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제41화 : 침묵의 영토와 눈먼 기사
사직동 최고급 펜트하우스의 실내는 깊고 아늑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대성그룹 본사 63층 메인 홀을 뒤흔들었던 전산 대폭발과 백종구 의장 일파의 몰락은 단 몇 시간 만에 언론의 거대한 활자 속으로 흩어졌다. 세상은 이를 두고 ‘대성 가문 내부의 고질적인 비리와 권력다툼이 낳은 자멸’이라 평했고, 그 중심에서 완벽하게 독을 탔던 은설아는 그저 ‘시댁의 음모에 이어 또다시 이용당할 뻔한 가련한 상속녀’로 포장되어 철저히 장막 뒤로 숨겨졌다. "하아……." 설아는 하얀 도자기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길고 잔잔한 숨을 내쉬었다.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분한 라벤더 향이 거실의 공기를 부드럽게 채웠다. 며칠 동안 그녀의 목을 조르던 폭우는 완전히 그쳐 있었고, 통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서울의 오후는 나른한 햇살제73화 : 잿더미 위의 성전과 아날로그 그림자사직동 최고급 펜트하우스 60층 안방의 전면 통유리창 너머로 내려앉은 새벽 안개는 먹물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밤새 광화문 빌딩 숲을 적시던 장대비는 잦아들었으나, 유리 벽면을 타고 완만하게 흘러내리는 수증기와 눅눅한 한기는 실내 대리석 바닥을 오싹하게 염색하고 있었다.초고층 전용 가습기에서 피어오르는 습한 장미 향은 여전히 거실 공기를 감싸고 있었지만, 차갑게 식어버린 싱글 몰트 위스키의 알코올 잔향과 뒤섞여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을 턱 막히게 만드는 매혹적이고도 기괴한 밀도를 형성하고 있었다.은설아는 버건디색 실크 가운 자락을 침대 위로 완만하게 퍼뜨린 채, 킹사이즈 침대 헤드에 우아하게 기대어 누워 있었다.느슨하게 풀어진 가운 깃 사이로 드러난 백옥 같은 목덜미와 가녀린 어깨선, 그리고 매끄러운 다리 라인은 푸른빛 새벽광을 받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군주로서의 위엄과 치명적인 에로티시즘을 동시에 내뿜고 있었다. 설아의 망막 위로 스위스 결제 연합과 월가로부터 강탈한 25조 원의 최종 정산 리포트가 푸른빛 데이터 스트림이 되어 연달아 스쳐 지나갔다.설아는 가늘고 차가운 손가락으로 제 입술 끝을 지긋이 쓸어내리며 차분하게 읊조렸다.대한민국 정재계와 월가, 그리고 스위스의 늙은 포식자들까지 모조리 내 발밑에서 사지가 찢겼어.눈가에는 여전히 슬픈 눈물이 고여 있는 듯한 가련한 피해자의 가면을 완벽하게 띄우고 있었지만, 그 눈동자 이면에서 폭주하듯 회전하는 연산 회로는 이미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최악의 포식자 그 자체였다.설아 씨.침대 아래, 차운 대리석 바닥 위에는 대성 인베스트먼트 대표 백현재가 무릎을 꿇은 채 납작 엎드려 있었다.검은 와이셔츠 단추가 풀어진 채 그의 억센 가슴팍은 공포와 맹목적인 정욕으로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고, 핏빛
제72화 : 맹목의 늪과 붉은 전야여의도 에바 홀딩스 특별 통제실을 가득 채웠던 환호성은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대리석 바닥의 서늘한 한기 속으로 가라앉았다. 수십 개의 모니터 스크린 위로 스위스 결제 연합의 5조 원이 청산되어 들어오는 황금빛 숫자들이 어지럽게 명멸했지만, 그 숫자들이 내뿜는 광채조차 실내를 지배하는 묘한 긴장감을 완벽하게 걷어내지는 못했다.창밖의 서울 도심은 어느새 장대비가 완전히 그치고 눅눅한 잿빛 안개에 잠겨 있었다. 고층 빌딩숲 사이로 흘러드는 흐릿한 새벽녘의 잔광이 통제실의 두꺼운 방탄 유리창을 타고 완만하게 굴절되어, 은설아가 서 있는 단상 아래로 길고 검은 음영을 드리우고 있었다. 가습기에서 뿜어지는 습한 장미 향은 여전히 공기 중에 남아 있었지만, 서버 컴퓨터들이 쉴 새 없이 뱉어내는 뜨겁고 알싸한 오존 냄새와 뒤섞여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을 답답하게 짓눌렀다.은설아는 소파 가죽 깊숙이 몸을 묻은 채, 가늘고 하얀 손가락으로 찻잔을 만지작거렸다.순백의 실크 원피스 자락이 대리석 바닥 위로 길게 흘러내려 있었고, 그녀의 백옥 같은 피부는 흐릿한 푸른빛을 받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군주로서의 위엄을 자아내고 있었다. 25조 원이라는 전무후무한 자본의 성채를 그러쥐며 대한민국과 월가, 그리고 유럽의 포식자들까지 차례로 도살해 낸 여왕. 눈가에는 여전히 슬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듯한 가련한 피해자의 가면을 완벽하게 띄우고 있었지만, 그 눈동자 깊은 곳에서 정밀하게 연산되는 회로는 이미 인간의 지능을 초월한 지독한 악귀의 본형이었다.설아 씨. 에바.단상 아래, 차가운 한기가 감도는 설아의 구두발 밑에는 대성 인베스트먼트 대표 백현재가 무릎을 꿇은 채 납작 엎드려 있었다.와이셔츠 단추는 몇 개 풀어헤쳐진 채 그의 가슴팍은 거친 숨결로 요동치고 있었고, 핏빛 넥타이는 진흙과 핏자국이 얼룩진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
제71화 : 사방의 거미줄과 잿빛의 공조스위스 취리히 호수가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석조 고성 스타일의 비밀 회의실 내부는 한겨울 만년설에서 불어오는 강바람보다 더 서늘한 정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수백 년 동안 유럽 최고위 귀족 가문들의 비자금을 관리하며 세계 금융 생태계의 보이지 않는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해 온 거물들이 원목 테이블 주위에 어두운 안색으로 모여 앉아 있었다. 넓은 실내 공기는 묵직하게 가라앉은 시가 연기와 차갑게 식어버린 위스키의 알코올 잔향, 그리고 웅웅거리는 전산 서버가 뱉어내는 둔탁한 오존 냄새로 끈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테이블 상석에 앉아 있던 스위스 민간 은행 결제 연합의 의장이자 유럽 사모펀드 카르텔의 대부 헤르만 폰 베르크는 금테 돋보기를 신경질적으로 매만지며 전면 모니터를 서늘하게 노려보았다. 스크린 위에는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단 몇 달 만에 2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본을 쓸어 담으며 월스트리트의 뱅가드 카르텔까지 처참하게 도살해 버린 여인, 에바 은의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뉴욕의 데이비드 멜러가 단 2분 만에 역방향 숏스퀴즈에 걸려 청산당했다."헤르만 폰 베르크의 쉰 목소리가 성벽의 차가운 석조 벽면을 타고 무겁게 퉁겨져 나왔다."이것은 단순한 금융 천재의 움직임이 아니다. 국제 외환망의 원장 자체를 실시간으로 왜곡시키는 괴물이 배후에 있는 것이다. 방금 전 뱅가드 카르텔이 파멸하면서 그들이 관리하던 유럽 귀족 가문들의 우회 지분과 오프라인 비밀 자산 일부가 저 에바 홀딩스라는 거대한 성채 속으로 통째로 빨려 들어간 것이 확인됐다. 저 여자를 이대로 방치하면 우리 유럽 민간 은행 연합의 질서까지 송두리째 무너지게 될 것이다."그의 곁에 서 있던 스위스 금융감독청 고위 감사관이 수기로 작성된 극비 문서를 내밀며 나지막하게 보고했다."의장님, 에바 홀딩스의 자금 인출을 차단하기 위
제70화 : 월가의 사냥개들과 20조 원의 성채월스트리트를 지배하는 거대 글로벌 헤지펀드 뱅가드 카르텔의 아시아 아웃소싱 본부 회의실. 사방을 엄숙하게 감싼 방탄 통유리창 너머로 마천루가 뿜어내는 차가운 네온사인 불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실내를 지배하는 것은 수백 대의 메인 서버가 뿜어내는 서늘한 냉각팬 소리와, 묵직하게 가라앉은 코히바 시가 연기, 그리고 차갑게 식어버린 에스프레소의 쌉싸름한 향이었다.테이블 상석에 앉아 있던 뱅가드 카르텔의 아시아 총괄 부사장 데이비드 멜러는 금테 돋보기를 매만지며 모니터 화면을 냉혹하게 노려보았다. 스크린 위에는 대한민국 금융 시장의 실시간 지분 변동 그래프와 함께, 정체불명의 거대 자본인 에바 홀딩스의 자금 흐름도가 시뻘건 먹선으로 매핑되어 있었다.차승재 비서실장에 이어 성진그룹의 명태섭, 그리고 그림자 국가 기금 5조 원까지 단 수개월 만에 통째로 삼켜졌다.데이비드 멜러의 메마른 목소리가 회의실의 무거운 공기를 찢었다.그들이 은닉해 두었던 차명 비자금 전체가 에바 은이라는 정체불명의 여인 계좌로 귀속된 것이 확인됐다. 전산망의 허점을 파고들어 대한민국 최상층부의 목을 차례로 친 악귀다. 이 여자를 이대로 방치하면 아시아 금융 시장 전체의 주도권이 저 여자 손에 넘어간다.그의 곁에 서 있던 전직 금융감독원 출신의 수석 브로커가 어두운 안색으로 고개를 숙였다.이 여자는 단순한 재벌가 상속녀가 아닙니다. 시장의 인과율 자체를 왜곡시키는 기이한 자본 폭주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쳐놓은 법적 방화벽조차 무용지물로 만들었습니다.데이비드 멜러가 잔인하게 미소 지으며 비밀 결재 패드에 친필 서명을 날렸다. 그는 평생을 아시아 전역의 부실 기업과 국가 기간산업을 공매도 덫으로 찢어발겨 자본을 약탈해 온 월가의 최상위 포식자였다. 그에게 은설아가 구축한 13조 원의 자본은 거대한 먹잇감
제69화 : 제국의 도사(屠死), 그리고 벼랑 끝의 늑대들삼청동의 한 은밀한 지하 안가는 기이할 정도로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 백 년이 넘은 춘양목 기둥 사이로 매캐한 젖은 장작 타는 냄새와 솔향이 가득 차 있었고, 바닥에 깔린 돗자리 위로는 정재계 최상층부에서 단 한순간에 사지가 꺾인 패배자들의 잔당들이 어두운 안색으로 모여 있었다.그들의 중심에는 성진그룹의 창업주 명태섭 회장과 국정원 해외공작국장 한재경, 그리고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차승재가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앉아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대한민국 금융망 전체를 뒤흔들고 자신들의 숨통을 틀어쥔 에바 홀딩스의 지분 변동 그래프가 피처럼 붉은 전산 화면 위에 띄워져 있었다."노상길 전 대통령과 국제 로비스트 클로드 킴의 5조 원대 비자금 계좌가 한순간에 공수처와 미국 연방수사국에 통째로 송출되었다."명태섭 회장의 피를 토하는 듯한 쉰 목소리가 흙벽을 타고 무겁게 울려 퍼졌다."이것은 단순한 금융 해킹이 아니다. 전산망의 주파수와 결제 시스템의 인과율 자체를 왜곡시키는 악귀가 배후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 에바 은이라는 여자를 당장 물리적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전체가 그년의 손아귀 아래 도살당할 것이다."한재경 국장이 탁자를 거칠게 내리쳤다. "국정원의 해외SWIFT 망 차단선까지 우회하여 전 세계에 우리 비자금 실물 장부를 폭로한 년입니다. 이제 법이나 공권력은 방화벽이 되지 못합니다. 사설 특수 용병 집단인 블랙 실드의 잔여 무력을 총동원하여, 오늘 밤 사직동 펜트하우스를 기습해 그년의 육체를 찢어발겨야 합니다."그들이 은밀하게 단도를 들어 제 손바닥을 긋고, 아날로그 방식의 친필 암살 비망록 위에 피 도장을 찍으며 마지막 역습을 모의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같은 시각 오전 03시 15분, 사직동 최고급 펜트하우스 60층 안방.
제68화 : 거두의 단두대와 핏빛 SWIFT사직동 최고급 펜트하우스 60층 안방의 아침은 지독하리만치 희고 차가운 햇살로 젖어 있었다.전면 통유리창을 따라 내려앉은 얼음 같은 햇살은 거실 대리석 바닥 위로 칼날 같은 음영을 드리우고 있었다. 실내 공기 중에는 밤새 가동된 기계식 환기 장치 너머로 초고층 전용 가습기가 뿜어내는 젖은 생장미 향과, 오크통에서 숙성된 최고급 싱글 몰트 위스키의 쌉싸름한 잔향이 뒤섞여 묵직하면서도 오싹한 밀도를 형성하고 있었다.은설아는 킹사이즈 침대 옆, 짙은 순흑의 실크 로브만을 걸친 채 우아하게 기댄 자세로 서 있었다.가운의 넓은 소매 사이로 드러난 백옥 같은 목덜미와 가냘픈 어깨선, 그리고 느슨하게 풀린 실크 자락 아래로 엿보이는 허벅지의 피부는 붉은 아침 햇빛을 받아 치명적이면서도 악귀 특유의 잔혹한 위엄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녀의 하얗고 차가운 손가락 끝에는 스위스 튜리히 민간 은행과 에바 홀딩스 감사팀이 실시간으로 동기화한 해외 금융 망의 궤적이 투명하게 번뜩이고 있었다.그녀의 발밑, 서늘한 대리석 바닥 위에는 백현재가 무릎을 꿇은 채 납작 엎드려 있었다.대성그룹의 서출 출신 천재 투자자로서 세상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던 그의 강인한 자의식은 이미 형체도 없이 부서져 있었다. 검은 와이셔츠 단추는 가슴팍까지 풀어진 채 그 거친 숨결로 요동치고 있었고, 핏빛 넥타이는 바닥에 사정없이 나뒹굴고 있었다. 백현재의 억센 두 손은 설아의 매끄러운 구두등과 허벅지 자락을 움켜쥔 채, 마치 구원을 바라는 포로처럼 그녀의 서늘한 손끝을 향해 뺨과 입술을 깊게 비벼대고 있었다."설아 씨……."백현재의 거친 목소리가 쇠사슬을 끄는 소리처럼 무겁게 울렸다."대한민국 재벌 1위 성진그룹의 명태섭 회장이 움직였습니다. 국정원 해외공작국장 한재경을 시켜 미국 재무부 금융범죄단속국(F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