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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Author: 코코넛 서고
한편 단씨 가문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삼대독자인 귀한 아들이 곤장 백 대를 맞고 숨만 붙어서 돌아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당분간은 사내구실도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상 정도가 조금만 더 심했어도 가문의 대가 끊어질 뻔했다.

단효산은 크게 화를 내며 왕부로 찾아가 따지려고 했으나, 다행히 그나마 이성이 남아 있는 단은설이 이를 말렸다.

“아버지, 지금은 경거망동할 때가 아닙니다.”

분노에 찬 단효산의 고함소리가 저택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럼 네 동생이 저렇게 되었는데 가만히 있으란 것이냐!”

단은설은 그런 그를 위로했다.

“아버지, 관아는 상왕의 명을 따른 것뿐입니다. 지금 따지러 가면 책임을 상왕께 돌리는 꼴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 모든 일은 서인경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상왕비라는 신분을 내세워 대놓고 악행을 저질렀지요. 그러니 이 원한은 서씨 가문에게 풀어야 합니다.”

“언니 말이 다 맞습니다.”

밖에서 들어온 단여월이 말했다.

“맹국공부 쪽에 지시한 일이 거의 성사되고 있었을 때, 맹은영이 서인경이랑 접촉해서 독을 탄 간식들을 찾아냈어요. 분명 서인경이 중간에서 무슨 짓을 한 걸 거예요!”

단효산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서인경 그 계집은 그 일을 무슨 수로 안 거지?”

단여월은 고개를 돌려 단은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단은설은 고개를 저으며 다급히 말했다.

“저는 한 번도 그년 앞에서 그 얘기를 꺼낸 적이 없습니다.”

단여월은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다.

“그년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치 않아요. 원래는 앙숙이었어야 할 두 사람이 수상하게 친구가 되었어요. 듣기로 평안이가 구타를 당하고 있을 때, 맹영은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다고 합니다.”

단효산은 주먹을 불끈 쥐고 고함을 질렀다.

“서인경! 내 아들의 원수는 반드시 갚을지어다!”

금족의 기간에 서인경은 틈틈이 평이에게 호신술을 가르쳐주었다.

이날 아침도 배불리 먹고 정원에서 운동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째 꾹 닫혔던 대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관리인이 하인들과 함께 뭔가를 가득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마마, 오늘은 서왕비마마의 칠순 생신연이 있는 날입니다. 왕야께서 치장하시고 대기하고 계시라 명하였습니다. 조회가 끝나고 왕야께서 돌아오시면 두 분이 함께 서왕부로 가게 되실 겁니다.”

원주인의 기억에 의하면 서왕은 황제와 연기준의 숙부였다.

젊었을 때는 덕망 높고 어마어마한 권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황제가 즉위하자마자 모든 직권을 내려놓았다.

그동안 그는 어떤 당파와 조정의 일에도 간섭하지 않고 늘 중립을 유지해 왔고, 그로 인해 황제의 신임과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니 서왕비의 생신 연회라면 당연히 문무백관들이 찾아올 것이고, 서인경 또한 불참석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평이의 시중을 받으며 연노랑색 치마를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틀어올렸다.

두 사람이 웃고 떠들며 대청을 향해 가고 있는데 조회에 갔던 연기준이 돌아왔다.

멀리서 연노랑색 치마가 하늘거리는 모습이 보이자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평이와 무슨 재미난 얘기를 하는지 꽃처럼 어여쁘게 웃고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었는데, 며칠 동안 보지 않았던 사내를 보자, 웃음기가 싹 사라진 듯했다.

“왕야께서 드디어 왕부에 저도 산다는 걸 기억해내셨나 봅니다.”

그 말을 들은 연기준 또한 조금 전 좋았던 기분이 싹 사라졌다.

“서왕비의 생신연회를 축하해 드리러 갈 것이다. 왕부에 누가 될 짓은 하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해야 할 것이야.”

서인경은 시큰둥한 어투로 대꾸했다.

“그건 확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저를 안 건드린다면 조용히 있다 오겠지만, 만약에 누가 저를 건드린다면 조용히 당해줄 생각은 없으니까요. 이런 제가 창피하다 생각되시면 이혼을 해주십시오. 그럼 제 일언반구가 왕부의 명성에 누가 되는 일은 없을 것 아닙니까. 그것도 싫으시다면 그냥 장기 금족령을 내리셔도 좋습니다.”

너무도 당당해서 약을 올리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평생 연기준 앞에서 이런 태도를 보인 사람은 없었다.

“내가 언제 조용히 당하고 있으라 했지? 지난번엔 네 스스로 맹은영을 모함해서 무릎을 꿇린 것이야. 맹국공이 이 일을 폐하 안전에 찾아가서 고자질하면 무릎 한번 꿇는 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게 될 것이다.”

‘지금 내게… 해명을 하는 건가?’

서인경도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동의하기에 그 일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마음에 안 드는 건 이혼은 끝까지 못해준다는 상왕의 태도였다. 상왕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상,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그녀에게 쏠리고 있었다.

서인경은 이런 상황이 불편하고 짜증이 났다.

“제 기분 따라 행동할 겁니다.”

상왕은 그런 그녀를 빤히 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나온다고 해서 내가 널 어쩌지 못할 거란 착각은 하지 말거라. 지금 전쟁터에 계신 서 노장군께서 빨리 귀경하게 하고 싶으면 처신을 똑바로 해야 할 것이야.”

서인경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어쩜 그렇게 야비하십니까? 제 할아버지께선 그 연세에 나라를 위해 적들과 싸우고 계신데 그분을 빌미로 저를 협박하시다니! 이건 직권 남용입니다!”

연기준은 잔뜩 약이 오른 그녀의 얼굴이 만족스러웠다.

“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긴 하지. 난 이치를 따지며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야. 네가 간청을 들여서 하게 된 혼인이니 마음에 안 들어도 참을 수밖에. 언젠가 내가 네게 흥미를 잃으면 그때 이혼을 고려해 보마.”

서인경은 가슴 속에 불덩이가 곧 폭발할 것 같았다.

‘그 얼간이는 대체 얼마나 남자 보는 눈이 없으면 저런 것에게 마음을 주었을까?’

서왕부로 가는 내내 두 사람 사이의 냉랭한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 문안인사를 건넨 후, 연기준은 남자 손님들을 위해 준비한 구역으로 가고 서인경은 여자 손님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관가의 아씨와 부인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얘기를 나누었다.

과거의 서인경은 이 사람 저 사람 의심하느라 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돌렸었다.

사람들은 비록 겉으로는 예를 지켰지만, 사실 상 아무도 그녀와 가까이하고 싶지 않아했다.

서인경도 굳이 그런 사람들을 붙잡고 얘기를 나눌 생각이 없었다.

주변을 살폈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이지 않자, 그녀는 서왕부의 시종을 잡고 물었다.

“혹시 맹국공부의 맹은영 소저도 도착했느냐?”

시종은 공손히 그녀에게 예를 행하고는 뒷정원을 가리켰다.

“방금 전에 맹 소저께서 저쪽 정자로 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 고맙다.”

서인경이 그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인경아, 왕야께서 네게 금족령을 내렸단 이야기는 들었단다. 또 그분의 심기를 건드린 거니?”

‘단은설?’

서왕비의 생신 연회에 아무런 관직도 없는 단씨 가문을 초대한 게 이상했다.

서인경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렇게 친근한 척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우리가 그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지 않니? 내가 왜 금족에 처해졌는지 정말 몰라서 물어?! 모르면 돌아가서 네 동생에게 물어봐. 듣기로, 하마터면 남은 평생 사내구실을 못할 뻔했다던데?”

“너….”

단은설은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며 길게 심호흡했다.

두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히 날을 세우는 바람에 뭇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두사람을 향해 쏠렸다.

단은설은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서러운 얼굴로 표정을 바꾸었다.

“제 동생이 술기운에 정신이 혼미해져 상왕비마마께 결례를 범했다 들었습니다. 허나, 마마께서도 그에 대한 벌로 동생을 구타하시고 혹독한 처벌을 내리셨지요. 그러고도 그 일로 저를 이리 몰아세우시는 건 좀 너무하시단 생각이 안 드십니까?”

“길 막지 말고 비켜라. 너랑 얘기할 생각 없으니.”

말을 마친 서인경은 손을 뻗어 그녀를 밀쳤다.

그러나 단은설은 눈치가 없는 사람처럼 계속해서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인경아, 나 믿어줘. 난 상왕께 불순한 마음을 품은 적이 없어. 제발 오해를 풀어줘. 이 일로 나와 멀어지지 말아줘, 응?”

초대받은 아씨와 부인들은 실랑이를 벌이는 두 사람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둘이 서로 등을 돌렸다는 얘기는 이미 경성에 소문이 퍼져서 다들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의심 많고 성질 고약한 서인경이 친척 동생까지 의심한다고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인경은 그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단은설이 이상해. 의도적으로 내 길을 막고 시간을 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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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인경은 속이 터져 도저히 참지 못하고 막효연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 찔렀다.“효연… 그대가 이러고 다니는 거 그대 부모님께서는 알고 계시는 겐가?”막효연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대꾸했다.“그분들은 나를 막지 못하네. 한데 그분들은 묵염 오라버니를 믿으시지! 그게 아니었다면 내가 진작 묵염 오라버니 집으로 이사 가버렸을 것이네.”서인경은 할 말을 잃었다. 고구마를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향긋한 김을 내뿜으며 툭 던졌다.“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군!”막효연은 오히려 목을 뻣뻣이 세우며 당당하게 말했다.“어차피 그 사람은 언

  • 시간을 거슬러   제261화

    서인경은 혹시나 약의 부작용이 발작한 건 아닌지 불안해져 발걸음을 재촉하며 그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녀가 문을 막 들어서는 순간, 차가운 손 한 쌍이 그녀를 문에 꾹 눌러 붙였다.연기준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의 안색만으로도 몸이 쇠약해졌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붉게 핏발 선 그의 눈동자에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불길처럼 치솟아 있었다.“서인경, 네가 서 가의 군공을 빌미로 본왕을 억지로 혼인에 묶어둔 것이냐? 네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게로구나!”뭐야, 이거.이 익숙한 소설 클리셰 같은 장면은 또 뭐

  • 시간을 거슬러   제249화

    단 두어 초 머뭇거리던 서인경은 곧장 불길이 솟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그녀의 발걸음을 쫓아 뒤에서 쿵쿵 울리며 사람들의 발소리도 곧 이어졌다.라 가.그 순간, 저택의 중심 안뜰은 이미 거대한 화마에 삼켜져 있었다.서인경은 부랴부랴 라 가의 집에 도착했다. 그때 그녀는 불길을 피해 허겁지겁 물을 나르는 인파를 거스르며 담을 넘어 달아나는 한 검은 그림자를 발견했다.“안포, 쫓거라. 반드시 산 채로 잡아와야 한다.”안포는 명을 받들고 바람처럼 사라졌다.막수한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인원을 지휘해 불 끄기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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