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슬론의 시점
오메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들 했죠.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끊임없이 상기시켜줬어요. 그래서 나 같은 존재는 루시엔 같은 사람과 함께할 꿈조차 꿀 수 없다고요. 대학 시절 그가 내게 했던 짓도 그걸 증명해줬고요.
나 같은 오메가는 마치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처럼 취급받았고, 매일매일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왔어요.
그래서 루시엔의 루나가 되는 꿈조차 꾸고 싶지 않았죠.
그런데 이제 그와 결혼하게 됐어요. 1년 동안 그의 짝이 되고요.
그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쓸모없는 오메가일 뿐인 나는 버려지겠죠.
"뭐 하는 거니?" 아빠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고, 나는 움찔했어요.
정신을 차리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발걸음 하나하나가 무거웠고, 루시엔에게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어요.
그의 차가운 푸른 눈이 나를 향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가 베일 뒤에 가려진 내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아마 벨라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저는 제단 앞에 멈춰 서서 루시앙을 마주 보았습니다. 아빠는 우리 앞에 서 계셨죠.
"신부가 입장합니다." 아빠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눈빛에는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가식적인 미소였습니다.
"시간 낭비할 시간 없어." 루시앙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빨리 끝내자."
그의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제 모든 생각이 흩어지고 등골에 열기가 확 올라왔습니다. 그 목소리가 제게 무릎을 꿇고 오럴 섹스를 하라고 명령하거나, 다리를 벌리라고 하는 상상이 떠올랐습니다.
"둘 다 여기에 서명해야 해." 아빠는 옆 탁자에 계약서 두 장을 내려놓았습니다.
이건 결혼식이 아니었어요. 그저 계약서 교환일 뿐이었죠.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루시앙이 제 목소리를 알아채고 모든 걸 망쳐버릴까 봐 차마 묻지 못했습니다.
루시앙은 망설임 없이 서명하고 펜을 떨어뜨린 채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시선이 베일을 꿰뚫었고, 순간 그가 베일 뒤에 있는 얼굴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 무슨 짓을 할지 두려워졌다.
나는 테이블 가까이 다가갔다. 루시앙이 서 있는 곳과 아주 가까웠다. 그의 향수 냄새가 코를 찌르자, 마치 갑자기 마약을 한 사람처럼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침대 위에서 발가벗은 채 그의 밑에 깔려 있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 향기가 코를 가득 채우는 것을.
"멈춰, 슬론…"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정신 차려."
가능한 한 빨리 그에게서 벗어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그에게 나를 안아달라고 애원하게 될지도 몰랐다.
아빠는 이미 계약 내용을 설명해 주셨다. 루시앙과 1년 동안 함께 지내며 그들의 동맹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시 읽을 필요도 없었다. 나는 서류에 서명만 휘갈겨 쓰고 원래 서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다 됐어." 아빠는 계약서를 집어 들고 하나는 루시앙에게 주고 하나는 자신이 가지셨다.
"이제 네 짝을 공개해도 좋다, 알파." 아빠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목이 메었다.
숨이 턱 막히고 루시엔 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그도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집에서 하자."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목소리에는 조금의 장난기도 없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속에서 공포가 치솟았다.
집.
그와 단둘이 있게 될 곳.
루시엔이 갑자기 내 손을 잡고 홀 밖으로 데리고 나갔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그가 내 정체를 알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려워 떨렸다.
그가 차 문을 열었고, 나는 말없이 차에 탔다. 그는 내 옆자리에 앉았고, 운전기사가 아빠의 저택을 나섰다.
"안전벨트 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긴 여정이 될 거야."
그 말은 단순히 차 안에서의 여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그와 함께 보낸 지난 1년을 두고 하는 말처럼 들렸다.
루시엔의 팩으로 가는 길은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차가 큰 저택 앞에 멈추자, 그는 먼저 내려 나를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
곳곳이 시원하고 고요했으며, 석양빛이 저택에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따라와." 루시엔이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위층으로 올라갔고, 나는 그를 따라갔다. 그의 손에는 계약서가 흔들거리는 채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문을 열자, 나는 그가 내 방을 보여주는 줄 알고 뒤따라 들어갔다.
"여기가 우리 방이야." 그가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나를 돌아보며 손을 들어 내 얼굴을 가렸다.
숨이 멎는 듯했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벨라인 척한 것 때문에 그가 나를 때릴까? 나를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낼까?
칼은 내가 돌아가면 괜찮을까?
두려웠지만, 나는 그가 베일을 벗기는 것을 막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어서 왔어, 꼬맹이." 루시앙은 내 얼굴에서 베일을 벗겨 바닥에 던졌다.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고 루시앙을 바라보았다. 그의 차가운 푸른 눈에는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대학 시절 연애편지 사건 이후로 그는 나를 '꼬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만날 때마다 그 별명으로 놀리곤 했다.
다리가 풀려 뒤로 휘청거렸다. "알고 있었어요?"
그건 질문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 표정이 이미 알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벨라랑 짝짓기를 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는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그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태연하게 서 있었다. "처음부터 널 선택했어."
머리가 어지러웠다. 무슨 뜻일까?
마치 내 머릿속 질문들을 이해한 듯 그는 말을 이었다.
"오스카가 너에게 그런 상황을 만들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그녀의 자리에"
나는 혼란스러워 눈을 깜빡였다. 처음부터 나와 결혼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왜 하필 저죠?"
"후계자가 필요해." 그가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끊고 바로 말을 이었다.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
"네 예쁜 자궁에 내 아이를 낳아줄 사람이 바로 너야." 루시앙의 시선이 내 배로 향했다.
나는 그를 보호하듯 뒤로 물러섰다. "안 돼요, 이 동맹은 1년뿐이에요. 그 후에는 끝이에요!"
루시앙은 웃었다. "누가 그랬어?"
"계약서를 제대로 읽지 않았군." 그가 말했다.
그는 계약서를 떨어뜨렸던 테이블로 걸어가더니 내 손에 쾅 내려놓았다. "자."
나는 계약서를 얼굴 가까이 가져가 훑어보았다. 심장이 멎을 듯한 두 조항을 발견했을 때 속이 울렁거렸다.
"1번." "넌 루시엔 콜린스에게 영원히 묶이게 될 거야."
"둘째. 1년 안에 루시엔 콜린스의 아이를 임신하지 못하면 이 계약은 무효가 돼."
계약서가 미끄러져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이건…
내 서명이 있었는데…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내 인생에서 1년만 바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내 인생 전체를 바친 거였어.
내 인생뿐 아니라, 내 자궁까지 루시엔 콜린스에게 넘겨준 거였어.
"아니, 속았어." 나는 천천히 중얼거렸다.
아빠가 날 속였어. 날 벨라로 바꾸고 칼을 미끼로 협박한 것도 모자라, 루시엔과 영원히 함께하겠다는 계약서까지 쓰게 만들었어.
그리고 루시엔…
이 모든 걸 계획했어. 날 알고 있었어. 날 원했던 거야!
"왜 하필 내가 선택된 거지?" 목소리가 서서히 떨리며 물었다.
루시앙이 한 발짝 더 다가오자 내 등은 곧바로 벽에 부딪혔다. 그의 몸이 내 몸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서 있었다.
고개를 들었지만 숨이 가빠졌다. 루시앙은 내 웨딩드레스 허벅지 부분을 접었고, 나는 그가 뭘 하려는 건지 몰라 눈을 깜빡였다.
"들었어, 슬론." 그의 손이 내 허벅지를 지나 천천히 허리로 올라갔다.
숨이 멎을 듯했고, 머리가 따라잡기도 전에 몸이 반응했다. 움찔하며 목구멍 뒤쪽에서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뭘 들었다는 거지?
"네가 내 이름을 입에 달고 자위하는 거 말이야." 그가 말했다. "그래서 내가 널 선택한 거야."
눈이 커졌지만, 그의 손이 내 브래지어를 찾아 가슴을 드러내는 바람에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 여러 번. 그를 생각하며 자위했던 것이다.
"침대에 올라와, 꼬맹이." 아기를 갖기까지 남은 시간은 1년밖에 없어요.
슬론의 시점엠마는 마치 길이 자기에게 무슨 빚이라도 진 것처럼 운전했다.나무들이 헤드라이트를 스치듯 지나갔다. 검은 나무들이 검은 나무들 사이로 휙 지나갔다. 노라는 뒷좌석에 꼼짝 않고 앉아 칼에 손을 얹고 있었다. 나는 앞좌석에 앉아 두 손바닥을 가슴에 얹고, 접은 종이를 피부에 숨긴 채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루시앙.아무 대답도 없었다.루시앙, 대답해.순간 희미한 섬광. 뜨겁고 하얗게 타오르는 고통이, 누군가 계속 불어서 끄려는 촛불처럼 사라졌다."더 빨리." 내가 말했다."시속 110km야." 엠마의 손가락 마디는 핸들에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사슴이라도 치면,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거야.""더 빨리."그녀는 핸들을 더 세게 눌렀다.오스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오스카 생각을 하면 차를 돌려서 그를 침대에서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끌어낼 것 같았다.루시앙. 루시앙. 루시앙.새벽 3시 40분, 블랙스톤의 문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열려 있었다.잠금 해제된 게 아니라, 그냥 활짝 열려 있었다. 철제 문짝 두 개가 활짝 펼쳐져 있었는데, 하나는 경첩에서 반쯤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엠마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차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멈추기도 전에 나는 차에서 내렸다.냄새가 먼저 코를 찔렀다. 구리 냄새, 연기 냄새, 그리고 젖은 털 냄새.그리고 그들이 보였다.시체들. 진입로를 따라, 자갈밭을 가로질러, 가로등 아래 마치 높은 곳에서 떨어진 물건들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회색 망토를 두른 남자가 얼굴을 흙에 파묻고 있었다. 또 다른 남자는 싸구려 검은색 재킷을 입고 있었는데, 한 번에 열 벌씩 사 모으는 그런 종류였다. 거대한 갈색 늑대 한 마리가 옆으로 쓰러져 혀를 내밀고 있었다.
슬론의 시점사흘째 밤, 우연히 그 단서를 발견했다.나는 버나드의 공책을 읽고 또 읽었다. 모서리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날씨, 임금, 끝맺지 못한 문장들……. 공책을 뒤집어 매트리스 밑에 숨기려던 순간, 뒷표지 안쪽이 벌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누군가 칼날로 안감을 갈라놓고는 다시 닫아둔 모양이었다. 그 틈새에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연필로 적힌 네 줄의 글귀.내가 사라지면, 지하실을 찾아. 그는 모든 기록을 보관하거든. 어쩔 수 없는 습관이지. 세 번째 선반, 와인 뒤쪽이야.나는 그 글을 열한 번이나 읽었다.오늘 밤은 루시앙이 내게 허락한 마지막 시간이었다. 다섯 시가 되면 나를 집으로 데려갈 차가 올 것이고, 정오 무렵 칼은 하얀 방 안 수술대 위에 누워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방 밖에서 두 손을 무릎 위에 얹은 채 앉아 있겠지.오늘 밤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한 셈이 되는 것이다."지하실." 내가 루시앙에게 말했다.조심해. 그의 목소리는 가늘고 어딘가 산만했다. 무언가 그를 붙잡고 있는 듯했다. 배경음으로 들려오는 낮은 남자들의 대화 소리도 있었다. 엠마가 너와 함께 갈 거야.엠마는 어디든 나와 함께 다닌다.잘됐군.연결이 가늘어지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나는 그저 그가 바쁜가 보다 생각했다. 나중에야 왜 그때 눈치채지 못했을까 싶었다.해나가 우리에게 열쇠를 건네주었다. 오스카는 침대 곁에 술병을 둔 채 집 꼭대기 층에서 잠들어 있었다.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은 돌로 되어 있었는데, 슬리퍼를 뚫고 발바닥까지 파고들 만큼 차가웠다. 엠마가 촛불을 들고 앞장섰다. 우리 뒤로 문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스르르 닫혔다. 마치 숨을 꾹 참은 것처럼 조용히.지하실은 기억보다 훨씬 넓었다. 먼지와 오래된 와인 냄새가
라이언의 시점루시엔은 새벽녘에 국경을 넘어 돌아왔고, 나는 가장 먼저 정문으로 나가 그를 맞이했다.그게 바로 베타가 하는 일이다. 아침 보고서를 손에 든 채 추위 속에서 '돌아오셨군요'라는 표정을 지으며 서 있는 것. 그리고 알파가 셔츠 단추도 제대로 채우지 못한 채 진흙투성이가 된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10피트(약 3미터) 밖에서도 그 냄새가 확 풍겨왔다.그녀의 냄새였다. 빗물, 따스한 살결, 그리고 성적인 흔적이 그의 옷깃과 피부, 그리고 차 좌석에까지 배어 있었다. 마치 난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처럼 그에게서 그 냄새가 밀려왔다. 마당에 있던 늑대들은 모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것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었고, 무엇보다 '그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알파의 메이트는 알파에게 자신의 흔적을 강렬하게 남기는데, 이는 알파가 그녀에게 남긴 흔적만큼이나 분명한 것이었다.루시엔은 자갈밭 너머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피곤해 보였지만, 동시에 묘하게 생기가 돌았다. 마치 드디어 제대로 잠을 잔 사람처럼."안녕, 라이언.""알파." 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안색이 좋아 보이십니다.""그래?""좋은 밤을 보내신 모양이군요."그는 하마터면 미소로 화답할 뻔했다. 그때 빈스가 경비 초소에서 걸어 나왔고, 두 사람은 순식간에 자리를 떴다. 루시엔은 빈스를 곁에 둔 채 안으로 들어갔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문이 닫힐 때까지 나는 미소를 유지했다.그러고 나니 턱이 아파왔다. 나는 턱을 문질러야 했다.15년이라니. 그는 그저 그녀를 거저 얻은 셈이다.어떤 계획도, 희생도 없었다. 계약서에 서명 한 번, 아무도 원치 않던 여자 하나. 세상은 그것을 그의 품에 툭 던져주고는 '운명'이라 불렀다. 나는 이 무리(팩) 안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설 때마다 피를 흘려야 했다. 반면 그는 그저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을 가졌다.루시엔은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나는 일하러 향했다.가장 먼저
슬론의 시점우리는 새벽 한 시, 집이 숨을 죽인 시간에 움직였다.해나가 앞장섰고, 숄 아래로 랜턴을 가린 채였다. 엠마는 맨 뒤에서 지팡이처럼 쇠지렛대를 허벅지에 댄 채 걸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 끼어 신발을 손에 든 채 걸었다. 젖은 풀밭을 지나, 텃밭 뒤편을 거쳐, 아홉 살 이후로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을 따라 내려갔다.부지 반대편 끝에는 낡은 차고가 있었다. 초록색 문이 달린, 낮고 돌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원래는 말을 두기 위한 공간이었으나, 나중에 오스카의 아버지가 차고로 개조했다. 수년째 아무도 사용하지 않던 곳이었다."왜 아무도 문을 열지 않는 거야?" 내가 속삭였다.해나가 대답했다. "오스카 말로는 지붕에서 물이 샌대. 그런데 지붕을 고치지도 않고, 누구도 지붕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해.""어디야?" 뤼시앵이 물었다."차고. 텃밭 뒤편. 해나랑 같이 있어. 엠마도 있고.""보이는 걸 설명해 봐.""다 말해줄게.""저녁 식사 때도 그렇게 말했잖아. 그 뒤로는 아무 말도 없었고."나는 움찔했다. "오늘 밤에 다 말해줄게. 전부 다. 약속해."마지못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고는 대답이 돌아왔다. "꼭 지켜야 해."해나가 열쇠를 돌렸다.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자마자 퀴퀴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 먼지 냄새, 엔진 오일 냄새, 그리고 낡아서 상해버린 캔버스 천 냄새였다. 해나가 랜턴을 켰다.차고는 길고 좁았다. 뒤쪽 벽면 근처에는 방수포를 덮어씌운 검은색 세단이 있었고, 그 뒤로는 지붕 서까래까지 닿을 정도로 골판지 상자들이 쌓여 있었다.수십 개의 상자였다. 흘림체로 정성스럽게 적힌 라벨이 붙어 있었다."버나드 거야." 해나가 속삭였다. 그가 떠난 뒤, 아무도 이 상자들을 치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오스카는 그냥 그대로 두라고 했다.나는 가장 가까운 상자 더미 앞에 무릎을 꿇었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의 영수증들. 그다음 상자에는...'문라이트(Moonlight) 차량 정비 기록'. 그다음 상자에는... '편지(
슬론의 시점“잠이 오지 않아서요.” 내가 말했다. “정원을 좀 걸었어요.”오스카는 내 옷자락에 묻은 흙을 살피더니, 이내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넸다. 그게 전부였다. 그는 정말로 나를 그냥 보내주었다. 나는 잠시도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차라리 그가 소리를 질렀더라면 나았을 것이다. 하루 종일 그 느낌이 떠나지 않았다. 마치 내 접시 옆에 칼이 놓여 있는 것을 알아챈 듯한, 그런 불길하고 서늘한 감각이었다.그날 저녁 7시, 해나는 내게 푸른색 실크 드레스를 입히고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거울 속의 나는 딱 의도된 모습 그대로였다. 오스카의 순종적인 딸, 그리고 ‘문라이트(Moonlight)’와 ‘블랙스톤(Blackstone)’이 이제 하나의 가족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존재.*웃어.* 내 머릿속에서 루시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어딘가 ‘작전실’에 있는 모양이었다. 종이가 스치는 듯한, 그의 생각들이 내는 희미한 바스락거림이 느껴졌다. *잘하고 있어.*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곧 하게 될 거야.*엠마가 나를 식당까지 데려다주었고, 그녀는 벽 쪽에 자리를 잡고 섰다. 나는 안으로 들어섰다.촛불이 켜진 긴 식탁 주위로 여섯 명의 원로들이 앉아 있었다. 낡은 가죽을 연상케 하는 얼굴을 한, 어두운 코트를 걸친 노인들이었다. 오스카가 식탁 상석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었다.“내 딸, 블랙스톤의 루나(Luna)라네.”노인들이 만족스러운 듯 웅성거렸다.나는 방을 가로질러 다가갔고, 그가 내 뺨에 입 맞추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의 입술은 메말라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내 어깨를 잡고는 원로들을 향해 나를 돌려세웠다. 마치 새로 얻은 말을 자랑스럽게 선보이는 사람처럼, 단단하고 확고한 손길이었다. 방 건너편에서 엠마의 시선이 내 시선과 마주쳤다. 촛불 너머로 닿아온 그 눈빛은, 마치 내 등에 얹힌 손길처럼 흔들림 없이 든든했다.“슬론은 그 어떤 계약보다도 이 동맹을 위
슬론의 시점사흘. 나는 그날들을 마치 동전이라도 되는 양 하나하나 세어왔다.사흘째 밤, 나는 침대에 앉아 램프 불빛 아래 손목을 뒤집어 보였다. 그곳에는 날짜들이 적혀 있었다. 잉크로 적었다가, 씻어내고, 다시 적어 넣은 날짜들. T., 4월 3일. T., 5월 3일. T., 6월 3일. 기록상으로는 그 날짜들이 누구를 향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게 손을 내밀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7페이지는 찾지 못했다. 버나드도 찾지 못했다.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오스카는 사흘간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내게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그 미소 하나하나가 마치 누군가 서서히 손을 옥죄어 오는 것처럼 느껴졌다."시간 다 됐어." 머릿속에서 뤼시앵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알아."차는 정문에 있어."아직 준비가 안 됐어."그것도 알아." 긴 침묵이 흘렀다. "슬론. 원하는 걸 말해."나는 눈을 감았다. '시간이 더 필요해.'"그럼 나도 대가를 받아야겠군."뭐를?"너. 오늘 밤." 그의 목소리가 낮고 거칠게 가라앉았다. "숲 남쪽 끝, 낡은 울타리 옆으로 와. 자정까지. 네가 오든, 내가 널 데리
슬론의 시점"벨라가 사라졌어요!"심장이 쿵쾅거리는 순간, 나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빠가 열린 문 옆에 서 계셨는데,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고 눈에는 분노의 기색이 역력했다.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아빠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벨라가 사라졌다고요? 무슨 말씀이세요?"라고 물었다."내 말 똑똑히 들었잖아, 슬론." 아빠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심장이 쿵 떨어졌다.사라졌다고요?짝짓기 날을 하루 앞두고요?"뭐 좀 가지러 나갔을 수도 있어요. 곧 돌아오실 거예요—"라고 말하려 했지만, 아빠의
슬론의 시점그의 가슴은 위로 솟구쳤다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오늘 밤, 나는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던 순진한 소녀 슬론이 아니었다. 나는 루시앙의 계약 아내, 슬론이었다. 그의 성기는 허벅지 사이에서 꼿꼿이 서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혈관이 빠르게 pulsating했다. 그리고 한 가지 생각이 나른하게 내 마음속에 맴돌았다.이 모든 건 내 거야.나는 천천히 침대 아래로 내려가 그의 발치로 가서 발목을 감쌌다. "말해줘." 나는 속삭이며 그의 엄지발가락 하나를 따뜻한 입에 물었다."뭘 원해?" 이번에는 눈을 감고 그의
슬론의 시점루시엔이 나를 바닥에서 번쩍 들어 올려 침대에 눕히자 숨이 턱 막혔다. 그는 내게서 떨어지지 않고 얼굴을 너무 가까이 대서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그의 몸이 내 맨 가슴에 밀착되었고, 그의 손은 내 등에 닿았다. 나도 모르게 침대에서 몸을 뒤로 젖히며 그가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 두었다.그는 내 가운의 지퍼를 내리고 순식간에 벗겨냈다. 차가운 공기가 확 밀려왔고, 나는 팬티만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루시엔은 나를 침대에 눕히고 그의 거대한 몸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이제부터는…" 그가 낮게 으르렁거
슬론의 시점아빠 서재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허락을 기다리지 않고 문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아빠는 회전 의자에 앉아 책상 위를 천천히 두드리고 있었다."정말 이러실 거예요?" 나는 아빠 앞에 멈춰 서서 물었다.우리 눈이 마주쳤고, 침묵이 흘렀다. 방 안에는 아빠의 손가락 두드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그 애는 내 아이가 아니야." 아빠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아빠의 말이 끝나고 다시 침묵이 흘렀고, 아빠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떠올랐다."그럼 그 애는 쓸모없어."아빠는 덧붙였다. "어차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