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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 금색 눈의 확인

Author: 뽁뽁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03 21:54:12

"벨포르 공작님. 기사단장 각하께서 직접 호위를 맡으셨습니다."

황궁 서쪽 응접실 문 앞에서 시종이 그렇게 말했다.

잠깐만. 원작에선 이 시점에 세르주랑 말도 안 섞었는데?

손에 낀 장갑 안쪽이 답답해졌다. 새 장갑이라 그런 건지, 내가 지금 도망치고 싶어서 그런 건지 구분이 안 됐다.

황궁 응접실의 문양은 전부 금으로 반짝였고, 바닥은 사람 얼굴이 비칠 만큼 닦여 있었으며, 나는 어느 문이 알현실로 이어지는지 아직도 제대로 몰랐다.

절차는 몸이 외우고 있었다.

응접실에서 기다린다, 황궁 시종이 부르면 일어난다, 황제의 명이 먼저이고 기사단의 안내는 그다음이다.

머리로 외웠다기보다 그냥 알고 있는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문의 생김새가 다 비슷했고, 시종들은 모두 같은 속도로 고개를 숙였다.

귀족 생활 매뉴얼이 있으면 지금 당장 형광펜을 들고 싶었다. 물론 이 세계에 형광펜은 없고, 내게는 장갑 낀 손가락밖에 없었다.

"직접이라니요?"

목소리는 생각보다 공작답게 나갔다. 다행이다. 속은 이미 만신창이인데, 겉은 아직 멀쩡해 보이는 모양이었다.

시종은 허리를 더 낮췄다.

"폐하의 알현실까지 아인하르트 기사단장 각하께서 안내하십니다."

아인하르트.

그 이름이 응접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너무 선명하게 들렸다.

전날 밤 주치의가 내 목을 살피며 "백수근 계열의 지연 독입니다. 게워 낸 양이 많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듯합니다"라고 말했을 때도 이렇게 귀가 서늘하지는 않았다.

독은 최소한 독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었다. 잔량이 적고, 해독제를 먹고, 하루 이틀 쉬면 된다는 식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사람이다. 특히 원작에서 나를 죽이는 쪽에 가까웠던 사람.

다미안은 응접실 문가 안쪽에 서 있었다.

황궁 예법상 공작가 동행자는 그 선에서 더 나아갈 수 없다는듯 하다.

"다미안."

"예, 누님."

"돌아가면 시종들에게 따로 다시 물어. 말을 맞출 시간을 주지 말고, 차 보관실 명부와 어제 주방 출입 기록을 같이 확인해."

다미안의 회색 눈이 아주 잠깐 내 쪽으로 올라왔다.

놀란 건지, 이미 예상했다는 건지 얼굴만 봐서는 알 수 없었다.

"시종은 차를 건넨 하급 시종만 지목했습니다. 다만 배후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드러나게 만들어."

말하고 나서야 손바닥에 땀이 찬 걸 알았다.

독살 미수 다음 날 황궁 알현, 거기에 기사단장의 직접 호위까지.

일정표만 보면 누가 봐도 고위험 프로젝트였다. 전 직장에서 이런 조합을 받았으면 병가를 냈겠지만, 여기서 병가는 아마 죽은 뒤에나 가능할거다.

문밖에서 낮은 발소리가 멈췄다.

응접실의 공기가 조금 바뀌었다. 향초 냄새와 겨울 햇빛이 그대로인데도, 문 너머에 서 있는 사람이 공간의 무게를 바꿨다.

시종들이 동시에 물러섰고, 다미안의 손가락이 소매 끝에서 멎었다.

아, 미쳤네.

문이 열렸다.

***

세르주 아인하르트는 검은 머리에 어깨가 넓었고, 제국 기사단의 문장이 박힌 짙은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예복 위로 걸친 망토가 움직일 때마다 금실 문장이 빛을 받았다가 사라졌다.

갑옷이 아닌데도 칼집이 먼저 보이는 사람이라니, 이건 반칙 아닌가.

그리고 눈.

금색이었다. 원작에서 수도 없이 묘사된 그 금색 눈. 차갑고, 단정하고, 감정이 없다고 했던가.

그런데 지금 그 눈은 처형자의 눈빛도, 정중함도, 의무도 아니었다.

나를 향해 똑바로 와 닿았는데, 찌르기보다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가늠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이 자리에 제대로 서 있는지, 어딘가 바뀐 데가 있는지, 말없이 확인하는 시선.

저 눈은 뭐야.

세르주가 고개를 숙였다.

예의는 완벽했다. 문제는 예의가 너무 완벽해서 도망갈 구멍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 정도로 정중한 사람에게 "혹시 저를 나중에 처형하실 예정이신가요"라고 물을 수는 없었다.

공작 체면의 문제가 아니라, 질문 자체가 너무 수상했다.

"벨포르 공작, 모시러 왔습니다."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 말끝을 끌지 않았고, 불필요한 설명도 없었다.

할 말 먼저 하는 사람.

원작 속 기사단장도 이런 식이긴 했지만, 그때의 세르주는 늘 누군가를 지나쳐 가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지나쳐 가지 않았다.

"기사단장님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입꼬리를 올렸다. 웃는 얼굴이 제대로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얼굴 근육은 공작처럼 움직이는데, 머릿속은 이미 비상구를 찾고 있었다.

세르주의 시선이 내 장갑에 아주 짧게 닿았다가 돌아왔다. 피곤해 보이는지, 떨림을 봤는지, 아니면 독살 미수의 여파를 알아챈 건지 알 수 없었다.

"절차가 바뀌어 제가 안내합니다."

한 문장.

회동은 그것으로 끝났다. 세르주는 더 묻지 않았고, 나 또한 더 묻지 않았다.

묻지 못한 말들만 응접실 안에 그대로 남았다. 왜 당신이 직접 왔는지, 왜 이 시점인지, 왜 그런 눈으로 보는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맛자락이 발목에 스쳤고, 장갑 안쪽의 땀이 식었다.

등 뒤에서 다미안이 아주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 역시 이 배치가 평범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세르주가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길을 내어 주는 동작인데, 이하게도 물러선 사람이 길을 장악하고 있었다.

문밖 복도 끝에는 황궁의 붉은 융단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그 위로 금색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와 있었다.

나는 그 길을 보며 아주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원작의 세르주는 이 시점에 카이렌을 보지 않았다. 카이렌도 세르주에게 말을 걸 기회가 없었다. 둘은 나중에, 훨씬 나쁜 방식으로 얽혔다.

그런데 지금 그는 내 앞에 있었고, 나를 확인했으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얼굴로 황궁 복도를 안내하고 있었다.

...이거 뭔가 삐뚤어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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