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강루인이 청혼을 받아들인 뒤 지수현은 마치 흥분제를 먹은 사람처럼 종일 들떠 있었다.그는 길을 지나가는 개를 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몇 마디씩 말을 걸 정도였다.“너도 들었지? 맞아, 나 결혼해.”“내 아내가 얼마나 예쁜지 알아? 게다가 나를 엄청나게 사랑하거든.”“그런데 너 너무 마른 거 아니야? 내가 결혼식 하면 너한테도 초대장 보내줄 테니까 꼭 와서 밥 먹고 가. 와서 내 예쁜 아내도 구경하고.”떠돌이 개는 그저 그를 멀뚱히 바라보다가 귀찮다는 듯 몇 번 짖어댈 뿐이었다.“대표님,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 봅니다. 기분이 굉장히 좋아 보이시네요.”지수현과 사업 이야기를 나누던 거래처 대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가 곧 아내와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거든요. 그때 시간 되시면 꼭 참석해 주세요.”상대는 곧바로 축하의 말을 건넸다.“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정말 좋은 일이네요. 대표님은 부인과 사이가 정말 좋으신가 봅니다. 두 분이 결혼하신 지 몇 년은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럼 이번 결혼식은 기념식 같은 건가요?”지수현은 두 사람의 실제 결혼 상황까지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다.“안북시는 제 아내의 고향입니다. 저희는 해외에서 먼저 혼인신고를 했고 이번에 귀국한 김에 이곳에서 다시 한번 결혼식을 올리려고 합니다. 아내의 지인들도 초대해서 제대로 축하받고 싶어서요.”“대표님은 부인을 진심으로 아끼시는군요. 대표님 부인은 정말 복이 많으십니다.”지수현은 고개를 저으며 그의 말을 바로 정정했다.“아닙니다. 잘못 알고 계신 겁니다. 복이 많은 사람은 제 아내가 아니라 저입니다. 제 아내와 결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니까요.”그의 넘치는 애정 표현만으로도 이미 배가 부를 정도였기에 굳이 술을 마실 필요조차 없었다.거래처 사람들은 속으로는 저마다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연신 축하와 칭찬을 건넸다.결국 식사 자리는 주인과 손님 모두 만족하는 분위기
‘대체 언제 준비한 거지?’강루인은 생각한 그대로 말을 내뱉었다.“언제 준비한 거야?”지수현은 자신의 속마음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고 오히려 너무나 당당하고 솔직했다.“항상 준비하고 있었어.”그는 자신이 강루인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이미 이런 날을 그려왔다.가짜 부부라는 관계는 그저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일 뿐이었다.강루인이 되물었다.“내가 만약 거절하면 어떡하려고?”지수현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괜찮아. 내가 너보다 어리잖아. 기다릴 수 있어.”설령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는 여전히 지수현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니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다.물론 그는 진짜 부부가 되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강루인의 선택이기에 지수현은 그녀의 마음을 존중할 생각이었다.반지는 눈부시게 빛났고 그의 눈동자 역시 반지만큼 맑고 진심으로 가득했다.지수현은 강루인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단 한 번도 숨긴 적이 없었다.그의 마음은 너무나 분명했기에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누구나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강루인 역시 평범한 사람이었다.따뜻하고 편안한 품 안으로 스며드는 감정을 그녀도 외면할 수는 없었다.게다가 그녀의 마음이 돌처럼 완전히 굳어버린 것도 아니었기에 상대가 자신에게 베푸는 진심을 모르는 척할 만큼 냉정하지도 않았다.강루인은 이미 결혼반지가 끼워진 왼손을 내밀며 말했다.“하지만 내 손에는 이미 반지가 있잖아.”그 반지는 두 사람이 처음 계약 결혼을 하며 맞춘 결혼반지였다.지수현은 그녀가 내민 손을 바라보다가 잠시 멈칫했다.너무 긴장한 탓인지 그는 순간 강루인의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이건 거절인가? 거절이라는 뜻인가?’평소라면 누구보다 눈치 빠르고 영리한 사람이었지만 지금의 지수현은 마치 모든 생각이 멈춘 사람처럼 굳어 있었다.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진지한 모습은 역시 지수현과는 어울리지 않았다.강루인은 그런 그를 밀어내며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그녀는 머릿속에 온통 엉뚱한 생각만 가득한 이 남자와 더 이상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지수현은 강루인의 팔을 붙잡고 손목에 힘을 주더니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창가 쪽에 몰아붙였다.강루인이 겨우 평형을 잡은 순간 눈앞이 어두워지더니 곧 입술 위로 뜨거운 감촉이 내려앉았고 익숙한 향기가 짙게 스며들었다.지수현의 입맞춤은 늘 그랬다.마치 강아지가 가장 좋아하는 뼈다귀를 발견한 것처럼 거침없고 솔직했다.그럴 때마다 강루인은 자신이 그의 눈앞에 놓인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처럼 느껴졌다.지수현에게 물린 입술이 아팠던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밀어내려 했다.하지만 지수현은 강루인의 손목을 붙잡더니 그대로 그녀의 두 손을 머리 위로 눌러 고정했다.“아파...”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억눌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강루인의 반항은 효과가 있었던 듯 거칠었던 입맞춤은 어느새 부드럽게 바뀌었다.마치 강아지가 상처를 핥아주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다정했다.실내의 온도는 점점 더 높아졌고 지수현은 서서히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그의 손이 닿아서는 안 될 곳으로 향하려는 순간 강루인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손을 붙잡았다.“안 돼!”지수현의 눈은 붉게 젖어 있었고 그 안에는 숨길 수 없는 욕망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그는 분명 감정이 깊게 흔들린 상태였고 강루인 역시 숨이 흐트러져 있었다.그녀는 붉게 달아오른 입술로 지수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듯 말했다.“지금은 안 돼.”지수현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크게 움직이는 목울대가 그의 억눌린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몇 번의 깊은 호흡 끝에 지수현은 결국 강루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그의 거친 숨결과 뜨거운 체온이 고스란히 그녀에게 전해졌다.강루인은 그 뜨거운 열기에 자신의 피부가 금방이라도 타버릴 것만 같았다.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지나치게 가까웠다.
주승우는 안북시 교도소로 면회를 왔다.유리 너머로 마주 앉은 주이준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식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믿어왔던 아버지라는 존재가 무너져 내린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도 자리하고 있었다.“주영도가 동의하지 않았어요.”주이준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주승우가 직접 주영도를 찾아가겠다고 했을 때부터 그는 이미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다.하지만 아들이 꼭 가겠다고 했기에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주이준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알티스 은행에 넣어둔 돈이 있어. 증명서는 내 서재 금고 안에 있으니까 여기서 나가면 바로 챙겨둬. 그리고 네 아내와 어머니를 데리고 해외로 떠나. 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아버지...”주승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주이준이 먼저 그의 말을 끊었다.“네가 아직도 나를 아버지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그는 이미 모든 것을 정리한 듯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돌아가.”말을 마친 주이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돌아섰다.주승우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교도소를 나온 그는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그리고 주이준이 시킨 대로 바로 서재로 향했다.금고 안의 물건들은 한눈에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주이준이 말했던 물건은 가장 위쪽에 놓여 있었다.주승우가 서류봉투를 집어 드는 순간 갑자기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소리는 금고 안쪽에서 들려왔고 비좁은 공간이 마치 스피커처럼 벨 소리를 더욱 크게 울려 퍼지게 했다.갑작스러운 소리에 그는 순간 놀라 몸을 굳혔다.화면에는 낯선 번호가 떠 있었다.주승우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통화버튼을 눌렀다.상대는 마치 그가 전화를 받을 것이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듯했다.통화가 이어질수록 주승우의 얼굴에는 여러 감정이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망설임, 갈등, 혼란.그리고 마
“사람 말 못 알아듣는 거야?”주영도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그는 강루인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고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다.“하지만 난 너를 사랑하게 됐어.”주영도의 애절한 고백은 그녀에게서 어떠한 반응도 끌어내지 못했다.강루인은 말을 끝내자마자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버렸다.그가 아무리 초라하고 무력한 모습으로 서 있다고 해도 그녀는 더 이상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단호하게 멀어지는 강루인의 뒷모습은 마치 주영도라는 사람이 그녀에게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존재라고 말해주는 듯했다.검은 코트를 걸친 주영도의 모습은 유난히 쓸쓸하고 초라해 보였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깊은 고독함이 묻어 있었다.노윤환은 막 도착하자마자 버려진 사람처럼 허탈하게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더니 속으로 중얼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잘하지.’그는 한숨을 삼키더니 주영도 앞으로 다가서며 재촉했다.“대표님, 이제 업무 보러 가셔야 합니다.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다른 사람들은 모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주영도만 그 자리에 홀로 남아 감성에 젖어 있었다.사랑을 잃었다고 사람이 죽지는 않지만 돈이 없다면 사람은 정말 굶어 죽을 수도 있었다.주영도가 회사 내부에 남아 있는 잔재들을 정리하는 동안 강루인 역시 지수현의 회사가 안북시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노윤환은 이 상황까지 주영도에게 보고했다.하지만 그는 강루인에게 넘어가는 손실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신경 쓰지 마. 그냥 가져가게 둬.”주영도는 자신이 강루인에게 진 빚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그렇기에 그녀가 원하는 만큼 가져가도록 내버려둘 생각이었다.그 말을 들은 노윤환은 말로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대표님이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해야 하나?’그들 모두 알고 있었다.이 자원들이 강루인에게 넘어간다면 결국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지수현이었다.주영도가 경쟁 상대에게 이토록 관대
주영도는 함께 시찰을 나온 직원들을 뒤로한 채 유령처럼 강루인 일행의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바라본 강루인의 얼굴에는 그가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억지로 지어낸 웃음이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꾸밈없는 감정이었다.그녀는 과거에 주영도 앞에서도 웃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 미소는 언제나 절제되어 있었고 조심스러웠다.입꼬리가 올라가는 각도마저 마치 자로 재어 표시해 둔 것처럼 정확하고 완벽했기에 어딘가 지나치게 가식적으로 느껴졌다.무엇이든 비교라는 것은 가장 잔인한 법이었다.눈앞에서 너무나 확연한 차이를 마주한 순간 주영도는 마치 뒤늦게 진실을 깨달은 사람처럼 숨이 막힐 듯 답답해졌다.‘강루인이 나를 사랑하긴 했던 걸까?’주영도는 다시 그녀를 자신의 곁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을지 너무 두려웠다.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이 그의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뒤흔들었다.주영도는 강루인을 잃고 싶지 않았고 정말로 잃게 될까 봐 두려웠다.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불안감은 결국 그를 강루인 앞에까지 서게 했다.지은우에게 막 솜사탕을 사준 그녀는 순간 주영도에게 팔을 붙잡힌 채 사람이 비교적 적은 건물 뒤편으로 끌려갔다.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강루인은 상대가 주영도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짜증과 불쾌감이 한꺼번에 치밀어 올랐다.“너 미쳤어?”그녀는 자신을 붙잡고 있던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강루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혐오와 거부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왜 지수현이랑 같이 있는 거야?”그 말은 왜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느냐는 의미였다.주영도의 눈빛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고 낮고 거친 목소리에는 서운함과 원망이 뒤섞여 있었다.강루인은 그를 상대할 생각조차 없었기에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려 했다.하지만 주영도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너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 거야?”주영도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한순간도 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