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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8화

Author: 류한나
고은서는 그 일로 곽승재의 뺨까지 내리쳤었다.

‘그러니까 내가 마재경을 해치려 할까 봐 다른 곳으로 옮겨준 게 아니라 내 말을 듣고 정말 라이트문에서 쫓아냈단 말이야?’

곽승재는 고은서의 표정 변화를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기억났으면 계속해도 되지?”

그는 고은서에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고 또다시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곽승재는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둘러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목을 부축한 채 방금전보다 훨씬 부드러운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숨이 막혀온 고은서는 부득이하게 고개를 들고 그의 키스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키스가 끝난 후, 고은서는 곧 질식할 것만 같았다.

곽승재의 몸은 점점 더 뜨거워 났고 그곳도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를 발견한 고은서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곽승재, 당신 정말 변태야?”

그녀의 발그스름한 얼굴과 촉촉한 입술을 바라보고 있던 곽승재는 욕구가 억누를 수 없을 만큼 거세져 가는 것 같았다.

“은서야, 난 그저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정말 곧 터질 정도로 네가 그리웠어...”

곽승재는 말하면서 또 그녀에게 입을 맞추려 했다.

그러나 고은서는 더는 그와 엮이고 싶지 않았던지라 이내 고개를 홱 돌렸다.

“잊지 마. 우리 이미 이혼한 사이야. 게다가 당신도 새로운 여자가 생겼잖아. 선 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고은서는 애써 덤덤한 척하면서 말했다.

곽승재는 그녀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고은서의 말에 자극을 받았는지 아니면 무언갈 떠올렸는지 그는 이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눈빛도 점점 어두워졌다.

마침 퀸이 뒤에서 야옹거리는 바람에 고은서는 그 틈을 타 곽승재를 밀어냈다.

“얼른 놔.”

그는 고은서를 잡고 있던 손의 힘을 풀면서 뒤로 한발 물러서더니 끝내는 그녀를 놓아주었다.

고은서가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할 때 뒤에서 곽승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은서, 이건 네가 나한테 진 빚이야. 난 그저 마땅하게 돌려받을 뿐이고. 절대 집착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어.”

고은서는 그의 말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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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1009화

    발신자는 다름 아닌 송민준이었다.“민준 씨, 무슨 일이죠?”“민아한테서 들었는데 새 폰을 거절했다면서요?”고은서는 이내 웃으면서 답했다.“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요. 그저 폰일 뿐인데 여분으로 둔 폰이 하나 더 있어서 그냥 그 폰을 쓰면 돼요.”“제가 폰에 손이라도 댔을까 봐 걱정되어서 그러는 건가요?”송민준이 갑자기 예상치 못한 질문을 투척했다.고은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확실히 걱정되긴 했지.’그녀는 지금까지도 송민준이 어떤 사람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어떨 땐 위험하게 느껴지다가도 간혹 젠틀한 면을 보일 때도 있었다.그러나 폰만은 마음 놓고 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직설적으로 물어보면 나더러 어떻게 대답하라는 거지?’“장난이에요.”고은서가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송민준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폰은 거절했으니 다른 선물로 골라볼게요. 어떻게서든 제 고마움을 전달하고 싶어서요.”“민아를 봐서 도와준 건데 괜찮아요. 민아 오빠만 아니었더라면 아마 상관하지도 않았을 거예요.”고은서가 사실대로 말했다.“제가 민아 덕분에 살았네요. 시간 편할 때 민아도 불러서 같이 밥 한 끼 먹죠.”고은서는 흔쾌히 승낙했다.송민준은 이어 어젯밤에 도주한 세 사람이 이미 경찰에 잡혔는데 응당한 벌을 받게 될 거라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고은서에게 전해주었다.전화를 끊은 후 텔레파시라도 통한 건지 이내 박지연한테서 영상통화가 걸려왔다.“누구랑 통화하고 있었어? 계속 부재중이라고 뜨던데.”고은서는 송민준이랑 통화하고 있었다면서 어젯밤에 있었던 일까지 다 그녀에게 알려주었다.박지연은 이내 걱정하면서 다친 곳은 없냐고 물었다.그녀는 괜찮다는 답을 듣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 진짜 절에라도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자꾸 재수 없는 일만 생기는 거야?”“시도 때도 없이 이런 사고가 자꾸 생기는데 나도 왜 이렇게 재수 없는지 모르겠어. 보살님한테 빌어서 해결될 일이라면 네가 대신

  • 어게인, 비긴   제1010화

    고은서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깜짝 놀랐다.“정말 절에 가는 거야?”“당연하지. 마침 육현석도 시간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같이 절에 가서 간절하게 빌고 주변에서 놀다 돌아오자. 일도 쉬면서 해야지.”박지연이 답했다.‘육현석도 같이 가는 거구나. 쉬는 게 아니라 그냥 데이트하러 가는 거겠지.’“난 굳이 두 사람 사이에 끼고 싶지 않은데.”“괜찮아. 너도 이젠 습관 될 때가 되지 않았니?”박지연이 웃으면서 말했다.“...”고은서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박지연과 시간을 정한 후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그러나 뜻밖으로 곽승연과 마주치게 되었다.품에 퀸을 안고 있는 걸 봐서는 아마 곽승재 집에서 나온 듯했다.“언니! 언니도 여기 살아요?”곽승연은 그녀를 보자마자 무척 기뻐했다.‘따지고 보면 승연이를 못 만나지도 꽤 됐네.’곽승연의 상태는 전보다 훨씬 좋아졌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눈에 띄게 좋아하며 총총 달려왔다.“응. 승연이는 여기에 왜 온 거야?”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엄마가 오늘 바빠서 같이 못 있어 준다고 나갔는데 마침 오빠를 너무 오래 못 본 것 같아서 기사님 차에 오빠 찾으러 온 거예요.”곽승연의 말하는 속도도 전과 달리 많이 빨라졌다.마침 곽승재가 집에서 걸어 나왔다.그는 고은서를 보고 입술을 달싹이더니 끝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틀 전의 키스를 떠올린 고은서도 그한테 별로 인사하고 싶지 않았다.“승연아, 언니는 볼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그러자 곽승연이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언니, 어디 가는 거예요?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고은서는 전에 편한 시간에 그녀를 데리고 놀러 가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아무튼 박지연이랑 육현석 두 사람과 나가는데 승연이를 데리고 가도 괜찮겠지?’“승연이 데리고 어디 갈 생각이었어?”고은서가 곽승재를 향해 물었다.“판주에 처리할 일이 생겨서 사무실에 데려가려고.”곽승재가 덤덤하게 답했다.‘굳이 휴식일에 동생을 데리고

  • 어게인, 비긴   제1011화

    고은서는 곽승재의 표정 변화를 눈치챘지만 그에게 더 설명해줄 생각은 없었다.고은서는 곽승연의 손을 잡아당기면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곽승재도 고은서에게 있어서 곽승연이 본인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었다.아마 누가 곽승연을 데리러 올지 물어도 고은서는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다.곽승재는 그저 퀸을 품에 안은 채 우두커니 서서 고은서와 곽승연이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언니, 오빠도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엘리베이터에 오르자 곽승연이 소곤대며 말했다.“아니야, 너희 오빠는 일이 바빠서 안 가고 싶을 거야.”이윽고 곽승연이 또 물었다.“언니랑 오빠는 다시 화해할 거예요?”곽승연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작게 웃고는 곽승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대답했다.“승연아, 언니가 말했지? 언니랑 승연이 오빠의 관계가 어떻든지 우리 둘 사이의 우정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고 말이야.”곽승연은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어느새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했고 고은서는 곽승연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고은서는 데리러 온다던 박지연이 도착했는지 몰라 연락을 하려고 핸드폰을 꺼낸 찰나에 마침 검은색 차 한 대가 천천히 접근하는 것을 발견하였다.운전석에 앉아있는 사람은 송민준이었고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송민아였다.“짜잔! 놀랐지?”송민아는 냉큼 조수석에서 내려 고은서를 놀래줬고 덕분에 고은서는 어리둥절한 채 송민아에게 물었다.“여긴 어떻게 온 거야?”“어떻게 오긴, 당연히 너 데리러 왔지!”송민아가 해석을 덧붙였다.“지연 언니가 같이 참배하러 가자고 연락이 왔었는데 오빠도 시간이 빈다길래 같이 왔어!”알고 보니 박지연이 송민아도 함께 부른 것이었다. 고은서에게 한 가지 의문이 있다면 박지연이 남자친구를 챙기느라 자신을 챙기지 못할까 봐 송민아를 부른 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여긴 누구야?”송민아는 얌전하고 순한 곽승연을 보고 물었다.고은서는 웃으며 곽승연을 그들에게 소개해주었다.“승연이라고 해. 곽승재 여동생이야.”

  • 어게인, 비긴   제1012화

    고은서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아마 그럴 일 없을 거야. 곽승재 말로는 회사에 급히 볼 일이 있다고 그랬거든.”박지연은 흥하고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제일 좋기는 오지 말았으면 해. 최근에 그 인플루언서랑은 아직도 안 헤어졌지? 오기만 해, 뭐가 됐든 내가 그 사람을 보고도 욕을 참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고은서는 작게 웃고 대답했다.“가자, 현석 씨가 표를 샀대.”육현석은 표를 손에 쥐고 다가왔고 송민준은 일행들에게 줄 물과 기도할 때 사용하게 될 향을 사 들고 다가왔다.“송민준 씨가 너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야?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귀한 쉬는 날에 우리랑 같이 절에 오는 고생을 찾아서 한다는 게 말이 돼?”박지연은 또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고은서는 박지연을 한번 흘기고는 대답했다.“그래, 네 말대로 지금 나한테 눈이 멀어서 다른 건 다 안중에도 없어서 내가 어딜 가든 다 따라오나 봐. 어떻게 좀 만족스러운 대답인가, 박지연 씨?”“...”박지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때마침 육현석이 다가온 덕분에 둘의 대화는 그쯤에서 마무리될 수 있었다.절은 엄숙하고 고요했으며 종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절에 들어서니 거대한 고목 몇 그루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들은 바에 의하면 이 절은 당나라 때부터 존재해왔다고 한다. 몇 번의 격변을 겪으며 예전만큼 성대하지는 못하나 여전히 그 명성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로 발길이 끊기지 않는 곳이었다.박지연과 육현석이 앞장섰다.송민아와 곽승연은 생각보다도 더 성격이 잘 맞는 것 같았다. 모든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고 심지어는 땅에 떨어진 은행나무 잎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둘이 딱 붙어 관찰하고 다시 걸어가곤 했다.그리고 고은서와 송민준이 제일 뒤에서 함께 그들을 따라갔다.고은서는 가장 영험하고 중생을 두루 보살핀다는 X신전에 도착해서 평안등 하나를 띄웠다.그러면서 타국에 있는 민시후가 무탈하게 수술을 마치고 얼른 몸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랐다.신전에서 나왔을 때 송민준이 고은

  • 어게인, 비긴   제1013화

    고개를 들어 곽승재의 아무런 표정도 없는 얼굴과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동자를 확인한 고은서는 그의 알 수 없는 어색함과 조금은 강압적인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고은서는 굳이 곽승재와 말다툼을 하고 싶지 않았다.“민준 씨가 말한 그대로야. 승연이가 민아랑 노는 걸 좋아해서 내가 내내 승연이 옆에 있을 필요가 없어진 것뿐이야.”곽승재는 묘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고은서의 말에 트집을 잡았다.“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았어야지.”갑작스러운 곽승재의 태도에 고은서는 어이가 없다 못해 그가 일부러 시비를 거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은서는 곽승재를 상대해주기도 귀찮아 퉁명스럽게 말했다.“미안, 내 잘못이야. 지금 당장 승연이를 찾으러 갈게.”말을 마친 고은서는 곧장 옆에 있는 사찰로 들어갔다.여시은은 눈을 두어 번 끔뻑거리고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곽승재에게 물었다.“곽 대표님, 왜 은서 화를 돋우고 그러세요!”곽승재는 고은서가 향한 곳을 바라보며 무미건조한 말투로 말했다.“내가 승연이를 보러 가야겠어요.”곽승재까지 자리를 뜨자 사찰 앞에는 여시은과 송민준 둘만 남게 되었다.여시은은 송민준을 향해 웃어 보이며 물었다.“송 대표님, 아까 은서 머리카락에 붙은 나뭇잎을 떼주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은서의 마음을 사려는 노력이라고 봐도 되는 부분인가요?”송민준은 여전히 온화한 태도로 여시은의 말에 대답했다.“마침 눈에 보여서 도와준 것뿐이에요.”“듣자 하니 며칠 전에 송 대표님한테 작은 사고가 생겼다고 그러던데요, 게다가 상처도 입으셨다고요?”여시은이 계속해서 물었다.“제 부상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큰일이라면 저한테 무작정 시비를 걸다가 경찰에게 잡혀간 사람들에게나 생겼겠네요.”여시은은 작게 웃었다.“일부러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라면 골치가 아파도 싸죠.”여시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송민아와 곽승연이 둘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승연아, 오빠가 지금 승연이 찾고 있는데 나랑 같이 오빠 찾으러 갈래?”여시은은 산뜻한 미

  • 어게인, 비긴   제1014화

    “...”그제야 고은서는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승연이가 아까까지 여기 있었는데 아마 민아랑 다른 곳에 갔나 봐. 내가 전화해서 물어보면 될 일이야!”말을 마친 고은서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을 때, 곽승재가 조롱하듯 말했다.“민시후가 가니까 이젠 송민준이야?”그 말에 고은서는 행동을 멈추고 곽승재를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그러는 넌 지금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딴 걸 묻는 거지?”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낀 곽승재는 차분하게 대꾸했다.“고은서, 넌 정말 독한 사람이야. 사람을 다루는데 무서우리만치 인정사정없을 뿐만 아니라 손에 쥐고 있는 게 누구의 감정이든지 참 쉽게 휘둘러. 네가 놓고 싶을 때 놔버리면 그만이지.”“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고은서가 바로 반박했다.“너야말로 어제는 마재경을 옆에 끼고 다니더니 오늘은 시은이랑 보란 듯이 이곳에 찾아왔잖아. 네가 그러고도 나한테 뭐라 할 자격이 있냐고!”“은서야 넌 지금 곽 대표님을 오해하고 있어.”곽승재가 말문이 막혀 어버버 거리고 있을 때 여시은이 갑자기 튀어나왔다.여시은이 고은서에게 설명했다.“오늘 곽 회장님께서도 판주 투자은행에 가셨는데 곽 대표님께서 나갔다 올 거라는 걸 알게 되셨고 내가 심심해할까 봐 나랑 같이 나갔다 오라고 하신 거였어. 절대 은서 네가 생각하는 그렇고 그런 게 아니야!”고은서는 원래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는데 여시은을 보니 기분이 더할 나위 잡쳤다.고은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시은아, 마침 곽승재도 함께 있으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짚고 넘어갈게. 난 곽승재에게 일말의 감정도 남아 있지 않고 다시 결혼할 생각은 더더욱 없으니까 날 두 사람 사이에 걸림돌로 생각하지 않아도 돼!”그 말을 들은 여시은은 단 한 번도 둘 사이에 본인이 껴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해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은서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렇구나. 그럼 시은이 너도 곽승재와 거리를 좀 두는 게 좋겠어. 나랑 곽승

  • 어게인, 비긴   제1015화

    여시은은 솔직하고도 재치있게 곽승재의 말을 받아쳤다. 그런 여시은의 태도에 곽승재의 미간이 묘하게 찌푸려졌다.“시은 씨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당분간은 결혼 생각이 없고 시은 씨가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것도 원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시은 씨도 저한테 너무 많은 감정을 기대하지 말아요.”곽승재의 말에 여시은의 얼굴에 드물게 상실감이 드리웠다. 하지만 여시은은 화를 내지 않았고 그저 입술을 삐죽이고는 투덜거릴 뿐이었다.“곽 대표님, 이렇게나 무뚝뚝해서야 되겠어요? 저도 제가 잠깐 뭐에 홀린 건 아닌지 반성 좀 해봐야겠어요!”곽승재는 여시은의 농담을 받아주지 않았다.“승연이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얼른 가봐야겠어요.”여시은은 굳이 곽승재를 따라가지 않았다.“곽 대표님, 은서도 절 반기지 않는 것 같고 대표님도 저랑 같이 있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으니 전 먼저 돌아갈게요.”곽승재는 여시은을 말리지 않았다.“기사님은 밖에 있어요. 제가 기사님한테 시은 씨 모셔다드리라고 말해둘게요.”여시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리고 곽 대표님, 나중에 은서한테 제가 은서 향수 완성품을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다고 좀 전해주실래요? 항상 기다리고 있다고도 말이에요!”여시은은 가려다 말고 상냥한 목소리로 곽승재에게 말했다.곽승재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은행나무 잎이 여시은의 팔에 떨어졌다. 팔에 붙은 나뭇잎을 떼서 본 여시은은 웃으며 나뭇잎을 부스러기로 만들어버리고는 털어버렸다.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이른바 소원 나무는 엄청나게 거대했다. 나무 기둥은 여러 사람이 둘러싸야만 안아지는 정도였고 나무뿌리는 화단에 둘러싸여 있었다.나무에는 목재로 된 소원패가 가득 걸려 있었고 바람이 불면 딸랑거리며 듣기 좋은 소리를 냈는데 그것도 나름대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곽승재가 도착했을 때, 송민아는 송민준을 안으로 끌어당기고 있었고 고은서는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으며 그 옆에는 일찌감치 다 쓴 곽승연이 있었다.곽승연은

  • 어게인, 비긴   제1016화

    고은서는 민망하긴 했지만 곽승재가 이미 이렇게나 높게 들어 올렸겠다, 기회를 틈타 더 망설이지 않고 소원패를 제일 높은 나뭇가지에 걸었다.“언니 소원패는 엄청 높은 곳에 걸었으니까 소원이 꼭 이뤄질 거야!”곽승연은 꺄르르 웃으며 손뼉까지 쳤다.때마침 송민아와 송민준도 안에서 나와 그 둘을 향해 다가왔다.고은서는 정말 민망하기 짝이 없어 곽승재한테 어서 내려달라고 사인을 보냈다.멀지 않은 곳에서 박지연과 육현석도 둘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둘이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본 육현석은 당연하게도 기뻤지만 박지연은 불쾌하다는 듯 곽승재의 손을 내치고는 고은서를 자신의 뒤로 끌어당겼다.그리고는 곽승재에게 그 인플루언서와의 관계를 언급하며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이 고은서에게 찝쩍대서야 되겠냐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박지연의 말을 들은 곽승재는 별다른 변명을 하지 않았고 그저 담담하게 대답했다.“전 그냥 은서가 키가 작아 높은 곳까지 닿지 않는 것 같아서 도와준 것뿐이지 찝쩍거린 게 아니에요.”박지연은 곽승재의 말을 믿지 않았다.“그러시구나, 참 마음씨도 좋네요? 그러면 여기서 인간 사다리나 하시면 되겠어요. 높은 곳에 닿지 않는 사람은 다 도와주시지 그래요?”숨도 안 쉬고 몰아붙이는 박지연에 곽승재는 찍소리도 할 수 없었지만 육현석도 그를 달리 도와줄 수 없었다.육현석은 몰래 곽승재를 부른 것만으로도 이미 크나큰 모험을 한 격인데 박지연의 심기를 더 건드렸다간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결국 송민준이 와서야 상황이 일단락되었다.“곽 대표님도 도와주려고 그런 거잖아요.”“곽 대표님, 여시은 씨는 함께 오지 않은 건가요?”송민준이 무심결에 곽승재에게 물었다.이에 곽승재가 고은서를 한번 보고는 대답했다.“시은 씨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갔어요.”곽승재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본능적으로 어딘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곽승재를 따라 굳이 이곳까지 함께 온 여시은이 얼마 있지도 않고 바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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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1112화

    의사가 여재훈의 상처를 처치하는 사이, 고은서의 휴대폰이 울렸다.번호를 보니 곽승재였다.고은서는 여재훈에게 말하고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은서야, 너 사고를 당했다며? 너와 여 대표님이 모두 다쳤다고?”곽승재가 다급히 물었다.임신 오해 사건 이후, 두 사람이 모든 것을 터놓고 얘기한 뒤로 그녀를 몰래 보호하던 인원을 철수한 상태였다.하지만 운전기사는 여전히 주민기가 배치한 인원이어서 고은서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알 수 있었다.고은서는 어디서 들었는지 캐묻지 않았다.“괜찮아. 마재경이 갑자기 유일 투자은행 주차장에서 나를 습격했어. 여재훈 씨가 막아주다가 팔을 다치셨고.”“나는 지금 출장 중이라 경찰서 쪽에 다른 사람을 보냈어.”곽승재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해성으로 돌아갈게.”고은서는 급히 돌아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여긴 별일 없으니까 일에 집중해. 여재훈 씨의 상처 처치가 끝나면 경찰서로 가서 마재경을 만날 거야.”“이쪽 일은 거의 마무리됐어. 내가 돌아가면 같이 경찰서에 가자.”곽승재는 설명을 이어갔다.“지난번 마재경이 다쳤을 때 병원을 방문해 더 이상 협조가 필요 없다고 통보하고 충분한 보상금도 지급했어.”“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 존재감을 과시하지 말라고 몇 번 경고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걸 보면 배후에 조종자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워.”곽승재는 차분한 목소리로 분석을 이어갔고, 고은서도 어느 정도 수긍했다.따져보면, 마재경은 돈 때문에 곽승재와 손잡은 것이고 그녀와 깊은 원한이 없었다.협력 관계가 끝났으면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야 정상이지, 이렇게 위험한 방식으로 그녀에게 복수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하지만 마재경이 진심으로 곽승재를 좋아하게 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천천히 사랑을 키워나가고 싶었는데 곽승재가 갑자기 관계를 끊자고 하니 그 분노를 고은서에게 쏟아냈을 수도 있다.고은서가 이 가능성을 말하려는 순간, 간호사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안에 있는 환자분의 부탁이라며 그녀의 상처

  • 어게인, 비긴   제1111화

    ‘분명 넘어뜨렸는데.’고은서는 마재경이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은 몰랐고, 가위를 들고 달려들 줄은 더욱 생각지 못했다.피하기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고은서는 다급한 마음에 전기충격기를 꺼내 마재경의 몸에 들이댔다.“조심해요.”고은서와 마재경이 전기충격기와 가위를 손에 들고 서로 공격하려는 순간, 우람한 체구의 남성이 황급히 달려왔다. 여재훈이었다.그는 고은서를 확 끌어당기고 마재경을 밀쳐냈다.쨍그랑! 전기충격기가 땅에 떨어지며 마재경의 몸에 닿았고, 감전된 마재경은 비명을 질렀다.잠시 비틀거리던 마재경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다시 가위를 휘두르며 덤벼들었다.고은서가 마재경을 걷어차려고 다리를 뻗는 순간, 여재훈이 자기 팔로 가위를 막아 그녀를 보호했다.그의 넓은 어깨는 웅대한 산처럼 든든해 보였고,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 품에 안겼을 때처럼 피난처 같은 안정감을 주었다.짝! 가위가 여재훈의 팔을 찌르며 옷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재훈은 잽싸게 마재경을 발로 걷어찼다.“여재훈 씨, 괜찮으세요?”정신을 차린 고은서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여재훈은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괜찮아요.”이때 경비원 몇 명이 달려와 마재경을 제압했다.고은서는 여재훈의 팔을 살펴보았다. 재킷과 셔츠가 찢기고 기다란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고은서는 가슴이 아려와 다급히 말했다.“다치셨네요. 빨리 병원 가서 싸매야 해요.”“고은서 씨도 다쳤으니 같이 가요.”여재훈이 고은서의 쇄골 부위를 가리키며 말했다.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여재훈의 말을 듣고 나니 쇄골 근처 어깨죽지 부위에서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손으로 만져보니 피는 나지 않는 듯했다. 오늘 카라 없는 캐주얼 셔츠를 입은 까닭에 마재경이 가위를 휘두를 때 살짝 긁힌 듯하다.“저는 연고만 바르면 될 것 같아요. 어서 병원 가요.”고은서는 경비원에게 마재경을 경찰서에 넘기라고 말했다.그러고는 기사를 불러오고 여재훈과 함께 뒷좌석에 탔다.여재훈의 팔뚝에 번진 핏자국을 보며 고은서는

  • 어게인, 비긴   제1110화

    여재훈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제가 은서 씨를 회사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이 식사는 여재훈이 초대한 자리였으니 끝까지 책임지고 고은서를 안전하게 회사까지 돌려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돌아가는 길에 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아 분위기가 조금 무거웠다.고은서는 여재훈이 자기 딸이 고양이를 학대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 걸 알기에 여재훈한테 혼자 생각할 시간을 줬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유일 투자은행의 주차장에 도착했다.“은서 씨, 곽승재 씨랑 현재 무슨 사이이신가요?”여재훈이 물었다.고은서는 사실대로 답했다.“그냥 평범한 친구 사이예요.”여재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승재 씨는 은서 씨를 많이 신경 쓰는 것 같더군요.”연회 때 곽승재가 고은서를 적극적으로 감싸는 모습을 모두가 똑똑히 봤다.이에 대해 고은서도 부정하지 않았다.“그건 곽승재 씨의 일방적인 감정이에요. 저는 그 사람한테 이성적인 감정은 없어요.”“시은이가 승재 씨를 꽤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요. 저한테도 말한 적 있어요.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여재훈은 말을 이었다.“아마 시은이의 질투심도 여기서 시작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은서 씨를 해하려 했던 걸지도 모르죠. 하지만 쿠아는 시은이가 가장 아끼던 반려동물이에요. 시은이가 이유 없이 해칠 리는 없을 겁니다.”고은서는 그 말의 속뜻을 곧바로 이해했다.여재훈의 말은 여시은이 고은서를 향한 질투 때문에 공격적으로 나왔을 수는 있어도, 쿠아는 여시은이 키우는 반려동물이기에 쿠아를 해칠 사람은 아니라고 믿는다는 것 같았다.고은서는 그저 씁쓸하게 웃었다.가족이라는 필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여재훈도 여시은의 본모습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고은서는 더 말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알기에 여재훈한테 간단히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차에서 내린 고은서는 어디선가 여자 하나가 스쳐 지나가는 듯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고, 공기 중에서 약간의 피비린내도 느꼈다.그녀는 주

  • 어게인, 비긴   제1109화

    여재훈은 고은서를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는 물었다.“시은이가 또 무슨 일을 했다는 거죠?”마침 노 사장님이 식전 반찬을 가져다주며 주문한 대표 요리도 곧 준비된다고 알렸다.고은서는 계속해서 말했다.“재훈 씨, 저희 먼저 식사부터 하고 이야기할까요?”고은서는 몹시 배가 고팠다. 만약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내면 두 사람 모두 식사할 마음이 사라질 것 같았다.여재훈은 고은서의 제안에 동의했다.이 개인 요리 식당의 음식은 색다른 풍미가 있었고, 고은서는 배부르게 먹었다.반면, 여재훈은 거의 먹지 않았다. 마치 그는 고은서를 동반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한 것처럼 보였다.식사 중에는 가끔 일상적이고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약 삼십 분 후, 고은서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배가 너무 부르다고 말했다.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남아있지만, 여재훈은 배부른 고은서를 보며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여재훈은 그녀가 배부르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뻤다.여재훈은 고은서의 찻잔에 물을 따라주며 물었다.“우리 시은이가 또 무슨 잘못을 저질렀던 거죠?”고은서는 찻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여시은이 고양이를 학대한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저번에 제가 쿠아 때문에 경찰에 신고를 했었잖아요?”고은서가 말했다.“전 정말 시은이에게 누명을 씌운 게 아니에요. 여시은이 제 눈앞에서 쿠아의 입술을 다치게 했어요. 그리고 평소에도 쿠아를 자주 괴롭혔어요.”고은서의 말을 들은 여재훈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시은이는 쿠아를 그렇게 아꼈어요. 집에서도 항상 품에 안고 다녔고, 쿠아가 뭐라도 먹고 싶어 하면 직접 손으로 먹여줬다니까요. 시은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했겠어요?”여재훈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물었다.“은서 씨, 혹시 오해가 있는 건 아니에요? 뭔가 착각하신 거 아닐까요?”평소 여시은은 얌전한 딸의 이미지를 잘 연기해 왔기에 여재훈은 그녀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재훈 씨가 믿기 힘든 거 알아요. 아버지 입장에서야 딸이 그

  • 어게인, 비긴   제1108화

    지난번 숙모에게 가방을 선물했을 때, 숙모가 엄청나게 기뻐했던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그래서 이번엔 삼촌에게도 뭔가를 사서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은서는 노 사장님에게 코담배병을 어디서 샀는지 물어봤다. 그리고 가족에게 드릴 선물로 하나 사고 싶다고 말을 덧붙였다.“이건 친구가 선물한 거라 어디서 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노 사장님은 미안한 듯 말했다.고은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그냥 예뻐서 한번 여쭤본 거예요. 나중에 백화점 가서 한번 골라볼게요.”“아가씨는 참 효심이 깊구먼.”노 사장님은 칭찬을 몇 마디 건넨 뒤, 주문한 메뉴를 주방으로 가져갔다.“은서 씨 아버님께서 코담배병을 좋아하시나요? 선물하시려고요?”여재훈이 부드럽게 물었다.고은서는 고개를 저었다.“전 아버지가 없어요. 삼촌께 드리려는 거예요.”여재훈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그는 고은서를 몇 번밖에 만나지 못했기에 그녀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들었다.“죄송합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여재훈은 곧바로 사과했다.고은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괜찮아요. 저희 가족끼리도 잘 지내고 있어요.”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여재훈은 고은서의 그 미소는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그때 여재훈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전화번호를 확인한 그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시은아, 왜 그래... 주사 맞는 게 당연히 좀 아프지. 하지만 주사를 안 맞으면 어떻게 낫겠어... 알겠으니깐 떼쓰지 말고, 의사 말 잘 들어.”전화를 끊고 나서 여재훈은 고은서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시은이가 아픈데 주사 맞기 싫다고 하네요.”고은서는 여시은의 이름에 반응이 컸다. 예전에 여시은에게 학대받다 죽은 쿠아가 떠올랐다. 그 기억 때문에 속이 불쾌해지고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그녀는 말없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여재훈은 고은서의 반감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그는 조심

  • 어게인, 비긴   제1107화

    여재훈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서는 여시은이 아픈 시기가 참으로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밖의 여론이 여시은에게 불리해서 고은서를 만나고 싶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요 며칠, 인터넷에서는 여시은과 관련된 뉴스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은서가 KK한테 도움을 요청한 것 외에도, 아마 곽승재도 뒤에서 힘을 써준 것 같았다.“원래 연회 다음 날에 시은이를 데리고 직접 사과드리려고 했는데, 며칠간 일이 좀 많아서 오늘로 미뤄졌어요.”여재훈은 이어 말했다.“오늘 아침에 갑자기 시은이가 열이 나서, 제가 혼자 찾아오게 됐습니다.”“은서 씨, 지난 일은 전부 시은이의 잘못입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여재훈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고은서는 담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재훈 씨의 사과는 저한테 너무 과분해요. 다만 저를 나쁜 사람으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고은서가 지난번 여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여재훈은 마음이 더욱 불편해져났다.“제가 도우미와 시은이의 말만 믿었네요. 시은이에게는 그 일에 대해 이미 훈계했고, 요 며칠 집에서 반성하고 있습니다.”고은서는 여시은이 그저 여재훈에게 보여주기 위해 반성하는 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결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여재훈은 여시은을 여전히 굳게 믿고 있었고 그녀의 이중적인 모습에도 크게 실망하지 않은 듯했다.고은서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자, 운전 중이던 여재훈도 잠시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한적한 곳에 있는 개인 요리 식당에 도착했다.그 식당은 규모가 너무 크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엄청 좋았다.정원에는 다양한 희귀한 꽃들과 식물들이 놓여 있었고 작은 인공 폭포와 휴식용 테이블과 의자들도 마련되어 있었다.입구 쪽의 돌 테이블 위에는 하얀색의 통통한 고양이 두 마리가 게으르게 햇볕을 쬐고 있었다.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니 고은서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 어게인, 비긴   제1106화

    송민아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저번에 네가 너무 진지하게 말하길래, 나 진짜 겁먹었잖아.”고은서가 다시 한번 웃으며 잡담하듯 물었다.“민아야, 너 예전에 말했잖아. 너랑 네 오빠는 엄마가 다르다고. 그럼 네 아빠랑 네 오빠 엄마는 이혼하신 거야?”송민아는 사무실 밖을 슬쩍 확인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조용히 말했다.“몰래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우리 오빠 엄마는 아빠랑 혼인신고도 안 했대. 둘이 약혼까진 했는데,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오빠 엄마가 아빠랑 결혼하길 거절했대.”고은서는 눈썹을 찌푸렸다.‘설마 송민준의 엄마도 결혼 안 하고 그를 낳은 걸까?’지난번 고은서가 송민준과 함께 바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그가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면서 송민준은 어릴 때부터 보호만 받고 자라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고 고은서한테 말한 기억이 있다.그때 그의 말투는 평소의 부드러운 말투가 아니라 약간의 조롱 섞인 느낌이었다. 마치 그의 어린 시절이 순탄치 않았다는 듯이.‘혹시 송민준의 어머니가 결혼도 안 하고 그를 낳아서 상처를 받은 탓일까?’“은서야, 이건 진짜 너한테만 말한 거니까, 절대 우리 오빠한테 묻지 마!”송민아가 신신당부하면서 말했다.“오빠는 이 얘기를 누구한테도 한 적 없어. 분명히 신경 쓰고 있다는 거야. 우리 엄마가 말하는 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더래.”“오빠는 혼자 살긴 해도 우리 엄마한테는 되게 예의 바른 거 있지. 나도 이 비밀 듣기 전까진 우리 둘이 같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줄 알았어.”고은서는 절대 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도, 송민준에게 묻지도 않겠다고 약속했다.“민아야, 혹시 너희 엄마가 네 아빠의 다른 연애 상대에 대해 말한 적 있어?”고은서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묻는 성격이었다.혹시라도 송민아의 어머니가 송민준 부모의 관계에 끼어든 거라면 송민아의 어머니가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냥 어른들 옛날 연애사에 호기심이 생긴 거야. 만약 불쾌했

  • 어게인, 비긴   제1105화

    송민준의 단어 사용은 꽤 신박했다.그는 “어젯밤 그 일은, 네가 의도한 거야?”라고 물었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가 아니라.그러니까 송민준의 말뜻은 그가 어젯밤 일이 여시은을 고의로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 고은서의 계획이었음을 알고 있다는 건가?하지만 그 테라스는 비교적 한적했고 로마식 기둥이 시야를 가려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이 잘 알아채기 어려운 장소였다.고은서가 로비에서 넘어졌을 때 여시은은 빈 와인잔을 들고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이 상황을 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시은이 고은서를 민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그런데 어떻게 송민준은 고은서가 여시은을 속이기 위해 고육지계를 쓴 걸 알아챈 걸까?고은서는 아예 직설적으로 물었다.“민준 오빠, 왜 그렇게 물어보는 거야? 설마 어젯밤 내가 넘어졌던 게 자작극이라고 생각한 거야?”그 말을 듣자 송민준은 웃으며 물었다.“은서야, 그런 뜻이 아니야. 난 그냥 그 농장 영상 말이야, 그걸 일부러 어젯밤 그 시점에 터뜨린 건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알고 보니 송민준은 농장 영상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그날 송민준의 컴퓨터에서 영상을 확인하고 난 후, 송민아가 고은서에게 이 영상을 바로 여재훈에게 전달할 거냐고 물었을 때, 고은서는 송민준을 경계해 일부러 연회 이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했었다.하지만 실제로는 연회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영상을 공개해 버렸다.송민준이 의심하는 것도 정상이다.“맞아.”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원래는 어젯밤이 지나고 여재훈 씨를 따로 찾아가려고 했는데, 그 상황에서는 여시은이 그런 행동을 할 만한 동기를 증명하려면 그걸 꺼낼 수밖에 없었어.”송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다른 뜻은 없었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네 선택이 맞아, 난 항상 널 지지할 거니깐.”그의 표정을 본 고은서는 확신했다. 송민준은 고은서가 아직 그를 경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그의 성격상, 어젯밤 그녀가 계획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했을 테니까. 하지만 송민준

  • 어게인, 비긴   제1104화

    박지연은 계속해서 불만을 터뜨렸다.“내가 보기엔 여시은은 태생이 못돼먹었어!”“이번에 그렇게 크게 당했으니 더더욱 널 원망할 거야. 너 조심 좀 해.”박지연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각을 세우기로 마음먹었기에 여시은과 평화롭게 지낼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앞으로는 여시은을 더 철저히 경계할 것이다.“듣자 하니 곽승재가 내내 널 감싸줬다며? 너한테 점점 마음이 가는 모양이야.”박지연이 코웃음을 쳤다.어젯밤 곽승재가 고은서를 계속 도와줬던 건 사실이었다. 증거를 공개하자고 제안한것도 곽승재의 생각이었고 마지막에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곽승재가 고은서에게 큰 도움을 준 셈이었다.하지만 고은서는 곽승재에 대한 이야기를 박지연과 깊이 나누지 않았다.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던 중 박지연이 고은서에게 뜬금없는 소문 하나를 전했다.“우리 과장님한테서 들었는데, 어제 혜린 씨가 다니는 병원에 조 여사님이 찾아가서 난리를 쳤대. 혜린 씨 남자관계가 복잡하다고, 다른 남자랑 팔짱 낀 사진까지 들고 와서 공개하면서 혜린 씨랑 그 자리에서 머리끄덩이 잡고 싸움 났대!”고은서는 지난번 소동 이후 손자를 중시하는 조수연이 한동안은 조용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작 며칠 만에 또 난리를 친 거였다. 조수연의 전투력은 엄청 대단했다.“아니, 그러다 혜린 씨 혹시라도 애를 지우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고은서가 물었다.박지연은 말했다.“조 여사님 말로는 혜린 씨 뱃속 애가 자기 아들 애가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해서 혜린 씨를 끌고 가서 친자 확인하자고 했대. 그래서 둘이 몸싸움까지 벌어져서 이미지도 최악이라 혜린 씨는 한 달 정직당했어.”“혜린 씨 배속에 애가 온승준 씨 애가 아니라고? 그럼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 집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거야? 그냥 진짜 애 아빠랑 결혼하면 될걸...”고은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소문엔 그 남자가 유부남에 애까지 있다고 하더라.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그냥 과장님이 흘린 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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