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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손찌검

Author: 도화
하시윤은 3년 만에 다시 하씨 별장으로 돌아왔다.

별장 대문이 열려 있어 그냥 안으로 들어갔다.

하민지가 소파에 앉아 발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었다.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가 매니큐어를 두어 번 칠하더니 뭔가 떠오른 듯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엄마, 집에 누가 왔어요.”

주방에서 청소하던 조경순이 소리를 듣고 나왔다.

“누가 왔다고? 이 밤중에...”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시윤을 보고 멈칫했다. 표정이 급변하더니 손에 든 행주를 털며 말했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우리 집안의 큰 아가씨 아니신가?”

그러고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

“아빠 찾으러 왔어? 네 아빠 오늘 회식 있어서 언제 올지 몰라. 급하면 전화하고 아니면 내일 낮에 와.”

조경순이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어쩐지 오늘 자꾸만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니. 재수 없어, 정말.”

하시윤의 시선이 하민지에게 닿았다. 하민지는 계속 고개를 숙인 채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었는데 기분이 좋은 듯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하시윤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3년 전 아이를 서씨 가문에 넘겨줄 때 혹시 돈 받았어요?”

하민지가 움직이던 손을 멈췄고 주방에 있던 조경순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시윤이 이어서 말했다.

“그때 당신들이 나더러 아이를 낳으라고 설득했죠. 그리고 나중엔 아이가 그 집에서 살아야 더 나은 삶을 살 거라고 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를 위한다는 말은 다 거짓이고 그냥 아이를 팔아서 돈이나 챙기려던 거 맞죠?”

말이 끝나자마자 주방에서 쾅 하는 소리가 났다. 조경순이 대야를 조리대에 내리친 소리였다.

그녀는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외쳤다.

“누가 돈 받았다고 그래? 이 배은망덕한 것아. 그때 너도 아이를 지우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그래서 네 마음 따라 설득한 건데. 임신 기간 내내 좋은 거 먹이고 재우고 돌봐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이런 소리를 해?”

말하면서 행주를 쥔 채 주방에서 나왔다. 조경순이 눈을 부릅뜨고 계속 말했다.

“결혼도 안 한 여자가 애를 낳았는데 그 아이를 어떻게 옆에 두고 키워? 명예는 어쩌려고? 우린 다 네 생각해서 애 아빠한테 애를 넘긴 거야. 그런데 이제 와서 우리를 탓해?”

그러고는 손에 든 행주를 하시윤에게 던졌다.

하시윤은 피하지 않아 축축한 행주가 그녀의 옷에 달라붙었다. 조경순이 계속 소리쳤다.

“백번 양보해서 돈을 받았다 쳐. 그게 뭐? 열 달 동안 우리가 네 시중을 들었는데 당연히 고생한 값을 받아야지. 그리고 남의 집 딸을 건드려놓고 일전 한 푼 안 주고 아이를 데려간다는 게 말이 돼? 세상에 그런 좋은 일이 어디 있어?”

하시윤은 옷에 붙은 행주를 떼어내고는 조경순을 쳐다봤다.

조경순이 옆에서 계속 떠들어대도 하시윤은 듣는 척도 하지 않고 조경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하시윤이 다가오자 조경순은 손을 들어 그녀의 이마를 찌르려 했다. 예전부터 즐겨 하던 행동이었는데 욕을 퍼부으며 손톱으로 이마를 눌러 깊은 자국을 남기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 하시윤은 참지 않았다. 조경순의 손가락을 낚아채 힘껏 꺾어버렸다.

조경순의 고함이 순식간에 비명으로 바뀌었다.

매니큐어를 바르던 하민지가 그 모습을 보더니 손에 든 것을 내던지고 맨발로 달려왔다.

“하시윤, 너 미쳤어? 우리 엄마 놓지 못해?”

하시윤은 행주를 집어 조경순의 입에 쑤셔 넣은 다음 힘껏 밀쳐 옆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달려드는 하민지의 뺨을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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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제563화 막다른 길

    서지혁은 굵직한 대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솔직히 덩치가 다 가려지는 건 아니었지만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깜깜한 한밤중이었기에 대나무숲 안에서 굳이 숨지 않고 대놓고 서 있어도 누가 있는지 알아볼 수 없었다.잠시 뒤, 멀지 않은 곳에서 서경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혁아, 안 나와서 얼굴 한번 안 볼 거냐?”그가 낮게 웃었다.“그래도 우리 부자 사이인데 마지막 인사는 해야 하지 않겠어.”서지혁 옆에는 같이 움직이던 사람들이 있었다.그들은 바로 서지혁을 말렸다. 절대 나가면 안 된다고.서경민 쪽 인원은 많지 않았지만 하나같이 독한 놈들이었고 전부 총까지 들고 있었다. 지금 나가는 건 스스로 표적이 되겠다는 소리였다.그 정도는 서지혁도 알고 있었다.그는 재빨리 겉옷을 벗더니 바닥에 쌓인 썩은 대나뭇잎들을 한가득 긁어 담았다.제법 묵직해지자 손으로 한번 무게를 가늠하고는 입을 열었다.“알았어요. 나갑니다.”말이 끝나자 그는 몸을 살짝 옮긴 뒤, 옷 뭉치를 먼 쪽으로 던졌다.툭.소리가 나자마자 총성이 터졌다.탕! 탕!옷 안에 썩은 낙엽이 한가득 들어 있던 탓에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도 사람 쓰러지는 소리처럼 묵직했다.그쪽 놈들도 잔뼈 굵은 인간들이라 곧바로 호들갑 섞인 목소리가 터졌다.“대표님! 대표님 괜찮으십니까!”그 소리를 들은 건지 서경민이 다시 외쳤다.“지혁아, 지혁아.”서지혁이 차갑게 받아쳤다.“이게 당신이 말한 마지막 인사예요?”그는 다시 뒤쪽으로 몸을 뺐다.서경민은 서지혁의 상태를 확인할 수 없었기에 느긋하게 말했다.“지혁아, 이 바닥에선 방심하는 순간 끝이야. 그걸 이제야 배우네.”그리고 일부러 한숨까지 섞었다.“부자끼리 왜 꼭 여기까지 와야 했을까. 우린 그냥 조용히 살 수도 있었어. 그런데 넌 굳이 다른 길을 골랐지.”이어서 그는 성문영의 이야기를 꺼냈다.성문영이 죽기 전까지도 서지혁과 서인준 이름을 부르며 후회했다고, 가족답게 살 걸 그랬다고 계속 말했다고.“후회한 건 성문영만이 아니다.

  •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제562화 뜻밖의 변수

    하시윤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아까 그 운전기사가 급하게 달려왔다.“회장님, 온 것 같습니다.”서경민이 혀를 찼다.“생각보다 빠르네.”그러곤 꽤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었다.“내 아들은 역시 머리가 좋아.”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서경민이 중얼거렸다.“원래는 전화해서 하시윤 씨가 내 손에 있다고, 우리가 본가에 있다고 직접 알려줄까 했는데요.”그러다 피식 웃었다.“그럴 필요도 없네요. 그놈은 다 알고 찾아왔어요.”서경민이 하시윤을 돌아봤다.“그래서 두 사람, 그동안 계속 만나고 있었나요?”하시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네?”서경민이 비웃듯 웃으면서 말했다.“됐어요. 당신이 연기를 하는 건지 아닌지도 이제 중요하지 않으니까.”그는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운전기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하시윤은 따라가려다가 운전기사가 한 발 옆으로 움직이며 길을 막자 멈춰 서고는 결국 다시 불당 안으로 물러났다.운전기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구를 지켰다.서경민의 모습이 앞쪽 모퉁이 너머로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그는 천천히 하시윤 쪽으로 걸어왔다.“하시윤 씨, 미안합니다.”그가 담담하게 말했다.“순순히 계시면 덜 괴로우실 겁니다.”‘웃기고 있네. 이 상황에서 누가 가만히 있냐고.’입구는 운전기사가 막고 있어 하시윤은 재빨리 몸을 돌려 안쪽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불당 안쪽에는 예전에 한효진이 쉬던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몸 숨기기에는 충분했다.하시윤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재빨리 문을 잠갔다. 하지만 운전기사는 이 구조를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뒤로 빠질 문도 없고 저 안에 틀어박혀 봤자 결국 도망칠 곳은 없다는 걸 아는 표정이었다.그래서인지 전혀 급해 보이지 않았다.그는 느긋하게 다가와 문을 두드렸다.“하시윤 씨, 숨어도 소용없습니다.”툭툭 두드리던 그는 갑자기 발로 문짝을 세게 걷어찼다.쾅.문이 크게 흔들렸다.그가 웃었다.“보셨죠? 두어 번만 더 차면 끝입니다.

  •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제561화 당신도 가능할 것 같습니까?

    갇혀 있던 사람은 남자 둘이었다.복도 구석에서 발견됐는데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그대로 들것에 실려 내려갔다.그 말을 들은 서지혁은 안도한 건지, 오히려 더 불안해진 건지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비상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아래층에 도착하니 아까 그 직원이 아직도 있었다.직원은 서지혁을 보자마자 급히 달려왔다.방금 구조된 두 사람은 전부 서지혁이 하시윤 곁에 붙여놨던 사람들이라고 했다.그중 한 명은 발목 다친 중년을 부축해 내려가다 중간에 사라졌던 사람이었다. 연기에 질식해 기절한 상태라 이미 구급차에 실려 갔다고 했다.조금 전에도 소방대원들이 한 차례 내려왔는데 위층에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그 말은 곧, 하시윤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서지혁은 대답도 없이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곧장 연재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바로 연결됐다.연재윤은 계속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다급하게 물었다.“시윤 씨는 괜찮아?”서지혁은 주먹 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사라졌어.”...하시윤은 실제로 무사했다.차 뒷좌석에 앉아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계속 닦고 있었고 중간중간 기침도 몇 번 했다.양옆에 사람이 하나씩 붙어 있었지만 감시가 빡빡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둘 다 피곤한 얼굴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운전석의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속도를 꽤 올린 채 국도를 달렸다.한참 가던 차는 어느 갈림길에서 방향을 틀었다.하시윤은 처음에 창밖을 신경 쓰지 않았다가 주변 풍경을 보고 눈빛이 달라졌다.이 길은 서씨 가문 본가로 가는 방향이었다.그녀는 바로 물었다.“서경민 씨는 본가에 있어요?”운전자는 백미러로 하시윤을 한번 힐끗 봤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적어도 약에 취한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대답이 없자 하시윤도 더 묻지 않았다.옆에 놓인 물병을 집어 들고 남은 물을 한 번에 다 마셨다. 몇 번 더 기침을 하고 나니 목이 그나마 좀 풀렸다.몸에 두르고 있던 젖은 타월은 이미 다 말라

  •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제560화 변고

    하시윤은 반사적으로 문을 열고 뛰쳐나가려 했다.그런데 문손잡이를 잡은 순간, 움직임이 딱 멈췄다. 그녀는 얼른 몸을 돌려 옷부터 챙겨 입었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집어 들어 서지혁에게 전화를 걸었다.통화 연결음이 채 다 울리기도 전에 문밖에서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터졌다.“하시윤 씨! 하시윤 씨! 일어나셨어요?”익숙한 목소리였다.서지혁이 붙여 둔 직원이었다.하시윤은 급히 문 앞으로 가서 먼저 도어뷰로 밖을 확인했다.정말 그 직원이 맞았다. 그는 젖은 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은 채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하시윤 씨! 빨리 나오셔야 해요! 불났습니다! 지금 바로 대피해야 합니다!”하시윤은 곧장 문을 열었다.복도에는 이미 연기가 자욱했다.직원은 아래층에서 불이 시작됐는데 순식간에 번져 올라왔다며, 늦으면 위험하다고 재촉했다.그때 마침 전화가 연결됐다.“시윤아.”서지혁 쪽에서는 바람 소리가 섞여 들렸다. 집 밖인 듯했다.하시윤이 급하게 말했다.“호텔에 불났어.”직원도 옆에서 목청껏 외쳤다.“대표님! 호텔 화재입니다! 지금 바로 내려가야 해요!”순간 서지혁의 목소리가 확 긴장됐다.“불 많이 커졌어?”“엄청 큽니다. 아래층 하나가 통째로 붙었어요. 빨리 빠져야 합니다.”“알았어. 바로 내려가. 무조건 시윤이부터 챙겨.”그는 곧바로 다시 물었다.“다른 애들은?”서지혁이 배치해 둔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다.직원이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다들 흩어져서 계단 정리 중입니다. 불길이 너무 커서 통로 막힐까 봐요.”“나 지금 갈게. 빨리 내려가.”그러고는 하시윤에게 낮게 말했다.“전화 끊지 마. 계속 연결해 둬.”“응.”하시윤은 욕실로 뛰어 들어가 욕실 수건을 물에 흠뻑 적셨다. 그걸 그대로 몸에 둘렀다.직원에게도 젖은 수건 하나를 건넨 뒤, 둘은 다시 수건을 적셔 입과 코를 막고는 복도로 뛰쳐나갔다.불길은 생각보다 훨씬 심했다.엘리베이터는 이미 못 쓰는 상태였다. 계단밖에 방법이 없었다.이 층에 묵고 있

  •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제559화 떠났어요?

    하시윤은 결국 그날 밤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혹시 모르니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였다.이번에는 서지혁이 직접 데려다줬다. 차도 바꿔 타고 왔고 운전도 직접 했다.차에서 내리던 하시윤은 괜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 뒤를 한 번 더 돌아봤다.서지혁은 운전석에 앉은 채 손을 두어 번 흔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하시윤은 그대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방으로 올라가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서지혁은 아직도 그 자리에 차를 세워둔 채 있었다.하시윤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받자마자 서지혁이 먼저 말했다.“얼른 자.”하시윤은 창틀에 기대선 채 물었다.“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야?”서지혁이 웃었다.“아무것도 아니야.”그는 하시윤이 의심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듯 말을 이었다.“아빠가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몰라. 그런데 느낌이 안 좋아. 돌아왔는데 조용히 있을 인간은 아니잖아.”잠시 숨을 고른 뒤, 그는 낮게 덧붙였다.“당분간은 조심해. 나도 조심할 거고. 우리 둘, 며칠은 안 만나는 게 좋겠다.”확실히 최근 며칠은 좀 풀어진 상태였다. 너무 아무렇지 않게 굴었으니 다시 경계심을 가지는 게 좋을 듯했다.“알겠어.”그렇게 답한 뒤, 하시윤은 서지혁에게 조심하라고 몇 번이고 당부했다.통화가 끊기고 나서야 서지혁의 차도 천천히 호텔 앞을 떠났다.하시윤은 씻고 침대에 누웠다.막 잠들려던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무심코 화면을 봤다가 그녀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서경민이었다.서지혁이 방금 자신을 데려다주고 갔는데 하필 이 타이밍에 전화가 걸려 오니 하시윤은 괜히 등골이 서늘했다.사람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숨기는 게 있으면 괜히 작은 일에도 움찔하게 된다.하시윤은 서경민이 자신과 서지혁의 관계를 눈치챈 줄 알고 가슴이 쿵쾅거렸다.일부러 몇 초 뜸을 들인 뒤에야 전화를 받고는 억지로 잠에서 깬 척하며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뭐야? 미쳤어요? 이 시간에 왜 전화해요.”다행히 서경민은 서지혁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

  •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제558화 뻔뻔함도 정도껏 해야지

    최승우의 차도 단지 밖에 세워져 있어서 다 같이 걸어 나갔다.최예원이 먼저 하시윤을 보며 말했다.“시윤 씨 호텔로 가는 거지? 우리 오빠 차 타. 데려다줄게.”“아니에요, 괜찮아요.”하시윤이 손사래를 쳤다.“저는 알아서 갈게요. 먼저 가세요.”“택시 잡으려고?”최예원이 바로 말을 이었다.“그거 귀찮잖아. 우리도 급한 일 없는데 그냥 태워다주면 되지.”“진짜 괜찮아요.”하시윤이 웃으며 말했다.“데리러 오는 사람이 있어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지 밖에서 어디선가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엄마!”아이가 냅다 달려와 하시윤의 다리에 철썩 매달렸다.“엄마, 여기 있었어요?”하시윤은 얼른 서정우를 안아 올렸다. 찬 바람 들까 싶어 옷깃을 여며주고 벗겨진 모자도 다시 씌워줬다. 밤공기가 제법 서늘해진 탓이었다.그러고는 한 손으로 서시은을 안고 걸어오는 서지혁을 노려봤다.“애들 이렇게 데리고 나오면 어떡해.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서시은은 하시윤의 얼굴을 보자마자 입술을 삐죽이더니 곧 두 팔을 뻗으며 칭얼댔다.“엄마... 엄마.”서지혁은 순순히 딸아이를 하시윤 품에 넘겼다. 그리고 서정우를 다시 자기 쪽으로 안아 들며 말했다.“나오기 전에 옷 다 단단히 입혔어. 걱정 안 해도 돼.”그 말을 하고는 고개를 돌려 최승우를 바라봤다.“승우 씨, 이렇게 또 만나게 되네요.”최예원은 그제야 상대가 누군지 제대로 본 듯 눈을 깜빡였다.“아, 지혁 씨였네.”그러더니 웃으며 말했다.“여기까지 찾아오실 줄은 몰랐어요. 시윤 씨 택시 타고 갈 줄 알고 저희가 데려다주려 했거든요.”“애들이 엄마 찾느라 난리여서요.”서지혁이 능청스럽게 답했다.“특히 얘가요. 아무리 달래도 안 돼서 그냥 데리고 왔습니다.”최예원은 서정우를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서지혁의 넥타이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그 시선이 몇 초쯤 더 머무르더니 최예원은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올렸다.“정우야.”“네.”“엄마 많이 보고 싶었어?”“네. 엄청요.”서정우는 하시윤만

  •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제227화 시간 좀 줘

    식사가 다 준비되었다는 가정부의 말에 한효진이 곧 아래층으로 내려왔다.“왔니? 그럼 얼른 식사 시작하자꾸나.”그 말에 하시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들어가서 식사하죠.”서인준이 안으로 들어오자 한효진은 그의 뒤쪽을 슬쩍 살피더니 이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이놈의 집구석은 늘 이런 식이었다. 집만 컸지 식구들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썰렁하고 적막한 분위기만 이어졌다.서정우가 내려오지 않아 식탁에는 단 세 사람뿐이었고 평소처럼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하시윤은 입맛이 없는지 가장 먼저 수

  •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제231화 아주 많이 사랑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몇 초가 지나서야 한효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서경민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어머니.”방 안에는 한효진뿐이었다. 평소라면 수발을 드는 가정부가 곁을 지켰겠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한효진은 한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창틀을 짚은 채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 그저 짧게 대답했다.“왔어?”서경민이 다가가 그녀의 곁에 섰다.이 자리는 명당이었다.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모든 광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였다.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흐르던 중, 한

  •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제225화 하긴

    서지혁이 고개를 돌려 가정부에게 물었다.“시윤이가 나갈 때 별말 없었어요?”“네.”가정부도 의외라는 듯 대답했다.“하시윤 씨, 나가셨나요?”잠시 생각에 잠기던 가정부가 덧붙였다.“아마 친구분을 만나러 가신 게 아닐까 싶네요.”서지혁은 지윤정을 떠올렸다. 하시윤의 친구라곤 그 여자 하나뿐이었으니까. 지난번 만남 때도 미리 말 한마디 없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다만 그때는 전화를 걸어 어디냐고 물으면 순순히 사실대로 말할 기색이었는데, 이번에는 뭔가 꼭꼭 숨기는 기분이 들었다.서지혁은 더 묻지 않고 서정우와 잠시 놀아

  •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제208화 똑똑하긴 하지

    지윤정은 결국 눈물을 보였다.한 손으로 하시윤의 손을 꼭 잡은 채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는 다른 손으로 재빨리 눈물을 훔쳤다.지윤정은 억지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날 밤에는 진짜 한숨도 못 잤어요.”그녀는 화가 너무 많이 쌓여서인지 속마음이 뒤틀릴 지경이었다.하시윤은 지윤정의 손을 더 꽉 잡아 주며 말했다.“다 지나간 일이에요.”지윤정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정말로요.”지윤정은 하시윤의 손을 한 번 꼭 쥐었다가 놓고는 테이블 위에 있던 휴지를 집어 눈가를 닦았다.“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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