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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مؤلف: 이소문
강유나는 진씨 가문을 알고 있었다. 진씨 가문의 아들은 지적 장애를 앓고 있었고, 그들이 며느리를 구하는 이유는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서였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문 대표를 돌보는 쪽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문 대표라는 호칭만 들으면 나이가 꽤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종철이 그렇게 쉬운 선택지를 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강유나는 슬쩍 떠봤다.

“돌보라고요? 뭘 어떻게 돌보면 되는데요?”

“그걸 몰라서 묻니? 남자를 돌본다는 게 무슨 의미겠어? 게다가 문씨 가문은 원문시 최고의 명문가야. 너를 그곳으로 보내주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인 줄 알아.”

그런 의미의 돌봄이었다니.

아빠라는 사람이 그런 얘기를 저토록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 보니 기가 막혔다.

강유나는 마음이 씁쓸했다.

“그렇게 큰 행운이면 강희원을 그곳에 보내지 그래요?”

강종철은 거의 본능처럼 대답했다.

“문 대표는 포악한 사람이야! 네 동생이 그 성격을 어떻게 감당하겠어? 게다가 네 동생은 이미 송찬후랑 약혼했어.”

송찬후.

아주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송찬후는 강유나와 18년 동안 알고 지낸 소꿉친구였고 원래 송찬후와 강유나가 약혼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강희원에게 마음을 빼앗긴 송찬후는 강유나에게 알아서 물러나기를 강요했다.

그 한 번의 양보로 강유나는 해외로 보내져 김현숙과 강제로 떨어져 지내야 했다.

강유나는 해외에서 3년 동안 지내면 김현숙과 다시 함께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3년 전과 똑같은 일이 또 한 번 발생한 것이다.

강종철이 협박했다.

“너희 엄마 치료비만 최소 2억은 들 거야. 너 돈은 있어? 문 대표 돌보는 게 싫으면 진씨 가문 아들이랑 결혼해서 진씨 가문의 돈으로 너희 엄마를 살리든가.”

강종철은 그렇게 말한 뒤 휴대폰을 꺼내 영상통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되자 간병인이 휴대폰을 들어 병상에 누워 있는 김현숙의 얼굴을 비췄다.

김현숙은 안색이 누렇게 떠 있었고 숨을 쉬는 것마저 힘들어 보였다.

“엄마, 괜찮아요?”

김현숙은 떨리는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유나야, 그냥 엄마 죽게 내버려둬. 절대, 절대 그 사람 말을 들어주지 마...”

통화가 끊겼다.

강유나는 온몸을 덜덜 떨며 분노에 찬 눈빛으로 강종철을 바라보았다.

“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나는 아빠 딸이 아닌 거예요? 엄마는 아빠 창업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고 이 집도 아빠 체면을 살려주겠다고 엄마가 시집올 때 가져온 예단을 다 팔아서 구한 거예요. 그런데 아빠는 그 여자랑 그 여자 딸을...”

“그 입 다물어! 너는 네 동생이랑 비교도 안 돼. 네 동생은 천재인데 너는 아무것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송찬후도 너를 버렸지. 그리고 애초에 너희 엄마는 너를 위해 돈 한 푼 받지 않고 나랑 이혼한 거야. 이제 너희 엄마는 내 전처일 뿐이야. 전처가 죽든 살든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너는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내가 너한테 너희 엄마에게 은혜를 갚을 기회를 준 거니까.”

화를 내는 강종철의 모습은 마치 비정한 악마 같았다.

강종철은 늘 강유나와 김현숙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만하면 나타나 두 사람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결국 대가를 치른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강종철 같은 위선자는 막대한 재산을 거머쥔 채 잘만 살아갔고 정작 강유나와 김현숙은 삶에 번번이 짓밟혔다.

김현숙을 떠올린 강유나는 침울한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자신을 붙잡고 있던 손들을 뿌리친 뒤 천천히 일어섰다.

“알겠어요. 문씨 가문으로 갈게요. 대신 엄마의 옥을 돌려줘요.”

미움받는 딸로서 진씨 집안에 시집가 아이를 낳는 도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강종철은 강아지의 목에 걸려 있던 옥을 거칠게 잡아 뜯어 강유나에게 던져준 뒤 위협적인 눈빛으로 말했다.

“문 대표를 잘 돌봐서 네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도록 해.”

대화가 끝난 뒤 강유나는 경호원들에게 끌려가 창고 안에 갇히게 되었다.

한동안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강유나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차지안에게 문자를 보냈다.

[선배, 혹시 문씨 가문의 문 대표님에 대해 알아요?]

조금 전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이름이 문도현이고 성격이 좋지 않으며 문씨 가문의 실권자라는 것 외에는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얼굴이 선명히 찍힌 사진조차 없었다.

한참 뒤에야 차지안에게서 답장이 왔다.

[잘 모르는데. 왜 갑자기 그 사람에 관해 묻는 거야?]

[아빠가 갑자기 그 사람 얘기를 꺼내서요.]

강유나는 자신의 일 때문에 차지안에게 피해가 갈까 봐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됐어.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 나는 피곤해서 먼저 잘게.]

[네.]

휴대폰을 내려놓았지만 잠기운은 전혀 없었다.

차지안 또한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늘 차지안은 문도현을 마주쳤다. 같은 비행기를 탔을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다.

VIP 통로에서 걸어 나오는 훤칠한 남자의 모습을 보자마자 차지안은 완벽한 외모를 가진 그 남자가 누군지를 단번에 알아봤다.

차지안이 이번에 귀국한 이유는 문성 그룹 본사에 입사하기 위해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도현을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문득 문도현을 바라보던 강유나의 눈빛이 떠올랐다.

강유나는 무엇 때문에 문도현에 관해 물었던 것일까?

휴대폰을 꽉 쥔 차지안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안함을 느꼈다.

...

문씨 가문 본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비서 서민철이 황급히 달려왔다.

“대표님, 약을 탄 사람과 현장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을 전부 데려왔습니다.”

“그래.”

입꼬리는 올라갔지만 눈빛은 서늘했다.

정원에 들어서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 다섯 명이 보였다.

그들에게로 천천히 다가간 문도현은 느릿한 움직임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고개를 젖히며 연기를 내뱉은 뒤 뻐근한 목을 움직였다.

문도현이 움직일 때마다 살짝 벌어진 셔츠 사이로 가슴팍에 남은 흔적이 언뜻언뜻 드러났다.

그리고 연기 너머의 상처 난 입술 때문에 얼굴이 더 매혹적이면서도 사악해 보였다.

다음 순간, 문도현은 입을 틀어막힌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남자와 승무원을 힐끗 보며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 막힐 것 같은 미소였다.

문도현은 리더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간 뒤 담뱃재를 툭 털었다. 그러자 담뱃불이 빨갛게 타올랐고, 문도현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남자의 이마에 담배를 가져다 댔다.

“약 타는 거 좋아하나 봐? 서 비서, 이 사람들 배에 태워 공해로 보내. 그곳에서 실컷 즐기게 해 주라고.”

겁에 질린 사람들은 황급히 고개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었다.

문도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수건을 건네받아 손을 닦았고 잡혀 온 사람들은 금방 끌려갔다.

이때 서민철이 앞으로 나서며 무언가를 건넸다.

“화장실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것들입니다.”

하나는 사원증이었고 하나는 팔찌였다.

문도현은 사원증의 사진을 바라봤다.

“차지안.”

얼굴은 꽤 예쁘장했지만 상상했던 것과는 좀 달랐다.

서민철이 말을 이어갔다.

“사람을 시켜 조사해 봤는데 집안 형편은 평범한 편이고 장학금을 받아 해외 유학을 떠났다가 졸업 후 문성 그룹 지사에 입사했고, 회사에서 평판이 꽤 좋은 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국내의 형편이 좋지 않은 어린이 한 명을 지원해 주기도 했고요. 이번 달에 지사에서 본사로 발령받았다고 합니다.”

문도현은 서민철의 얘기를 들으며 팔찌를 집어 들었다. 그 여자의 몸에서 나던 향기가 맞았다.

이렇듯 차분한 분위기를 가진 여자가 문도현과 함께 있을 때는 꽤 앙칼졌다.

문도현은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매끈한 것이 마치 여자의 등을 만졌을 때와 똑같았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손끝을 스칠 때, 땀방울이 머리카락을 따라 흘러내려 손바닥 위로 내려앉을 때, 그리고 서툴게 먼저 키스해왔을 때...

문도현은 입술에 생긴 상처를 혀로 핥은 뒤 눈을 가늘게 떴다. 눈빛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내일 데려오도록 해.”

“네.”

서민철은 시간을 확인한 뒤 말했다.

“대표님, 어르신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문도현은 고개를 끄덕인 뒤 이선혜의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무슨 일이세요?”

“도현아, 내가 무속인 선생님한테 물어봤는데 올해 너한테 액운이 껴서 목숨이 위험한 순간이 생길 수 있대. 그래서 특별히 네 사주와 잘 맞는 애를 찾아서 네 곁에 두려고 해.”

이선혜는 꽤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할머니, 저한테 결혼을 강요하고 싶으시면 차라리 다른 방법을 써보세요.”

문도현은 무심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은 뒤 대수롭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선혜는 미간을 찌푸리며 잔소리를 시작했다.

“너 올해 스물여덟이야. 그런데 결혼할 생각도 없는 데다가 연애조차 시간 낭비라면서 안 하잖아. 그래서 너를 기꺼이 돌봐주겠다는 애들을 어렵게 찾아냈어. 자주 얼굴을 보다 보면 분명히 그중에 네 마음에 드는 애가 한 명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너는 매번 요리를 못 한다거나, 청소를 못 한다는 핑계로 다 잘라버렸잖아. 귀하게 자란 명문가 딸들이 너를 위해 직접 집안일까지 하는데, 너는 별것도 아닌 이유를 갖다 붙이며 걔들을 전부 내보냈지.”

문도현은 차갑게 대꾸했다.

“월급 받으면서 일하는 사람들인데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하지 못하니 당연히 잘라야죠. 제 옆에 남겨둬서 뭐 해요?”

사실 이선혜가 보낸 여자들은 요리를 하면서 음식에 약을 타거나, 청소를 하면서 일부러 몸을 노출하곤 했다.

문도현은 그 사실을 얘기하면 이선혜가 충격을 받을까 봐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선혜는 이마를 짚었다.

“도현아, 너는 대체 어떤 여자를 원하는 거니?”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비행기에서 만났던 여자의 모습이 떠오르며 찻잔을 쥔 손에 힘이 살짝 들어갔다.

그 점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이선혜는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도현아, 나는 지난 일주일 동안 계속 악몽을 꿨어. 그리고 꿈속에 항상 너희 부모님이 나타났어. 이번만큼은 내가 마음 놓을 수 있게 해주면 안 되겠니?”

13년 전, 문씨 가문은 파산했고 문도현의 부모님은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로 이선혜는 줄곧 정신 상태가 좋지 않았다.

문도현은 할머니가 괴로워하는 걸 원치 않았기에 뜻대로 해주기로 했다.

“어느 집안 딸이에요?”

“강씨 가문이야. 내가 알아봤는데 얌전하고 참한 아이였어.”

문도현은 코웃음을 쳤다.

“참하다고요? 얼마나 참한지 제가 지켜보죠.”

잠시 대화를 나눈 뒤 이선혜는 피곤해했고 문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서 서민철이 문도현의 뒤를 따랐다.

“대표님, 강씨 가문 따님은 어떻게 할까요?”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오래 버티지 못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마침 딱 맞는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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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수로 잔 남자가 재벌이었다   제30화

    [유나야, 미안해. 전부 내 탓이야, 도와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아니에요. 선배는 이런 일까지 기꺼이 도와주려고 했잖아요. 이게 어떻게 선배 탓이에요? 하지만 우리 아빠가 선배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그러니 선배도 꼭 조심하세요.]차지안은 이제 막 귀국한 데다 문도현과의 ‘연애’도 아주 조심스러웠다.강유나는 강종철이 어떻게 차지안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하지만 강종철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극도로 위선적인 이 인간은 겉으로는 온화한 척하지만 뒤에서 무슨 짓이든 저지르는 사람이었다.그해, 강종철은 강유나의 엄마 김현숙을 빈손으로 쫓아내기 위해 직접 사람을 보내 강유나를 납치했다.강종철이 강유나의 친아빠였기 때문에 김현숙이 경찰에 아무리 신고해도 강종철은 그저 아이 엄마가 이혼 문제로 거짓 신고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자신은 그저 강유나를 휴가 보내기 위해 산으로 데려간 것뿐이라고 했다.휴양지에서 강종철이 투숙한 기록을 확인한 경찰은 오히려 김현숙을 훈계했다.사실 강유나는 산속의 버려진 오두막에 갇혀 3일 밤낮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김현숙이 빈손으로 나가겠다는 계약서에 서명한 후에야 강종철이 비로소 강유나의 위치를 알려주었다.김현숙이 도착했을 때 강유나는 산비탈에 떨어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강유나는 그날을 잊을 수 없었다. 어둠 속, 몸 아래 흙에서 스며드는 축축함과 차가운 느낌, 그리고 뱀이 몸 위로 기어가는 그 감각...강종철과 김현숙이 이혼한 다음 날, 강종철은 다른 사람들에게 김현숙이 강유나의 양육권을 위해 빈손으로 나갔다고 말했다.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차지안이 보낸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나도 별일 없을 거야, 문 대표님이 보호해 주실 거니까. 너도 걱정 마, 문씨 가문을 떠난 후에도 내가 네 일자리는 책임지고 소개해 줄게. 우리 함께 네 엄마를 구할 방법을 생각해 보자.]차지안이 여전히 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에 강유나는 눈시울이 시큰해졌다.[고마워요. 선배.]한편.차지

  • 실수로 잔 남자가 재벌이었다   제29화

    강유나는 영상을 보며 만족스러워했다.“난 정말 천재야.”감탄하며 욕실에서 뒤처리를 했다.그런데 너무 급하게 움직인 탓에 누가 일회용 잠옷이 아니랄까 봐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거울을 바라보니 가슴 쪽의 천이 아래로 쭉 찢어져 V라인이 깊게 패였다.재빨리 목욕 가운을 벗어 몸에 걸쳤다. 큰 가운을 땅에 질질 끌며 달려 나가다가 가운 허리끈에 걸려 바닥에 넘어졌다.딸깍.바로 그때 문이 열렸다.문도현이 팔에 정장을 걸친 채 안으로 들어왔다. 검은 셔츠의 단추가 절반 정도 풀려 있어 겉으로 드러난 가슴 근육이 은근히 긴장감을 자아냈다.문도현은 시선을 내려 옷이 흐트러진 채 바닥에 넘어진 강유나를 내려다보았다.그러더니 어둠 속에서 옷을 한쪽에 던져두고 무심코 담배에 불을 붙였다.연기가 피어올라 문도현의 눈빛을 가렸다. 희미한 연기 너머로 사나운 기운을 내뿜는 잘생긴 얼굴만 겨우 분간할 수 있었다.“하...”문도현이 비웃음을 내뱉었다.“강유나, 이제는 대놓고 들이대는 거야? 그렇게 급해?”“그게 아니라 전 그냥...”강유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깨물었다.한쪽에는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차지안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엄마의 목숨으로 협박하는 아빠가 있었다.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기에 혼자 묵묵히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문도현은 강유나에게 설명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담배를 든 손가락을 휘저으며 말했다.“꺼져. 여기 다시는 들어오지 마.”차가운 목소리는 마치 고요한 밤에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사람을 오싹하게 했다.강유나는 온몸을 움츠리며 바닥에 떨어진 패딩 점퍼를 집어 들고 뛰쳐나갔다.계단을 내려가던 중 움직이던 걸음이 멈칫했다.이대로 갈 수 없었다. 가면 엄마를 살릴 수 없기 때문에...주먹을 꽉 쥔 뒤 패딩 점퍼를 잘 여미고 문도현의 방으로 되돌아갔다.그러고는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렸다.“대표님, 죄송합니다. 저, 앞으로는 다시 안 그러겠습니다.”“꺼져.”강유나는 옷을 꽉 쥐며 진지하게 말했다.“아

  • 실수로 잔 남자가 재벌이었다   제28화

    문도현은 담배를 피우며 평온한 얼굴로 연기를 내뿜었다.아련히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문도현의 표정이 보였지만 차지안은 그의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그저 이를 악물며 말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사무실 사람들한테서 들은 건데... 오늘 오후에 박 대리가 강유나 씨를 괴롭혔다고 하더라고요. 강유나 씨를... 그런 쪽 여자로 생각하고 그랬다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아침에 출근할 때 박 대리가 저한테 새로 온 비서에 대해 물었어요. 그때 실수로 강유나 씨가 요리를 잘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저 보고 어디서 강유나 씨 요리를 먹었냐고 묻더라고요.”잠시 멈칫한 뒤 미안한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대표님 집에서 한 끼 먹었다고 했어요. 그런데 박 대리가 오해할 거라고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어요. 강유나 씨가 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박 대리 같이 다 큰 어른이 강유나 씨를 괴롭혔는지... 하지만 대표님께 정말 죄송해요. 제가 좀만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전담 비서 자리에 강유나 한 사람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그 자리에 어떤 여자들이 있었는지 사무실 남자들은 다 알고 있었다.박선용은 차지안의 잘못된 정보로 인해 강유나가 만만하다고 생각했기에 손을 댄 것이었다.게다가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강유나가 무슨 짓을 했는지 누가 알겠는가?차지안이 지금에서야 설명한 이유는 점심에 봤던 문도현의 그 시선 때문이었다. 이 남자는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하지만 바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곡이 찔린 모습이 문도현에게 들킬까 봐 술기운을 빌려 입을 연 것이다.취중 진담이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차지안은 문도현이 강유나를 오해하게 만들고 싶었다.눈을 가늘게 뜬 문도현은 눈빛이 조금 전보다 어두워졌다.“알았어.”차지안은 입술을 깨물며 문도현의 이 한마디를 여러 번 곱씹었다.문도현이 그녀의 말을 완전히 믿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어차피 앞으로 벌어질 일은 이 남자가 직접 목격하게 될 것이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휴..

  • 실수로 잔 남자가 재벌이었다   제27화

    강유나는 자신의 계획이 적어도 이틀 정도는 강종철을 속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강종철이 이틀도 기다리지 못하고 엄마의 약을 끊을 리가 없다고 여겼다.그때가 되면 차지안과 다른 방법을 상의할 생각이었다.어쨌든 절대로 섹시한 잠옷을 입고 문도현을 유혹하지는 않으리라 다짐했다.차지안 쪽에서 메시지를 입력하는 듯한 표시가 뜨더니 잠시 후 장문의 글이 전송되어 왔다.[유나야, 네 엄마의 목숨을 걸고 도박할 순 없어. 해외에서 그렇게 고생한 이유도 네 엄마와 다시 만나기 위해서잖아. 나를 믿는다면 내 말을 들어. 내가 문 대표님을 붙잡아 둘 테니까 너는 몰래 잠옷 입고 문 대표님 방에 가서 사진을 찍어. 네 아빠가 너와 문 대표님 사이에 뭔가 있었다고 믿게 되면 더욱 정성껏 네 엄마 병을 치료해 줄 거야.]메시지를 읽고 난 강유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차지안이 자신을 위해 이 정도까지 해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하지만 차지안이 자신에게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이런 일은 할 수 없었다.[안 돼요. 선배. 문 대표님은 선배의 남자친구잖아요. 저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이건 선배한테도 죄짓는 거예요. 선배가 저를 위해서 이러는 건 알지만 저는 선배 마음에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아요.]‘선배는 어떻게든 나를 도와주려고 이러는 거야. 급한 나머지 이런 제안을 한 거지만 나중에 냉정해지고 나면? 나를 볼 때마다 내가 섹시한 잠옷을 입고 선배의 남자친구 방에서 사진 찍은 모습이 떠오르면 어떡해?’여자라면 누구나 거슬릴 일이었다.강유나는 차지안이라는 좋은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다.그때 차지안이 또 메시지를 보내왔다.[유나야, 네 엄마 목숨이 더 중요해. 게다가 사진에는 문 대표님이 나오지도 않잖아. 나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야.]메시지는 정말 감동이었지만 강유나는 여전히 두려웠다.문도현의 사람을 삼킬 듯한 눈빛만 떠올려도 온몸이 오싹했다.‘만약 이 남자에게 들키면...’강유나가 거절하는 메시지를 타이핑하는 동안 차지안은 계속

  • 실수로 잔 남자가 재벌이었다   제26화

    투명한 봉투 안에는 검은색 레이스 속옷이 들어 있었다. 태그는 일부러 가장 위에 눈에 띄는 곳에 선명하게 붙어 있었다.바로 ‘화끈' 브랜드의 일회용 잠옷이었다.무엇에 쓰는 것인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강종철이 이런 것을 골라줄 리는 없을 터, 일부러 강유나를 불쾌하게 할 사람은 그 모녀뿐이었다.그때 강유나의 휴대폰이 다시 진동했다. 잠금을 풀고 채팅창을 열어보니 강종철이 김현숙의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다.[오늘 밤 반드시 해내야 해, 사진 찍는 거 잊지 말고!][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강유나는 분노에 몸이 떨렸다.하지만 강종철은 강유나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대신 영수증 한 장을 보내왔다.병원의 수술비용 납부 독촉장이었다.김현숙이 병원에서 제일 좋은 약을 쓰고 있다는 것이 표시되어 있었다. 각종 검사 비용을 합쳐, 단 며칠 만에 누적 비용이 2400만 위안에 달했다.최고의 시설을 갖춘 사설 병원이었기 때문에 이런 비용은 모두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하지만 강유나는 지금 600만 원도 낼 돈이 없었다.[내가 시키는 대로 해, 그럼 바로 서명하고 돈 지불할게. 네 엄마 가야금은 일부러 네 집에 가서 가져온 거야, 추억 삼아 간직해.]그야말로 병 주고 약 주고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행동이었다.가야금은 강유나에게 추억을 간직하라고 보낸 것이 아니라 엄마가 여전히 강종철의 손에 있다는 것을 수시로 일깨워 주기 위한 것이었다.휴대폰을 꽉 쥐다가 실수로 앨범을 눌렀다.해외에 있을 때 휴대폰을 바꿀 돈이 없었다. 게다가 휴대폰 용량이 너무 작아 엄마와의 사진과 어린 시절 사진 십여 장만 남겨두고 거의 다 삭제했다.그중 한 장은 그들의 세 가족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었다.강종철이 강유나의 볼에 뽀뽀를 하며 칭찬했다.“유나는 정말 우리 집 복덩이야. 오늘 너랑 가족사진 찍으러 온다고 했더니 전화 한 통으로 큰 계약이 성사됐어. 앞으로 아빠가 널 이 세상 가장 행복한 공주님으로 만들어 줄게!”어린 강유나는 사업에 대해

  • 실수로 잔 남자가 재벌이었다   제25화

    문도현은 담배 재를 털며 고개를 들어 지배인을 바라보았다.“내 말 못 들었어?”“네, 지금 바로 데려가겠습니다.”박선용은 경비원들에게 끌려 나갔다.문도현은 다시 한번 연기를 내뿜은 뒤 천천히 피어오르는 연기 너머로 경영지원실 직원들을 훑어보았다.직원들이 목을 움츠리며 고개를 숙였다.차지안조차 얼굴이 창백해졌다.강유나는 이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문도현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억눌린 분위기와 사람들의 표정으로 보아 이 남자의 손에 넘어가면 분명히 처참한 결말을 맺을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박선용은 당해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때 문도현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강유나를 흘끗 보았다. 아른거리며 피어오르는 연기 너머의 갈색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다.박선용이 경찰에 연행된 것에 기뻐하는 속내가 들켰다고 생각한 강유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였다.신발 끝만 응시하며 불안한 듯 발가락만 꼼지락거렸다.‘그런데 박 대리는 대체 누구에게 맞아서 저렇게 된 걸까?’문도현이 일어나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냉담한 시선으로 건너편의 차지안을 스치듯 본 뒤 룸 밖으로 나갔다.죄책감에 잔뜩 주눅 든 차지안은 심장이 쿵쾅거렸다.사실 차지안이 강유나의 신분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박선용에게 흘렸다.오늘 아침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박선용이 하도 절실해 보이기에 그의 속내를 알아챈 차지안은 일부러 새로 온 비서에게 화제를 돌렸다.강유나가 전담 비서라는 특수성을 암시하면 이런 ‘여미새’는 분명히 참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꼬투리 잡힐 여지는 절대 남기지 않았다.‘그런데 문 대표가 왜 그렇게 쳐다본 걸까? 혹시 나를 의심하는 걸까?’“선배? 왜 그래요? 문 대표님과 다른 분들은 다 가셨는데 얼른 출발하셔야죠.”강유나는 차지안이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얼른 다가가 귀띔해 주었다.정신을 차린 차지안은 즉시 연기 모드로 돌아갔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방금 깜짝 놀랐어요. 박 대리가 강유나 씨한테 함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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