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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eur: 강시아
그는 취기에 비틀거리며 서인경의 앞으로 다가갔다.

“뭐, 네가 오늘 나를 기쁘게 해주면 모두 없던 일로 해줄 수 있지. 상왕이 널 버리게 된다면, 내 통방 시녀 정도는 시켜줄게. 어때?”

불경한 말에 구경하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숨을 헉하고 들이켰다.

서인경은 싸늘한 눈길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당장 내 앞에서 꺼지지 못할까!”

술기운에 이미 이성의 끈을 놓은 단평안에게 그런 말은, 그저 화만 더 자극할 뿐이었다.

“내 앞에서 건방 떨지 마라. 상왕은 언젠가 너를 내칠 것이다. 그때 가서 나한테 빌붙어도 때는 이미 늦어!”

그의 탐욕스러운 눈길이 서인경을 쭉 훑더니 그녀의 뒤에 있는 여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나서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마구 비볐다.

“너희들도 나와 같이 가자꾸나. 오늘 오라버니들이 너희를 즐겁게… 악!”

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처참한 비명이 주루 안팎으로 울려 퍼졌다.

서인경은 힘을 주어 놈의 손목을 잡고 비틀어서 바닥에 패대기쳤다.

이곳으로 건너오기 전 그녀는 이미 결혼하지 않을 생각을 굳혔기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수단으로 호신술을 배웠다.

법치사회에서는 그 기술을 써먹을 기회가 없었는데 이곳에서 빛을 발할 줄이야.

바닥에 쓰러진 단평안은 손목을 부여잡고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악… 이년이 감히 나를 쳐? 너 두고 봐! 언젠가는 내 밑에 깔려서 처참한 신음을 뱉게 될 테니!”

‘이 자식은 이 상황에서도 이런 더러운 소리나 지껄이다니!’

식탁 위에는 주루 심부름꾼이 방금 전 가져온 뜨거운 물주전자가 놓여 있었는데, 서인경이 한손으로 그것을 집어 단평안의 사타구니를 조준하고 주저없이 부어 버렸다.

“너… 뭐 하는… 악!”

곧이어 또다시 처참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따라왔던 취객들이 놀라서 술이 깰 정도였다.

단평안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뒹굴었지만 아무도 감히 나서서 그를 부축할 수 없었다.

상왕의 총애를 받든 못 받든 상왕비를 희롱한 언사는 대죄였기 때문이다. 구경하는 건 좋지만 아무도 굳이 나서서 화를 자초할 이유가 없었다.

주전자를 말끔히 비운 서인경은 빈 주전자를 바닥에 던지고는 손을 털었다.

“며칠 전 네가 무고한 아녀자를 강제로 취한 일로 그 댁 부모가 거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들었다. 내 오늘 널 사내 구실 못하게 만들어도 이는 백성을 위한 정의구현이라 할 수 있겠지. 나도 단씨 가문을 위해 공덕을 쌓기 위함이니, 나한테 너무 감사해하지 않아도 된다.”

단평안은 고통스럽게 몸을 웅크리고서도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서인경에게 삿대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지독한 년 같으니라고! 두고 봐. 네가… 내 손에 잡히는 날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악!”

갑작스럽게 들려온 비명에 서인경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가만히 있던 평이가 씩씩거리며 놈의 손가락을 짓밟은 것이었는데, 그녀는 그래도 부족한지 힘껏 발을 들어 다시 아래로 내리 찍었다.

“퉤! 변태 같은 자식, 그 더러운 손으로 감히 누굴 가리키는 것이야!”

서인경은 속으로 그런 평이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들었다.

위층의 소란에 아래층에서 대기하던 단씨 가문의 하인들이 소리를 듣고 위층으로 달려왔다. 현장을 살펴본 그들은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소리를 질렀다.

“어떤 빌어먹을 놈이 감히 우리 도련님을, 죽고 싶어!”

평이는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도 절대 발은 회수하지 않았다.

“나… 나다… 내가 그랬다….”

서인경은 평이가 자신을 위해서 모든 걸 뒤집어쓰려 한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챘다.

쪽수로 밀어붙이면 아무리 봐도 서인경이 지는 상황이었다.

‘감동했네, 평이야.’

놈들은 가녀린 서인경을 보자마자 곧바로 달려들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서인경은 성큼 앞으로 나서며 평이를 뒤로 잡아끌고는 다리를 들었다.

맨 앞에 달려오던 놈은 평이를 만만하게 봤는지 전혀 경계하고 있지 않다가 그대로 나가떨어졌고, 놈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사타구니를 붙잡고 나뒹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악당들은 우르르 몰려들었다.

상황이 위급해지자 아까부터 침묵만 지키던 맹은영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오라버니, 부디 도와주세요!”

그 소리를 들은 한 사내가 사람들을 비집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은영아?”

사실 맹경운은 진작부터 이곳에 싸움이 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저 구경만 하다가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여동생이 휘말린 것을 보고 표정이 음침하게 굳어버린 것이었다.

그는 조용한 사람이 화가 나면 얼마나 무서운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심지어 자초지종 한마디도 묻지 않고 한주먹에 한놈씩 쓰러뜨렸다.

상왕의 부하 중에서도 전투력이 손에 꼽히는 인물이니 한낱 가택의 호위 따위 쓰러뜨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순간, 주루 안은 주먹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와 처절한 신음 소리로 가득 찼다.

단평안은 일이 이렇게까지 번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는 혼란을 틈타 식탁 밑으로 기어 밖으로 향하며 누런 이를 악물었다.

“더러운 년, 두고 보자…! 윽….”

평이는 그가 도망치는 것을 보자마자 차주전자를 들고 쫓아가서 안에 든 뜨거운 찻물을 그대로 머리 위에 쏟아부었다.

비록 이미 식은 물이라 고통은 없었지만, 단평안은 살아생전 이렇게 초라하고 굴욕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더러운 건 너지, 이 자식아! 너희 집안 인간들 다 더러워! 술 좀 마셨다고 힘없는 여인을 괴롭히려 들다니! 너 같은 놈은 지옥에나 떨어져야 해. 도망칠 생각하지 마. 도망치면 진짜 뜨거운 물을 부어버릴 테니까!”

서인경은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입이 귀에 닿도록 웃었다.

맹은영이 그녀의 옷자락을 잡으며 투덜거렸다.

“뭐가 그리 즐거우십니까? 이제 어떻게 수습하려고요?”

서인경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 순간, 익숙한 한 사내가 천천히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맹은영은 혹여 서인경이 또 혼날까 두려워 작은 소리로 맹경운에게 물었다.

“상왕께서 어쩐 일로 여기 계십니까?”

맹경운은 어색한 얼굴로 코끝을 만졌다.

“여기서 차 마시고 있었다.”

서인경의 앞에 멈춰선 연기준은 속을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또 사고 쳤구나.”

서인경은 대범하게 시인했다.

“만약 왕야께서 느끼시기에 정당방위와 정의구현이 사고라고 친다면 인정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사이가 안 좋은 건 비밀도 아니었기에 맹은영은 분위기가 싸늘해지자마자 다급히 해명했다.

“누군가가 왕비마마를 희롱하는 발언을 하고 위협까지 하여서 왕비께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연기준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그자가 누구지?”

서인경은 식탁 밑을 가리키며 입을 삐죽였다.

“저 자식입니다! 저 자식이 저에게 자신을 즐겁게만 해주면 앞으로 예뻐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왕야께서 언젠가는 저를 내치실 텐데 그때가 되면 저를 통방 시녀로 들이겠다고도 했습니다.”

다른 양갓집 규수였으면 절대 할 수 없을 법한 말이지만 서인경은 신이 나서 고자질했다.

연기준의 두 눈이 더욱 싸늘하게 식었다.

“왕야, 저는 평안이고, 제 누님은 단은설입니다. 빨리 저 좀 살려주십시오. 저 망할 년들이 저를 죽이려 합니다! 악!”

단평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기준의 발을 들었다.

발치에 있던 깨진 찻잔 조각이 그대로 단평안의 입안으로 날아들어갔다.

순식간에 그의 입안에서 대량의 피가 쏟아졌다.

“령풍아, 술 마시고 난동을 부린 자들을 모두 관아로 끌고 가서 곤장 백 대를 치거라. 그리고 단씨 가문에는 그대들이 아들 교육을 잘못했으니 내가 친히 가르치겠다 전하거라.”

“예, 왕야.”

명을 들은 령풍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단평안의 덜미를 한손으로 잡고 질질 끌고 나갔다.

그가 데려온 하인들도 령풍의 부하들에 의해 끌려나갔다.

연기준은 서인경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향했다.

“경운, 내 급히 집안일을 처리해야 하니 나중에 다시 보도록 하지.”

맹경운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살펴 가십시오, 왕야.”

맹영은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라버니, 왕야께서 왕비마마를 벌하시진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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