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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결혼 말고 원하는 게 뭐야?

Author: 도화
아이가 깊이 잠든 후 서지혁은 조심스레 아이를 내려놓았다.

“내려가서 얘기해.”

세 사람은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거실에 서지혁의 할머니 한효진이 소파에 등을 기댄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한 가정부가 뒤에서 관자놀이를 주물러주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인기척에 한효진은 손을 들어 가정부를 물렸다.

“정우 자?”

서지혁이 답했다.

“네.”

한효진의 안색이 좋지 않은 걸 보고 바로 물었다.

“어디 편찮으세요?”

한효진이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

그녀의 시선이 하시윤에게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훑으면서 호의적이지도 적대적이지도 않는 태도로 물었다.

“정우 만났어?”

“네.”

하시윤의 대답을 들은 한효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났으면 됐어. 어렸을 때부터 곁에서 키우지 않았으니 정이 없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이젠 얼굴을 봐서 마음이 달라질 거야. 앞으로 네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라 믿는다.”

하시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서지혁이 그녀를 이곳에 데려온 목적을 알고 있었다. 열 달 품어 낳은 친자식을 직접 보게 하려는 의도였다. 만나지 않았다면 마음을 독하게 먹을 수 있지만 만나면 모성애 때문에 모든 걸 양보하게 되니까.

한효진이 또 말했다.

“앉아. 서 있지만 말고.”

심연정이 먼저 한효진의 곁에 앉았다.

“할머니, 왜 이렇게 피곤해 보이세요? 요즘 잠을 잘 못 주무셨어요? 제가 아는 한의사가 있는데 몸조리에는 아주 일가견이 있거든요. 그분 불러서 진맥 한번 받아보시는 건 어떠세요?”

한효진은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너무 민폐 끼치는 거 아니야?”

“민폐라니요.”

심연정은 한효진에게 바짝 다가가 애교를 부렸다.

“할머니께서 건강하셔야 저희가 마음이 편하죠.”

한효진은 심연정이 효심이 깊다고 칭찬했다. 시선이 하시윤에게 닿았을 때 표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지만 하시윤을 탐탁지 않아 하는 건 눈에 보였다.

하지만 그 탐탁지 않음이 혐오라기보다는 그저 하시윤과 엮이고 싶지 않은 마음 같았다.

한효진은 잠깐 더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옆에 서 있던 가정부가 재빨리 다가와 그녀를 부축했다.

“너희끼리 얘기해. 난 좀 피곤해서 들어가 봐야겠다.”

그러고는 심연정을 불렀다.

“연정이는 이리 와서 말동무 좀 해주렴.”

그 말에 멈칫한 심연정은 서지혁과 하시윤을 번갈아 보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한효진을 따라 올라갔다.

거실에 서지혁과 하시윤 둘만 남았다. 서지혁은 담뱃갑을 꺼내 손가락으로 밑을 툭 쳤다. 담배 한 개비가 튀어나오자 바로 뽑아 불을 붙였다.

하시윤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먼저 말을 건넸다.

“적합성 검사 결과 가족들도 다 아는 거지?”

서지혁이 답했다.

“응. 지 교수님이 우리 할머니 오랜 친구인데 결과가 나오자마자 바로 식구들한테 연락했어.”

그 말인즉슨 유일한 대안도 모두가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시윤이 다시 물었다.

“가족들 생각은 어떤데?”

서지혁은 담배를 입에 문 채 그녀를 빤히 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시선에 하시윤은 약간 불편해졌다.

“생각해 봤는데 아이를 하나 더 낳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요즘 기술도 발달해서 어렵지 않을 거야.”

서지혁은 그녀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시험관?”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가 말을 이었다.

“나도 처음엔 그 생각이었어. 그런데 의사가 권하지 않더라고. 시험관이 변수가 많아 정우가 기다릴 시간이 없대.”

그 말에 하시윤은 멈칫했다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사실 오후에 인터넷으로 찾아봤는데 시험관 시술의 실패율도 꽤 높다는 걸 알았다.

3개월 전 회사에서 받은 건강검진 결과 그녀의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고 설령 힘든 시간을 버틴다고 해도 단기간에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하시윤이 망설이며 물었다.

“이 일에 대해 심연정 씨는 어떻게 생각해?”

서지혁이 차갑게 웃었다.

“이건 연정이랑 상관없는 일이야. 너만 결정하면 돼.”

하시윤은 심연정이 외부인이 아니니 그녀의 의견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효진이 심연정을 위층으로 부른 게 그녀를 설득하려는 것일 수도 있어 더 묻지 않았다.

“알았어. 생각해볼게.”

사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결국 동의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한효진의 말처럼 아이를 직접 만나고 나니 외면할 수 없었다. 어머니와 자식 간에 깊고 특별한 유대감이 있어 아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하시윤은 더는 할 얘기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도 늦었으니 난 이만...”

서지혁이 남은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기사님더러 집까지 데려다주라고 할게.”

산중턱이라 택시를 잡기 어려워 하시윤은 사양하지 않았다.

서지혁은 그녀와 함께 본관을 나섰다. 그러다 복도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더니 짜증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

“하시윤, 둘째를 낳아준다면 돈은 두 배로 줄게. 어때? 아니면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결혼 빼고 뭐든지 다 들어줄 수 있어.”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그의 눈빛이 더 차가워졌다.

“앞으로 두 아이랑 넌 아무런 관련이 없어. 다시는 아이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것만 명심해.”

하시윤의 신경은 그가 앞에 한 말에 멈춰 있었다.

“정우를 데려갈 때 돈을 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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