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을 끝낸 성연이 가려고 할 때, 보고 있던 진미선이 황급히 앞으로 나서며 성연을 붙잡았다.“성연아, 엄마가 오늘 너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 왔어. 네가 엄마를 한 번 더 도와주는 게 어떻겠니?”지난번에 제왕그룹과의 협력 후, 꽤나 재미를 본 왕대관은 수중에 방치된 프로젝트 몇 개를 제왕그룹 쪽에서 받아 주기를 바랬다. 그렇게만 되면 제왕그룹과 확실하게 연결될 텐데.그리고 자신에 대한 시어머니의 태도 또한 이전과 달라졌다. 하늘과 땅 차이로.요즘은 시어머니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가끔 보양식까지 사다가 건강을 챙겨 주기도 했다.시어머니의 냉대에 익숙한 진미선에게 있어서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믿기지 않는지 아마 그녀 본인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러니 앞으로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올 수밖에.물론 자신의 이런 모습이 매우 뻔뻔스럽다는 건 잘 알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했다.진미선이 생각할 때, 제왕그룹과의 협력은 오직 성연이 말 한마디만 하면 되는 거니까.성연이 동의만 한다면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을 터.진미선이 이런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것, 옷과 구두 따위를 선물한 건 모두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성연이 애초부터 파악하고 있던 사실이었다.기회를 틈타 자신에게 부탁하려던 게 진미선의 진짜 목적.성연의 눈빛이 한순간에 서늘해지며 비웃었다.“당신 모성애는 참 저렴하네요. 어째 10분도 채 못 가는지.”이렇게 눈앞에 나타나서 자신을 흔들지만 않는다면, 자신 또한 보고도 못 본 체할 수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진미선은 자신을 이용도구로만 여겼을 뿐.성연은 마음이 좀 서글퍼질려고 했다.진미선은 자신을 낳긴 했으나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때로 차라리 자신을 낳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도 하면서.이런 부모를 가진 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고통이었다.그러나 다행히 성연의 내면은 강인했다. 한걸음한걸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구에게도 기댈 필요가 없었다.성연의 냉한
속으로는 믿을 수 없었지만, 이런 기회를 당연히 놓칠 수는 없었다.자신도 제왕그룹의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송씨 회사 상황이 호전되어 기사회생 할 수 있을 것이다.기왕 온 이상 이번 기회를 반드시 꼭 잡아야 했다.송종철이 곧장 진미선을 향해 큰 소리로 비난했다.“진미선, 당신 너무 뻔뻔스러운 거 아냐? 그렇게 급히 시집갈 때는 언제고, 지금 감히 성연을 찾아와?”두 사람은 조금 전 가까스로 참았던 감정이 다시 솟구쳤다.다른 사람들은 다 진미선을 비난할 수 있어도 절대 자신을 비난할 자격이 없는 이가 바로 송종철이었다.송종촐의 비난에 진미선은 금세 화가 나 반박했다.“당신은 뭐 얼마나 잘했다고 그래? 성연이 태어났을 때, 한 번 안아본 적이나 있어?”“그래? 성연이 열 나는데 당신 어머니 다리가 불편해서 못 움직일 때, 누가 한밤중에 성량을 병원까지 데려갔어? 의사가 한 발만 더 늦었어도 목숨을 못 구했을 거라고 말할 때, 그때 엄마라는 너는 어디에 있었어?”사실 그 당시 상황은 송종철이 말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당시 그는 막 임수정과 재혼해서 함께 따끈따끈하던 신혼이었다.또 임수정이 성연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그가 어떻게 먼저 나서서 성연을 병원에 데려다 주었겠는가?성연의 외할머니는 성연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겁이 나 송종철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수없이 전화를 걸었다. 그에 시끄러워 잠도 잘 수 없었던 송종철이 마지못해 성연을 데리고 병원에 간 것이다.병원에 데려가 의사에게 보인 후 그는 모든 일이 끝났다는 듯 잠잘 곳을 찾아 가버렸다. 성연이 살든 죽든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지금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어보면 마치 성연에게 엄청나게 잘한 것처럼 들렸다.이런 말을 하면서도 송종철은 조금도 부끄러움이란 걸 몰랐다.진미선도 이에 질 세라 송종철의 밑바닥을 들추기 시작했다.“나는 정기적으로 성연이에게 생활비를 보내주었어. 당신은 성연이에게 한 푼이라도 준 적이 있어? 시골에서 먹고 입고한 것들 모두 내가 준
송종철이 부들부들 떨며 분노했다.성연을 매섭게 쳐다보며 말했다.“그 돈이 너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성연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당신은 딸을 팔았어요. 팔린 당사자인 내가 돈을 받을 자격이 없단 말이에요? 게다가, ‘정자’를 제공한 것 외에 나를 키우기라도 한 적 있어요? 나를 키운 사람은 외할머니였지 당신이 아니잖아요.”이어 성연이 몸을 돌려 진미선을 향해 말했다.“제왕그룹을 소개해 주며 한 번의 인정을 베푼 것으로 계산이 끝났어요. 다음은 없어요! 돌아가서 남편에게 전하세요. 이 합작을 잘 끌고가고 싶으면 남의 힘으로 이득 볼 생각 말고 제대로 된 프로젝트를 내놓으라고요. 그럼 제왕그룹도 한번쯤은 고려해 보겠죠.”애초 진미선을 도울 때, 이득을 본 진미선이 한 번으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었다.진미선에게 무른 태도를 보이지 않으리라 성연도 마음을 정한 터였다.인정 부채도 부채였다. 자신은 진미선에게 부채가 있었지만, 이번 합작이 소개해주며 소멸된 셈이다.물론 자신도 장사꾼이다. 만약 진미선의 남편이 정말 사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면 합작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진미선이야 물론 좀 얄미웠지만, 돈과 못 지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성연아, 제왕그룹이 북성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너도 알잖니? 잘한다 해도 네가 한 마디 안 해주면 제왕그룹이 받아주겠니? 성연아, 그러지 말고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한 번 더 도와줘.” 진미선은 다시는 그런 냉대를 받는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시어머니가 이제 간신히 자신에 대한 태도를 좀 누그러트렸는데, 만약 그녀가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분명 그전보다 더욱 심해질 게 뻔했다.진미선은 정말 겁이 났다.“진 여사님, 제왕그룹이 어떻게 당신을 돕게 됐는지는 그쪽 사람들이 이미 이유를 말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단지 인정상의 부채를 갚았을 뿐이에요. 제왕그룹 같은 그런 큰 그룹이 내가 하라 한다고 할 거라 생각하세요?” 성연이 냉소를 띈 채 진미선을 바라보았다.지금까지도 진미
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 집안일을 무진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의 과거는 너무 엉망이었다.그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다.그러나 무진은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성연의 학교 주변에 배치해 두었던 사람들의 보고에 따르면, 저 두 사람이 성연을 찾아온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그는 지금까지 이처럼 후안무치한 부모를 본 적이 없었다.비록 일찍 세상을 떠나시기는 했지만, 자신의 부모님은 살아생전 자신에게 더 없는 애정을 쏟으시고 자신을 보호해 주셨었다.성연의 부모라는 저들은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나을 정도였다!무진이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지만 멍하니 있던 성연은 막지 못했다.무진이 매우 예의 바른 태도로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물었다.“일부러 여기까지 성연을 찾으러 오신 모양인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요.”진미선의 눈에 강무진의 온몸에서 귀티가 흐르는 게 보였다. 만만히 대할 대상도, 절대 실해서도 안될 사람이었다. 그러니 강무진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강무진의 비위를 잘 맞춘다면 앞으로 합작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진미선은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쇼핑을 하며 성연이에게 어울릴 만한 옷 몇 벌을 샀다가 직접 주러 왔어요. 구두와 가방도 모두 내가 직접 고른 것이에요. 성연이에게 어울릴 만한 걸로.”한 눈에 봐도 진미선은 비교적 처신을 잘했다. 적어도 무진이 앞에서 가장할 줄 알았다.그러나 송종철은 그렇게 비위가 좋지 않았다.한창 화가 나 있던 그는 입에서 나오는 말도 충동적이었다.송종철이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입을 열었다.“강 대표, 결혼 지참금을 성연이에게 주었다던데, 사실입니까?”송종철의 다급한 모습을 보던 무진의 눈에 냉소가 떠올랐다. 무진이 담담하게 말했다.“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성연이가 원해서 제가 주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성연이의 돈이기도 하지요.”송종철은 마음이 다급했지만 무진의 앞에서 함부로 소란을 떨지는 못했다.눈만 부릅뜬 채 말했다.“당신들 마음대로 성연이 돈으로 할 수 있습니까
무진이 차에 오르자 성연이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멀리 떨어진 거리 때문에 단편적인 단어 한 두 개만 들렸을 뿐, 무진이 저들에게 뭐라고 했는지 구체적인 말은 듣지 못했다.그러나 저 두 사람의 창백하다 못해 얼어붙어 보기 흉한 안색을 보니,확실히, 무진에게서 좋은 말을 듣지는 못한 듯했다.성연은 무진을 한 번 쳐다보았다.무진은 성연이 저 두 사람 때문에 걱정하는 줄 알고 위로하며 말했다.“괜찮아, 앞으로는 상대하기 싫으면 하지 마.”말인즉슨, 앞으로 저 두 사람과 관련한 일은 모두 그에게 맡기면 된다는 뜻.무진의 말을 알아들은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닥 흥이 일지 않는 모습으로.솔직히 성연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혈육 두 사람을 상대하면서 뭔가 가슴을 꽉 누르는 듯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성연은 자신의 멘탈이 일반인보다 훨씬 강하다고 자신해왔다.그런데 이런 상황에 직면하니 성연 또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어찌 되었든 어느 정도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었다.성연은 창밖만 쳐다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평소 밝은 모습으로 재잘거리던 여자애가 돌연 아무 말없이 조용하니 정말 보기 힘들었다.무진도 아무 말없이 그저 성연의 옆에 함께 앉아 있을 뿐.송종철과 진미선, 두 사람이 귀찮게 하는 바람에 성연과 무진이 집에 도착한 시간은 꽤 늦어 있었다. 집사가 이미 저녁식사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지금 무진은 모든 걸 성연의 취향에 맞추었다.식탁 위에 놓인 것들 모두 성연이 좋아하는 음식들이다.그러나 앞에 있는 음식을 보면서 조금 전 학교 앞에서 만난 두 사람이 다시 떠오른 성연은 갑자기 입맛이 없어졌다.음식을 조금 집어 자신의 접시에 담은 뒤 무심코 휘적거리기만 할 뿐.겨우 반 공기의 밥을 몇 입 먹는 듯하더니 결국 수저를 내려놓은 뒤에 소파에 가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차에서부터 지금까지 성연의 기분이 아주 좋지 않다는 것을 무진은 알아차렸다.성연이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다. 사실 결국
평소에 성연연은 야식을 먹는 습관이 없었다.그래서 집사는 보통 자신을 위한 야식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오늘 저녁에 자신이 먹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어 서류를 내려놓은 채 자신과 함께 게임을 즐기던 무진을 떠올린 성연은 자연히 깨달았다. 이 야식을 무진이 준비시킨 거라는 사실을.무진의 이러한 친절은 성연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따뜻한 기운이 마음속으로 훅 밀려오자 갑자기 그렇게 힘들지도 않은 듯했다.옆으로 고개를 돌린 성연이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무진에게 말했다.“고마워요.”무진이 성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천만에. 앞으로 일이 있을 때는 속에 담고 있지만 말고 말해. 내가 같이 해결해 줄 테니.”“알았어요.” 성연은 가슴이 뭉클했다.예전엔 언제나 그녀 혼자였다.지금 강무진은 자신에게도 의지할 사람이 생겼구나, 라고 느끼게 했다.저녁을 먹은 무진이었으나 성연과 함께 야식을 먹었다.배불리 먹고 마신 성연은 다시 기운을 회복했다. 두 사람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은 생각하지 않았다.피곤한 하루였던 지라, 목욕을 하고 나온 성연은 침대에 엎드리자 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밤새 꿈도 꾸지 않은 채 아주 푹 깊이 잘 잤다.다음 날은 주말이라 성연은 학교에 갈 필요도, 연습할 필요도 없었다.적막할 정도로 조용한 집안에서 알람도 주말에는 자동으로 멈추며 누구도 성연을 방해하지 않았다.성연은 저절로 눈이 떠질 때까지 계속 잤더니 엄청 개운함을 느꼈다.일어났을 때, 무진은 이미 집에 없었다. 아마 일이 있어서 회사에 갔을 터.성연은 신경 쓰지 않고 기지개를 켠 뒤 스스로 일어났다.아침을 먹자 좀 심심해졌다.하루 종일 게임을 하면 질리겠지.주말 시간을 게임으로만 보내기엔 또 너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았다.무진이 집에 없으니 더 재미가 없게 느껴졌다.집에서 아침 시간 반나절을 빈둥거리다 심심해진 성연은 결국 할머니 안금여를 보러 고택으로 갔다.할머니는 잘 회복되고 있었다. 매일 성연이 이른 방법에 따라 재활치료를 진행한 까닭에
지금 성연은 화장실에서 통화를 하는 중이다.조금 전 휴대폰이 진동하자 핑계를 대고 화장실로 건너온 것이다.각종 장식물과 첨단 기술로 인테리어 된 고택은 방음 효과가 아주 뛰어났다.게다가 성연이 2층에 올라와서 통화를 하고 있어서 다른 사람이 듣기는 더욱 힘들 터였다.30초 정도 기다렸다가 지나가지 이가 없는 것이 확실해진 후에야 성연이 입을 열었다.“이 일은 곽대표님이 알아서 하세요. 사업성이 좋다면 협력할 수 없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좋지 않다면 끝입니다.”성연은 송종철 일가를 대하는 것처럼 매정하게 진미선을 대하지는 않았다.적어도 과거 진미선은 자신에게 생활비를 조금씩 보내줄 줄은 알았으니까.게다가 진미선은 외할머니의 친딸이었기에 외할머니의 얼굴을 봐서 한쪽 그물을 열어 준 것이다.다만, 성연은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입 밖에 꺼내는 순간, 욕심이 끝도 한도 없을 사람들이었으니까.진미선 쪽이 착실하게만 한다면 성연도 무사안일한 삶을 보낼 수 있게 할 것이다.성연을 잘 알고 있던 곽연철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진미선의 일은 그쯤 말한 뒤에 곽연철이 화제를 돌렸다.“아가씨, 또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말하세요.” 성연이 담담하게 말했다.언제나 신중한 곽연철인지라 일을 안심하고 그에게 모든 일을 맡길 수 있었다.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었다. 자연히 곽연철이 잘 알고 있을 테니.“그게 최근에 한 사업을 놓고 강씨 집안 WS그룹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대형 전자과학기술 사업으로 정부에서 모든 권한을 위탁할 업체를 선정한다고 해서 국내 많은 대형 기업들이 모두 달라붙어 경쟁 중입니다. 보스, 이 건에 우리도 참여해야 합니까? WS그룹도 아마 그 속에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곽연철은 성연이 강무진의 약혼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만약 공공연히 WS그룹과 맞서다가 이후 성연의 신분이 드러나게 되면 좀 좋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곽연철은 성연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녀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다.
WS그룹.무진 또한 마침 비서 손건호와 이 프로젝트에 대해 토론 중이었다.눈앞에 서류 한 무더기가 놓여 있었다.공개입찰 회사들에 관한 기본 자료와 이번 프로젝트에 관한 브리핑 자료들이었다.손건호가 눈앞의 한 자료를 가리키며 말했다.“보스,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경쟁자는 바로 제왕그룹입니다. 실력은 비록 WS그룹 보다 못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엄청나게 발전해서 이제 국내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곽연철 대표는 젊은 세대의 선두주자라고 할 만합니다.”곽연철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걸출한 인재로 장기적인 투자 안목을 가지고 있는, 매우 강력한 경쟁 상대였다.만약 협력 파트너라면 그들은 분명 매우 기쁜 마음으로 협력할 것이라 분명했다.다만 아쉽게도 아직 협력도 해보지 않았는데 경쟁자가 되어버렸다.당초 손건호는 회사의 고위급 임원을 물색할 때, 곽연철을 끌어들일 생각도 했었다.뒤에 여러 가지 이유로 흐지부지되었지만.짧디짧은 기간에 곽연철이 이런 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으리라 누가 알았겠는가?곽연철의 수단은 정말 훌륭했다.무진은 손건호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자신감 있는 얼굴로 말했다.“어쨌든 이 프로젝트는 우리 WS 그룹에 떨어질 수밖에 없어.”곽연철이 뛰어난 것은 분명했다.그러나 북성에 뿌리를 두고 100년의 역사를 지닌 WS 그룹에 비한다면, 제왕그룹이라는 신예는 역시 눈에 차지 않았다.무진이 나서서 원한 것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맞은편에 어떤 강력한 적수가 있다 해도, 무진은 이 프로젝트를 꼭 따 내고 말리라며 다짐했다.자기 보스의 실력을 생각한 손건호 또한 웃었다. 생각해보니 확실히 두려울 게 없었다.하지만 만전을 기하지 않을 수 없는 법. 손건호 역시 충분한 준비를 할 것이다.결국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인만큼 정해진 것 또한 아무 것도 없으니.비록 그들이 보기에 이 프로젝트는 이미 WS그룹에 넘어온 것이 확실해 보였지만 말이다.손건호는 항상 신중했다.“당분간
‘그런 예민주가 이렇게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어?’‘결국 5년 동안이나 무진 씨 애인 노릇에 만족해 있었다니!’‘심지어는 오늘 같은 이런 악랄한 짓까지 저지를 정도가 되었으니. 스승님이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송성연, 너 지금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예민주가 언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까? 연거푸 따귀를 맞은 데다가, 지금은 또 성연의 냉소와 신랄한 조롱을 들어야 했다.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예민주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원래의 정돈된 헤어 스타일과 잘 차려 입은 옷차림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온몸에 지금 낭패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회의실. 두 시간의 긴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 무진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당황한 표정의 손건호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무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평소라면 손건호가 절대 이렇게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텐데...’“보스, 예민주 씨가 맞았습니다!”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손건호가 급히 보고했다.“뭐라고?” 무진이 되물었다.“보스, 빨리 사무실로 가 보십시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방금 회의가 끝나갈 때, 손건호는 자료를 찾으러 먼저 회의실에서 나왔다.뜻밖에도 부리나케 달려온 비서실의 비서가 이 일을 알려주었다.무진의 눈동자가 어두워지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아무도 막지 않았어?”무진이 왜 아무도 막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손건호도 대답하기가 곤란했다.‘막고 싶어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대표실은 원래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모님(!)이 갑자기 뛰어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대비도 하지 못했어요.’‘안에서 예민주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안에서 문을 잠궜기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그러나 결국 손건호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표실 앞으로 다가간 무진의 귀에 울음 소리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리게 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아이의 몸에 난 상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그리고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성연은 범인이 바로 예민주라고 생각했다.‘방금 전에도 애들 앞에서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였어. 눈앞에 두 아이만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그런 여자가 뭘 못하겠어?’‘이 순하기만 한 두 녀석은 엉뚱한 짓을 한 적이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어.’‘충분히 사랑을 받았지만, 그걸 믿고 교만했던 적은 없었어.’‘밖에서는 더 영리하고 깜찍해서 누구나 좋아해. 척 봐도 좋아할 수밖에 없어.’‘그런데 여기에 와서 온몸에 멍이 들다니!’성연의 가슴에서 다시 분노가 폭발했다.딸아이를 가볍게 내려 놓은 성연은,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사무를 보면서 말했다.“동생을 잘 보고 있어. 너희가 당한 억울한 일을 엄마는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엄마, 저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야! 엄마가 반드시 혼내줘!”여전히 품에 안긴 채, 사진은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두 눈에 가득한 억울함을 지금 열심히 엄마에게 표현하려고 했다.“걱정 마. 엄마가 저 여자를 혼내줄게!”바로 일어선 성연이 성큼성큼 예민주 쪽으로 걸어갔다.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예민주는 성연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서한기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예민주가 어떻게 훈련으로 단련된 남자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놔! 너희들 뭐 하려는 거야?”예민주의 눈빛에는 걱정과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에 가슴은 두근거리면서 발걸음마저 비틀거렸다.짝! 짝!“이건 네게 주는 교훈이자 경고야. 내 아이는 절대 네가 건드릴 수 없어!”“네가 뭔데? 무진 씨 옆에 이미 5년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내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지.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어!”“이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경고야! 아이들은 바로 내 마지노선이야. 네가 또 손을 대면 절대 지금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성연은 목소리는 마치 서릿발 같았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싸늘한 기운에 무더운 날씨조차 얼음 세상으로 변하는 듯했
“오빠, 아빠가 정말, 정말로 우리를 안 받아들일까? 우리가 방금 아빠를 찾았는데.”작은 얼굴에 슬픔을 가득 담은 채, 사진은 간절한 시선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예민주는 지금 자신의 말을 자화자찬하며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팔짱을 낀 채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승자의 기운이 가득했다.잠시 후 자신에게 벌어질 참상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겠지만...대표 집무실 바깥.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표실을 향해 다가갔다.쾅-단숨에 집무실 문 앞에 선 성연은 아무런 노크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다.“너 이 새끼, 정말...”아이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예민주의 말이 성연의 귀에 몹시 거슬렸다.“예민주, 뭐 하는 거야!”자신의 아이들이 눈물 자국이 가득한 채 구석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엄마의 본능이 단숨에 뿜어져 나왔다.“내 애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단숨에 앞으로 나아간 성연은 두 손으로 예민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한 손으로 멱살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네가 뭔데 내 아이를 혼을 내?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성연의 차가운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온몸의 분노가 곧 폭발할 듯이!잇달아 따귀를 때렸지만 때리는 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엄마!” 성연이 다시 손을 들고 예민주의 뺨을 때리려고 할 때, 문득 익숙한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성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잠시 멈칫하던 성연은 계속 두드려 맞느라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예민주를 밀쳐낸 뒤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아가,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성연은 두 손으로 사진을 꼭 껴안은 채 자책했다. 지금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방금 전 예민주를 때릴 때의 그 무시무시한 기세도 모두 사라졌다.슬퍼하는 성연을 보면서, 사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그러나 엄마가 온 뒤에는 그래도 많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성연이
사진은 눈앞의 이 여자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예민주의 말은 걸러서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역시 어린아이였다.“오빠, 우리 아빠가 정말 우리를 이렇게 싫어해?”눈물이 그렁그렁한 여동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당신은 어른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겁니까? 당신이 뭔데, 여기서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겁니까?”지금 예민주 때문에 완전히 분통이 터진 사무는,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한 기세로 똑바로 예민주를 노려보았다.사무의 눈빛에 대해서 예민주는 처음부터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매번 저 자식의 눈을 볼 때마다, 정말 무진 오빠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았어. 무진 오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야.’사무가 거기에 서 있을 때는 그야말로 무진의 축소판이었다. 무진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도 성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몇 번 사무 저 새끼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정말 아이러니했어.’‘처음 만났을 때 빨리 도망칠 걸. 정말 후회가 되네.’‘5년 전에 분명히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됐는데, 왜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있는 거야?’‘송성연은 왜 이 두 아이를 낳았지? 무진 씨에게 이미 버림받았는데, 해외에서 편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아?’‘그 여자의 능력이라면 낯선 나라에서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어.’‘왜 운성시에 미련이 남은 거야?’“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 결국 예민주는 참을 수가 없었다.사무는 아직 그런 내막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분노한 상태였다.“내 여동생에게 사과하세요!”“이 새끼,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야?”예민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사무를 조롱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생아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나한테 이렇게 날뛰다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 아니야?”“이 못된 아줌마!”사진은 지금 지쳤지만 이 여자와 오빠가 이렇게 싸우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따라서 외쳤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