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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втор: 찹쌀몽
하루아침에 남편이라는 존재가 생겨버린 탓인지, 나는 아무리 침대에 누워있어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가장 친한 친구 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나는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다. 내가 크게 다쳤다는 걸 알면, 걱정할 게 뻔하니까. 그래서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지안이도 그동안 나에게 연락을 해 오지 않았다.

그 덕분에 나는 내 상태를 숨길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전화를 걸어 연결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억울함이 밀려왔다.

“야, 내가 연락 안 하면, 너는 나한테 평생 연락 안 할 작정이야?”

두 달이 넘도록 단 한 통의 전화도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문자 한 통, 카톡 하나조차 없었으니, 나도 진짜 배신감이 들었다.

나는 지안이 어딘가 산속 연구소에서 연구하느라 연락이 안 됐다든가, 핸드폰이 고장 나서 연락을 못 했다든가, 그런 급한 해명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한동안 침묵하더니...

[고이설, 우리 절교한 거, 잊었어?]

‘뭐?’

나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무슨 소리야?’

아까 내게 남편이 있다는 소식보다 더 황당하고 충격젹이었다.

지안,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심지어 내 목숨을 버릴지언정, 절대 잃을 수 없는 친구였다.

그런 우리가 절교라니?

“우리가 절교했다고?”

나는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지안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우린 절교했어. 심사언 때문이지.]

‘심사언?’

이 이름이 나오는 순간, 내 온몸이 본능적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지안은 계속 여러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나한테 알려주었다.

[네 결혼이 애정 없는 사업적 결혼이라고? 아니, 전혀 아니야. 넌 심사언을 목숨처럼 사랑했어.]

[그리고 심사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고, 아무런 자존심도 없었어. 연애 감성 끝판왕? 그딴 말로도 설명이 안 돼.]

[심지어 심사언이 네 동생 소아연을 사랑하고,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 남자가 네 재산에 대한 권리를 빼앗기 위해 너랑 결혼하겠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매달렸지.]

[심사언이 널 얼마나 무시했는지 기억 안 나? 네가 죽든 말든, 네가 피투성이가 되든 말든, 상관도 안 했잖아.]

[그럼에도 넌 심사언을 붙잡으려고 스스로를 망가뜨렸어. 자해까지 해가면서 심사언을 잡으려고 했다고.]

[그 덕분에, 넌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한심한 존재가 됐어. 이 바닥에서 너를 어떻게 부르는지 알아? ‘심사언이 버린 여자’래.]

[그리고 오늘은 또 어떤 방법으로 버림받지 않으려고 매달릴까? 사람들은 매일 돈 걸고 내기까지 했어.]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넌 끝까지 심사언을 붙잡았어. 너는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았어.]

[결국 넌 그 쓰레기 같은 남자를 위해서, 나 같은 가장 친한 친구까지 버렸어. 그래서 나도 한심한 너를 포기하기로 한 거야.]

나는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게... 다 내가 한 행동이 맞다고?”

‘내가 그런 미친 짓을 했다고?’

“아무리 그래도, 난 사랑 때문에 친구를 버릴 사람이 아니야.”

그런데 지안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아니, 넌 날 버렸어. 넌 내 말을 하나도 듣지 않았다고. 내가 아무리 널 말려도, 네 눈에는 심사언밖에 안 보였으니까.]

[그러니까, 다시는 전화하지 마. 네 목소리 듣기도 싫고, 네가 심사언이랑 엮인 이야기조차 듣기 싫어.]

[이제 와서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건 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그러니까 나한테 연락하지 마.]

지안은 비록 말은 차갑게 했지만, 전화를 끊기 직전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근데 나한테 왜 전화한 거야? 혹시 도움이 필요한 거야? 그래도 한때의 정이 있으니, 한 번은 도와줄 수도 있어.]

“아니야. 아무 일도 없어. 그래도 고맙다, 친구야.”

뚝-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멍하니 핸드폰을 쥔 채 가만히 있었다.

지안이 내게 그런 말을 할 정도라면, 정말로 완전히 지쳐버렸다는 뜻이었다.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지안의 말이 전부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지안이 나를 완전히 포기할 정도라면, 정말로 내가 그 친구를 실망시킬 만한 짓을 했을 테니까.

그럼에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절대 그런 바보 같은 사랑을 할 사람이 아니다.

절대로.

그런데, 만약 지안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정말로 그런 사랑을 했던 걸까?

자존심도 없이, 그렇게 미친 듯이 심사언에게 매달렸던 걸까?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지만, 이제는 더더욱 잠에 들 수 없었다.

...

나는 또다시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한 달 넘게 받은 후 겨우 퇴원을 허락받았다.

퇴원하는 날, 오빠가 나를 데리러 왔다.

“우리 가족이 한 번도 병문안 안 왔다고 서운해하진 마.”

“너도 알잖아. 아연이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어. 그날 충격받은 데다 감기까지 걸려서, 밤마다 악몽까지 꾸더라고.”

“부모님도 도저히 자리를 비울 수 없었어.”

“그리고 나는 이제 막 회사를 맡았잖아. 너도 알겠지만, 회사 내부에 반발하는 주주들이 꽤 많거든.”

“하루하루 개처럼 바쁘게 살았어... 정말 시간 내서 오고 싶었는데...”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응, 알아. 오빠, 고생 많았어.”

나는 그냥 오빠의 말을 받아준 것뿐이었다.

단 조금도 서운한 기색 없이.

그런데 오빠의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그러고는 이유 없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너, 기분 나쁘면 그냥 말해. 왜 그렇게 비꼬듯이 말해?”

‘비꼬다니? 도대체 내가 언제?’

오빠는 날 노려보며, 목소리를 더욱 날카롭게 높였다.

“네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가족 중 누구도 널 찾아오지 않았어. 그런데 정말 너한테 잘못이 없다고 생각해?”

“넌 한 번이라도 네 잘못을 돌아본 적 있어?”

“아무리 생각해도, 너처럼 유별난 애는 처음 본다.”

“이딴 가벼운 상처로 병원에 석 달이나 틀어박혀 있다니, 왜 그렇게 유난을 떠는 거야?”

“그러니까 부모님도 아연이를 더 좋아하는 거야. 네가 아니라, 아연이가 내 친동생이었으면 싶은 정도라고.”

“그런 성격 안 고치면, 넌 평생 누구한테도 사랑 못 받아!”

그렇게 화난 목소리로 나를 몰아붙였다.

나는 진심으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진짜 웃기네. 벌써 완전히 잊은 거야?’

‘어릴 때부터 내가 병원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나는 아무리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는 게 죽기보다 싫어서, 오빠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날 달래야 했다고...’

나는 가능하면 단 1분 1초도 병원에 있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무려 석 달이나 병원에 있었는데, 오빠는 내가 일부러 병원에서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다.

“오빠, 내가 정말로 멀쩡했다면, 대체 왜 병원에 석 달씩이나 있었겠어?”

그럼에도, 오빠는 자신이 가장 힘들었다는 듯 나에게 더 큰 목소리로 따졌다.

“넌 병원에서 편하게 누워 있었지만, 나는 회사 일에 치여 정신도 못 차렸다고!”

“회사 일은 물론이고, 부모님까지 나한테 기대고 있단 말이야!”

“도대체 네가 뭘 알아?”

“...”

그렇게 한참을 나를 원망한 후, 오빠는 피곤한 듯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조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어쩌겠냐. 난 네 오빠인데.”

“네 성격이 그 모양이라도, 내가 끝까지 감당해야지.”

“생각해 봐, 어릴 때 오빠가 널 얼마나 예뻐했는지. 이 세상에서 너한테 이렇게 잘해 줄 사람은 나밖에 없어.”

“...”

나는 가만히 오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릴 적 기억이 스쳐 지나가면서 가슴 한쪽이 찌르듯이 아려왔다.

한때, 오빠는 그 누구보다도 나에게 정말 잘해줬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부모님이 부모를 잃은 소아연을 입양한 후 완전히 달라졌다.

그 이후로, 모든 것이 변했다.

...

병원에서 막 퇴원했지만 내 몸은 아직도 많이 허약했다.

차에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피로가 몰려와 금방 잠들어 버렸다.

오빠가 나를 흔들어 깨웠을 때,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그리고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오빠의 조급한 재촉에 정신을 차렸다.

“오빠, 여긴...”

‘내가 살던 곳이 아닌데?’

나는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빠는 거칠게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내려, 넌 벌써 석 달 넘게 숨어 있었잖아. 이제 아연이한테 사과할 때도 됐어!”

‘아, 그래서 바쁜 와중에도 굳이 날 데리러 온 거구나.’

‘처음부터 나를 위한 게 아니었어.’

‘그런데도 날 위해 왔다는 식으로 포장하다니, 정말 애쓰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오빠는 바로 말을 덧붙였다.

“너랑 아연이가 같이 납치되는 바람에, 그 아이가 감기에 걸려서 한동안 고생한 걸 잊은 건 아니겠지?”

“이 정도 사과는 꼭 해야 해.”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비록 일부의 기억이 사라졌지만, 납치 당시 소아연과 납치범의 기묘한 분위기만큼은 잊지 않았다.

아직 밝혀야 할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내 몸이 아직 제대로 회복되지 않아, 가벼운 손길에도 심한 통증이 따라왔다. 억지로 끌려가고 싶지 않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결국 저항할 수 없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바 VIP 룸이었다.

내부는 이미 완전히 무르익은 분위기였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한 남자와 한 여자를 가운데 세워 두고, 흔들며 부추기고 있었다.

“한 번만 해줘!”

“키스! 키스! 키스!”

그 분위기, 그 느낌.

왠지 나도 덩달아 분위기에 휩쓸려 버렸다.

“맞아, 맞아! 한 번 해줘야지!”

나는 장난스럽게 손뼉을 치며, 더 크게 외쳤다.

그런데 내 목소리가 너무 컸던 걸까?

한순간, VIP 룸 안이 완전히 정적에 휩싸였다.

모두가 일제히 나를 바라봤다.

‘뭐지?’

그 시선들이 순간적으로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억지로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날 왜 그런 눈으로 봐?”

“계속해! 나도 너희랑 같은 마음으로 응원한단 말이야!”

“둘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나는 시선을 돌려, 그 무리의 한가운데 서 있는 ‘남자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바로 내 법적 남편인 심사언이었다.

나는 심사언을 향해 옅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당신은 하던 일이나 계속해. 나도 두 사람을 축복하러 온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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