앞으로는 되도록이면 가까이 지내지 마.”

주루의 맨 위층에서 한 검은 옷을 입은 젊은 청년이 뒷짐을 지고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청년의 옆에 선 중년 사내가 맹은영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헌아, 저쪽이 맹국공의 적녀인 맹은영이다. 네 모후께서 널 위해 간택한 황자비지.”

연강헌의 시선은 주루 밖에서 연기준과 실랑이를 벌이는 여인의 뒷모습에 닿았다.

“저는 상왕비가 더 재미있어 보입니다만.”

중년 사내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네 숙모 되는 사람이다.”

연강헌은 시선을 거두고 묘한 미소를 지었다.

“오해이십니다. 그저 소문이랑 많이 다른 것 같아서요.”

국구, 즉, 황후의 오라비인 하선준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맹국공은 조정에서도 꽤 성망 높은 사람이다. 세 손자마저 덕목과 재능을 겸비한 전도 유망한 청년들이지. 단씨 가문은 엄청난 부를 이룩하고 만 천하에 점포를 둔 가문이야. 황후마마께서는 두 집안의 처자들이 같이 널 내조한다면 분명히 너에게 힘이 되어줄 거라고 예견하셨지.”

연강헌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방금 전 끌려간 놈이 단씨 가문의 삼대 독자 아닙니까?”

하선준이 말했다.

“아들 녀석은 좀 무능하지만 둘째 딸은 경성에서도 재녀(시조와 그림에 능통한 양반가 여성)라는 호칭을 들을 정도로 똑똑한 아이라고 하니 너도 마음에 들 게다.”

하지만 연강헌은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큰딸은 상왕비의 자리를 원한다고 들었습니다.”

하선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문의 공적을 내세우지만 않았더라면 지금의 상왕비가 저 자리에 오를 수도 없었을 게다. 서 장군 댁은 이번 대에 아들이 없으니 점점 몰락할 테고. 상왕이 지금의 상왕비를 내치는 것은 시간 문제야. 그렇게 되면 단씨 가문의 딸을 비로 들인 상왕은 필히 너에게 충성할 테고.”

연기준의 충심에 대하여 연강헌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사랑스러운 제 동생들은 최근 별다른 움직임 없습니까?”

하선준이 말했다.

“사황자와 육황자의 어미는 신분이 미천하니 야망은 있어도 그걸 받쳐줄 힘이 없어. 오랜 지병을 앓던 칠황자는 이미 한 달째 두문불출하고 있고. 십삼황자는 재작년에 폐하의 심기를 크게 건드려서 지금은 황릉에서 태후마마의 묘소를 지키는 중이지. 십오황자는 올해 고작 여덟 살이니 배후에 뒷받침해 주는 장군부가 있더라도 단기간엔 권력을 잡긴 힘들 거다. 넌 폐하 안전에서 네 재능을 마음껏 보여줘서 하루빨리 태자 책봉이 이루어지게 하거라. 나머지는 이 외삼촌이 주시하고 있을 테니.”

연강헌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한편 서인경은 연기준에게 끌려 상왕부로 돌아왔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의 속박을 풀려날 수 없으니 화가 치밀었다.

“이봐요, 존귀하신 왕야님. 저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어온 것이고, 저는 그저 정당방위를 했을 뿐이라니깐요! 앞뒤 사정을 좀 따져가면서 행동하시죠?”

연기준은 그녀에겐 시선 한번 주지 않고 어깨에 들쳐멘 채로 왕부에 들어섰다.

“내가 그리 전후사정 따져가며 행동하는 사람으로 보이느냐?”

서인경은 화를 가라앉히려 길게 심호흡했다.

“그래서 지금 뭐 하시려는 겁니까? 정인의 남동생을 좀 때려서 제게 매를 들려는 심산이십니까?”

연기준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녀를 난화원에 집어넣은 후 뒤돌아섰다.

“왕비가 허구헌날 밖에서 사고만 치고 돌아다니니, 3일 금족을 명한다! 그리고 내 명 없이는 절대 외출하지 못하게 하여라!”

분노에 이성을 잃은 서인경은 벽을 쾅쾅 두드리며 고함을 질렀다.

“연기준 이 망할 놈의 자식아! 내가 피해자라고 했잖아! 뭔데 내게 금족령을 내려!”

연기준의 느긋한 목소리가 멀리서 유유히 전해졌다.

“부군인 나를 모욕하였으니 금족 7일!”

대문이 쾅 하고 닫히더니 밖에서 자물쇠를 잠그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인경은 화가 치밀어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자 기둥 뒤에 숨어 있던 평이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왕비마마, 화 푸셔요. 며칠 집안에서 쉰다고 생각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어차피 매를 맞거나 꾸중을 듣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참으로 낙관적인 아이였다.

서인경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평이야, 네가 말해 보아라. 대체 저 인간이 왜 저렇게 화를 낼까? 자신의 왕비가 하마터면 망나니한테 희롱을 당할 뻔했는데 악인을 징벌하러 가기는커녕, 왜 집안에서 위세를 떠냔 말이다!”

평이가 조심스레 반박했다.

“왕야께선 악인을 징벌하셨지요. 발길질 한번에 놈의 입안을 피투성이로 만드셨지 않습니까. 그때는 정말 멋있었어요.”

‘아, 그러고 보니 그랬었지.’

“그런데 왜 나에게 금족령을 내리냔 말이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평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심스레 생각을 꺼냈다.

“그 악인도 많이 다쳤지 않습니까. 가문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차라리 처소에 가만히 있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요?”

서인경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평이에게 한바탕 불만을 털어놓았더니 자연스레 금족을 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차피 연기준은 그녀에게 물질적으론 박대하지 않았으니 딱히 손해볼 것도 없었다.

평이는 숨겨뒀던 요리 실력을 발휘해서 심심해 하는 서인경에게 갖가지 간식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그날 저녁 평이는 통닭구이를 식탁에 올렸다.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린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인경에게 물었다.

“왕비마마, 그 집안 사람들이 만약에 따지러 쳐들어온다면 왕야께서 저희를 지켜주실까요?”

서인경은 열심히 닭다리를 뜯다가 웃으며 되물었다.

“두려워?”

평이가 겁먹은 표정으로 답했다.

“아… 아니요….”

서인경은 닭다리 하나를 뜯어서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연기준이 우릴 지켜줄지는 나도 잘 몰라. 하지만 단은설이 애걸복걸 매달리면 부탁을 들어줄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평이는 닭다리를 베어먹으면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분명 왕비는 마마이신데 왜 왕야께선 다른 여인에게 그리도 잘해주시는 걸까요?”

서인경은 아련한 표정으로 전생의 일을 떠올렸다.

“예전에 그분께서 전장에 나가셨을 때, 조정의 군량 조달이 제때에 이루어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었어. 마침 고향집에 내려갔던 단은설이 그걸 알고 가문의 창고를 열어 상왕군의 위기를 해결해 주었다고 하더구나.”

“그럼 보은이로군요.”

평이는 한탄하듯 말했다.

“그러나 단은설은 분명 딴마음을 품고 있어요. 왕야께선 보은을 위해 왕비마마를 속상하게 하셨단 말씀이네요?”

‘내가 속상해한다고? 그건 내가 아니고 원래 주인이겠지.’

이 몸의 원주인은 전생에 사랑하는 사내가 앞날을 위해 자신의 가족을 희생하고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척자매를 품은 것을 제 눈으로 보았다.

‘하지만 결국엔 원래의 서인경이 자신만의 가치를 잃어서일 거야.’

가문이 풍비박산 나고 의지할 곳을 잃은 무능한 여인이 버려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원한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었다.

21세기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물질적인 여자를 비난했다. 하지만 과연 여자만 그랬을까?

남자들은 연애할 대상을 고를 때 자신의 체면을 세워줄 수 있는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를 선호했다.

그러나 결국 결혼은 어느 정도 능력 있고 자신의 부담을 들어줄 수 있는 여자를 택했다.

이혼할 때 재산분할로 서로 원수처럼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사랑도 현실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가난 앞에 아무리 견고한 사랑도 속절없이 무너질 때가 많았다.

21세기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지금 상황에 대입해 보면 서인경은 누굴 탓하고 원망할 수 없었다.

결국 스스로 서는 자가 끝까지 살아남는 법이다.

“어서 밥이나 먹으렴. 다 먹고 서쪽 별채로 가서 내가 시집올 때 가져온 혼수나 찾아오거라.”

평이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건 뭐에 쓰시려고요?”

서인경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미리 정리하려는 게야. 나중에 이곳을 나가면 돈 되는 것들을 죄다 팔아서 은화로 바꾼 후에 그 돈으로 큰일을 할 것이다.”

평이는 그녀의 말을 전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의욕 넘치는 서인경의 모습을 보자 저절로 가슴이 뛰었다.

서인경이 왕부로 시집올 때 친정인 서씨 가문을 제외하고도 황제께서도 인자함을 베풀기 위해 적지 않은 혼수를 보태주었다.

그렇게 며칠간 두 사람은 창고 정리를 끝났다.

Continuez à lire ce livre gratuitement
Scanner le code pour télécharger l'application

Latest chapter

  • 시간을 거슬러   제209화

    마부는 붙잡혀 오자마자 겁에 질려 무릎을 꿇고 몸을 떨며 애원했다.“가주,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소인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사옵니다. 정말 아무 짓도 안 했사옵니다! 아아… 억!”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묵염은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발을 들어 그를 거칠게 걷어찼다.“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면서 왜 거짓 부재 증명을 꾸며냈느냐? 똑똑히 생각하고 대답하거라. 감히 한 글자라도 틀리면 지금 이 자리에서 목을 벨 것이다!”피를 토하며 나뒹군 마부는 곧 다시 끌려와 무릎을 꿇은 채 진묵염의 발 앞에서 몸을 떨었다. 오래도록 숨을 고른 끝에 그는 겨우 말문을 열수 있었다.“소… 소인이 말씀드리겠사옵니다. 며칠 전 노모께서 위독해져 약 값이 급히 필요했사옵니다. 그래서 어젯밤 몰래 관저의 마안을 훔쳐 동시에 팔았사옵니다. 그 일은 동시의 마상인에게 물어보면 증명해 줄 것이옵니다.”진묵염의 미간이 깊이 찌푸려졌다.“고작 마안을 훔쳐 팔았다?”마부는 고개를 바닥에 박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예, 마안을 훔친 것뿐이옵니다. 감히 아가씨께 손을 대다니요... 제게 백 번의 목숨이 있어도 차마 그런 짓은 하지 못하옵니다.”곧 동시의 마상이 불려 와, 인시 초각에 그가 다섯 냥으로 마부에게서 마안을 샀음을 증언했다. 그 시각에 동시에 닿은 이상, 다른 일을 저지를 여유는 없었다. 인증과 물증이 명백하니 마부에게는 알리바이가 명확했다. 조사가 끝나자, 진묵염은 루채월을 향해 단호히 입을 열었다.“백모께서도 들으셨듯, 범인은 우리 진 가 사람이 아닙니다.”뜻밖의 결론에, 라은정은 절망스레 고개를 저으며 울부짖었다.“거짓말이에요! 분명히 진 가 사람입니다. 저는 진부 뒷문에서 당했어요. 진부 사람이 아니면 누가 그곳에 있었단 말입니까!”진묵염은 곧장 그녀를 응시하며 물었다.“그대는 진부 뒷문에서 일을 당했다고 했지. 그런데 인시 한밤중에, 집을 놔두고 왜 진부 뒷문에 있었던 것이냐?”“저… 저…”라은정이 우물쭈물 말끝을 흐리며 대답을 내놓지 못하자

  • 시간을 거슬러   제208화

    진묵염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마치 한 점 부끄러움도 없는 듯한 태도로 담담히 나섰다.“라 백모, 말씀을 삼가시지요. 은정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가 반드시 철저히 조사하여 그 아이의 결백을 밝혀드리겠습니다. 만약 진 가의 과오라면 제가 전부 책임지겠습니다.”라채월의 얼굴빛이 순간 싸늘하게 변했다.“무슨 뜻이냐? 증거가 뚜렷한데 또 무슨 조사를 한다는 것이냐? 설마 시체를 숨기고 발뺌이라도 하려는 게 아니겠지?”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막효연이 성큼 앞으로 나서며 진묵염 앞을 막아섰다.“증거라는 것도 다 백모의 말뿐이지 않습니까! 왜 묵염 오라버니가 직접 조사하면 안 되는 것입니까? 어찌 백모의 말이 곧 진실이라 단정하십니까? 백모가 멋대로 오라버니에게 죄를 씌우시는데 어찌 반박하지 말라는 겁니까?”라채월이 당장 손을 들어 막효연을 내리치려 했으나 막수한에 의해 가로막혔다.“효연이 말이 옳습니다! 감히 내 딸에게 손찌검해 보세요. 제가 결코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라채월은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날카롭게 웃었다.“흥! 역시 피는 못 속이는군요. 예전에 제 정절을 무너뜨린 것도 당신 막 씨 집안 아니었습니까? 그때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으면서... 은정이 진 가의 어느 망나니에게 욕을 당하니 딸까지 합세해서 진묵염을 감싸주는군요! 참 우습고도 가소롭습니다!”진묵염은 막효연을 끌어안고 뒤로 물리며 단호히 말했다.“백모, 제가 나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소식을 듣자마자 진 가의 모든 남정네들을 모아 조사 중이었습니다. 아직 몇몇은 부재 증명이 명확지 않아 확인하고 있으니 부디 시간을 주십시오. 만약 이 일이 우리 진 가 사람의 짓이라면 반드시 은정에게 납득할 만한 답을 드리겠습니다.”그 말을 듣자 본래 기운 없는 몸으로 간신히 버티던 라은정은 그 자리에서 와르르 무너지듯 울음을 터뜨렸다.“아아… 어머니, 저는 차라리 죽는 게 낫습니다. 제게는 이제 체면이라는 게 없습니다… 제발 저를 죽게 해주세요…!”라채월은 따가운 눈초리로

  • 시간을 거슬러   제207화

    서인경은 지쳐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짙은 어둠 속에서, 연기준의 매서운 시선이 기침마다 오르내리는 그녀의 곡선을 예리하게 붙잡았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머리맡에 있던 흰색 속의를 집어 그녀 어깨에 걸쳐 주며 담담히 말했다.“이제 됐다. 잠들 거라.”그가 더 이상 다가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서인경은 비로소 긴장을 풀었다. 몸을 살짝 안쪽으로 옮겨 등을 돌리자 이내 고단한 잠이 밀려왔다.이튿날, 그녀는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번쩍 눈을 떴다.“마님, 도련님! 급히 아뢸 일이 있사옵니다.”육승의 다급한 목소리가 문밖에서 전해졌다. 서인경은 순식간에 정신이 또렷해져 몸을 반쯤 일으키며 물었다.“혹시 그 나무집에서 소식이 온 것이냐?”“아침에 확인하니, 그 나무집은 서성 성주의 소유였사옵니다. 오늘 새벽, 몇몇 가희들이 그곳을 빠져나왔사옵니다.”“가희?”서인경은 베개에 턱을 괴고 곱씹듯 중얼거렸다.“가희들이 거기서 무얼 한단 말이냐?”그때까지 감고 있던 눈을 뜨지 않던 연기준이 지친 듯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아직 잠이 덜 깬 허스키한 목소리가 방 안에 스며들었다.“지하흑시의 청루 사업은 서성의 채월이 꾸려온 것이다. 그 나무집은 번잡하지 않은 은밀한 곳이라 그녀가 기생을 길러내는 장소지.”서인경은 문득 어제 막효연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가 진묵염과 술자리를 가졌다는 소식. 그녀는 곁눈질로 그를 흘겨보며 비아냥거렸다.“보아하니, 상공께서는 어제 꽤 큰 수확을 얻으셨나 봅니다.”연기준은 인상을 찌푸렸다.“무슨 수확 말이냐?”그녀가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연기준은 손을 뻗어 그녀를 눌러 앉혔다.“아직 이르다. 조금 더 자거라.”“전 할 일이 있어서요. 상공 혼자 주무세요.”그는 창밖을 향해 명을 내렸다.“서성의 성주가 요즘 청루에서 접대하는 주요 고객을 조사하고 오늘 안으로 명단을 올리거라.”“예.”육승은 빠르게 대답했다.방 안에서 연기준은 여전히 그녀를 붙잡은 채 부드러운 어조를 흘렸다.“이런 잔일은 굳이 네가

  • 시간을 거슬러   제206화

    서인경은 온조가 괜한 죄책감을 느낄까 봐 일부러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 때문이라 둘러댔다.“게다가 내가 연기준이랑 싸우는 건 우리 둘 사이의 문제이다. 이 일이 없어도 싸울 땐 또 싸운단 말이다. 너랑은 아무 상관 없으니 마음 쓰지 말거라.”하지만 온조의 눈빛에는 여전히 망설임이 어려 있었다.“마님… 그 말, 정말입니까?”서인경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랑 연기준 사이는 오래된 앙금이다. 외부 사람과는 전혀 상관없어. 믿기 힘들면 평이한테 물어보거라. 그 애라면 사흘 밤낮 내내 떠들 수 있을 것이다.”평이가 수다스럽게 고개를 흔들며 떠드는 모습이 떠올랐는지 온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서인경도 덩달아 미소 지었다.“됐어, 괜한 생각 말거라. 나중에 평이 붙잡고 실컷 듣도록 해. 난 다 씻었으니 새 수건 좀 가져다 주거라.”“예.”온조가 나서자 서인경은 뜨끈한 물속에 몸을 더 깊이 기대며 잠시 숨을 고르듯 쉬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온조? 수건을 찾아온 것이냐?”그녀가 등을 돌린 채 휘장 너머로 물었다.곧,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자 서인경은 긴장을 풀며 말했다.“안 올 줄 알았다. 평이가 내 물건이랑 연기준 물건을 자꾸 섞어놔서 말이지. 내일 한소리 해야겠다. 내가 그 남정네랑 물건을 같이 쓰는 건 싫거든.”말이 끝나자, 머리 위로 수건이 펼쳐졌다. 서인경은 고개만 돌려 수건을 받아 들었다.“옷만 두고 나가거라. 나 혼자 입으면 된다.”늘 그래 왔듯, 온조가 물건만 내려놓고 나갈 거란 생각에 서인경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욕탕 안에서 몸을 일으켰다. 물을 털어내며 손을 뻗어 옷걸이에 걸린 의복을 잡으려는 순간, 손목이 낯선 힘에 사로잡혔다.“아… 읍…!”몸이 덮쳐오자 서인경은 이미 그 상대가 누군지 짐작했다.재빨리 반격을 꾀했으나 그 남자는 모든 동작을 손쉽게 풀어내며 입술을 틀어막는 동시에 그녀의 알몸을 품에 죄어 왔다. 차가운 의복과 달궈진 살결이 맞닿자 서인경은 순간 불공

  • 시간을 거슬러   제205화

    서인경은 밤바람을 거슬러 동쪽으로 내달렸다. 마침내 까미가 산기슭에 숨은 듯 늘어선 나무집 앞에서 멈춰 섰다.잠시 후, 육승이 그녀를 데리고 까미 곁에 내려섰다. 서인경은 몸을 굽혀 까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여기가 맞아?”까미는 거친 콧김을 뿜으며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제야 서인경은 일어서서 불과 십여 걸음 앞의 나무집들을 주의 깊게 살폈다.세 칸으로 이어진 집. 불은 꺼져 있었고 희미한 달빛만이 지붕선을 따라 윤곽을 드러냈다. 사람이 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까미가 이곳을 찾아온 이상 금전초가 경매장에서 나온 뒤 이곳을 거쳐 갔음이 분명했다. 육승은 단서를 얻은 기쁨에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왕비 마마, 잠시 여기 계십시오. 제가 먼저 정탐하겠사옵니다.”서인경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서두를 것 없다. 진짜 일을 꾸미는 자라면 이런 곳에 머물 리 없지. 설사 안에 사람이 있다 해도 고작 허드렛일이나 도와주는 자일뿐이다. 그러니 붙잡아도 얻을 건 아무것도 없지.”육승은 아쉬움에 눈살을 찌푸렸다.“그럼 이렇게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것이옵니까? 간신히 잡은 실마리인데 그냥 지나치기엔…”“사람을 붙여, 밤낮으로 지켜보게 하거라. 드나드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뒤를 밟아야 한다.”“명 받들겠사옵니다.”일을 정리하고 서인경은 다시 까미를 다독였다.“잘했어, 까미. 내일은 닭 다리 하나 더 얹어 주마.”까미는 기뻐서 꼬리를 힘차게 내리쳤다.막부로 돌아왔을 때 달빛은 이미 버들가지 끝에 걸려 있었다. 막효연은 두 눈이 풀린 채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몇 번이고 고꾸라질 뻔했으나 기어코 그녀를 기다렸다. 서인경이 돌아왔다는 시녀의 말에 막효연은 그제야 이불 속으로 곤두박질치더니 바로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방으로 돌아온 서인경을 맞은 것은 온조뿐이었다.“마님, 돌아오셨군요. 목욕물은 이미 덥혀 두었습니다. 제가 곧 뜨거운 물을 옮겨 드리겠습니다.”피곤이 몰려온 서인경은 물이 준비되자마자 옷을 훌훌 벗고 목욕통에 몸을 담갔다.휘장 너

  • 시간을 거슬러   제204화

    한때는 떠돌이로 굶주리던 개였건만 이제는 윤기가 번쩍이는 검은 털을 두른 건장한 모습이었다. 살은 단단히 붙었고 걸음걸이는 민첩했으며 콧김마저 거칠고 힘찼다.‘이 녀석, 일꾼으로는 제격이군.’서인경은 속으로 그렇게 단정하며 갈수록 이 개에게 묘한 친근감을 느꼈다.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따끈한 통닭을 천천히 갈라내기 시작했다. 순간 진한 기름 향이 공기 속에 가득 퍼졌다. 멀리 있어도 코끝을 찌를 정도였다.하물며 개의 예민한 후각은 오죽했을까.까미는 원래 막효연 곁을 떠나지 않고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그러다 코끝이 파르르 떨리더니 번개처럼 고개를 홱 돌려 서인경 쪽을 바라보았다.침은 금세 길게 흘러내렸으나 처음 보는 사람 앞이라 감히 덤비지는 못하고 그저 애처로운 눈으로 고개만 돌려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닭 한 번, 주인 한 번.그러더니 코에서 조급한 듯 낮게 킁킁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아주 참을 성이 있네.’서인경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까미는 욕구를 참아내며 절제할 줄 아는 개였다.막효연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이분은 서인경 언니야. 널 보러 일부러 찾아오신 거니 가 보거라.”허락이 떨어지자 까미는 네 발을 힘차게 뻗으며 곧장 서인경에게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통닭을 단숨에 물고 뼈채로 와작와작 씹어 삼켰다. 뼈 부서지는 소리가 방 안에 또렷하게 울렸다. 서인경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막효연을 향해 물었다.“오늘 밤, 내가 잠시 데리고 나가도 되겠는가? 개한테 시켜 볼 것이 있는데.”막효연은 눈치를 보긴 했지만 두 사람의 대화를 얼핏 들은 터라 대강은 짐작하고 있었다. 무엇을 찾거나, 누군가를 추적하려는 것이겠지. 그리고 이런 일을 하기에 개가 가장 적합하니 그녀에게 물었던 것이고.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까미를 위해 흥정까지 보탰다.“당연하네! 우리 까미는 영리하니까 마음껏 훈련시켜도 되네. 다만, 끝나면 통닭 한 마리 보답해 주는 거 잊지 말게.”

Plus de chapitres
Découvrez et lisez de bons romans gratuitement
Accédez gratuitement à un grand nombre de bons romans sur GoodNovel. Téléchargez les livres que vous aimez et lisez où et quand vous voulez.
Lisez des livres gratuitement sur l'APP
Scanner le code pour lire sur l'application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