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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2화

Author: 류한나
“그럴 시간에 조금 이따 그 여자랑 어떻게 얘기할지나 생각해 봐.”

고은서가 고은혜에게 주의를 줬다.

그 말을 들은 고은혜의 표정이 순간 굳어버렸다.

“언니, 나 이런 일 못 하는 거 알잖아. 그 여자랑도 언니가 나서서 얘기해야 할 걸. 난 그저 집에 있기 싫은 데다가 언니를 응원해주러 따라가는 것뿐이야.”

고은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

오미나를 만나러 가는 도중 유성준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그는 전화가 통하자마자 사과부터 했다.

“은서야, 미안해. 요즘 너무 바빠서 미처 연락하지 못했어. 다름이 아니라 오늘 아저씨한테 문제가 생긴 것 같던데 자세한 건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

“고마워요, 오빠. 저도 이미 들었어요.”

함부로 다른 사람한테 말을 꺼낼만한 일은 아니지만 고은서에게 있어 유성준은 가족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그녀는 숨김없이 오늘 있었던 일들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유성준은 약간 놀라긴 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내 도움이 필요한 곳은 없어?”

“아직까진 괜찮은 데 필요하면 언제든지 오빠한테 연락할게요. 오빠, 그보다 요즘 MQ에는 별다른 일 없죠? 업무 리스트 같은 것도 다 확인했을 텐데 문제가 될 만한 곳은 없었어요?”

고은서가 진지하게 물었다.

유성준은 긴장해 하는 고은서의 말에 약간 어리둥절하기 했으나 현재 상황 그대로 말했다.

“MQ는 정상으로 운영되고 있어. 은서야, 그건 왜 갑자기 묻는 거야? 어디 이상한 점이라도 발견했어?”

성아연이 저지른 세무 사건 때문에 유성준도 덩달아 긴장되었다.

“아니에요. 그저 생각나서 물어본 것뿐이에요. 오빠, 요즘 MQ에 좀 더 많이 신경 써주세요. 삼촌 일이 좀 많이 복잡할 것 같아서요.”

고은서가 유성준에게 부탁했다.

“걱정하지마.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럴 거니까. 그런데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요즘 본가에 가지 않았다며? 일이 너무 바빠서 그런 거야? 몸도 챙겨가면서 해.”

고은서는 전에 있었던 교통사고에 관해 언급할 생각이 없었다.

필경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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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893화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고은서가 이어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말하자 안에 있던 오미나는 머뭇거리다가 끝내는 문을 열어줬다.문이 열리자 삼십 대 좌우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이 고은서의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오버사이즈 옷을 입고 있었고 단은숙과 비겼을 때 외모가 너무 눈에 띄게 출중하진 않았지만 아주 아련한 상을 하고 있었다.또 단은숙처럼 기가 세가 총명해 보이진 않았으나 연약하면서 강인한 아주 전통적인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그녀의 얼굴엔 아직도 손자국이 남아 있었는데 고은서와 고은혜를 보고도 욕설을 퍼붓거나 냉대하는 대신 겁에 질린 듯 문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고은서는 그제야 왜 고국성이 이 여자한테만 무방비하게 굴었는지 알 것 같았다.너무 공격성이 없는 외모 때문에 아무리 봐도 다른 사람의 가정을 파괴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고 고국성과 어울리는 면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은서가 오미나를 관찰하고 있을 때 고은혜도 똑같이 그 여자를 관찰하고 있었다.방금 집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는데 지금 자신의 엄마보다 훨씬 젊고 기품이 있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당장이라도 덮쳐들어 한 대 때리고 싶을 만큼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그녀의 분노를 느낀 오미나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감쌌다.덕분에 고은혜의 분노가 세게 들끓기 시작했는데 옆에 있던 고은서가 진정하라고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오미나 씨, 들어가서 얘기 좀 나눠도 될까요?”팽팽한 분위기 속에서 고은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오미나는 두 사람을 힐끔 보더니 들어오라고 손짓했다.“들어오세요.”고은서는 소파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오미나 씨, 우선 우리 삼촌을 대신해 사과드리죠. 어떻든 이 일은 우리 삼촌 책임이니까요.”여자는 전혀 꿀리지 않고 답했다.“국성 씨 탓이 아니에요. 누구도 이런 일이 생길 거라 예상치 못했으니까요.”“예상치 못한 일인 걸 알면 우리 아빠랑 깨끗하게 끝냈어야죠. 왜 아이로 우리 아빠를 협박하는 건데요!”고은혜가 분

  • 어게인, 비긴   제894화

    차가 본선으로 진입한 지 얼마 되지 갑자기 강하게 흔들리더니 둔탁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뒤에서 고은서의 차를 박았다.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고은서는 순간 얼마 전에 민시후와 함께 겪었던 교통사고가 떠올랐다.‘이번에도 누가 날 해치려고 일부러 내 차를 박은 건가?’공포에 휩싸인 고은서는 몸이 저도 모르게 굳어버렸고 얼굴도 사색이 되었다.“언니?”고은혜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고은서를 보면서 물었다.“왜 그래? 밖에 지금 누가 창을 두드리고 있어.”정신을 차린 고은서가 차창 밖을 내다보니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남성 한 명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고은서는 떨리는 손을 애써 공제하며 차창을 내렸다.중년남성은 먼저 사과하고 이어 갑자기 나타난 오토바이를 피하려다가 핸들을 급하게 돌리는 바람에 실수로 고은서의 차를 박았다고 설명했다.그는 또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말을 보태었다.아직 경각심이 풀리지 않은 고은서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중년남성한테 나중에 배상금액이 나오면 연락하겠다고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길 곳곳마다 감시 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에 중년남성이 이후에 책임을 회피하려고 해도 불가능했기에 고은서는 차에서 내리지 않기로 결정했다.중년남성도 더는 고집부리지 않고 연락처를 건네주면서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사과한 후 자신의 차로 돌아갔다.아직도 긴장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고은서는 백미러를 통해 상대 차량이 시동을 거는 걸 보고 있었다.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그 차가 고은서의 차 옆에 멈춰 섰다.이내 기사가 그녀를 향해 말했다.“아가씨, 우리 대표님께서 죄송하다고 전해달라고 하십니다.”고개를 돌려보니 뒷좌석에는 아주 익숙한 사람 한 명이 앉아 있었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송민준이었다.목적지로 가는 것인지 아니면 금방 일을 꺼내고 나오는 길인지 그는 아주 깔끔하게 블랙 정장과 흰색 셔츠를 차려입고 있었다.송민준도 그녀를 보고 약간 의아해했다.그는 이내 온화한 미소를 띠고 먼저 입을 열었다.“은서 씨, 이렇게

  • 어게인, 비긴   제895화

    송민준 말처럼 차가 고장 났기에 계속 몰았다가 불의의 사고라도 날까 봐 겁이 난 동시에 송민준한테 할 말도 있었는지라 고은서는 망설임 없이 그의 차에 올랐다.그녀가 차에 오른 후 옆자리에 올랐다.아직 서먹한 탓인지 꽤 멀리 떨어져 앉았다고 해도 약간의 불편함을 느낀 고은서는 슬쩍 차창 쪽으로 붙어 앉았다.반면 송민준은 아주 태연해 보였다.“죄송해요, 은서 씨. 기사님 때문에 은서 씨 시간을 지체하게 되었네요.”“누구도 사고가 날 거라고 예상치 못했잖아요.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고은서가 나긋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곧 저녁 시간인데 제가 사과의 의미로 밥 한 끼 사드려도 될까요?”송민준이 손목시계를 보면서 말했다.확실히 곧 저녁 시간이기도 했고 또 차에서 편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기에 고은서는 흔쾌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송민준은 고은서의 음식 습관에 관해 물은 후 이내 기사에게 맵기로 유명한 중식집으로 가라고 지시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고은서는 약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민준 씨가 매운 음식을 안 좋아하시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평소에도 엄청 담백하게 드시잖아요.”곽승재랑 똑같았는데 그는 생신한 음식이 아니면 입에 대지도 않았고 또 조금이라도 양념 냄새가 심하면 쳐다보지도 않았다.송민아도 매운 음식을 별로 즐겨 먹지 않는데 송민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었다.“아마 어머니를 닮아서 그런 걸 거예요.”송민준이 웃으면서 답했다.그러나 이내 무언갈 떠올렸는지 그의 웃음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고은서는 송민아를 통해 두 사람이 배다른 남매라는 걸 들은 바가 있었는데 아마 갑자기 어머니 얘기에 좋지 일이 떠오른 듯했다.하지만 고은서는 그의 개인적인 사정까지 캐묻는 사람이 아니었다.“민준 씨, 이만 들어가죠.”송민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은서와 함께 식당으로 들어갔다.이름난 음식을 몇 가지 주문한 후 웨이터는 나가고 룸 안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고은서는 송민준을 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민준 씨, 전에 민아를

  • 어게인, 비긴   제896화

    송민준이 말한 것처럼 송민아가 아니더라도 다른 여자가 있을 것이었다.고은서는 한순간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질투도 원망도 아니었다.어차피 그녀가 민시후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랑보다 감동이 더 컸으니까 말이다.그녀는 단지 민시후가 기억을 되찾고 나서 모두가 자신에게 이렇게 했다는 걸 알면 어떤 기분일지 걱정될 뿐이었다.“어찌 됐든 가족들은 시후를 해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시후라면 이해할 거예요.”송민준은 마치 고은서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고은서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송민준이 이 이야기를 한 것도 절반은 민씨 가문 사람들의 뜻일 것이다.그녀가 민시후에게 더 이상 어떤 희망도 품지 않게 만들려는 의도일 테니까.“저도 참... 사과하려고 식사에 초대한 건데 괜히 불편한 이야기를 꺼냈네요. 제 잘못입니다. 술 대신 차라도 한잔 올리죠.”송민준이 찻잔을 들어 올렸다.고은서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괜찮아요. 이런 건 불편한 이야기도 아니에요. 민시후가 건강을 회복하는 게 제겐 가장 좋은 결과니까요.”송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은서 씨, 시후는 지금 해성에 없어요.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제가 비록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할게요.”고은서는 찻잔을 들어 송민준과 가볍게 부딪쳤다.“사실 오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요.”“부탁이라니요. 은서 씨는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감사합니다. 한 사람을 조사하고 싶은데 적당한 업체를 찾기가 어려워서요. 혹시 믿을 만하고 능력 있는 분이 있을까요?”송민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있네요. 조사하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 관련 정보를 보내주시면 바로 진행하겠습니다.”고은서는 오미나의 정보를 바로 송민준에게 보냈다.“이 여자가 최근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제 외삼촌에게 접근한 건 아닌지 그리고 그녀가 가진 아이가 정말 제 외삼촌의 아이가 맞는지 알고 싶어요.”그 말을 들은 송민준은 놀란 기색을 보였다.고은서가 이런 이야

  • 어게인, 비긴   제897화

    주인혁이 답했다.“맞아요. 누나, 혹시 조사할 사람 있어요?”“네. KK 연락처 넘겨줘요. 직접 얘기할게요.”주인혁은 더 묻지 않고 연락처를 알려주었다.그 후 주인혁은 자신이 참여한 드라마 촬영이 며칠 내로 끝날 예정이라 곧 해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전했다.고은서는 드라마가 대박 나길 기원한다고 하고는 해성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통화를 마친 후 고은서는 바로 KK에게 연락했고 KK는 그녀에게 꽤 친절하게 응대했다.그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 음악적 재능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 연예계에서 살아남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사설탐정 사무소를 차렸다고 했다. 음악은 그저 취미로 남겨두었다고 했다.이런 이야기는 이미 주인혁에게 들은 바 있었고 고은서는 KK의 해킹 실력도 본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고은서는 오미나의 정보를 KK에게 보내고 송민준에게 부탁했던 대로 동일한 요구를 전달했다.사실 고은서가 송민준에게 도움을 요청한 건 단순히 조사를 맡기려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떠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그날 저녁 고은서가 막 오미나의 아파트에서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송민준의 차와 마주했다.너무나 절묘한 타이밍이었다.이전 유일 투자은행 오픈 행사 때 송민준이 그녀를 대신해 페인트 공격을 막아준 적이 있었지만 민시후는 그의 의도를 의심하며 다른 목적이 있을 거라고 했다.또한 그녀의 유산은 송민준과 무관하다는 것이 밝혀졌고 백씨 가문을 견제하며 그녀를 돕기도 했지만 고은서는 여전히 송민아의 가정부가 옛정을 생각해서 백유미에게 협조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그녀를 움직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인물은 송민준이었다.민시후는 송민준이 평범한 사람처럼 감정 기복이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했지만 고은서는 그가 자신에게 묘한 친밀감을 보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물론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매력적인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그렇다면 송민준의 행동과 의도는 충분히 의심해 볼 가치가 있었다.만약 백유미가 의도적으로

  • 어게인, 비긴   제898화

    곽승재의 말에 고은서는 참지 못하고 콧방귀를 뀌었다.“진짜 할아버지의 사위였을 때는 이렇게 효심이 깊고 시간 많아 보이지 않았는데?”곽승재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예전에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까 앞으로라도 보상하고 싶어서 그래.”어쩌면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고은서는 그의 말에 다른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중요한 일을 얘기하러 온 터라 곽승재와 말싸움을 이어갈 생각이 없었다.고은서는 그에게 축객령을 내렸다.“할아버지 얼굴도 봤으니 이제 돌아가도 되겠네.”고준석이 나무라듯 입을 열었다.“은서야, 그렇게 예의 없이 구는 거 아니야. 승재는 나 보러 일부러 온 거야. 내가 저녁도 같이 먹고 가라고 했어.”고은서는 고준석의 말을 무시한 채 곽승재를 바라보았다.“곽승재, 갈 거야? 안 갈 거야?”“은서야!”고준석이 다시 고은서를 불렀다.하지만 곽승재는 여전히 태연하게 답했다.“할아버지, 괜찮아요. 오늘은 은서가 올 줄 몰랐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찾아뵐게요.”“괜찮으니 여기서 저녁 먹고 가거라. 벌써 식사 준비도 다 됐어.”고준석이 만류했지만 곽승재는 깊은 눈동자로 고은서를 한 번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다음에 다시 올게요.”고준석은 그런 그의 태도에 고은서를 한 번 흘깃 쳐다보고는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저었다.“승재야, 바쁘면 굳이 나 보러 오지 않아도 돼.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마.”곽승재가 뭐라 하기도 전에 고은서가 먼저 고준석에게 다가갔다.“할아버지, 안으로 들어가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너 이 녀석...”“은서야.”고준석이 핀잔을 주려던 순간 곽승재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고은서는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보며 물었다.“또 뭔데?”곽승재는 입술을 깨물다 말했다.“할 말이 있어.”“말해.”고은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지만 곽승재는 고개를 저었다.“단둘이 얘기하는 게 좋겠어.”고은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불쾌한 기색을 드

  • 어게인, 비긴   제899화

    고은서는 살짝 놀랐다.‘외삼촌이 곽승재에게 직접 연락하다니... 혹시 도움을 청한 걸까?’“일이 좀 복잡하긴 하지만 우리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그러나 곽승재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어젯밤 주 비서에게 오미나를 조사해 보라고 시켰어.”솔직히 말해 그의 일 처리 속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결과 나왔어?”그녀는 참지 못하고 물었고 곽승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고은서는 순간 고민에 빠졌다.송민준과 KK 쪽에서는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는데 곽승재는 벌써 조사 결과를 가져왔으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직접 해결하겠다고 선을 그었는데 이제 와서 결과를 묻는 건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그녀의 망설임을 눈치챈 듯한 곽승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오미나의 사생활은 비교적 깨끗한 편이야. 외삼촌과 실제로 사업적으로 엮여 있었고 몇 주 전에 같은 호텔에 묵었던 것도 사실이야. 현재로선 그녀가 가진 아이가 외삼촌의 아이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이미 여기까지 말이 나온 이상 고은서는 자신의 의문점을 솔직하게 꺼냈다.“오미나 조건도 좋고 외적으로도 괜찮은데 외삼촌을 선택할 이유가 있을까? 게다가 아이를 지우겠다는 생각도 안 하고 있어.”곽승재는 차분하게 설명했다.“오미나의 원래 가정은 형편이 좋지 않았어. 결혼 상대도 별로였고. 이혼했지만 전남편이 마치 기생충처럼 계속 붙어있었지. 지금은 회사에서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그저 높은 직급을 가지고 있는 직장인일 뿐이야. 가족과 전남편 문제를 해결할 만큼의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외삼촌에게 접근한 걸 수도 있어. 금전적인 이유가 개입되지 않았다고 보긴 어렵지.”고은서가 미간을 찌푸렸다.“외삼촌과 나는 이미 금전적인 보상을 제안했어. 원하는 조건을 말해도 된다고 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어. 소중한 아이이니 낳아서 혼자 키우겠다고 하더라.”곽승재는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MQ는 현재 외삼촌이 운영하고 있고 외삼촌

  • 어게인, 비긴   제900화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갔어요.”“은서야, 왜 아직도 승재한테 그런 태도야?”고준석이 타이르듯 말했다.“지난번에 민시후랑 가능성이 없다고 했잖아. 승재 때문 아니었어?”민시후의 이름이 나오자 고은서의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하지만 고준석이 더 이상 묻지 않게 하려고 애써 밝은 척하며 답했다.“할아버지, 누가 곽승재 때문이라고 했어요? 곽승재에게 남은 감정이 없다는 걸 왜 믿어주시지 않는 거예요?”“이 할아버지는 당연히 믿지.”고준석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네가 이혼하려고 얼마나 큰 고생을 했는지 기억해. 다만 혹시나 쌓인 감정 때문에 네 마음을 감추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될 뿐이야. 승재도 요즘 많이 변했더구나. 너한테도 정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 혹시라도 승재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면 할아버지는 반대하지 않을 거야.”“저를 위해 많은 걸 해줬다는 건 알아요. 예전에는 제가 집착해서 그 사람을 귀찮게 했고 그건 제 책임이기도 해요. 심지어 승재가 저를 싫어했던 이유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모든 걸 안다고 해도 제가 받았던 상처가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고준석은 고은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은서야, 두 사람 다시 만나라고 하는 말이 아니야. 다만 나는 네가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으면 좋겠어. 승재에 대한 사랑이든 원망이든 말이야. 만약 완전히 놓아주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네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가. 그렇지 않으면 네가 너무 힘들 거야.”고은서가 자신은 힘들지 않다고 말하려던 순간 벨 소리가 울렸다.고은혜에게서 온 연락이었다.고준석도 화면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너희 둘 사이가 꽤 좋아진 것 같구나.”고은서는 고준석을 향해 살짝 웃어 보였다.“당연하죠. 애초에 우리가 깊은 원한을 가질 이유도 없었어요. 할아버지 저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요.”고은서는 한쪽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언니! 아빠한테 또 일이 생겼어!”전화를 받자마자 고은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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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1116화

    곽승재의 말을 들은 마재경의 얼굴에 두려운 기색이 살짝 감돌았다.하지만 문득 뭔가를 떠올린 듯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협박하지 마세요. 가벼운 부상에 불과하니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면 기껏해야 3년 감옥에 있고 나올 거예요. 당신들이 주는 기회 따위는 필요 없어요.”마재경은 인정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 확실했다. 3년 감옥살이로 거액의 돈을 바꾸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이로 미루어 보면, 마재경은 정말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것이다.고은서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3년 청춘을 돈과 바꾸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오점이 생겨 네가 어디 가든 따라다닐 텐데.”“게다가 그렇게 큰돈이 어디서 생겼는지 출처를 밝히지 못하면 경찰이 가만둘 것 같아? 일단 경찰이 알아내면 너의 공범도 잡히고 너는 비호죄까지 추가될 텐데. 정말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고은서의 말에 마재경은 약간 망설였지만 여전히 자기가 혼자 한 것이라고 고집했다. 돈도 어디서 입금됐는지 모르겠고, 어쩌면 팬 중 한 명이 보낸 것일 수도 있다고 둘러댔다.다소 김빠진 고은서는 곽승재와 함께 밖에 나가 마재경의 약점을 찾아보려 했다.그때 곽승재가 입을 열었다.“죄를 지었다는 것이 너의 고향에 알려지면 돈을 들고 금의환향하려는 생각이 실현될 수 있을까?”이 말에 마재경은 허를 찔린 듯 눈에 공포가 감돌았고 몸도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잠시 후, 곽승재의 얼음장 같은 시선 속에서 마재경은 철저히 무너졌다.“말할게요. 전부 다 털어놓을게요...”...여씨 저택.여시은이 수액을 다 맞고 여재훈도 약을 먹은 뒤였다.가정의가 떠나자, 여시은은 여재훈의 옆에 앉았다.“아빠, 왜 그러세요? 계속 미간을 찌푸리고 계시는데, 상처 부위가 많이 아프신 거예요?”여재훈은 순하고 사리에 밝은 딸을 바라보며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시은아, 네가 주워 온 길고양이가 너랑 그리 친하지 않은 것 같더구나?”여시은은 순진무구한 눈빛을 한 채 고개를 끄

  • 어게인, 비긴   제1115화

    마재경은 잠깐 멍하니 있더니 곧바로 사주한 사람이 없다고, 그냥 미워서 괴롭히고 싶었다고 말했다.그러자 고은서는 코웃음을 쳤다.“변명이 너무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안 들어?”“너와 곽승재가 단순히 금전적 관계였던 건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진심으로 좋아하는 감정이 생겨서 잘해보고 싶은데 외면당했다고 해도 곽승재한테 화풀이해야 하는 거 아닌가?”고은서의 질문에 마재경은 얼굴이 부자연스럽게 일그러졌다.“나는 곽 대표님을 존경했을 뿐 다른 마음은 없었어.”“그런데 너는 나와 곽 대표님의 스캔들 때문에 나를 질투했고, 나의 팬을 돈으로 매수해 나를 반죽음으로 만들었어. 이런 짓을 한 너에게 복수하면 안 되나?”‘흉기 난동 사건까지 내 탓으로 돌리려 하다니?’고은서는 더욱 어이없었다.“마재경, 머리는 장식품으로 달고 다니나? 내가 곽승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누구나 다 알아. 내가 질투심 때문에 돈으로 사람을 매수해 너를 해칠 이유가 없잖아.”“그리고 정말 나를 의심했다면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어? 나를 경찰서에 넘겨서 죄를 묻는 게 더 나았을 텐데.”마재경은 얼굴이 빨개졌지만 여전히 우겼다.“너는 돈도 많고 옆에 힘 있는 남자들도 많은데, 내가 어떻게 증거를 찾을 수 있겠어?”고은서는 다시 한번 어이없어 웃었다.“증거도 없다는 거네. 그러면 무슨 근거로 나를 의심해? 나한테 피를 뿌린 것도 모자라 잔인하게 죽이려고까지 했잖아.”“‘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내가 칼에 찔려 과다 출혈로 죽을 뻔했으니 같은 방식으로 너한테 되갚아주고 싶었어.”마재경은 고은서가 정말 자기를 해치기라도 한 것처럼 원한을 쏟아냈다.고은서는 더 이상 그녀와 논쟁을 이어갈 생각이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사주한 사람이 없다고 계속 우기면 너의 남은 인생은 감옥에서 썩게 될 거야. 인플루언서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물론 자유도 잃게 되겠지.”“너!”“협박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네 말대로 나에겐 돈도 많고 곁에 힘 있는 남자들도 많아.”이 말을 들은 마재경은

  • 어게인, 비긴   제1114화

    “집에서 모시러 오셨으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경찰서에 상황을 알아보러 가야 해서요.”그녀가 식사 자리에서 여시은을 용서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기 때문에 여재훈은 크게 놀라지 않았고 더 이상 설득도 하지 않았다.“고은서 씨, 이번 일은 저와도 상관이 있으니 같이 가도록 해요.”하지만 고은서는 완곡하게 거절했다.“아닙니다. 상대가 저를 노린 것이니 제가 가면 됩니다. 다치셨으니 일찍 들어가 쉬십시오.”그녀의 단호한 태도에 여재훈은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 다만 소식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고은서가 인사하고 자리를 뜨려는 순간, 여씨 가문의 가정의가 진료실에서 나오더니 호들갑을 떨었다.“여 대표님, 앞으로 이런 무모한 행동은 삼가세요. 이번에는 동맥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혈액형도 특이한데 대량 출혈이라도 발생하면 이 작은 병원에서 혈액을 공급받지 못했을 거예요.”‘혈액형이 특이하다고?’고은서도 희귀한 혈액형이었다. 그녀가 여재훈의 혈액형을 물어보려 할 때 여시은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러게요. 아빠, 몸을 좀 아끼세요. 너무 걱정되고 무서워요...”이 광경을 본 고은서는 말없이 떠나갔다....마재경이 뿌린 피가 그녀의 몸을 명중하지 못했는데도 여기저기 피가 튀어 불쾌한 냄새가 났다.곽승재가 경찰서에 같이 가자고 했기 때문에 고은서는 먼저 라이트문 아파트로 돌아가 꼼꼼히 씻은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곽승재는 빛의 속도로 달려왔다. 고은서가 대충 차려입고 경찰서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돼서 허둥지둥 달려오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곽승재는 얇은 미디엄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매끈한 핏 덕분에 더 훤칠해 보였다. 그의 잘생긴 얼굴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살짝 감돌았다.그는 고은서를 보자마자 상처부터 확인했다.곽승재의 따뜻한 손이 피부에 닿자, 고은서는 약간 불편한 듯 그의 손을 살짝 밀어냈다.“정말 괜찮아. 살짝 긁혔을 뿐이고, 이미 약도 발랐어.”곽승재는 손을 거두어들였지만 눈은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말쑥

  • 어게인, 비긴   제1113화

    지난번 여씨 저택에서 여시은이 쿠아에게 할퀴어 상처를 입었을 때 이 의사를 본 적이 있었다.여시은은 아버지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몸 상태도 생각할 겨를이 없이 병원으로 달려온 모양이다. 가정의도 걱정돼서 따라나섰을 것이다.“시은아, 왜 여기까지 왔어? 괜찮다고, 금방 돌아갈 거라고 말했잖아.”여재훈이 나무라듯 말했다.“아가씨께서는 대표님이 병원에 계신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수액을 뽑아버리고 운전기사에게 빨리 병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셨어요.”가정의가 설명을 보탰다.역시 그랬다. 여시은은 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예쁜 얼굴에 긴장과 걱정이 가득했다.“아빠,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어쩌다 다치셨어요?”여재훈은 고은서의 말을 듣고 딸에 대한 의심이 생겼지만, 그녀의 걱정스러운 모습을 보고 사람들 앞에서 추궁하지는 않았다.여재훈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작은 사고가 있었어. 이제 괜찮아.”여시은은 조금 안심된 듯했다. 그제야 진료실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 그녀는 의사와 간호사에게 인사한 뒤 고은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리셉션이 끝난 지 며칠 지났지만 두 사람의 대면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리셉션 때보다 여시은은 확연히 풀이 죽은 상태였다. 창백한 얼굴에 화장기 하나 없었고, 입술에도 각질이 일어나 있었다.게다가 여재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살짝 건드리면 깨지는 도자기 인형처럼 취약해 보였다.도대체 어떻게 이런 완벽한 연기를 펼칠 수 있는 건지?민시후의 부하들이 여시은에게 조현병이 없다는 걸 알아내지 못했더라면, 여시은이 이중인격을 가진 게 아닌지 의심했을 정도였다. 순진무구한 인격과 잔인하고 변태적인 인격 말이다.하지만 여시은은 조현병 환자가 아닌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눈가에 차가운 기운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비록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간 것이었지만 고은서는 정확히 포착했다.“고은서, 너 때문에 아빠가 다치신 거야?”여시은은 예전처럼 친한 척하지 않고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고은서가

  • 어게인, 비긴   제1112화

    의사가 여재훈의 상처를 처치하는 사이, 고은서의 휴대폰이 울렸다.번호를 보니 곽승재였다.고은서는 여재훈에게 말하고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은서야, 너 사고를 당했다며? 너와 여 대표님이 모두 다쳤다고?”곽승재가 다급히 물었다.임신 오해 사건 이후, 두 사람이 모든 것을 터놓고 얘기한 뒤로 그녀를 몰래 보호하던 인원을 철수한 상태였다.하지만 운전기사는 여전히 주민기가 배치한 인원이어서 고은서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알 수 있었다.고은서는 어디서 들었는지 캐묻지 않았다.“괜찮아. 마재경이 갑자기 유일 투자은행 주차장에서 나를 습격했어. 여재훈 씨가 막아주다가 팔을 다치셨고.”“나는 지금 출장 중이라 경찰서 쪽에 다른 사람을 보냈어.”곽승재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해성으로 돌아갈게.”고은서는 급히 돌아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여긴 별일 없으니까 일에 집중해. 여재훈 씨의 상처 처치가 끝나면 경찰서로 가서 마재경을 만날 거야.”“이쪽 일은 거의 마무리됐어. 내가 돌아가면 같이 경찰서에 가자.”곽승재는 설명을 이어갔다.“지난번 마재경이 다쳤을 때 병원을 방문해 더 이상 협조가 필요 없다고 통보하고 충분한 보상금도 지급했어.”“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 존재감을 과시하지 말라고 몇 번 경고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걸 보면 배후에 조종자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워.”곽승재는 차분한 목소리로 분석을 이어갔고, 고은서도 어느 정도 수긍했다.따져보면, 마재경은 돈 때문에 곽승재와 손잡은 것이고 그녀와 깊은 원한이 없었다.협력 관계가 끝났으면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야 정상이지, 이렇게 위험한 방식으로 그녀에게 복수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하지만 마재경이 진심으로 곽승재를 좋아하게 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천천히 사랑을 키워나가고 싶었는데 곽승재가 갑자기 관계를 끊자고 하니 그 분노를 고은서에게 쏟아냈을 수도 있다.고은서가 이 가능성을 말하려는 순간, 간호사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안에 있는 환자분의 부탁이라며 그녀의 상처

  • 어게인, 비긴   제1111화

    ‘분명 넘어뜨렸는데.’고은서는 마재경이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은 몰랐고, 가위를 들고 달려들 줄은 더욱 생각지 못했다.피하기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고은서는 다급한 마음에 전기충격기를 꺼내 마재경의 몸에 들이댔다.“조심해요.”고은서와 마재경이 전기충격기와 가위를 손에 들고 서로 공격하려는 순간, 우람한 체구의 남성이 황급히 달려왔다. 여재훈이었다.그는 고은서를 확 끌어당기고 마재경을 밀쳐냈다.쨍그랑! 전기충격기가 땅에 떨어지며 마재경의 몸에 닿았고, 감전된 마재경은 비명을 질렀다.잠시 비틀거리던 마재경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다시 가위를 휘두르며 덤벼들었다.고은서가 마재경을 걷어차려고 다리를 뻗는 순간, 여재훈이 자기 팔로 가위를 막아 그녀를 보호했다.그의 넓은 어깨는 웅대한 산처럼 든든해 보였고,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 품에 안겼을 때처럼 피난처 같은 안정감을 주었다.짝! 가위가 여재훈의 팔을 찌르며 옷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재훈은 잽싸게 마재경을 발로 걷어찼다.“여재훈 씨, 괜찮으세요?”정신을 차린 고은서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여재훈은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괜찮아요.”이때 경비원 몇 명이 달려와 마재경을 제압했다.고은서는 여재훈의 팔을 살펴보았다. 재킷과 셔츠가 찢기고 기다란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고은서는 가슴이 아려와 다급히 말했다.“다치셨네요. 빨리 병원 가서 싸매야 해요.”“고은서 씨도 다쳤으니 같이 가요.”여재훈이 고은서의 쇄골 부위를 가리키며 말했다.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여재훈의 말을 듣고 나니 쇄골 근처 어깨죽지 부위에서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손으로 만져보니 피는 나지 않는 듯했다. 오늘 카라 없는 캐주얼 셔츠를 입은 까닭에 마재경이 가위를 휘두를 때 살짝 긁힌 듯하다.“저는 연고만 바르면 될 것 같아요. 어서 병원 가요.”고은서는 경비원에게 마재경을 경찰서에 넘기라고 말했다.그러고는 기사를 불러오고 여재훈과 함께 뒷좌석에 탔다.여재훈의 팔뚝에 번진 핏자국을 보며 고은서는

  • 어게인, 비긴   제1110화

    여재훈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제가 은서 씨를 회사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이 식사는 여재훈이 초대한 자리였으니 끝까지 책임지고 고은서를 안전하게 회사까지 돌려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돌아가는 길에 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아 분위기가 조금 무거웠다.고은서는 여재훈이 자기 딸이 고양이를 학대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 걸 알기에 여재훈한테 혼자 생각할 시간을 줬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유일 투자은행의 주차장에 도착했다.“은서 씨, 곽승재 씨랑 현재 무슨 사이이신가요?”여재훈이 물었다.고은서는 사실대로 답했다.“그냥 평범한 친구 사이예요.”여재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승재 씨는 은서 씨를 많이 신경 쓰는 것 같더군요.”연회 때 곽승재가 고은서를 적극적으로 감싸는 모습을 모두가 똑똑히 봤다.이에 대해 고은서도 부정하지 않았다.“그건 곽승재 씨의 일방적인 감정이에요. 저는 그 사람한테 이성적인 감정은 없어요.”“시은이가 승재 씨를 꽤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요. 저한테도 말한 적 있어요.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여재훈은 말을 이었다.“아마 시은이의 질투심도 여기서 시작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은서 씨를 해하려 했던 걸지도 모르죠. 하지만 쿠아는 시은이가 가장 아끼던 반려동물이에요. 시은이가 이유 없이 해칠 리는 없을 겁니다.”고은서는 그 말의 속뜻을 곧바로 이해했다.여재훈의 말은 여시은이 고은서를 향한 질투 때문에 공격적으로 나왔을 수는 있어도, 쿠아는 여시은이 키우는 반려동물이기에 쿠아를 해칠 사람은 아니라고 믿는다는 것 같았다.고은서는 그저 씁쓸하게 웃었다.가족이라는 필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여재훈도 여시은의 본모습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고은서는 더 말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알기에 여재훈한테 간단히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차에서 내린 고은서는 어디선가 여자 하나가 스쳐 지나가는 듯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고, 공기 중에서 약간의 피비린내도 느꼈다.그녀는 주

  • 어게인, 비긴   제1109화

    여재훈은 고은서를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는 물었다.“시은이가 또 무슨 일을 했다는 거죠?”마침 노 사장님이 식전 반찬을 가져다주며 주문한 대표 요리도 곧 준비된다고 알렸다.고은서는 계속해서 말했다.“재훈 씨, 저희 먼저 식사부터 하고 이야기할까요?”고은서는 몹시 배가 고팠다. 만약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내면 두 사람 모두 식사할 마음이 사라질 것 같았다.여재훈은 고은서의 제안에 동의했다.이 개인 요리 식당의 음식은 색다른 풍미가 있었고, 고은서는 배부르게 먹었다.반면, 여재훈은 거의 먹지 않았다. 마치 그는 고은서를 동반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한 것처럼 보였다.식사 중에는 가끔 일상적이고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약 삼십 분 후, 고은서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배가 너무 부르다고 말했다.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남아있지만, 여재훈은 배부른 고은서를 보며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여재훈은 그녀가 배부르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뻤다.여재훈은 고은서의 찻잔에 물을 따라주며 물었다.“우리 시은이가 또 무슨 잘못을 저질렀던 거죠?”고은서는 찻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여시은이 고양이를 학대한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저번에 제가 쿠아 때문에 경찰에 신고를 했었잖아요?”고은서가 말했다.“전 정말 시은이에게 누명을 씌운 게 아니에요. 여시은이 제 눈앞에서 쿠아의 입술을 다치게 했어요. 그리고 평소에도 쿠아를 자주 괴롭혔어요.”고은서의 말을 들은 여재훈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시은이는 쿠아를 그렇게 아꼈어요. 집에서도 항상 품에 안고 다녔고, 쿠아가 뭐라도 먹고 싶어 하면 직접 손으로 먹여줬다니까요. 시은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했겠어요?”여재훈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물었다.“은서 씨, 혹시 오해가 있는 건 아니에요? 뭔가 착각하신 거 아닐까요?”평소 여시은은 얌전한 딸의 이미지를 잘 연기해 왔기에 여재훈은 그녀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재훈 씨가 믿기 힘든 거 알아요. 아버지 입장에서야 딸이 그

  • 어게인, 비긴   제1108화

    지난번 숙모에게 가방을 선물했을 때, 숙모가 엄청나게 기뻐했던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그래서 이번엔 삼촌에게도 뭔가를 사서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은서는 노 사장님에게 코담배병을 어디서 샀는지 물어봤다. 그리고 가족에게 드릴 선물로 하나 사고 싶다고 말을 덧붙였다.“이건 친구가 선물한 거라 어디서 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노 사장님은 미안한 듯 말했다.고은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그냥 예뻐서 한번 여쭤본 거예요. 나중에 백화점 가서 한번 골라볼게요.”“아가씨는 참 효심이 깊구먼.”노 사장님은 칭찬을 몇 마디 건넨 뒤, 주문한 메뉴를 주방으로 가져갔다.“은서 씨 아버님께서 코담배병을 좋아하시나요? 선물하시려고요?”여재훈이 부드럽게 물었다.고은서는 고개를 저었다.“전 아버지가 없어요. 삼촌께 드리려는 거예요.”여재훈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그는 고은서를 몇 번밖에 만나지 못했기에 그녀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들었다.“죄송합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여재훈은 곧바로 사과했다.고은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괜찮아요. 저희 가족끼리도 잘 지내고 있어요.”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여재훈은 고은서의 그 미소는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그때 여재훈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전화번호를 확인한 그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시은아, 왜 그래... 주사 맞는 게 당연히 좀 아프지. 하지만 주사를 안 맞으면 어떻게 낫겠어... 알겠으니깐 떼쓰지 말고, 의사 말 잘 들어.”전화를 끊고 나서 여재훈은 고은서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시은이가 아픈데 주사 맞기 싫다고 하네요.”고은서는 여시은의 이름에 반응이 컸다. 예전에 여시은에게 학대받다 죽은 쿠아가 떠올랐다. 그 기억 때문에 속이 불쾌해지고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그녀는 말없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여재훈은 고은서의 반감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그는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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