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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잔 남자가 재벌이었다
실수로 잔 남자가 재벌이었다
作者: 이소문

제1화

作者: 이소문
강유나는 비행기에서 낯선 남자와 그런 짓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비행기가 몇 차례 심하게 흔들렸다.

강유나는 넋이 나간 상태로 휴대폰 화면에 뜬 문자를 바라봤다.

[너희 엄마가 무사하길 바란다면 지금 당장 집으로 기어들어 와.]

이혼하는 날 내연녀와 혼인신고를 한 아빠 강종철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강유나의 엄마 김현숙은 가진 것 없는 강종철과 함께 사업을 시작해 온갖 고초를 겪었고 마침내 고생 끝에 성공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파렴치한 강종철은 김현숙에게 재산 포기 조건의 이혼 합의서에 사인하라고 강요했다.

결국 김현숙은 강유나의 양육권을 위해 타협을 선택했다.

문자를 받은 이후로는 김현숙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결국 강유나는 어쩔 수 없이 강종철이 마련해 준 티켓을 챙겨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유나야, 왜 그래?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옆에 있던 선배 차지안이 강유나의 팔을 툭툭 건드렸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꺼리는 강유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 괜찮아요.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차지안이 화장품 파우치를 건네며 말했다.

“다들 자고 있으니까 이 틈에 화장도 좀 하고 와. 네 그 쓰레기 같은 아빠한테 무시당하면 안 되니까.”

강유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파우치를 받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워요, 선배.”

“참, 그리고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 아까 승무원한테서 들었는데 비즈니스석을 어떤 손님이 통째로 빌렸대.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인가 봐.”

“알겠어요.”

강유나는 조용히 화장실로 향하다가 마침 마실 것을 나눠주려고 준비하고 있던 승무원과 마주쳤다.

카트 위에 술이 있는 걸 본 강유나는 귀신에 홀린 듯 술 한 잔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술을 마시자 볼이 살짝 빨개졌다. 그러나 지친 기색이 역력한 눈빛은 감춰지지 않았다.

강유나는 숨을 한번 들이마신 뒤 화장품 파우치를 열었다.

툭.

안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그것은 차지안이 해외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 받은 사원증이었다.

차지안은 회사에서 자신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국내 본사로 발령받았다고 했다. 그것도 아주 큰 회사라고 했다.

‘나도 선배처럼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강유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숙여 사원증을 주우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취기가 올라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팔을 뻗는 순간 조명이 갑자기 꺼지고, 닫혀 있던 화장실 문이 열렸다.

어둠 속에서 뜨거운 몸뚱이 하나가 강유나를 세면대 앞으로 몰아세웠다.

“당신은... 읍.”

강유나는 눈앞의 남자에게 입을 틀어막혔다.

남자는 어둠조차 꿰뚫어 볼 것 같은 눈빛으로 오만하게 강유나를 내려다보았다.

“보상해 줄게.”

“...”

강유나가 반항할 틈도 없이 남자가 입술을 들이밀었다.

강유나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거울과 부딪히려는 순간, 남자는 강유나의 뒤통수를 감싸며 다급히 입을 맞췄다.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온기와 함께 강유나는 남자의 손가락이 길다는 것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강유나는 발버둥 치다가 실수로 세면대 위의 휴대폰을 건드렸다.

화면이 켜지며 희미한 불빛이 남자의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얼굴을 비췄다.

그러나 그 점을 눈치채지 못한 남자는 강유나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윽한 눈매를 가진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강유나가 도망치려 할수록 남자의 눈빛은 점점 더 위험해졌다.

손을 들어 남자의 가슴을 밀어내려 했지만 술기운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고 몸에도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오히려 남자를 더 자극한 듯했다.

조명이 다시 꺼지는 순간, 남자는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맹수처럼 눈앞의 사냥감을 집어삼키려 했다.

강유나는 가쁘게 숨을 쉬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그만...”

남자는 강유나를 들어 올려 세면대 위에 앉히더니 잠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끌어안아.”

“아파...”

강유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대면서 남자의 입술을 깨물었다.

남자는 낮게 신음했다. 아파서가 아니라 조금 전 강유나의 행동에 스위치라도 눌린 듯 온몸의 피가 한곳으로 몰리며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기 때문이다.

“키스할 줄 몰라?”

“...”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던 강유나는 어렴풋이 남자의 나지막한 웃음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다음 순간, 입술이 잡아먹히며 몸이 살짝 들어 올려졌다.

강유나는 꿈을 꾸는 듯 몽롱한 가운데 온몸이 녹초가 된 것 같았지만, 눈앞의 남자는 지칠 줄 몰랐다.

남자의 팽팽하게 긴장된 근육 위로 땀방울이 맺혔고 두 사람의 숨결이 한데 뒤섞였다. 남자는 마치 강유나와 한 몸이 되려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때 비행기 안내 방송이 들렸다.

“승객 여러분, 비행기가 곧 착륙할 예정입니다. 좌석으로 돌아가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신이 번쩍 든 강유나는 긴장 때문에 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 눈앞의 남자가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긴장 풀어.”

그 말에 강유나는 화들짝 놀라 완전히 굳어버렸다.

남자가 다시 자신을 끌어안으려고 하자 강유나는 힘주어 남자를 밀어낸 뒤 허겁지겁 파우치를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때 이코노미석 승객들은 모두 짐을 정리하고 있었기에 강유나의 흐트러진 모습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유나는 급히 치마를 정리한 뒤 자리로 돌아갔다.

가방을 챙기려고 자리에서 일어난 차지안은 얼굴이 새빨개진 강유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유나야, 괜찮아? 목이 왜 이렇게 빨개?”

강유나는 재빨리 목을 가리며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까 긁어서 그런가 봐요. 얼른 물건 챙겨요.”

조금 전 모르는 남자와 화장실 안에서 그런 짓을 했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차지안은 별다른 의심 없이 강유나에게서 파우치를 건네받았다.

“어라, 내 사원증은?”

강유나는 흠칫했다. 그제야 화장실에 사원증을 떨어뜨렸던 게 떠올랐다.

결국 강유나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제, 제가 가서 찾아볼게요.”

차지안이 그런 강유나를 붙잡았다.

“괜찮아. 어차피 회사에 도착하면 새로 발급받아야 했어. 어차피 예전 거라 남겨둬도 쓸모없으니까 그냥 가자.”

“알겠어요.”

강유나는 죄책감이 든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짐을 챙기다가 뒤늦게 김현숙이 줬던 액막이 팔찌가 사라진 걸 발견하고는 황급히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가며 말했다.

“선배, 선배는 먼저 가요. 저 물건을 잃어버려서 한 번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선배 사원증도 같이 찾아볼게요.”

“뭘 잃어버렸는데...”

차지안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강유나는 사라졌다. 결국 차지안은 하는 수 없이 먼저 비행기에서 내렸다.

강유나는 화장실을 쭉 둘러봤지만 사원증도, 팔찌도 없었다. 좀 전의 일이 꿈은 아닐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래. 그냥 꿈꿨던 셈 치자.’

넋이 반쯤 나간 채로 공항에서 나온 강유나는 차지안이 어느 한 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멀어져가는 게 보였다. 그 사람의 차가운 분위기는 공항을 오가는 사람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선배, 혹시 아는 사람이에요?”

차지안은 강유나의 시선을 알아차리자마자 강유나의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보지 마. 모르는 사람이야. 차 왔으니까 얼른 가자.”

...

한 시간 뒤, 강유나는 강씨 가문 앞에 서서 안쪽의 정교하게 꾸며진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아주 오래전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강유나는 강종철의 어깨에 올라타 김현숙이 키우던 과일나무의 열매를 따곤 했다.

그러나 그 이후 강종철은 외도가 들통나자 김현숙을 대놓고 싫어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강유나마저 미워했다.

욕설을 퍼붓는 건 물론이고 심할 때는 손찌검까지 했다.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던 두 사람이 어쩌다 그렇게 변해버린 건지 강유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가정부가 문을 열었다.

“오셨어요? 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네.”

강유나는 가정부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정원에는 이제 과일나무 대신 강종철의 내연녀가 좋아하는 꽃들이 가득했다.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거실로 들어서자 강종철이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강유나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동안 네 엄마의 궁상맞은 모습만 보고 자랐나 보구나. 그러니 해외에서 3년이나 살고도 달라진 게 하나 없지.”

5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지만 안부를 묻기는커녕 만나자마자 악의 가득한 말들부터 내뱉었다.

창업 초기에 자신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 가며 돈을 아껴준 사람이 누군지 다 잊은 듯한 모습이었다.

강유나는 주먹을 꽉 쥐며 반박했다.

“그렇게 인심이 후하시면 지난 10년 동안 지급하지 않은 제 양육비부터 정산해 주시죠.”

“너! 감히 나한테 그딴 말을 해? 지금 나한테 반항하겠다는 거냐?”

강종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강유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더니 이내 차갑게 웃었다.

곧이어 문밖에서 방울 소리가 들리며 새하얀 반려견 한 마리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건 그 여자가 키우는 강아지였다.

강아지를 본 강유나는 그 강아지의 목에 걸려 있는 옥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건 김현숙의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액막이용 옥이었다.

아주 비싼 옥은 아니어도 제법 오래된 물건이었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직접 엄마의 목에 걸어준 것이라 의미 있는 물건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든 시기여도 강유나와 김현숙은 그 옥을 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 옥이 강아지의 목에 걸려 있었다.

강종철은 그 소리를 듣더니 일부러 강유나의 앞에서 강아지를 불렀다.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달려가 강종철 주변을 맴돌았고, 목에 걸린 옥도 함께 흔들렸다.

온몸을 휘감는 굴욕감에 강유나는 화가 난 얼굴로 강아지를 향해 달려들려고 했다. 그런데 뒤에 있던 경호원들이 강유나를 붙잡아 차가운 바닥에 억지로 무릎 꿇렸다.

강유나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이거 놔요! 우리 엄마는요? 우리 엄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강종철은 강유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희 엄마는 과로로 쓰러졌어. 검사해 보니까 간과 신장에 이상이 있대. 그래서 내가 치료받을 수 있게 병원으로 보냈어. 너희 엄마가 무사히 퇴원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한테 달려있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진씨 가문의 며느리가 되든지, 문씨 가문으로 가서 문 대표를 돌보든지 해.”

강종철이 두 가지 선택지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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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수로 잔 남자가 재벌이었다   제30화

    [유나야, 미안해. 전부 내 탓이야, 도와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아니에요. 선배는 이런 일까지 기꺼이 도와주려고 했잖아요. 이게 어떻게 선배 탓이에요? 하지만 우리 아빠가 선배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그러니 선배도 꼭 조심하세요.]차지안은 이제 막 귀국한 데다 문도현과의 ‘연애’도 아주 조심스러웠다.강유나는 강종철이 어떻게 차지안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하지만 강종철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극도로 위선적인 이 인간은 겉으로는 온화한 척하지만 뒤에서 무슨 짓이든 저지르는 사람이었다.그해, 강종철은 강유나의 엄마 김현숙을 빈손으로 쫓아내기 위해 직접 사람을 보내 강유나를 납치했다.강종철이 강유나의 친아빠였기 때문에 김현숙이 경찰에 아무리 신고해도 강종철은 그저 아이 엄마가 이혼 문제로 거짓 신고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자신은 그저 강유나를 휴가 보내기 위해 산으로 데려간 것뿐이라고 했다.휴양지에서 강종철이 투숙한 기록을 확인한 경찰은 오히려 김현숙을 훈계했다.사실 강유나는 산속의 버려진 오두막에 갇혀 3일 밤낮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김현숙이 빈손으로 나가겠다는 계약서에 서명한 후에야 강종철이 비로소 강유나의 위치를 알려주었다.김현숙이 도착했을 때 강유나는 산비탈에 떨어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강유나는 그날을 잊을 수 없었다. 어둠 속, 몸 아래 흙에서 스며드는 축축함과 차가운 느낌, 그리고 뱀이 몸 위로 기어가는 그 감각...강종철과 김현숙이 이혼한 다음 날, 강종철은 다른 사람들에게 김현숙이 강유나의 양육권을 위해 빈손으로 나갔다고 말했다.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차지안이 보낸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나도 별일 없을 거야, 문 대표님이 보호해 주실 거니까. 너도 걱정 마, 문씨 가문을 떠난 후에도 내가 네 일자리는 책임지고 소개해 줄게. 우리 함께 네 엄마를 구할 방법을 생각해 보자.]차지안이 여전히 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에 강유나는 눈시울이 시큰해졌다.[고마워요. 선배.]한편.차지

  • 실수로 잔 남자가 재벌이었다   제29화

    강유나는 영상을 보며 만족스러워했다.“난 정말 천재야.”감탄하며 욕실에서 뒤처리를 했다.그런데 너무 급하게 움직인 탓에 누가 일회용 잠옷이 아니랄까 봐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거울을 바라보니 가슴 쪽의 천이 아래로 쭉 찢어져 V라인이 깊게 패였다.재빨리 목욕 가운을 벗어 몸에 걸쳤다. 큰 가운을 땅에 질질 끌며 달려 나가다가 가운 허리끈에 걸려 바닥에 넘어졌다.딸깍.바로 그때 문이 열렸다.문도현이 팔에 정장을 걸친 채 안으로 들어왔다. 검은 셔츠의 단추가 절반 정도 풀려 있어 겉으로 드러난 가슴 근육이 은근히 긴장감을 자아냈다.문도현은 시선을 내려 옷이 흐트러진 채 바닥에 넘어진 강유나를 내려다보았다.그러더니 어둠 속에서 옷을 한쪽에 던져두고 무심코 담배에 불을 붙였다.연기가 피어올라 문도현의 눈빛을 가렸다. 희미한 연기 너머로 사나운 기운을 내뿜는 잘생긴 얼굴만 겨우 분간할 수 있었다.“하...”문도현이 비웃음을 내뱉었다.“강유나, 이제는 대놓고 들이대는 거야? 그렇게 급해?”“그게 아니라 전 그냥...”강유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깨물었다.한쪽에는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차지안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엄마의 목숨으로 협박하는 아빠가 있었다.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기에 혼자 묵묵히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문도현은 강유나에게 설명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담배를 든 손가락을 휘저으며 말했다.“꺼져. 여기 다시는 들어오지 마.”차가운 목소리는 마치 고요한 밤에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사람을 오싹하게 했다.강유나는 온몸을 움츠리며 바닥에 떨어진 패딩 점퍼를 집어 들고 뛰쳐나갔다.계단을 내려가던 중 움직이던 걸음이 멈칫했다.이대로 갈 수 없었다. 가면 엄마를 살릴 수 없기 때문에...주먹을 꽉 쥔 뒤 패딩 점퍼를 잘 여미고 문도현의 방으로 되돌아갔다.그러고는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렸다.“대표님, 죄송합니다. 저, 앞으로는 다시 안 그러겠습니다.”“꺼져.”강유나는 옷을 꽉 쥐며 진지하게 말했다.“아

  • 실수로 잔 남자가 재벌이었다   제28화

    문도현은 담배를 피우며 평온한 얼굴로 연기를 내뿜었다.아련히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문도현의 표정이 보였지만 차지안은 그의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그저 이를 악물며 말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사무실 사람들한테서 들은 건데... 오늘 오후에 박 대리가 강유나 씨를 괴롭혔다고 하더라고요. 강유나 씨를... 그런 쪽 여자로 생각하고 그랬다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아침에 출근할 때 박 대리가 저한테 새로 온 비서에 대해 물었어요. 그때 실수로 강유나 씨가 요리를 잘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저 보고 어디서 강유나 씨 요리를 먹었냐고 묻더라고요.”잠시 멈칫한 뒤 미안한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대표님 집에서 한 끼 먹었다고 했어요. 그런데 박 대리가 오해할 거라고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어요. 강유나 씨가 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박 대리 같이 다 큰 어른이 강유나 씨를 괴롭혔는지... 하지만 대표님께 정말 죄송해요. 제가 좀만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전담 비서 자리에 강유나 한 사람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그 자리에 어떤 여자들이 있었는지 사무실 남자들은 다 알고 있었다.박선용은 차지안의 잘못된 정보로 인해 강유나가 만만하다고 생각했기에 손을 댄 것이었다.게다가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강유나가 무슨 짓을 했는지 누가 알겠는가?차지안이 지금에서야 설명한 이유는 점심에 봤던 문도현의 그 시선 때문이었다. 이 남자는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하지만 바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곡이 찔린 모습이 문도현에게 들킬까 봐 술기운을 빌려 입을 연 것이다.취중 진담이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차지안은 문도현이 강유나를 오해하게 만들고 싶었다.눈을 가늘게 뜬 문도현은 눈빛이 조금 전보다 어두워졌다.“알았어.”차지안은 입술을 깨물며 문도현의 이 한마디를 여러 번 곱씹었다.문도현이 그녀의 말을 완전히 믿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어차피 앞으로 벌어질 일은 이 남자가 직접 목격하게 될 것이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휴..

  • 실수로 잔 남자가 재벌이었다   제27화

    강유나는 자신의 계획이 적어도 이틀 정도는 강종철을 속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강종철이 이틀도 기다리지 못하고 엄마의 약을 끊을 리가 없다고 여겼다.그때가 되면 차지안과 다른 방법을 상의할 생각이었다.어쨌든 절대로 섹시한 잠옷을 입고 문도현을 유혹하지는 않으리라 다짐했다.차지안 쪽에서 메시지를 입력하는 듯한 표시가 뜨더니 잠시 후 장문의 글이 전송되어 왔다.[유나야, 네 엄마의 목숨을 걸고 도박할 순 없어. 해외에서 그렇게 고생한 이유도 네 엄마와 다시 만나기 위해서잖아. 나를 믿는다면 내 말을 들어. 내가 문 대표님을 붙잡아 둘 테니까 너는 몰래 잠옷 입고 문 대표님 방에 가서 사진을 찍어. 네 아빠가 너와 문 대표님 사이에 뭔가 있었다고 믿게 되면 더욱 정성껏 네 엄마 병을 치료해 줄 거야.]메시지를 읽고 난 강유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차지안이 자신을 위해 이 정도까지 해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하지만 차지안이 자신에게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이런 일은 할 수 없었다.[안 돼요. 선배. 문 대표님은 선배의 남자친구잖아요. 저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이건 선배한테도 죄짓는 거예요. 선배가 저를 위해서 이러는 건 알지만 저는 선배 마음에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아요.]‘선배는 어떻게든 나를 도와주려고 이러는 거야. 급한 나머지 이런 제안을 한 거지만 나중에 냉정해지고 나면? 나를 볼 때마다 내가 섹시한 잠옷을 입고 선배의 남자친구 방에서 사진 찍은 모습이 떠오르면 어떡해?’여자라면 누구나 거슬릴 일이었다.강유나는 차지안이라는 좋은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다.그때 차지안이 또 메시지를 보내왔다.[유나야, 네 엄마 목숨이 더 중요해. 게다가 사진에는 문 대표님이 나오지도 않잖아. 나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야.]메시지는 정말 감동이었지만 강유나는 여전히 두려웠다.문도현의 사람을 삼킬 듯한 눈빛만 떠올려도 온몸이 오싹했다.‘만약 이 남자에게 들키면...’강유나가 거절하는 메시지를 타이핑하는 동안 차지안은 계속

  • 실수로 잔 남자가 재벌이었다   제26화

    투명한 봉투 안에는 검은색 레이스 속옷이 들어 있었다. 태그는 일부러 가장 위에 눈에 띄는 곳에 선명하게 붙어 있었다.바로 ‘화끈' 브랜드의 일회용 잠옷이었다.무엇에 쓰는 것인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강종철이 이런 것을 골라줄 리는 없을 터, 일부러 강유나를 불쾌하게 할 사람은 그 모녀뿐이었다.그때 강유나의 휴대폰이 다시 진동했다. 잠금을 풀고 채팅창을 열어보니 강종철이 김현숙의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다.[오늘 밤 반드시 해내야 해, 사진 찍는 거 잊지 말고!][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강유나는 분노에 몸이 떨렸다.하지만 강종철은 강유나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대신 영수증 한 장을 보내왔다.병원의 수술비용 납부 독촉장이었다.김현숙이 병원에서 제일 좋은 약을 쓰고 있다는 것이 표시되어 있었다. 각종 검사 비용을 합쳐, 단 며칠 만에 누적 비용이 2400만 위안에 달했다.최고의 시설을 갖춘 사설 병원이었기 때문에 이런 비용은 모두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하지만 강유나는 지금 600만 원도 낼 돈이 없었다.[내가 시키는 대로 해, 그럼 바로 서명하고 돈 지불할게. 네 엄마 가야금은 일부러 네 집에 가서 가져온 거야, 추억 삼아 간직해.]그야말로 병 주고 약 주고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행동이었다.가야금은 강유나에게 추억을 간직하라고 보낸 것이 아니라 엄마가 여전히 강종철의 손에 있다는 것을 수시로 일깨워 주기 위한 것이었다.휴대폰을 꽉 쥐다가 실수로 앨범을 눌렀다.해외에 있을 때 휴대폰을 바꿀 돈이 없었다. 게다가 휴대폰 용량이 너무 작아 엄마와의 사진과 어린 시절 사진 십여 장만 남겨두고 거의 다 삭제했다.그중 한 장은 그들의 세 가족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었다.강종철이 강유나의 볼에 뽀뽀를 하며 칭찬했다.“유나는 정말 우리 집 복덩이야. 오늘 너랑 가족사진 찍으러 온다고 했더니 전화 한 통으로 큰 계약이 성사됐어. 앞으로 아빠가 널 이 세상 가장 행복한 공주님으로 만들어 줄게!”어린 강유나는 사업에 대해

  • 실수로 잔 남자가 재벌이었다   제25화

    문도현은 담배 재를 털며 고개를 들어 지배인을 바라보았다.“내 말 못 들었어?”“네, 지금 바로 데려가겠습니다.”박선용은 경비원들에게 끌려 나갔다.문도현은 다시 한번 연기를 내뿜은 뒤 천천히 피어오르는 연기 너머로 경영지원실 직원들을 훑어보았다.직원들이 목을 움츠리며 고개를 숙였다.차지안조차 얼굴이 창백해졌다.강유나는 이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문도현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억눌린 분위기와 사람들의 표정으로 보아 이 남자의 손에 넘어가면 분명히 처참한 결말을 맺을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박선용은 당해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때 문도현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강유나를 흘끗 보았다. 아른거리며 피어오르는 연기 너머의 갈색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다.박선용이 경찰에 연행된 것에 기뻐하는 속내가 들켰다고 생각한 강유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였다.신발 끝만 응시하며 불안한 듯 발가락만 꼼지락거렸다.‘그런데 박 대리는 대체 누구에게 맞아서 저렇게 된 걸까?’문도현이 일어나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냉담한 시선으로 건너편의 차지안을 스치듯 본 뒤 룸 밖으로 나갔다.죄책감에 잔뜩 주눅 든 차지안은 심장이 쿵쾅거렸다.사실 차지안이 강유나의 신분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박선용에게 흘렸다.오늘 아침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박선용이 하도 절실해 보이기에 그의 속내를 알아챈 차지안은 일부러 새로 온 비서에게 화제를 돌렸다.강유나가 전담 비서라는 특수성을 암시하면 이런 ‘여미새’는 분명히 참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꼬투리 잡힐 여지는 절대 남기지 않았다.‘그런데 문 대표가 왜 그렇게 쳐다본 걸까? 혹시 나를 의심하는 걸까?’“선배? 왜 그래요? 문 대표님과 다른 분들은 다 가셨는데 얼른 출발하셔야죠.”강유나는 차지안이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얼른 다가가 귀띔해 주었다.정신을 차린 차지안은 즉시 연기 모드로 돌아갔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방금 깜짝 놀랐어요. 박 대리가 강유나 씨한테 함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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