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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제로두유
박도준이 앞으로 두 걸음 다가가 안예서의 앞에 서더니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부담할 건데?”

그가 갑자기 가까이 다가오자 안예서가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치긴 했지만 평정심은 잃지 않았다.

“진료비, 검사비, 약값 정도면...”

“그럼 손해 보상금, 교통비, 영양 보충비, 그리고 정신적 피해보상금까지 전부 부담해.”

안예서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박도준을 쳐다보았다.

“네?”

‘대놓고 공갈 협박하는 거야?’

박도준이 바지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빼내고 안예서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불만이 있다면 의료 감정 비용까지 추가하고.”

안예서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박도준의 손등에 뜨거운 물이 튀어 붉어진 자국이 있었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참지 못하고 쿡 찔러보려 했다.

‘이 정도면 물집이 잡힐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안예서의 손이 닿기도 전에 박도준이 손을 거두어들였다.

“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해. 저녁에 로운에서 기다려. 구체적인 배상 문제에 대해 얘기해 보자.”

안예서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 주먹을 꽉 쥐고 몰래 이를 악물었다.

박도준이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안예서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가 몇 걸음 옮기자마자 화상을 입은 안예서의 손을 살폈다.

“제대로 치료하고 와. 내 물건에 흠집 나는 건 딱 질색이니까.”

그가 떠난 뒤 옆에 있던 진영우가 안예서에게 인사하고 곧장 박도준의 뒤를 따랐다.

검은색 롤스로이스 안에서 진영우가 조심스럽게 일깨워 주었다.

“대표님, 오늘 저녁에 양효진 씨와 식사 약속이 있으십니다.”

“알았어.”

박도준이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무심하게 답했다.

그러다가 2초쯤 지나 점차 옅어지고 있는 손등의 붉은 자국을 내려다보며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안예서는 박도준의 앞에서는 늘 온순하고 고분고분했다.

하지만 아까는 자기 영역을 지키려고 털을 바짝 세우고 하악질하는 들고양이 같았다.

그녀의 이런 모습을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박도준은 문득 안예서가 꽤 재미있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3년 동안 안예서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았다.

...

안예서는 제자리에 한참을 서 있다가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대걸레를 가져와 바닥의 물기를 말끔히 닦아냈다. 그러고 나서야 다시 물을 뜨고 병실로 돌아갔다.

테이블 위에 물통을 올려놓고 누워 있는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본 후 간호사를 찾아가 손의 화상을 치료했다.

안예서가 입은 화상이 이혁수보다 훨씬 심각했다. 정수기에서 막 흘러나온 물에 직접 뎄으니까.

반면 이혁수에게 뿌린 물은 물통 안에서 한 김 식은 데다 허공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동안 더 식었다.

붕대를 감고 난 후 안예서는 가슴팍에 손을 대고 간호사에게 감사 인사를 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호사가 말했다.

“별말씀을요. 아 참, 어머님 다음 달 병원비 내시는 거 잊지 마세요.”

안예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병원을 나선 안예서는 근처 약국에 들러 의사가 처방해준 화상 연고와 똑같은 연고를 하나 더 산 뒤 로운으로 향했다.

이곳은 제원시의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아파트였다. 낮에는 번화한 비즈니스 중심지였고 밤이 되어 불빛이 켜지면 도시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최고의 야경 전망대가 되었다.

박도준이 가끔 흥이 오를 때면 안예서를 통유리창에 밀어붙이고 아래층의 번갈아 바뀌는 불빛을 세어보게 하곤 했다...

아무튼 그런 쪽으로는 취향이 참 다채로웠다.

안예서가 테이블 위에 화상 연고를 올려놓고 가방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메모를 남긴 뒤 집을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리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예서 씨, 오늘 밤 레스토랑에 연주자가 부족한데 혹시 와줄 수 있어요? 페이는 두 배로 줄게요.”

안예서가 흔쾌히 답했다.

“알겠어요. 지금 바로 갈게요.”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지하철을 타니 20분 만에 도착했다.

이곳은 분위기가 무척 고급스러운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주로 돈 많은 부유층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 실력이 뛰어났던 안예서는 예전에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40대 프랑스인 사장은 안예서의 연주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그래서 지난 3년 동안 일손이 부족할 때마다 안예서를 찾았다. 물론 페이도 항상 섭섭지 않게 챙겨주었다.

레스토랑에 도착한 안예서가 익숙하게 탈의실로 향했다. 연주복으로 갈아입고 소지품을 사물함에 넣은 뒤 홀로 나갔다.

밴드 연주가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 자리에서 진행되었고 조명 역시 은은하고 흐릿했다.

안예서가 조용히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에 합류했다.

연달아 다섯 곡을 연주하고 나면 10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그녀가 붕대로 칭칭 감은 손등을 내려다봤다. 통증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다.

허공에 손을 털고는 얼음찜질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근처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저기 창가 쪽 테이블 봐봐. 며칠 전에 약혼 기사 났던 세진 그룹 대표랑 정양 그룹의 딸 아니야?”

“진짜네. 박 대표님 너무 잘생겼다. 양효진 씨가 너무 부러워.”

“부러워해 봤자 무슨 소용이야. 두 사람 다 집안이며 외모며 탑급이잖아. 저렇게 잘 어울리는데 우리 같은 평민한테 차례가 오겠어?”

“하긴. 그래서 사람은 분수를 알아야 해. 내 것도 아닌데 함부로 들이대면 안 돼.”

“맞아. 꼭 반반한 얼굴 하나 믿고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것들이 있다니까. 기껏해야 잠깐 데리고 노는 장난감이라서 시간 지나면 질려서 버릴 텐데.”

여자 몇 명이 웃고 떠들었다. 농담인 것 같으면서도 말 속에 뼈가 있었다.

안예서가 그녀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양효진이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박도준에게 무슨 말을 건넸는지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우아하고 기품 있게 웃고 있었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옆모습만 보였지만 차가우면서도 점잖은 분위기와 여유로우면서도 고귀한 태도를 풍기고 있었다.

겉모습은 번지르르하지만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하는 인간, 이것이 안예서가 생각하는 박도진이었다.

안예서는 더 이상 두 사람의 오붓한 시간을 감상하지 않고 주방으로 향했다. 얼음팩을 손등에 올려놓은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식 시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안예서는 이따가 다시 찜질할 생각으로 얼음팩을 화분 뒤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예서 씨?”

안예서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양효진 씨.”

안예서를 본 양효진이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예서 씨도 여기서 식사 중이셨어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어요.”

양효진이 안예서의 옷차림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고개를 갸우뚱하자 안예서가 차분히 설명했다.

“밴드에서 연주를 하고 있거든요.”

그녀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그때 두 사람의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양효진이 남자의 팔짱을 자연스럽게 끼더니 방긋 웃었다.

“도준 씨, 여기서 누굴 만났는지 봐요.”

그러고는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안예서를 쳐다봤다.

“나 예서 씨랑 정말 인연이 있나 봐요.”

박도준이 안예서를 힐끗 쳐다봤다가 아무 감정이 없는 얼굴로 덤덤하게 말했다.

“계산 다 했어요. 이만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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