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 보낼 땐 언제고 이혼하자니 난리야?

파견 보낼 땐 언제고 이혼하자니 난리야?

بواسطة:  연나리تم تحديثه الآ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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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3년 차, 온진아는 기태우의 말이라면 죽는시늉까지 할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신혼여행 다음 날, 강진으로 발령이 났을 때도 그녀는 불평 한마디 없었다. 지난 3년 동안 온진아는 단순히 기천 그룹을 위해 강진에서 기반을 닦은 것을 넘어 특허 기술을 통해 수천억의 수익을 창출하며 회사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다져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병세가 위독해지자 그녀는 눈물로 기태우에게 휴가를 간청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냉혹한 거절뿐이었다. “아직 죽은 건 아니잖아.” 그 한마디로 그녀의 간절함은 가볍게 짓밟혔다. 직장을 그만두고 돌아온 집에서 온진아가 마주한 것은 끔찍한 진실이었다. 이 결혼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교하게 짜인 사기극이었다! 기태우가 그녀와 결혼한 건 오직 자신의 첫사랑과 낳은 아이를 위해서였고, 온진아를 강진으로 보낸 것 역시 자신들 세 식구의 단란한 생활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심지어 그녀가 애지중지 키우던 강아지마저 학대를 당해 불구가 되어 있었다. 그 순간, 온진아의 마음은 바짝 타버린 잿더미가 되었다. 그녀는 곧바로 사표를 던지고 이혼 서류에 서명한 뒤 기씨 가문의 문을 박차고 나갔다. 한편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기태우는 그저 비웃을 뿐이었다. 그녀가 곧 제 발로 다시 돌아올 것을 확신했으니까.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온진아와 재회한 곳은 어느 바이오 테크 기업의 신제품 발표회장이었다. 그녀는 최첨단 유전자 편집 기술의 특허를 거머쥔 채 여유롭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또한 그녀의 곁에는 강진 재계를 쥐락펴락하는 거물급 인사가 서 있었다. 기태우는 그제야 무릎을 꿇고 눈물로 호소했다. “진아야, 내가 잘못했어.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기회라, 온진아는 이미 그에게 수없이 많이 줬었지. 그리고 이제 그 기회는 다른 사람의 몫이 되었다. 뒤에 서 있던 남자가 한 걸음 다가와 온진아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소유권을 선언했다. “이 사람, 이제 제 아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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الفصل الأول

제1화

기태우에 의해 강진으로 파견된 지 3년째 되던 날, 온진아는 처음으로 이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그녀는 의사에게 들은 어머니의 상태를 덤덤하게 전했다.

혈액 감염으로 인한 위급 상황, 언제든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절박한 소식이었다.

온진아는 당장 부성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소식을 들은 기태우는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차갑게 내뱉었다.

“네가 의사야?”

그 말인즉슨 돌아와 봐야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비아냥이었다.

온진아인들 자신이 의사가 아니라는 걸 모를까. 당연히 의술로 엄마를 살릴 수 없겠지.

하지만 그분은 다름 아닌 그녀의 엄마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저 엄마의 곁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었다.

평소라면 기태우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고 단 한 번도 거스른 적 없던 그녀였지만 이번만큼은 용기를 냈다.

“엄마 곁을 지키고 싶어서 그래. 며칠만 휴가 좀 쓸게. 업무에는 지장 없도록 할게. 제발, 태우야.”

전화기 너머의 기태우가 잠시 침묵했다. 한 번도 ‘아니오’라고 말한 적 없던 아내의 뜻밖의 고집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윽고 다시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더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아직 죽은 건 아니잖아.”

그 잔인한 한마디에 온진아의 머릿속이 하얗게 굳었다. 이 남자의 모진 말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번만큼은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하지만 기태우는 그녀의 분노를 비웃듯 차갑고 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잘랐다.

“주제 파악 좀 해. 네가 나한테 감히 이런 식으로 말할 자격 있어?”

지난 3년이 그랬듯 기태우는 그녀의 감정도, 생각도, 심지어 그녀라는 존재 자체에 한 치의 관심도 없었다.

부부라는 이름표만 달고 있을 뿐 정말이지 남보다 못한 사이였다.

온진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결혼을 제안한 것도, 그녀가 감당하기 힘든 비극을 겪었을 때 손을 내밀어준 것도 기태우였다. 심지어 그녀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입양을 제안한 것도 이 남자였는데...

가슴을 찌르는 통증에 온진아는 울컥 치미는 억울함을 삼키며 다시 매달렸다.

“태우야, 부탁이야 제발...”

“됐어, 그만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태우의 목소리가 그녀를 짓눌렀다. 인내심은 이미 바닥난 듯했다.

“내 성격 알지? 자꾸 반복하지 마라. 기천 그룹에서 사표 쓸 생각이거든 부성으로 돌아와.”

말을 마친 남자가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

수화기 너머의 뚜 하는 소리에 온진아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강진으로 파견된 3년 동안 그녀는 단 하루도 휴가를 내지 않고 자신의 모든 정열과 시간을 오롯이 일에 쏟아부었다. 단순히 기천 그룹이 강진에서 입지를 다지게 한 것을 넘어 수많은 바이오 기술 특허와 혁신적인 신기술까지 개발해냈다.

부부의 정은 제쳐두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일궈온 성과만큼은 참작해 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착각이었다.

그래, 그렇다면 떠나주면 그만이다. 이제 미련 따위는 없었다.

온진아는 곧장 사내 시스템에 접속해 퇴사 사유를 기입하여 사직서를 제출했다. 모든 과정이 거침없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사직 절차를 마친 그녀는 곧바로 부성행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이른 아침 여섯 시, 온진아는 부성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달려간 병원에서 그녀는 어머니의 상세한 상태를 전해 들었다.

병명은 급성 백혈병,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고비를 넘겨 일시적으로 안정을 찾았으나 여전히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위중한 상태였다. 앞으로 장기간의 항암 치료와 골수 이식 등 험난한 과정이 예고되어 있었고 치료비만 해도 최소 4억 원은 필요했다.

병상에 누운 어머니의 파리하고 야윈 모습을 보자 온진아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실 그녀는 구미란과 온형욱 부부의 친딸이 아니었다. 어릴 적 입양된 아이였지만 구미란은 지난 세월 동안 그녀를 친딸처럼 애지중지 키워왔다.

온진아의 기억 속에서 어머니는 늘 고생만 해왔다. 어린 시절에는 그녀를 키우느라, 나중에는 남편 온형욱의 도박 빚을 갚느라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이번에 걸린 병 역시 이웃이 쓰러진 어머니를 우연히 발견해 구급차를 불렀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생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결과가 닥쳤을 것이다.

무균실이라 오래 머물 수 없었던 온진아는 의사에게 주의사항을 전달받은 뒤, 서둘러 치료비 마련을 독촉받았다.

이 병은 결국 돈으로 버텨내야 하는 싸움이었다.

병원 벤치에 앉아 온진아는 지난 3년간의 통장 잔고를 계산해 보았다. 그간 근검절약하며 최소한의 생활비로 버티며 모은 돈이지만 박봉인 탓에 고작 6천만 원이 전부였다.

4억이라는 거금 앞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당장 이 거액을 구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병원 일을 서둘러 정리한 온진아는 택시를 잡아 채움 별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바로 기태우의 집이었다. 결혼식 날을 제외하면 그녀가 이곳에 발을 들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현관문을 열어준 가정부는 낯선 온진아의 얼굴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안으로 들어가 주인을 찾았다.

거실을 가로막은 비즈 발 너머로 화기애애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낯선 여자의 웃음소리와 아이의 명랑한 목소리. 기태우가 입양했다던 아이 기하람이 분명했다.

아이라는 존재를 떠올리자 온진아의 마음 한구석이 몽글몽글하게 풀렸다.

친자식도 아니고 여태껏 줄곧 사진으로만 봐왔지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명의상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온진아는 자연스럽게 모성애가 차올랐다.

‘나중에 선물이라도 사다 줘야지.’

그런 따뜻한 생각을 하던 찰나, 거실의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이어 가정부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왔는데 거실 소파에 앉은 세 사람이 한눈에 들어왔다.

기태우, 그리고 한눈에 봐도 귀티가 흐르는 세련된 여인과 그 옆의 기하람이었다.

3년 만에 마주한 기태우는 짙은 색 슈트에 같은 톤의 넥타이를 매치하고 있었다. 뒤로 정갈하게 넘긴 머리카락 아래로 드러난 날카로운 눈썹과 별처럼 빛나는 눈매. 그의 이목구비는 더욱 또렷해졌고 온몸에선 범접할 수 없는 상위자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3년이라는 세월은 그를 한층 더 성숙하고 위압적인 남자로 만들어 놓은 듯했다.

하지만 그녀를 맞이하는 방식은 극도로 무심했다. 거실로 들어선 온진아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여전히 시선은 손에 든 휴대폰에 고정되었다. 쏟아지는 업무 알림을 기계적으로 처리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옆에 앉은 여인 또한 입을 떼지 않고 그저 싸늘한 눈빛으로 온진아를 훑어보았다. 낯선 기색이라곤 없는 걸 보니 아마도 그녀를 알아본 모양이다.

적막을 깬 건 그 옆에 앉아있던 기하람이었다.

“엄마, 저 아줌마 누구예요? 너무 뚱뚱하고 촌스러워요. 엄마 아빠 친구예요? 저한테는 평소에 수준 맞는 사람만 사귀라고 하더니 왜 저런 사람이랑 친구로 지내요?”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식 없는 진심이라서 그만큼 가장 잔인하게 비수를 꽂았다.

온진아는 당혹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난 3년, 강진에서 강행군을 이어가느라 끼니를 제때 챙겨 먹기는커녕 만성 과로에 시달렸다. 그 부작용으로 체중이 수십 킬로나 불어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아이가 부른 ‘엄마’라는 호칭이었다.

‘저 여자가 엄마라면 나는? 난 뭐지?’

온진아가 입을 떼려는 찰나, 옆에 앉은 여자가 먼저 반응했다. 그녀는 기하람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람아, 아까도 말했잖아. 나는 엄마가 아니라 고모라고. 저 사람이 네 진짜 엄마야.”

그녀의 손가락이 온진아를 향했다.

그 순간, 아이는 질색한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팔짱을 높이 끼고는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흥! 저 여자가 무슨 우리 엄마야! 난 저렇게 뚱뚱하고 못생긴 아줌마는 엄마로 인정 안 해! 당장 내쫓아버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실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 여자는 상황을 수습하긴커녕 오히려 온진아를 향해 도발하는 눈빛을 던졌다.

온진아가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묵묵히 침묵을 지키던 기태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유영아, 하람이 데리고 올라가 있어.”

한없이 다정하고 부드러운 말투, 그녀는 단 한 번도 기태우에게 그런 따뜻한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가슴 한구석이 쓰라리게 저며 왔다. 그제야 온진아는 눈앞의 여자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기태우의 동생이자 기씨 가문의 수양딸 기유영이었다.

결혼식 당시 기유영은 참석하지 않았다. 하여 온진아도 그녀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과연 기태우의 동생답게 기유영에게서도 그와 닮은 서늘하고 거만한 기운이 풍겼다. 선뜻 다가설 수 없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다만 기이하게도 아이의 얼굴에서는 기태우보다 오히려 기유영의 흔적이 짙게 묻어났다.

기태우의 말에 기유영은 순순히 하람이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기태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온진아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엉켰다.

바로 그 순간, 온진아의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사직 신청이 최종 승인되었다는 시스템 알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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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기태우에 의해 강진으로 파견된 지 3년째 되던 날, 온진아는 처음으로 이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수화기 너머로 그녀는 의사에게 들은 어머니의 상태를 덤덤하게 전했다.혈액 감염으로 인한 위급 상황, 언제든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절박한 소식이었다.온진아는 당장 부성으로 돌아가야만 했다.하지만 소식을 들은 기태우는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차갑게 내뱉었다.“네가 의사야?”그 말인즉슨 돌아와 봐야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비아냥이었다.온진아인들 자신이 의사가 아니라는 걸 모를까. 당연히 의술로 엄마를 살릴 수 없겠지.하지만 그분은 다름 아닌 그녀의 엄마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저 엄마의 곁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었다.평소라면 기태우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고 단 한 번도 거스른 적 없던 그녀였지만 이번만큼은 용기를 냈다.“엄마 곁을 지키고 싶어서 그래. 며칠만 휴가 좀 쓸게. 업무에는 지장 없도록 할게. 제발, 태우야.”전화기 너머의 기태우가 잠시 침묵했다. 한 번도 ‘아니오’라고 말한 적 없던 아내의 뜻밖의 고집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이윽고 다시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더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아직 죽은 건 아니잖아.”그 잔인한 한마디에 온진아의 머릿속이 하얗게 굳었다. 이 남자의 모진 말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번만큼은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하지만 기태우는 그녀의 분노를 비웃듯 차갑고 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잘랐다.“주제 파악 좀 해. 네가 나한테 감히 이런 식으로 말할 자격 있어?”지난 3년이 그랬듯 기태우는 그녀의 감정도, 생각도, 심지어 그녀라는 존재 자체에 한 치의 관심도 없었다.부부라는 이름표만 달고 있을 뿐 정말이지 남보다 못한 사이였다.온진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결혼을 제안한 것도, 그녀가 감당하기 힘든 비극을 겪었을 때 손을 내밀어준 것도 기태우였다. 심지어 그녀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입양을 제안한 것도 이 남자였는데...가슴을 찌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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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다미’의 본명은 유다미. 그녀는 변호사이자 온진아가 살아온 25년 인생에서 가장 절친한 친구였다.고등학교에서 만나 같은 대학교까지 진학하며 7년을 함께했다. 그 세월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너무도 익숙한 존재가 되었고 말 그대로 지피지기였다.결정적인 균열은 3년 전, 온진아가 기태우와 결혼하려 했을 때 찾아왔다. 유다미는 필사적으로 이 결혼을 말렸다. 그녀는 온진아에게 거듭 말했었다. 기태우가 네 생각만큼 널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그 사람하고 있으면 절대 행복할 수 없을 거라고.하지만 그때 온진아의 귀에 그런 말이 들어올 리 없었다. 온통 사랑에 눈이 멀어 기태우와 결혼할 생각뿐이었으니까. 조금의 사랑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설령 없더라도 감정은 키워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자신에게는 기다릴 인내심도 시간도 차고 넘친다고 생각했다.유다미는 온진아를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결혼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도 없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결국 둘은 인연을 끊었고 그 후로는 어떤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다.시간이 흐른 지금, 그때 일을 다시 돌아보니 온진아는 비로소 깨달았다. 아마 유다미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토록 말린 거겠지.안타깝게도 그때의 온진아는 그걸 도저히 알아차릴 수 없었다.전화에서는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온진아는 혹시 끊어진 건가 싶어 조심스럽게 물었다.“다미야, 듣고 있어?”“응.”그제야 유다미가 짧게 대답했다.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였지만 처음의 서먹함은 조금 사라진 듯했다.“너 지금 어디야?”온진아는 고개를 들어 채움 별장의 간판을 쳐다봤다. 유다미를 더 이상 얽히게 하고 싶지 않아 결국 근처 골목 이름을 둘러댔다.“거기서 기다려. 금방 갈게.”“아니, 나는...”“기다려.”온진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다미가 싹둑 잘랐다.“금방 갈 거야. 30분도 안 걸릴 테니까 일단 따뜻한 데 가서 앉아있어.”“알았어.”그 말에 온진아는 울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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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온진아가 집에 들른 이유는 단 하나, 강아지 또또를 데려오기 위함이었다.유다미는 또또를 기억하고 반가운 마음에 안으려 했다. 하지만 평소에는 얌전하던 또또가 그녀의 손길을 피하며 갑자기 으르렁거리고 몸을 바들바들 떨더니 이내 구석에 웅크려버렸다.“얘 왜 이래?”유다미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사람을 무서워해.”“왜?”“전에 심하게 학대당했어.”온진아는 딱히 숨기지 않고 채움 별장에서 또또가 겪었던 일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이야기를 들은 유다미는 격분하여 욕설을 퍼부었다.“기태우랑 기유영이 비인간적인 건 그렇다 쳐도 어떻게 하람이 그 녀석까지 별반 다를 바가 없어?”유다미가 사람을 죽일 기세로 쳐들어가려는 걸 온진아가 말렸다. 일이 너무 혼란스럽고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이제 막 유다미와 만났는데 소중한 친구까지 이 난리 통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온진아의 만류에 유다미는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고 또또의 짐을 챙겨 함께 집을 나섰다.온진아의 집에서 유다미의 집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느껴지는 분위기는 극과 극이었다. 유다미가 사는 곳은 조용하고 우아하며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하는 이 지역에서 손꼽히는 최고급 별장 구역이었다.사실 유다미는 태생부터 남달랐다. 부성의 유성 그룹 외동딸로 집안은 부동산 사업을 크게 일궜다. 기천 그룹처럼 전국구 대기업은 아니지만, 부성 상류층에서는 충분히 명함을 내밀 정도였다.다만 그녀는 가업 승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직 법학 전공에만 매달렸다. 이 문제로 집안과 갈등을 겪었고 지난 몇 년간은 가족과의 연락도 거의 끊고 혼자 살고 있었다.오늘 온진아를 데려온 곳도 유성 그룹이 소유한 별장 단지 중 한 곳이었다.여러 겹의 보안 절차를 거쳐 집에 들어서자마자 유다미는 냉장고부터 뒤졌다. 몇 년간 부엌 근처에도 가지 않던 그녀였지만 오늘 밤은 달랐다.“그냥 내가 할게.”온진아가 또또를 잘 돌본 뒤, 부엌으로 들어섰다.“아니야, 내가 할 수 있어.”“그럼 내가 야채라도 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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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기태우, 그 인간의 만행이 틀림없었다.온진아가 기하람을 때린 일에 앙심을 품고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하다니.애초에 그 남자가 협박할 때부터 온진아는 마음의 준비를 다 했다. 어떤 일이 닥쳐도 당당하게 맞설 각오였다. 그녀는 기태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다만 어머니를 건드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온진아는 다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기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상대는 전화를 끊어버렸고 다시 걸자 아예 전원이 꺼져 있었다.사면초가인 그녀, 의사는 쉴 새 없이 병원을 옮기라며 독촉했다. 다급해진 온진아의 머릿속에 통장 속 10억 원과 전에 진승호가 언급했던 ‘자원 제공’이라는 단어가 스쳤다. 그녀는 결심한 듯 진승호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울리자마자 통화가 연결됐고 그 바람에 온진아는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오히려 휴대폰 너머로 진승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진아 씨, 무슨 일이시죠?”온진아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네, 승호 씨, 혹시 지금 통화 가능하신가요?”“물론이죠. 편하게 말씀하세요.”남자의 통쾌한 대답에 그녀도 더는 머뭇거리지 않았다.“다름이 아니라 부성 쪽에 잘 아시는 의료 인프라가 있으신지 여쭙고 싶어서요.”일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 굳이 뭘 더 숨길까?“실은 저희 어머니가 급성 백혈병으로 입원 중이신데 다니던 병원에서 갑자기 퇴원을 종용해서요. 상황이 너무 급박한데 갈 곳을 찾지 못해 염치 불고하고 연락드렸어요. 혹시 곤란하시다면 바로 끊겠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볼게요.”“걱정 마세요. 어머님 문제는 제가 해결해드릴게요.”진승호는 일단 그녀를 안심시켰다.“솔직히 말하자면 진아 씨가 먼저 전화하지 않았더라도 제가 연락하려고 했습니다. 어머님께서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이미 조치를 취하고 있었거든요.”“정말요?”온진아의 가슴에 벅찬 감정이 차올랐다. 단순히 기쁨을 넘어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물론입니다.”진승호가 계속 말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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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어머님께서 무사하시다니 다행입니다. 후속 치료도 걱정 마세요. 강인 병원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진과 장비를 갖추고 있으니 진아 씨 어머님도 반드시 나아지실 겁니다.”“정말 감사합니다.”온진아는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했다. 딱히 보답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자연스럽게 퇴사 이야기를 꺼냈다.“저 이미 기천 그룹에 사직서 냈어요. 한 달 뒤면 완전히 정리될 겁니다.”통화를 이어가던 중, 온진아는 전화기 너머로 낮고 매력적인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강진 방언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귀에 쏙 박히는 좋은 음색이었다.“혹시 지금 바쁘신가요?”그녀는 혹여 방해될까 조심스럽게 진승호에게 물었다.“아니요, 괜찮습니다.”진승호가 짧게 답하며 덧붙였다.“방금 누가 지나가서요.”온진아는 더 캐묻지 않았다.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전화한 거였으니까.“네, 그럼 이만 끊을게요.”“도움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통화를 종료한 진승호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방금 급한 마음에 대표님을 ‘지나가던 사람’이라고 둘러댔는데 화를 내시진 않을지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그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도 대표님께서 온진아 씨와 소통할 때 본인 정보를 철저히 숨기라고 당부했으니 어쩔 수 없는 임기응변이었다.“죄송합니다, 대표님.”도하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덤덤히 말했다.“다음부턴 주의하도록 해.”“명심하겠습니다.”“그리고 병원에 연락해서 당분간 담백함 위주의 식단으로 바꿔. 과일이랑 디저트까지 전부 다.”“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한편, 온진아가 전화를 끊고 잠시 기다리자 어머니가 긴 잠에서 깨어났다.오랜 시간 잠들어 있었던 탓인지 구미란의 눈동자는 한동안 초점이 흐려 보였다. 한참을 머뭇거린 끝에야 온진아를 알아봤다.“진아니? 어떻게 벌써 왔어?”“엄마 보러 왔죠.”온진아는 어머니의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넘겨주었다.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뭐 드시고 싶은 건 없는지 묻고 싶은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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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기태우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기유영과 함께 파인다이닝까지 보낸 뒤에야 전화를 걸었다. 아침에 온진아의 전화를 일부러 끊었던 건 계산된 행동이었다. 하루 종일 그녀를 방치해두면 자신의 처지를 뼈저리게 실감하고 꼬리를 내릴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생각은 좀 정리됐어?”“뭐가?”온진아의 말투는 지나치게 차가웠다. 평소 기태우의 앞에서 조심스럽게 비위를 맞추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이에 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짧은 시간 안에 사람의 성격이 이렇게 변할 리 없었다. 그는 온진아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기에 이런 태도를 그저 밀당이나 관심 끌기로 치부했다.“말 안 해도 알 텐데.”기태우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잘 모르겠으니까 할 말 없으면 끊을게.”온진아는 화장실 안에 있었지만, 혹여나 문밖의 어머니가 들을까 봐 목소리를 최대한 낮췄다.“하람이한테 사과하는 일 말이야.”‘하! 역시 그거였군.’“말했잖아. 내 잘못 아니라고. 절대 사과 안 해.”그녀가 단호하게 쏘아붙였다.“오늘 일로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네? 잊지 마. 내가 병원 한 곳을 연결할 수 있으면 두 번째라고 못 할 리 없어.”기태우는 온진아의 어머니가 병원을 옮겼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구체적인 상황까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온진아는 헛웃음이 나왔다. 제 입으로 당당하게 악행을 인정하다니.이 남자와 말싸움하며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이 상황을 어떻게 현명하게 마무리하느냐였다.현재 어머니가 강인 병원에 있긴 하지만 이곳 역시 부성이라 기씨 가문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기태우는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었다. 진승호에게 이미 너무 많은 신세를 진 터라 온진아는 더 이상의 소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도대체 원하는 게 뭔데?”그녀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아주 쉬워. 하람이한테 사과하고 강진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평범하게 지내라고.”‘꿈 깨, 인간아!’온진아는 속으로 욕을 씹어 삼켰다. 두 가지 요구 중 어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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