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슬론의 시점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고, 모든 소리가 마치 누군가 뜯어낸 것처럼 사라졌다.
입을 벌렸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손가락은 전화기를 꽉 쥐었고, 떨리기 시작했다.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칼이 죽어가고 있을 리가…
전화를 끊자마자 방에서 뛰쳐나와 계단을 뛰어 내려가다가 발목을 삐끗할 뻔했다.
"슬론, 무슨 일이야?" 한나가 물었지만, 대답할 때가 아니었다.
가슴속에서 공포가 치솟았고, 병원으로 가는 내내 드레스를 꽉 움켜쥐었다. 차가 멈추자마자 운전사가 한마디도 하기 전에 뛰쳐나왔다.
병원 안에서,
눈물로 시야가 흐릿해진 채 병원 복도를 뛰어다녔다. 머릿속은 온통 혼란스러웠고, 칼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걷다가 누군가와 부딪쳐 바닥에 쿵 하고 넘어졌다.
손바닥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며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심해, 이년아!"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죄송해요." 숨이 턱 막혔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의 얼굴조차 쳐다볼 수 없었다. 칼 생각뿐이었다… 그에게 가야 해.
몸을 겨우 일으켜 세워 복도를 따라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칼의 병실이 있는 2층으로 가야 했다.
떨리는 손과 가쁜 숨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버튼을 계속해서 눌렀다.
"제발…" 속삭이듯 애원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두 대의 엘리베이터가 모두 사용 중이었다.
공포에 질려 주위를 둘러보다가 계단에 시선이 멈췄다. 망설일 틈도 없이 계단을 향해 달려가 2층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올라갔다.
"107호실"이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때 그녀가 보였다.
셀리아 간호사였다.
그녀는 칼의 병실 문 앞에 서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고, 그 모습에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쿵 떨어졌다.
그 순간,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바라건대…
칼이 괜찮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지나쳐 병실 문을 열었다.
칼은 침대에 누워 있었고, 산소마스크가 여전히 코와 입을 가리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칼의 눈은 감겨 있었지만, 그의 가슴은 느리고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아있어… 숨을 쉬고 있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옆에 앉아 그의 손을 잡았다.
기계 수치는 정상이었고, 호흡도 괜찮았고, 다른 모든 것도 괜찮았다."칼…." 시야를 흐리게 했던 눈물이 마침내 얼굴을 타고 쏟아졌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도 그는 이랬다. 의사들은 그가 낭포성 섬유증이 있고 폐가 서서히 손상되고 있다고 했다. 아직 수술을 받기에는 너무 어려서, 수술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산소호흡기에 의존해야 한다고 했다.
"미스…" 뒤에서 셀리아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얼굴이 굳어졌다.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 그녀를 마주 보았다.
"그가 죽어가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나는 여전히 감정을 억누르려 애쓰며 침을 삼켰다. "그는 완전히 괜찮아 보여요."
간호사가 대답하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의사가 들어왔다.
"한 시간 후에 산소마스크를 벗을 겁니다." 의사가 말했다. "산소 마스크가 벗겨지면 오래 못 버틸 거라는 거 알잖아."
눈을 깜빡였다.
네, 알아요. 칼은 식사할 때만 벗고 15분도 안 돼서 다시 씌워져요.
"무슨 말씀이세요, 의사 선생님?" 목소리가 떨리고 눈은 혼란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왜 마스크를 벗기시는 거예요?"
"지시를 받았어." 의사는 마치 대본을 읽는 것처럼 또박또박 말했다. "알파 비앙키가 너에게 전하라고 했어."
알파 비앙키.
아빠였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뒷걸음질 치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리가…"
아빠는 내가 루시엔 콜린스와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칼을 죽게 내버려 둘 리가 없어.
"안 돼요!" 나는 의사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소리쳤다. "당신은 의사잖아요, 아픈 여덟 살짜리 아이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죄송합니다." 의사의 입술이 얇게 굳어졌다. 내가 늘 싫어했던, 동정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알파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돌아서서 나가려 했지만, 나는 그의 앞을 막아서고 코트를 잡아당겼다. 다시 눈물이 차올랐고, 이번에는 빗방울처럼 쏟아졌다.
"안 돼요, 의사가 환자에게 이렇게 할 리 없어요..." 나는 울먹였다. "그 마스크를 벗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잖아요."
의사의 턱이 굳어졌다.
그는 천천히 손을 움직여 내 손을 코트에서 떼어냈다.
"내가 그 마스크를 벗으면 면허를 잃게 돼."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벗지 않으면 목숨을 잃게 된다고."
"이제 알겠어요, 슬론 양?"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의사는 나를 지나쳐 갔고, 간호사 셀리아가 뒤따라갔다. 내 시선은 천천히 방 안을 훑어보다가 칼에게 닿았다.
갈색 머리카락은 뒤로 단정하게 넘겨져 있었고, 그의 왜소한 몸은 침대에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
한 시간.
그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은 단 한 시간뿐이었다.
무엇으로부터
슬론의 시점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고, 모든 소리가 마치 누군가 뜯어낸 것처럼 사라졌다.
입을 벌렸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손가락은 전화기를 꽉 쥐었고, 떨리기 시작했다.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칼이 죽어가고 있을 리가…
전화를 끊자마자 방에서 뛰쳐나와 계단을 뛰어 내려가다가 발목을 삐끗할 뻔했다.
"슬론, 무슨 일이야?" 한나가 물었지만, 대답할 때가 아니었다.
가슴속에서 공포가 치솟았고, 병원으로 가는 내내 드레스를 꽉 움켜쥐었다. 차가 멈추자마자 운전사가 한마디도 하기 전에 뛰쳐나왔다.
병원 안에서,
눈물로 시야가 흐릿해진 채 병원 복도를 뛰어다녔다. 머릿속은 온통 혼란스러웠고, 칼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걷다가 누군가와 부딪쳐 바닥에 쿵 하고 넘어졌다.
손바닥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며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심해, 이년아!"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죄송해요." 숨이 턱 막혔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의 얼굴조차 쳐다볼 수 없었다. 칼 생각뿐이었다… 그에게 가야 해.
몸을 겨우 일으켜 세워 복도를 따라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칼의 병실이 있는 2층으로 가야 했다.
떨리는 손과 가쁜 숨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버튼을 계속해서 눌렀다.
"제발…" 속삭이듯 애원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두 대의 엘리베이터가 모두 사용 중이었다.
공포에 질려 주위를 둘러보다가 계단에 시선이 멈췄다. 망설일 틈도 없이 계단을 향해 달려가 2층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올라갔다.
"107호실"이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때 그녀가 보였다.
셀리아 간호사였다.
그녀는 칼의 병실 문 앞에 서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고, 그 모습에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쿵 떨어졌다.
그 순간,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바라건대…
칼이 괜찮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지나쳐 병실 문을 열었다.
칼은 침대에 누워 있었고, 산소마스크가 여전히 코와 입을 가리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칼의 눈은 감겨 있었지만, 그의 가슴은 느리고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아있어… 숨을 쉬고 있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옆에 앉아 그의 손을 잡았다.
기계 수치는 정상이었고, 호흡도 괜찮았고, 다른 모든 것도 괜찮았다."칼…." 시야를 흐리게 했던 눈물이 마침내 얼굴을 타고 쏟아졌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도 그는 이랬다. 의사들은 그가 낭포성 섬유증이 있고 폐가 서서히 손상되고 있다고 했다. 아직 수술을 받기에는 너무 어려서, 수술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산소호흡기에 의존해야 한다고 했다.
"미스…" 뒤에서 셀리아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얼굴이 굳어졌다.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 그녀를 마주 보았다.
"그가 죽어가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나는 여전히 감정을 억누르려 애쓰며 침을 삼켰다. "그는 완전히 괜찮아 보여요."
간호사가 대답하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의사가 들어왔다.
"한 시간 후에 산소마스크를 벗을 겁니다." 의사가 말했다. "산소 마스크가 벗겨지면 오래 못 버틸 거라는 거 알잖아."
눈을 깜빡였다.
네, 알아요. 칼은 식사할 때만 벗고 15분도 안 돼서 다시 씌워져요.
"무슨 말씀이세요, 의사 선생님?" 목소리가 떨리고 눈은 혼란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왜 마스크를 벗기시는 거예요?"
"지시를 받았어." 의사는 마치 대본을 읽는 것처럼 또박또박 말했다. "알파 비앙키가 너에게 전하라고 했어."
알파 비앙키.
아빠였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뒷걸음질 치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리가…"
아빠는 내가 루시엔 콜린스와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칼을 죽게 내버려 둘 리가 없어.
"안 돼요!" 나는 의사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소리쳤다. "당신은 의사잖아요, 아픈 여덟 살짜리 아이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죄송합니다." 의사의 입술이 얇게 굳어졌다. 내가 늘 싫어했던, 동정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알파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돌아서서 나가려 했지만, 나는 그의 앞을 막아서고 코트를 잡아당겼다. 다시 눈물이 차올랐고, 이번에는 빗방울처럼 쏟아졌다.
"안 돼요, 의사가 환자에게 이렇게 할 리 없어요..." 나는 울먹였다. "그 마스크를 벗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잖아요."
의사의 턱이 굳어졌다.
그는 천천히 손을 움직여 내 손을 코트에서 떼어냈다.
"내가 그 마스크를 벗으면 면허를 잃게 돼."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벗지 않으면 목숨을 잃게 된다고."
"이제 알겠어요, 슬론 양?"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의사는 나를 지나쳐 갔고, 간호사 셀리아가 뒤따라갔다. 내 시선은 천천히 방 안을 훑어보다가 칼에게 닿았다.
갈색 머리카락은 뒤로 단정하게 넘겨져 있었고, 그의 왜소한 몸은 침대에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
한 시간.
그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은 단 한 시간뿐이었다.
무엇으로부터
슬론의 시점엠마는 마치 길이 자기에게 무슨 빚이라도 진 것처럼 운전했다.나무들이 헤드라이트를 스치듯 지나갔다. 검은 나무들이 검은 나무들 사이로 휙 지나갔다. 노라는 뒷좌석에 꼼짝 않고 앉아 칼에 손을 얹고 있었다. 나는 앞좌석에 앉아 두 손바닥을 가슴에 얹고, 접은 종이를 피부에 숨긴 채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루시앙.아무 대답도 없었다.루시앙, 대답해.순간 희미한 섬광. 뜨겁고 하얗게 타오르는 고통이, 누군가 계속 불어서 끄려는 촛불처럼 사라졌다."더 빨리." 내가 말했다."시속 110km야." 엠마의 손가락 마디는 핸들에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사슴이라도 치면,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거야.""더 빨리."그녀는 핸들을 더 세게 눌렀다.오스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오스카 생각을 하면 차를 돌려서 그를 침대에서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끌어낼 것 같았다.루시앙. 루시앙. 루시앙.새벽 3시 40분, 블랙스톤의 문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열려 있었다.잠금 해제된 게 아니라, 그냥 활짝 열려 있었다. 철제 문짝 두 개가 활짝 펼쳐져 있었는데, 하나는 경첩에서 반쯤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엠마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차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멈추기도 전에 나는 차에서 내렸다.냄새가 먼저 코를 찔렀다. 구리 냄새, 연기 냄새, 그리고 젖은 털 냄새.그리고 그들이 보였다.시체들. 진입로를 따라, 자갈밭을 가로질러, 가로등 아래 마치 높은 곳에서 떨어진 물건들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회색 망토를 두른 남자가 얼굴을 흙에 파묻고 있었다. 또 다른 남자는 싸구려 검은색 재킷을 입고 있었는데, 한 번에 열 벌씩 사 모으는 그런 종류였다. 거대한 갈색 늑대 한 마리가 옆으로 쓰러져 혀를 내밀고 있었다.
슬론의 시점사흘째 밤, 우연히 그 단서를 발견했다.나는 버나드의 공책을 읽고 또 읽었다. 모서리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날씨, 임금, 끝맺지 못한 문장들……. 공책을 뒤집어 매트리스 밑에 숨기려던 순간, 뒷표지 안쪽이 벌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누군가 칼날로 안감을 갈라놓고는 다시 닫아둔 모양이었다. 그 틈새에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연필로 적힌 네 줄의 글귀.내가 사라지면, 지하실을 찾아. 그는 모든 기록을 보관하거든. 어쩔 수 없는 습관이지. 세 번째 선반, 와인 뒤쪽이야.나는 그 글을 열한 번이나 읽었다.오늘 밤은 루시앙이 내게 허락한 마지막 시간이었다. 다섯 시가 되면 나를 집으로 데려갈 차가 올 것이고, 정오 무렵 칼은 하얀 방 안 수술대 위에 누워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방 밖에서 두 손을 무릎 위에 얹은 채 앉아 있겠지.오늘 밤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한 셈이 되는 것이다."지하실." 내가 루시앙에게 말했다.조심해. 그의 목소리는 가늘고 어딘가 산만했다. 무언가 그를 붙잡고 있는 듯했다. 배경음으로 들려오는 낮은 남자들의 대화 소리도 있었다. 엠마가 너와 함께 갈 거야.엠마는 어디든 나와 함께 다닌다.잘됐군.연결이 가늘어지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나는 그저 그가 바쁜가 보다 생각했다. 나중에야 왜 그때 눈치채지 못했을까 싶었다.해나가 우리에게 열쇠를 건네주었다. 오스카는 침대 곁에 술병을 둔 채 집 꼭대기 층에서 잠들어 있었다.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은 돌로 되어 있었는데, 슬리퍼를 뚫고 발바닥까지 파고들 만큼 차가웠다. 엠마가 촛불을 들고 앞장섰다. 우리 뒤로 문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스르르 닫혔다. 마치 숨을 꾹 참은 것처럼 조용히.지하실은 기억보다 훨씬 넓었다. 먼지와 오래된 와인 냄새가
라이언의 시점루시엔은 새벽녘에 국경을 넘어 돌아왔고, 나는 가장 먼저 정문으로 나가 그를 맞이했다.그게 바로 베타가 하는 일이다. 아침 보고서를 손에 든 채 추위 속에서 '돌아오셨군요'라는 표정을 지으며 서 있는 것. 그리고 알파가 셔츠 단추도 제대로 채우지 못한 채 진흙투성이가 된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10피트(약 3미터) 밖에서도 그 냄새가 확 풍겨왔다.그녀의 냄새였다. 빗물, 따스한 살결, 그리고 성적인 흔적이 그의 옷깃과 피부, 그리고 차 좌석에까지 배어 있었다. 마치 난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처럼 그에게서 그 냄새가 밀려왔다. 마당에 있던 늑대들은 모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것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었고, 무엇보다 '그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알파의 메이트는 알파에게 자신의 흔적을 강렬하게 남기는데, 이는 알파가 그녀에게 남긴 흔적만큼이나 분명한 것이었다.루시엔은 자갈밭 너머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피곤해 보였지만, 동시에 묘하게 생기가 돌았다. 마치 드디어 제대로 잠을 잔 사람처럼."안녕, 라이언.""알파." 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안색이 좋아 보이십니다.""그래?""좋은 밤을 보내신 모양이군요."그는 하마터면 미소로 화답할 뻔했다. 그때 빈스가 경비 초소에서 걸어 나왔고, 두 사람은 순식간에 자리를 떴다. 루시엔은 빈스를 곁에 둔 채 안으로 들어갔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문이 닫힐 때까지 나는 미소를 유지했다.그러고 나니 턱이 아파왔다. 나는 턱을 문질러야 했다.15년이라니. 그는 그저 그녀를 거저 얻은 셈이다.어떤 계획도, 희생도 없었다. 계약서에 서명 한 번, 아무도 원치 않던 여자 하나. 세상은 그것을 그의 품에 툭 던져주고는 '운명'이라 불렀다. 나는 이 무리(팩) 안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설 때마다 피를 흘려야 했다. 반면 그는 그저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을 가졌다.루시엔은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나는 일하러 향했다.가장 먼저
슬론의 시점우리는 새벽 한 시, 집이 숨을 죽인 시간에 움직였다.해나가 앞장섰고, 숄 아래로 랜턴을 가린 채였다. 엠마는 맨 뒤에서 지팡이처럼 쇠지렛대를 허벅지에 댄 채 걸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 끼어 신발을 손에 든 채 걸었다. 젖은 풀밭을 지나, 텃밭 뒤편을 거쳐, 아홉 살 이후로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을 따라 내려갔다.부지 반대편 끝에는 낡은 차고가 있었다. 초록색 문이 달린, 낮고 돌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원래는 말을 두기 위한 공간이었으나, 나중에 오스카의 아버지가 차고로 개조했다. 수년째 아무도 사용하지 않던 곳이었다."왜 아무도 문을 열지 않는 거야?" 내가 속삭였다.해나가 대답했다. "오스카 말로는 지붕에서 물이 샌대. 그런데 지붕을 고치지도 않고, 누구도 지붕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해.""어디야?" 뤼시앵이 물었다."차고. 텃밭 뒤편. 해나랑 같이 있어. 엠마도 있고.""보이는 걸 설명해 봐.""다 말해줄게.""저녁 식사 때도 그렇게 말했잖아. 그 뒤로는 아무 말도 없었고."나는 움찔했다. "오늘 밤에 다 말해줄게. 전부 다. 약속해."마지못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고는 대답이 돌아왔다. "꼭 지켜야 해."해나가 열쇠를 돌렸다.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자마자 퀴퀴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 먼지 냄새, 엔진 오일 냄새, 그리고 낡아서 상해버린 캔버스 천 냄새였다. 해나가 랜턴을 켰다.차고는 길고 좁았다. 뒤쪽 벽면 근처에는 방수포를 덮어씌운 검은색 세단이 있었고, 그 뒤로는 지붕 서까래까지 닿을 정도로 골판지 상자들이 쌓여 있었다.수십 개의 상자였다. 흘림체로 정성스럽게 적힌 라벨이 붙어 있었다."버나드 거야." 해나가 속삭였다. 그가 떠난 뒤, 아무도 이 상자들을 치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오스카는 그냥 그대로 두라고 했다.나는 가장 가까운 상자 더미 앞에 무릎을 꿇었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의 영수증들. 그다음 상자에는...'문라이트(Moonlight) 차량 정비 기록'. 그다음 상자에는... '편지(
슬론의 시점“잠이 오지 않아서요.” 내가 말했다. “정원을 좀 걸었어요.”오스카는 내 옷자락에 묻은 흙을 살피더니, 이내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넸다. 그게 전부였다. 그는 정말로 나를 그냥 보내주었다. 나는 잠시도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차라리 그가 소리를 질렀더라면 나았을 것이다. 하루 종일 그 느낌이 떠나지 않았다. 마치 내 접시 옆에 칼이 놓여 있는 것을 알아챈 듯한, 그런 불길하고 서늘한 감각이었다.그날 저녁 7시, 해나는 내게 푸른색 실크 드레스를 입히고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거울 속의 나는 딱 의도된 모습 그대로였다. 오스카의 순종적인 딸, 그리고 ‘문라이트(Moonlight)’와 ‘블랙스톤(Blackstone)’이 이제 하나의 가족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존재.*웃어.* 내 머릿속에서 루시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어딘가 ‘작전실’에 있는 모양이었다. 종이가 스치는 듯한, 그의 생각들이 내는 희미한 바스락거림이 느껴졌다. *잘하고 있어.*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곧 하게 될 거야.*엠마가 나를 식당까지 데려다주었고, 그녀는 벽 쪽에 자리를 잡고 섰다. 나는 안으로 들어섰다.촛불이 켜진 긴 식탁 주위로 여섯 명의 원로들이 앉아 있었다. 낡은 가죽을 연상케 하는 얼굴을 한, 어두운 코트를 걸친 노인들이었다. 오스카가 식탁 상석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었다.“내 딸, 블랙스톤의 루나(Luna)라네.”노인들이 만족스러운 듯 웅성거렸다.나는 방을 가로질러 다가갔고, 그가 내 뺨에 입 맞추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의 입술은 메말라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내 어깨를 잡고는 원로들을 향해 나를 돌려세웠다. 마치 새로 얻은 말을 자랑스럽게 선보이는 사람처럼, 단단하고 확고한 손길이었다. 방 건너편에서 엠마의 시선이 내 시선과 마주쳤다. 촛불 너머로 닿아온 그 눈빛은, 마치 내 등에 얹힌 손길처럼 흔들림 없이 든든했다.“슬론은 그 어떤 계약보다도 이 동맹을 위
슬론의 시점사흘. 나는 그날들을 마치 동전이라도 되는 양 하나하나 세어왔다.사흘째 밤, 나는 침대에 앉아 램프 불빛 아래 손목을 뒤집어 보였다. 그곳에는 날짜들이 적혀 있었다. 잉크로 적었다가, 씻어내고, 다시 적어 넣은 날짜들. T., 4월 3일. T., 5월 3일. T., 6월 3일. 기록상으로는 그 날짜들이 누구를 향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게 손을 내밀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7페이지는 찾지 못했다. 버나드도 찾지 못했다.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오스카는 사흘간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내게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그 미소 하나하나가 마치 누군가 서서히 손을 옥죄어 오는 것처럼 느껴졌다."시간 다 됐어." 머릿속에서 뤼시앵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알아."차는 정문에 있어."아직 준비가 안 됐어."그것도 알아." 긴 침묵이 흘렀다. "슬론. 원하는 걸 말해."나는 눈을 감았다. '시간이 더 필요해.'"그럼 나도 대가를 받아야겠군."뭐를?"너. 오늘 밤." 그의 목소리가 낮고 거칠게 가라앉았다. "숲 남쪽 끝, 낡은 울타리 옆으로 와. 자정까지. 네가 오든, 내가 널 데리
슬론의 시점그의 가슴은 위로 솟구쳤다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오늘 밤, 나는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던 순진한 소녀 슬론이 아니었다. 나는 루시앙의 계약 아내, 슬론이었다. 그의 성기는 허벅지 사이에서 꼿꼿이 서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혈관이 빠르게 pulsating했다. 그리고 한 가지 생각이 나른하게 내 마음속에 맴돌았다.이 모든 건 내 거야.나는 천천히 침대 아래로 내려가 그의 발치로 가서 발목을 감쌌다. "말해줘." 나는 속삭이며 그의 엄지발가락 하나를 따뜻한 입에 물었다."뭘 원해?" 이번에는 눈을 감고 그의
슬론의 시점루시엔이 나를 바닥에서 번쩍 들어 올려 침대에 눕히자 숨이 턱 막혔다. 그는 내게서 떨어지지 않고 얼굴을 너무 가까이 대서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그의 몸이 내 맨 가슴에 밀착되었고, 그의 손은 내 등에 닿았다. 나도 모르게 침대에서 몸을 뒤로 젖히며 그가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 두었다.그는 내 가운의 지퍼를 내리고 순식간에 벗겨냈다. 차가운 공기가 확 밀려왔고, 나는 팬티만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루시엔은 나를 침대에 눕히고 그의 거대한 몸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이제부터는…" 그가 낮게 으르렁거
슬론의 시점오메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들 했죠.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끊임없이 상기시켜줬어요. 그래서 나 같은 존재는 루시엔 같은 사람과 함께할 꿈조차 꿀 수 없다고요. 대학 시절 그가 내게 했던 짓도 그걸 증명해줬고요.나 같은 오메가는 마치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처럼 취급받았고, 매일매일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왔어요.그래서 루시엔의 루나가 되는 꿈조차 꾸고 싶지 않았죠.그런데 이제 그와 결혼하게 됐어요. 1년 동안 그의 짝이 되고요.그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쓸모없는 오메가일 뿐인 나는 버려지겠죠.
슬론의 시점아빠 서재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허락을 기다리지 않고 문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아빠는 회전 의자에 앉아 책상 위를 천천히 두드리고 있었다."정말 이러실 거예요?" 나는 아빠 앞에 멈춰 서서 물었다.우리 눈이 마주쳤고, 침묵이 흘렀다. 방 안에는 아빠의 손가락 두드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그 애는 내 아이가 아니야." 아빠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아빠의 말이 끝나고 다시 침묵이 흘렀고, 아빠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떠올랐다."그럼 그 애는 쓸모없어."아빠는 덧붙였다. "어차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