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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성탄 장터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1 17:00:00

『오늘 일정: 12월 14일 토요일, 오후 작업 마감, 저녁 성탄 장터』

코트 소매를 펴다가 작업실 문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주원이 문 앞에서 했던 말이 일주일째 걸렸다.

원하는 건 꼭 갖는 사람.

나는 가방 안쪽에 넣어 둔 휴대폰을 꺼냈다. 이헌이 보낸 문자가 떠 있었다.

『입구에서 기다릴게요. 늦어도 괜찮아요.』

답을 쓰려는데 문자가 하나 더 왔다.

『작업 끝내고 와요.』

나는 작업실 불을 끄고 문을 잠갔다.

장터 입구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목도리를 고쳐 매는 동안 앞에 선 아이가 아버지에게 안겼다. 아이 어깨 너머로 이헌이 보였다.

검은 코트 차림이었다. 휴대폰을 내려다보다가 내가 손을 들자 바로 고개를 들었다. 나는 손을 내리고 줄 바깥으로 걸었다.

“많이 기다리셨어요?”

“방금 왔어요.”

“얼마나 방금인데요?”

이헌이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8분이요.”

“그건 방금 아닌데요.”

“그럼 조금 기다렸어요.”

이헌이 내 가방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나는 끈을 어깨 위로 당겼다.

“제가 들게요. 오늘 도구는 안 가져왔어요.”

“알겠어요.”

손이 곧 내려갔다. 나는 빈손이 된 이헌의 손등을 보다가 입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지난번에는 시집을 사이에 두고 앉았고, 그 전에는 서류를 펼쳐 놓았다. 오늘은 꺼낼 종이가 없었다.

“어디부터 볼까요?”

이헌이 안내판을 봤다.

“윤나경 씨 가고 싶은 데요.”

“이런 데 자주 오세요?”

“처음이에요.”

나는 안내판에서 먹거리 줄을 찾았다.

“저도 여기 장터는 처음이에요. 그러면 잘못 가도 서로 탓하지 않기로 해요.”

이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먼저 입구를 지나갔다.

◈

천막 아래에는 털모자와 나무 장식이 놓여 있었다. 아이를 태운 유모차가 지나가자 사람들이 양쪽으로 비켰다. 나도 옆으로 물러났다가 이헌의 코트 소매에 팔꿈치가 닿았다.

“죄송해요.”

“왜 사과해요.”

이헌이 길 가장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내 오른쪽에는 이헌이, 왼쪽에는 장식을 파는 가판대가 놓였다.

본가 식탁에서는 고개를 들어도 이헌을 오래 볼 수 없었다. 오늘은 돌아보면 바로 옆에 있었다.

나는 진열된 별 장식을 하나 들었다. 접은 종이를 여러 겹 붙여 만든 별이었다. 안쪽 접힌 선에 풀이 조금 남아 있었다.

“일 보러 온 거 아니잖아요.”

이헌이 말했다. 나는 별을 내려놓았다.

“티 났어요?”

“뒤집어서 접힌 데부터 보던데요.”

“습관이에요. 잘 붙였나 보게 돼요.”

“잘 붙였어요?”

“네. 내년에도 달 수 있겠어요.”

가게 주인이 웃으며 다른 색도 꺼내 주려 했다. 나는 괜찮다고 손을 저었다가, 작은 별 하나를 골랐다. 작업실 창문에 달면 다은이 좋아할 만한 색이었다.

값을 치르고 종이봉투를 받자 이헌이 손을 내밀었다.

“그것도 제가 들어요?”

“이건 맡길게요. 가방에 넣으면 눌려요.”

이헌이 봉투 윗부분을 잡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다은에게서는 친구 만나러 간다는 문자만 와 있었다.

답을 보내고 고개를 들자 이헌이 나를 보고 있었다.

“연락 기다리는 데 있어요?”

“아니요. 다은이가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해서요.”

나는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

“오늘은 일찍 안 가도 돼요.”

이헌이 쥐고 있던 봉투를 다른 손으로 옮겼다.

“그럼 천천히 걸어요.”

◈

구운 밤을 파는 가게 앞에 줄이 있었다. 우리는 마지막 사람 뒤에 섰다. 앞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이헌과 나도 조금씩 앞으로 갔다.

“이렇게 사람 많은 데는 괜찮을 것 같았어요.”

내 말에 이헌이 고개를 숙였다.

“불편하면 다른 데 가도 돼요.”

“아니요. 아무도 저희 안 보잖아요.”

바로 앞에서는 아이 둘이 밤을 몇 개씩 나눌지 다투고 있었다. 이헌과 내가 나란히 서 있어도 고개를 돌리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이헌 쪽으로 조금 더 붙었다.

코트 사이가 5cm쯤 남았다. 주머니 밖으로 내놓은 손이 찼다. 손가락을 접었다 펴자 이헌의 시선이 내려왔다.

“장갑은요?”

“작업실에 두고 왔어요. 낮에는 안 추웠는데.”

“제 것도 차에 있어요.”

이헌이 장터 옆길을 봤다. 나는 줄에서 나가려는 이헌의 소매를 잡았다가 놓았다.

“지금 가면 여기 처음부터 다시 서야 해요.”

“손 차잖아요.”

“밤 사면 따뜻해져요.”

이헌은 더 움직이지 않았다. 내 손이 있었던 소매를 내려다봤다가 다시 앞을 봤다.

차례가 왔을 때 이헌이 작은 봉지를 주문했다. 나는 봉투 아래를 양손으로 감쌌다. 종이 너머로 온기가 닿았다.

“봐요. 괜찮죠.”

이헌이 봉투를 받치고 있던 손을 뗐다.

“뜨거우면 말해요.”

길 옆에 선 채 밤 하나를 깠다. 껍질 틈으로 엄지손톱을 넣자 알맹이가 반으로 갈라졌다. 나는 반쪽을 이헌에게 건넸다.

이헌은 받아 들고도 바로 먹지 않았다.

“왜요?”

“윤나경 씨 먹어요.”

“저도 있어요.”

내 손에 남은 반쪽을 보여 주자 그제야 입에 넣었다. 나는 다음 밤을 골랐다.

껍질을 모아 버리고 돌아서는데 이헌이 휴지를 내밀었다. 나는 받아서 손끝에 묻은 가루를 닦았다.

“책 말고도 손이 많이 가는 걸 좋아하시네요.”

“밤은 먹으려고 까는 건데요.”

“별도 한참 고르던데요.”

“그건 일하는 데 걸 거라서요.”

이헌이 종이봉투 안을 들여다봤다.

“그럼 오늘 고른 것 중에 윤나경 씨 것은 없네요.”

나는 빈 밤 봉투를 접다가 멈췄다.

“지금 먹었잖아요.”

“다음에는 남는 것도 골라요.”

◈

밤을 다 먹고 나니 손이 다시 시렸다. 나는 빈 봉투를 버리고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통로 끝에 손난로를 늘어놓은 가게가 있었다. 천막 안에서는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 뜨개질하고 있었다. 탁자 아래로 전선이 내려와 발치의 난로에 연결돼 있었다.

이헌이 손난로를 집어 들었다.

“이건 얼마나 가요?”

“집에 갈 때까지는 따뜻해. 흔들면 돼.”

할머니가 내 얼굴과 이헌을 번갈아 봤다.

“신랑이 키가 크네. 위에 걸린 것 좀 내려 줘요.”

나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다가 멈췄다.

“저희는…….”

이헌은 내 말을 대신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가리킨 곳을 확인한 뒤 천막 기둥에 걸린 장갑 묶음을 내렸다.

“이거요?”

“그래, 그거. 자꾸 위로 걸어 놔서 팔이 안 닿아.”

장갑에 걸린 고리가 천막 끈을 잡아당겼다. 옆에 세운 판이 기울어지기에 내가 손을 뻗어 받쳤다.

“잠깐만요. 고리부터 풀게요.”

이헌이 묶음을 들고 기다렸다. 나는 끈에서 고리를 빼고 판을 다시 세웠다. 종이에 쓴 가격표가 집게 밖으로 빠져 있었다. 모서리를 맞춰 끼우자 할머니가 무릎 위의 뜨개질을 내려놓았다.

“둘이 손발이 잘 맞네.”

나는 장갑 묶음에서 손을 뗐다.

“작업할 때 이런 걸 자주 만져서요.”

“그러면 장갑도 잘 고르겠네. 손 대 봐요. 이건 안 따가워.”

할머니가 회색 털장갑을 내 손에 올렸다. 손가락 부분을 뒤집어 보니 안쪽 실밥이 길게 남아 있었다. 나는 잡아당기지 않고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걸로 주세요. 손난로도 하나요.”

이헌이 지갑을 꺼냈다. 나는 장갑값을 따로 건넸다.

“이건 제가 살게요.”

할머니는 돈을 받아 작은 통에 넣었다. 이헌이 장갑을 가져가도 되는지 나를 봤다. 내가 건네자 손목 부분을 벌려 돌려줬다.

나는 왼손을 끼웠다. 이헌은 남은 한 짝을 든 채 서 있었다.

“실장님도 끼세요.”

장갑을 받아 보지 않고 내민 손을 그대로 뒀다.

“한 손씩 끼면 되잖아요.”

◈

이헌은 자기 손을 장갑 안에 넣었다. 손가락 끝을 펴 보더니 나를 봤다.

“조금 작네요.”

“그래도 안 끼는 것보다는 낫죠?”

“네.”

할머니가 손난로 봉지를 뜯어 이헌에게 건넸다.

“나머지 손은 그거 나눠 잡아요. 봉지는 버려 줄게.”

나는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가게에서 몇 걸음 떨어진 뒤에야 이헌이 입을 열었다.

“아까 말하다 말았잖아요.”

“뭘요?”

“저희는, 하고.”

나는 장갑 낀 왼손을 내려다봤다. 손목에 붙어 있던 종이표를 떼어 가방에 넣었다.

“할머니가 바쁘셔서요.”

“바쁘진 않아 보였는데요.”

대답 대신 손난로를 받으려고 오른손을 폈다. 이헌이 내 손바닥 위에 손난로를 놓았다. 손난로 끝을 잡은 손가락이 그대로 남았다.

나는 손을 빼지 않았다.

이헌이 먼저 손끝을 들었다. 나는 빈자리에 손가락을 뻗어 이헌의 왼손을 잡았다.

손난로가 손바닥 사이에 끼었다.

이헌이 걸음을 멈췄다. 나도 멈췄다. 지나가던 사람이 우리를 피해 돌아갔다.

“걸어요.”

내가 앞을 보며 말했다.

“괜찮아요?”

나는 손을 조금 고쳐 잡았다. 손난로를 떨어뜨리지 않으려면 손가락을 더 붙여야 했다.

“이렇게 사람 많으면 저희 손까지는 안 보일 거예요.”

이헌이 잡힌 손을 자기 코트 옆으로 낮췄다. 이번에는 손가락이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걸을 때마다 이헌의 손등이 코트에 닿았다. 장갑 낀 왼손보다 맨손인 오른손이 더 따뜻했다. 나는 앞에서 오는 사람을 피하며 손을 당겼다. 이헌은 내가 잡아끄는 쪽으로 따라왔다.

별 장식 봉투가 이헌의 오른손에서 흔들렸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천막이 끝나는 쪽으로 걸었다.

◈

통로 끝에는 장식을 단 전나무가 서 있었다. 그 앞에서 사람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 줬다. 나는 옆으로 비켜 나무 꼭대기를 올려다봤다.

“작업실 창문에도 저렇게 달까요?”

“저만큼 크게요?”

“별만요. 나무는 못 들여놔요. 프레스기 옮길 데가 없어요.”

이헌이 봉투를 들어 보였다.

나는 가방을 앞으로 돌려 휴대폰을 꺼냈다. 별 장식 봉투를 들고 있는 손을 화면에 넣었다. 회색 장갑과 종이봉투만 보였다.

“찍어도 돼요?”

“얼굴은 안 나와요?”

“봉투만 찍으려고요.”

이헌이 봉투를 조금 높였다. 나는 화면 아래에 걸친 우리 손을 보고 촬영 버튼에서 엄지를 뗐다.

우리 손까지 찍히면 안 됐다. 나는 화면을 잠깐 껐다.

이헌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손을 놓지도 않았다.

나는 화면을 다시 켰다. 봉투만 들어오게 각도를 고치고 사진을 찍었다.

“보여 줘요.”

화면을 내밀자 이헌이 몸을 숙였다. 어깨가 붙었다. 나는 사진을 넘기지 않고 그대로 들고 있었다.

“잘 나왔네요.”

“장갑이 작아 보이는데요.”

“실제로 작으니까요.”

나는 웃다가 입술을 다물었다. 이헌이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면 너무 가까웠다.

뒤에서 사진을 찍던 사람이 잠깐 비켜 달라고 했다. 나는 얼른 휴대폰을 내리고 옆으로 움직였다. 이헌도 함께 자리를 옮겼다.

◈

먹거리 천막 쪽으로 돌아가는 길에 손난로가 손바닥 아래로 밀렸다. 나는 걸음을 늦췄다.

“잠깐만요. 떨어지겠어요.”

이헌이 손을 폈다. 나는 손난로를 꺼내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다시 손을 내밀기 전에 사람들이 한꺼번에 통로로 들어왔다.

아이를 앞세운 가족과 장식 상자를 든 직원이 우리 사이를 지나갔다. 나는 천막 쪽으로 붙었다. 이헌은 반대편에 멈췄다.

서로 두 걸음 떨어졌다.

본가에서는 이 정도 거리가 있어야 편하게 말을 붙일 수 있었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 틈으로 이헌을 봤다.

이헌이 손을 들었다. 기다리라는 뜻으로 손바닥을 펴 보였다.

마지막 사람이 지나가자 내가 먼저 다가갔다. 빈손을 내밀었다. 이헌이 손을 잡고 내 쪽으로 왔다.

“뭐 먹을까요?”

나는 메뉴판 대신 이헌을 올려다봤다.

“아까부터 제가 고르기만 했어요. 실장님은요?”

이헌이 나를 보다가 메뉴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따뜻한 거요. 앉아서 먹을 수 있는 데로.”

“그럼 저기요.”

천막 안에 빈 의자가 보였다. 나는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방향을 돌렸다.

붕어빵 가게 앞에 서 있던 사람이 종이봉투를 받아 들었다. 짧은 머리 옆으로 익숙한 귀걸이가 보였다.

나는 발을 멈췄다.

다은이 봉투 입구를 벌리며 고개를 들었다. 사람들 사이로 눈이 마주쳤다.

다은의 시선이 내 얼굴에서 이헌에게, 다시 우리가 잡은 손으로 내려갔다.

다은이 입을 벌렸다.

(2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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