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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비담
학교를 나와서야 강루인은 꼿꼿하게 펴고 있던 어깨의 힘을 풀었다. 조금 전 얼마나 강한 척했으면 지금 그만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양녀라는 신분 때문에 강루인은 어릴 때부터 참는 것에 익숙해졌고 성격도 아주 순했다. 하지만 완전히 순종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아까 그녀가 저지른 일이 주초원을 자극해서 이혼에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마에서 갑자기 느껴진 통증이 몇 분 전에 겪었던 일을 상기시켰다. 강루인은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는데 강규덕에게서 온 전화였다.

강루인은 받고 싶지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뼛속 깊이 박힌 두려움 때문에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숨을 길게 내쉬고 통화 버튼을 누르자 강규덕이 명령하듯 말했다.

“내일 영도 데리고 집에 와서 밥 먹어.”

그녀는 시선을 늘어뜨리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이 식사가 가족 모임이 아니라 강규덕이 또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좋게 말해 협력이지, 솔직히 말하면 또 피를 빨아먹으려는 수작이었다.

강루인이 아무 대답이 없자 강규덕이 싸늘하게 말했다.

“내 말 안 들려? 벙어리야?”

강루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아버지.”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가 끊겼고 그녀는 휴대폰을 쥔 손을 늘어뜨렸다.

‘영도 씨가 날 싫어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해. 이렇게 피를 빨아먹는 처가를 누가 좋아하겠어.’

강루인은 조용한 곳에서 잠시 쉬고 싶었으나 현실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상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저녁 식사 자리에 참석하라는 지시였다.

이런 자리에서는 홍보팀 직원들이 먼저 협력업체 사람들에게 아첨을 떨며 비위를 맞춰야 했다.

사실 강루인의 성격으로 볼 때 이런 일은 그녀에게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적응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왜냐하면 주영도가 그에게 의지하는 여자를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인정받기 위해 그녀는 강해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얼마 전 유산한 터라 강루인은 에둘러 거절했다.

“과장님, 저 오늘 개인적인 일로 휴가를 냈어요.”

과장은 그녀의 뜻을 알아들었지만 가차 없이 거절했다.

“윗선의 명령이야.”

강루인은 과장이 말한 윗선이 주영도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나한테 휴가를 주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갑자기 다시 회사로 돌아가 야근하라는 건데?’

그녀가 말했다.

“저 지금 퇴사 절차를 밟고 있어요.”

“절차 아직 다 끝나지 않았어.”

과장은 퇴사 처리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회사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고 귀띔했다.

더는 거절할 핑계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지시에 따랐다.

강루인은 약속 장소에 미리 도착했다. 가고 싶지 않았으나 직업 정신상 지각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데 도착하고 나서야 과장이 말한 윗선이 구아정이고 구아정이 그녀를 불렀다는 걸 알았다.

오늘 저녁 협력할 프로젝트는 최근 주시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갓 입사한 구아정에게 이렇게 중요한 일을 맡기다니. 주영도가 그녀에게 얼마나 힘을 실어주려는지 알 수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대할 때 그 차이는 정말 천지 차이였다.

“뭐 하는 거야?”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갑자기 들린 구아정의 고함에 강루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구아정이 술병으로 협력업체 담당자를 때리고 있었다.

강루인은 그대로 넋을 잃었다.

구아정이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상대가 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협력업체 담당자는 분노하며 욕설을 퍼부었고 구아정은 흐느끼며 울었다.

방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조금 전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 그녀가 아닌 듯 무척이나 억울한 표정이었다.

“방금 성추행하려고 했잖아!”

협력업체 담당자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무슨 뜻이야? 지금 나한테 꽃뱀 짓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구아정이 말했다.

“누가 너한테 꽃뱀 짓을 한다고 그래? 경찰에 신고할 거야.”

분위기가 또다시 험악해졌다.

강루인은 상황이 더 악화되는 걸 막기 위해 재빨리 다른 사람더러 구아정을 데리고 나가 안정을 취하게 한 후 홀로 남아 뒷수습했다.

협력업체 담당자를 잘 달래고 계약을 성사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술을 많이 마셨다.

식당에서 나와 협력업체 담당자에게 차 문을 열어 주자 그녀의 손을 톡톡 치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강 팀장이랑 다시 함께 식사하고 싶네요.”

강루인은 자연스럽게 손을 빼내면서 억지로 웃었다.

“조심히 가세요.”

그녀가 배웅을 마치자마자 주영도가 나타났다.

“영도 오빠...”

구아정이 주영도의 품에 와락 안긴 채 억울함을 토로하자 주영도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부축해주었다.

강루인은 그들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차가운 밤바람이 후끈 달아올랐던 술기운을 날려버렸다.

그의 품이 얼마나 단단한지 침대에서 수도 없이 느꼈다. 하지만 침대 밖에서는 다른 사람이 옆에 있다면 절대 안아 주지 않았다.

‘구아정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꽉 껴안을 리가 없을 텐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순간 배가 쥐어짜듯 아파 몸을 파르르 떨었다. 심호흡을 연거푸 하고서야 발걸음을 옮겨 계약서를 건넸다. 다른 직원들도 있어 깍듯하게 존댓말 했다.

“대표님, 방금 태하 그룹과 체결한 계약의 계약서입니다.”

주영도가 강루인을 쏘아봤다.

“주선 그룹이 직원을 팔아먹을 정도로 몰락하지는 않았어요.”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일단 설명하려 했다.

“그런 게 아니라...”

“동료가 부당한 일을 당했는데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되레 모욕하도록 내버려 두다니. 전에도 이런 식으로 거래를 했어요? 회사를 대체 뭐로 생각하는 거예요? 여기가 뭐 술집인 줄 알아요?”

수치심이 확 밀려온 강루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문득 처음 동료와 함께 거래처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직장 내 성희롱을 당했었는데 구아정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강루인은 감히 맞서 싸우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주영도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녀의 ‘호들갑’을 별로 탐탁지 않아 했다.

주영도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여긴 놀이터가 아니야. 아무도 네 어리광을 받아 주지 않으니까 못하겠으면 당장 그만두고 집에 가.”

이 얼마나 이중적인 태도인가?

주영도의 인정을 받으려고 강루인은 업무 능력을 키우는 데 애를 썼고 결국 베테랑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구아정을 지켜주지 않았다고 그녀를 탓했다.

‘남편을 빼앗은 여자를 왜 지켜줘야 해?’

강루인이 말했다.

“안 부장님이 말씀하셨어요. 구 비서님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으셨다고요.”

그러자 구아정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내가 그 사람을 모함했다는 뜻이에요? 누가 이런 일로 자기 명예를 더럽혀요?”

강루인이 고개를 들자마자 주영도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는데 목이 꽉 막힌 듯 말을 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강루인은 구아정이 몹쓸 짓을 당하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구아정은 자신이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했고 안 부장은 부인했다. 증거도 없는데 그녀더러 어떡하란 말인가?

구아정이 상처받은 표정으로 울먹였다.

“루인 씨,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모함하는 거예요?”

강루인은 그녀의 가식적인 모습을 보면서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속으로 생각했다.

‘남자들은 가련해 보이는 여자를 좋아하는구나. 내가 너의 진짜 모습을 까발리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

정말 그러했다. 원하는 게 있어 주영도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었기에 그가 지켜주는 사람에게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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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제38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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