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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작가: 찹쌀몽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는 한 달 동안, 나는 가만히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나와 ‘내 법적’인 남편, 그리고 소아연 사이의 관계를 샅샅이 조사했다.

나는 심사언과 연애 끝에 결혼했고, 줄곧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믿어왔다.

그리고 심사언을 위해 가진 것을 다 쏟아부으며 창업을 도왔고, 남편의 건강을 더 잘 돌보겠다는 이유로 학업까지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런데 심사언은 날 진심으로 사랑한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했을 뿐이었다. 그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내 의붓동생, 소아연이었다.

소아연이 돌아온 뒤, 심사언은 우리 결혼기념일에 그녀와 함께 북극으로 오로라를 보러 갔고, 내 생일에는 그녀와 함께 D국으로 가서 낭만적인 벚꽃비를 맞았다.

심사언은 발런타인데이에 소아연에게 장미꽃이 가득한 저택과 비싼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면서, 내게는 생색내며 그녀의 선물 살 때 받은 사은품을 던져줬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늘 하는 말은, ‘헛소리하지 마’였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나는 여전히 사랑에 눈이 멀어, 이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심지어 속이 다 문드러지면서도 여전히 남편을 위해 애쓰고, 차를 따라 주고, 물을 떠다 주고, 온갖 시중을 다 들면서, 그저 이 결혼을 지키려 했다.

결국 이번 납치도, 심사언을 해치려는 적들에게 내가 대신 붙잡힌 것이었다.

나는 남편을 지키려 목숨까지 내던졌지만, 그는 소아연을 위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날 죽음으로 내몰았다.

간신히 목숨을 건져서 돌아왔는데도, 심사언이 한 말은 ‘아연이에게 사과해’였다.

그는 진짜 인간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철저한 쓰레기였다.

그런 사람을 목숨 바쳐 사랑하던 어리석은 예전의 나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한 남자를 위해 바닥까지 기고, 목숨과 존엄성마저 내팽개쳤다니...’

‘하지만 이제 와서 내가 저지른 바보 같은 짓을 후회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

‘이제 저 걸레 같은 놈은 내다 버려야지.’

‘두 사람, 하나는 천하의 개쓰레기이고, 하나는 천하의 꽃뱀인 거야...’

‘진정 하늘이 내린 천생연분이니까 부디 영원히 함께해라.’

심사언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고이설, 또 헛소리야? 스스로 반성하라고 말한 지 석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감히 그딴소리를 내뱉다니!”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새삼 깨달았다.

한 남자를 위해 모든 걸 바치고, 죽을 뻔하기도 했는데, 돌아온 게 고작 이런 대접이라니.

‘내가 아직도 반성할 줄 모른다고?’

“반성은 다 했어. 그러니까 직접 축하해 주려고 온 거잖아?”

그 순간, 심사언의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었다. 조금 전까지의 다정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사랑과 무관심이 이토록 극명하게 대비되다니. 인제 그만 이 사람들을 놓아주자.’

이상하게도, 내가 심사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지금 당장 이 쓰레기 같은 남자를 버리고 싶을 뿐이었는데, 그 싸늘한 눈빛과 마주친 순간, 가슴이 또다시 아려왔다.

“언니, 제발 오해하지 마세요. 나랑 사언 오빠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방금은 그냥... 진실게임에서 진 거예요. 그냥 장난이라고요...!”

바람에 날아갈 듯 연약해 보이는 여자가 다급하면서도 나약한 모습으로 내게 달려들었다.

그 다급한 표정은 마치 내가 진짜 둘 사이를 오해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소아연이 내게 닿기 직전,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틀어 피했다.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나는 내 몸속에 있는 철판이랑 나사로 지탱하며 겨우 버티고 있다고.’

‘퇴원할 때, 병원에서도 신신당부했잖아. 완전히 회복되기 전까진 조심 또 조심하라고. 뼈를 한 번 더 다치면, 그땐 정말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소아연, 지금 유리보다도 약해진 나를, 네가 그 ‘여리여리한’ 몸으로 들이받겠다고?’

입원하는 동안, 내 부모도, 오빠도, 남편도 한 번도 병문안을 오지 않았지만, 이 의붓동생만큼은 자주 찾아왔다.

즉, 내가 어떤 상태인지 소아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언니, 내가 그렇게 싫어요?”

허공을 향해 던져진 소아연이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그리고 그 순간,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당장이라도 눈에서 뚝 떨어질 듯한 그 눈물은, 사람 마음을 애타게 했다.

‘아주 완벽한 연출이야.’

‘눈물 연기 하나는 기가 막히네.’

내 남편 심사언은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여자가 눈물을 흘리는 걸 보자, 원래부터 차갑던 얼굴빛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고이설, 오늘 아연이한테 사과하러 온 게 아니라면, 당장 나가! 그리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남자의 목소리는 서릿발처럼 차가웠다. 상위 포식자로서 살아온 자의 아우라가 단순한 말 한마디에 숨이 턱 막히는 압박감을 더했다.

‘이게 무슨 꿀 같은 소리야?’

‘사과 안 해도 되고, 앞으로 이 더러운 인간들을 안 봐도 된다고?’

고개를 들고,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와, 어쩜 이렇게 공교롭지? 마침 나도 사과하러 온 게 아니었거든. 그럼 난 간다.”

‘완벽해! 고이설, 잘했어!’

말을 끝내자마자 나는 바로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온 방이 순식간에 시체 안치실처럼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아쉬운 게 있다면, 딱 한 걸음을 내디딘 순간, 팔을 거칠게 움켜쥐는 손길이 나를 붙잡았다는 것이었다.

그 강한 힘에, 내 뼛속까지 파고드는 통증이 퍼졌다.

그리고 순간,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 씨... 이거 진짜 아프다고!’

“고이설, 지금 당신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

“아무리 그래도 정도를 알아야지!”

석 달 넘게 지속된 나의 ‘행패’에, 그리고 점점 더 도를 넘는 나의 태도에, 심사언의 말에는 본능적으로 짜증이 묻어났다.

나는 그런 심사언을 가만히 바라봤다.

‘아니, 내가 이 정도까지 말했는데도, 이 인간은 여전히 내가 떼쓴다고 생각하는 거야?'

‘진짜 머리가 나쁜 거야, 아니면 머리가 제대로 고장 난 거야?'

“그래? 내가 지금 그냥 떼쓰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 한번 볼래?”

“뭘?”

심사언은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고이설이 하려는 말이,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절대 아닐 것 같아.’

나는 진심 어린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지금 이혼해. 이래도 내가 장난치는 거 같아?”

그 말이 떨어지자, 룸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충격에 휩싸여 눈을 크게 떴다.

사람들이 내게 보내는 시선은, 마치 외계인이 내 몸을 점령한 것이 아닌지 묻는 듯했다.

‘뭐, 이해는 돼.'

‘예전의 나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심사언한테 이혼하자는 말을 먼저 꺼내지 않았을 테니까.’

찰나의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른 뒤, 곧이어 곳곳에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고이설, 그렇게 말하면 사언 형은 진짜 너랑 이혼할 수도 있어!”

“정말로 가정법원 앞에 서게 되면, 무릎 꿇고 울면서 빌지나 마!”

“형, 저 여자가 저렇게 나오는데 뭐 하러 참아? 그냥 이혼해.”

“맞아! 사언 형, 그냥 끝내! 저 여자가 감히 먼저 이혼 운운하다니!”

“형이랑 헤어지면, 쟤는 다시는 형 같은 남자를 만날 수 없을 거야!”

“아니, 뭐 형 같은 남자는커녕, 나가서 몸을 팔아도 거들떠볼 남자나 있을까 모르겠네.”

“자기가 무슨 대단한 존재라고! 감히 이혼으로 협박을 해?”

“3개월이나 병원에 처박혀 있는 동안, 사언 형이 한 번도 병문안을 안 갔으면, 뭔가 깨닫는 게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명인아, 웃기지 좀 마. 쟤 같은 애가 ‘자기 수준’을 알 리가 있냐?”

심사언이 나를 좋아하지 않으니, 그의 친구들도 당연히 나를 싫어했다.

나를 그저 심사언에게 달라붙어 질질 끌려다니는 하찮은 존재로 보며, 최소한의 존중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조롱 속에서, 심사언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고이설, 장난도 정도껏 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은, 심사언처럼 생각했을 것이었다.

내가 이혼을 운운하는 것은 결국 단순한 심술과 투정이라고.

왜냐하면 내가 심사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 인간들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심사언이 단 하룻밤이라도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나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과호흡이 올 정도로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매달렸다.

그런 내가 ‘이혼’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이 사람들이 비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 중에서, 오직 한 사람, 내 쌍둥이 오빠만은 나를 이해하고 있었다.

나와 함께 태어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에, 오빠는 다른 사람들처럼 비웃지 않은 채, 그저 믿을 수 없다는 듯 충격에 휩싸인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이설아, 너 왜 그래? 그 사람... 심사언이야.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잖아!”

오빠의 목소리에는 강한 불신과 당혹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목숨처럼 여기던 내가, 이제 와서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나는 오빠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심사언을 똑바로 바라보며, 내 팔을 놓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심사언이 갑자기 비웃음을 터뜨렸다.

화가 나서 웃는 건지, 아니면 이제야 날 떨쳐낼 수 있어서 기쁜 건지 알 수 없었다.

“좋아, 아주 좋아.”

“고이설, 드디어 철들었네?”

“이혼? 그래, 하자.”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만족스러웠다.

‘그럼 이제 떠나면 되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서려는 찰나, 소아연이 또다시 울면서 내게 매달렸다.

“언니...! 사언 오빠...! 이러지 마요! 제발 이러지 마요!”

“언니, 나랑 사언 오빠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방금도 진짜 게임일 뿐이었어요!”

“제발, 이 일 때문에 이혼하지는 마요. 만약 언니가... 정말 날 믿지 못하겠다면...”

순간, 그녀는 테이블 위에 있던 과일칼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단숨에 그 칼을 자기 목에 들이댔다.

“내가... 죽어서 증명할게요!”

그 순간, 방 안의 모든 사람이 소아연에게 몰려들었다.

“아연아, 안 돼! 제발 그러지 마!”

“너 미쳤어?! 칼 내려놔!”

“저런 애한테 신경 쓰지 마. 패악질을 해도 정도껏 해야지!”

다들 소아연을 걱정하고, 말리고, 애원했다.

오직 한 사람... 나만이,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차갑게 내뱉었다.

“그래, 죽어.”

“네가 죽으면, 믿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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