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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作者: ALL장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7 23:05:48

82.

바실리안의 품으로 안전하게 돌아온 아그네샤는 긴장이 조금 풀린 듯 얕은 숨을 내쉬었다. 바실리안은 차가워진 그녀의 손을 꼭 감싸 쥐며 시종이 들고 있던 쟁반에서 와인 잔 두 개를 집어 들었다. 붉은 와인을 나누어 마시며 눈빛을 주고받는 두 사람 사이에는 금세 달콤하고 다정한 기류가 감돌았다.

“고생했어, 샤샤. 선을 확실하게 그어줘서 고마워.”

“당연한 일인걸요. 리안 말고 다른 사람은 생각지도 않아요.”

아그네샤가 눈꼬리를 접으며 달콤하게 소곤거리던 바로 그때, 불청객의 음성이 두 사람의 분위기를 깨뜨렸다. 어두운 표정의 2 황자가 슬그머니 다가온 것이었다.

“공녀, 잠시 나랑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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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녀는 죽음 대신 남주의 침대로 들어갔다   107

    107.그의 핏빛 어린 눈동자에는 애타는 진심과 미안함이 가득 넘쳐흐르고 있었다.“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내 사랑, 그대의 몸이 망가졌다니, 내가 그대를 원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한 거야.”“하지만… 리안, 한 달이 넘도록 절 품으려 하지 않으셨잖아요. 뽀뽀만 해주고… 밤마다 저를 안아만 주고…….”아그네샤의 눈가에 순식간에 눈물이 핑 돌았다. 참고 있던 속마음이 터져 나오자, 그동안 모아두었던 서러움이 눈물방울이 되어 뺨을 타고 흘렀다.“저는… 아이를 지키지 못해서 제가 미워진 건지, 아니면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려서 저를 여자로 안 보시는 건지… 마력 폭주도 사라졌으니, 이제는 제가 필요 없는 건지 매일 밤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세요?”“아니야, 샤샤, 절대 아니야!”바실리안은 아그네샤의 뺨을 가득 적시는 눈물을 부드럽게 입술로 훔쳐내며 짓눌린 목소리로 울부짖듯 소리쳤다.“그대가 너무 고통스러워했잖아. 마음도, 몸도 소모될 대로 소모되었는데 내가 욕심을 부렸다가 그대에게 무리가 갈까 봐… 미칠 것 같은 걸 매일 밤 죽을힘을 다해 참았던 것뿐이야.”바실리안은 그녀의 손을 가져가 자신의 가슴팍 위에 얹었다. 옷가지 너머로 아그네샤를 향해 미친 듯이 뛰고 있는 그 뜨거운 심장 소리가 손끝으로 선명하게 전해져 왔다.“내 안에서 그대를 향한 욕망이 단 한 순간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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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토닥토닥. 고요한 욕실 안, 일정한 박자로 등을 다독이는 그의 따스한 체온과 손길이 닿자, 아그네샤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멍했던 눈동자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고 억눌러왔던 서러움이 물꼬를 터트리듯 터져 나왔다.“흐윽… 리, 리안…….”아그네샤는 바실리안의 가슴팍으로 고개를 묻으며 그의 품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숨이 넘어가라 울먹이는 그녀의 목소리가 젖은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제가… 바보같이 임신한 줄도 모르고… 미안해요, 리안… 미안해요…….”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미안함에 아그네샤는 아이처럼 소리 내어 오열했다. 그녀의 처절한 울음소리에 참고 있던 바실리안의 눈가 역시 붉게 물들어 갔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지만, 그는 아그네샤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으며 그녀의 머리칼에 몇 번이고 입을 맞추었다.“아니야, 샤샤… 그대의 잘못이 아니야. 절대 그대 탓이 아니야.”바실리안은 짓눌린 목소리로 다정하게 소리쳐 부르며, 떨리는 그녀의 눈가와 뺨에 떨어진 눈물을 혀와 입술로 부드럽게 닦아내 주었다.오열 끝에 결국 지쳐 잠들어 버린 아그네샤를 품에 안은 바실리안은 부드러운 타월로 그녀의 몸에 남은 물기를 조심스레 닦아냈다.깨어질세라 살포시 가운을 걸쳐준 뒤, 그녀를 품에 안고 침실로 돌아와 단단히 끌어안은 채 밤을 지새웠다. 가슴팍에 파묻힌 그녀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바실리안은 밤새 그녀의 정수리에 긴 입맞춤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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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바실리안은 바닥에 엎드려 떨고 있는 의사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침대로 다가가 아그네샤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아 들었다. 핏기 하나 없는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제 가슴팍에 파묻은 그는 방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에게 그녀를 넘겨주었다.“작은 마님을 모시고 즉시 공작저로 돌아가라. 메리에게 아그네샤의 옷을 갈아입히라 전하고 주치의들 전부 대기 시켜 놓도록.”“존명!”기사가 아그네샤를 조심스레 받아 안고 서둘러 저택을 벗어나자, 바실리안은 천천히 돌아서서 결박당한 채 땅바닥에 꿇어앉아 있는 1 황자에게로 걸음을 옮겼다.묵직한 구두 소리가 복도를 지나 마당의 정적을 깨트렸다. 바실리안의 눈동자는 이미 이성이 마비된 핏빛 광기로 차갑게 뒤틀려 있었다. 서늘한 쇳소리와 함께 그가 검을 뽑아 들었다. 차가운 날 끝이 1 황자의 목덜미를 겨누었다.“바, 바실리안! 내, 내가 잘못했다! 날 살려다오! 황족을 해하는 것은 반역이다, 제발……!”1 황자는 바실리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비현실적인 살기에 오줌을 지리며 사정없이 발악했다. 머리를 바닥에 짓찧으며 비참하게 목숨을 구걸했으나, 바실리안의 눈빛에는 단 한 치의 동요도 없었다.“귀족을 무단으로 납치하고, 아셰라드 가문의 정통 후계자를 살해한 죄.”낮게 깔린 바실리안의 음성은 서리처럼 차갑고 서슬 퍼렜다.“황족이라 해도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즉결 처분합니다.”“아, 안 돼! 살려—!

  • 악녀는 죽음 대신 남주의 침대로 들어갔다   104.

    104.바실리안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 믿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어오르는 본능적인 불안함까지 완전히 누를 수는 없었다.게다가 1 황자는 아그네샤를 순순히 감옥에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이 여전히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기만을 품은 채, 아그네샤를 강제로 끌어내어 화려하지만, 기괴한 옷으로 갈아입게 하거나 식탁에 앉혀 억지로 음식을 씹어 삼키게 했다.1 황자의 비틀린 오만함과 압박을 견뎌내는 매 순간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아랫배가 묵직하게 아려오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처음에는 신경성 복통이려니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었지만, 통증은 날이 갈수록 자궁을 조여오듯 집요해졌다.그렇게 끔찍한 이틀이 흘렀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온몸의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진 상태에서, 또다시 식당으로 끌려가던 아그네샤는 뱃속을 칼로 비트는 듯한 강렬한 통증에 결국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아아윽……!”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주저앉은 아그네샤가 배를 부여잡고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이내, 그녀가 입고 있던 드레스 자락 위로 붉고 진득한 피가 시커멓게 번져나갔다.선명한 하혈에 당황한 1 황자는 서둘러 은신처에 상주시키던 의사를 불러왔다. 침상에 누워 거친 숨을 헐떡이던 아그네샤는 진맥을 마친 의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1 황자에게 올리는 말을 똑똑히 들었다.“유, 유산입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아기 집이…….”유산. 그 한마디가 아그네샤의 뇌리를 망치로 내려치듯 강타했다. 피임

  • 악녀는 죽음 대신 남주의 침대로 들어갔다   103.

    103.하나에는 수십 개 귀족 가문의 연명 서명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북쪽 영지에 묻혀 있던 마수 유인 아티팩트의 마력 감정서와 1 황자의 자금이 흘러간 정황이 명확히 담겨 있었다.“1 황자 전하께서 북쪽 영지 곳곳에 마수 유인 아티팩트를 묻어두셨더군요. 북쪽 장벽이 무너져 마수들에게 점령당한다면, 제국 전체가 위험에 빠진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터. 어찌 제국의 수호를 배운 황족이 이토록 무지하고 참혹한 일을 벌일 수 있단 말입니까!”공작의 서슬 퍼런 목소리가 접견실 안을 울렸다. 황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가는 가운데, 테오도르는 묵직한 시선으로 그를 압박하며 말을 이어갔다.“지금 즉시 1 황자를 체포하여 구금하시고 성품과 능력이 검증된 3 황자 전하를 황태자로 책봉해 주시지요.”“공작! 그게 무슨……!”“폐하, 이 일에 폐하의 손이 미쳤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끝까지 1 황자를 감싸고도 도시며, 저희와 함께 이 제국을 바로잡는 대신 '반역'이라 칭하고자 하신다면… 그대로 따라드리겠습니다.”테오도르 공작의 눈빛에 오만한 황권을 단숨에 짓밟을 수 있는 서늘한 무력이 스쳐 지났다.“허나, 기억하십시오. 아셰라드가 이끄는 반역에 자비란 없습니다.”공작의 서슬 퍼런 경고에 황제는 옥좌의 팔걸이를 쥔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공작의 말이 단 하나도 틀리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황제의 가슴속에는 분통함과 수치심이 들끓었다.자신의 방종과 무능으로 국정이 어지러워

  • 악녀는 죽음 대신 남주의 침대로 들어갔다   102.

    102.오후가 되자 바실리안은 페일리와 대화를 마친 뒤, 공작에게 보낼 편지를 작성하기 위해 집무실로 향했다. 아그네샤는 1 황자가 어떻게 돌발 행동을 할지 모른다며 절대 혼자 있지 말라고 당부하던 바실리안의 말을 떠올리고는 페일리를 찾았다.호위가 든든하게 붙어있었지만, 아그네샤 스스로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인간은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눈보라가 좀 잦아지면 수도로 가자꾸나.”“수도요?”“응. 바실리안이 봄에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더구나. 기간이 촉박하니 어서 올라가 준비해야지.”“하지만 황실에서 아직 승인을 내주지 않았는데… 괜찮을까요?”“그럼. 테오가 걱정하지 말고 결혼식 준비나 잘하라고 했으니, 우린 그 말대로 진행하면 된단다.”공작의 결정을 단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신뢰하는 페일리의 온화한 모습에 아그네샤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아셰라드 공작가의 사람들은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여도 내면에는 서로를 향한 깊은 신뢰와 애정이 가득했다. 차갑고 삭막했던 발로아 가문과는 확연히 다른 다정한 온기였다.아그네샤가 페일리 곁에서 따스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바실리안은 수도의 공작가로 전령을 보낸 뒤 1 황자가 머무는 처소를 찾아갔다. 초조함과 불안감이 짙게 깔린 눈빛을 하면서도 억지로 오만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1 황자의 모습에 바실리안은 소리 없이 헛웃음을 흘렸다.“어쩐 일이지?”“눈보라가 멈추면 수도로 이동할 겁니다. 주인이 비우는 집에서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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