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화장을 지우자 성연은 곧바로 가버렸다.소지한은 웃으며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작은 소리로 말했다.“이 광고가 나오면 언론에 나가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은데?”이때쯤, 무진은 호텔 전체를 거의 다 살펴보았다.무진 일행이 다시 돌아왔을 때, 뜻하지 않게도 무진과 소지한 두 사람이 마주쳤다.거의 한순간, 소지한의 웃음이 약간 수그러들었다. 무진 또한 아주 약간 눈을 좁혔다. 그러나 아주 빨리 서로 엇갈리며 지나갔다.남자들 사이의 적의는 마치 무의식적으로 분출되는 것 같다. 두 눈이 교차하는 순간, 사방으로 튀는 불꽃은 당사자들만 알 수 있을 터.엘리베이터에 오른 무진의 검은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지금 그는 밖으로 드러난 것처럼 평온한 상태가 아니었다. 옆에 서있는 호텔 지배인을 바라보며 물었다.“소지한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겁니까?”무진은 지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그조차도 이 화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감정을 쏟아낼 곳을 찾지 못하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무진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자, 호텔 지배인은 속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말을 잘못한 것 같지도 않았지만, 강무진의 기분을 거슬린 부분이 있진 않는지.하지만 얼른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조금 전에 말씀드렸 듯이, 우리 호텔을 빌려 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대스타 소지한 아닙니까? 소지한 자신이 런칭한 의류 브랜드 컨셉이 마침 우리 호텔 분위기와 비슷하다고 합니다.”순간 무진은 조금 전의 신형이 떠올랐다.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지더라니.’‘그럼 성연이었다는 거 아니야?’어쩐지 자신의 첫 느낌이 이상하더라니.‘그런데 성연은 지금 학교에 있어야 하지 않나? 일부러 수업을 빼먹고 나와서 소지한을 만난다고?’어떤 이유로든 성연이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만은 화가 나 참을 수가 없었다.“오늘 시찰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급하게 호텔 시찰을 마무리 지은 무진이 서둘러 떠났다.그런 무진의 뒤를 손건호가 급히 따랐다.지배인의 머리가 온통 희뿌얘
성연을 마중하기 위해 무진이 학교로 가니, 성연이 교문으로 나왔다.이미 화장을 지우고 원 모습으로 돌아온 성연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조금 전 호텔에서 본 그 여자의 그림자는 하나도 찾을 수 없게.무진이 무심히 물었다. “오늘 뭐 했어?”뛰어난 직관력을 지닌 무진이 볼 때, 아까 그 여성은 바로 성연이었다.마침 맞게, 성연이 얼마 전 소지한과 열애설에 휩싸였던 것도 이를 한 층 더 증명하는 듯했다.다만, 성연은 분명히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다.무진도 들추지 않았다. 성연이 알게 된 후, 지금 같은 둘 사이의 평온한 관계가 깨질까 겁이 나서.성연을 보는 순간, 무진의 머리 속 생각들이 일시에 잠잠해졌다.성연이 말하기를 원하지 않는 이상, 자신도 억지로 묻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알아야 할 때가 되면 알게 될 테니까.무진의 속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성연이 평소대로 대답했다.“방금 연습을 마쳤어요.”무진 고개를 끄덕인 채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차 옆으로 오자, 성연에게 차문을 열어주고 먼저 오르게 한 무진이 뒤이어 차에 탔다.차에 올라 안전벨트를 맨 후 무진이 물었다.“오늘 저녁에 밖에서 식사할 건데, 뭐 먹고 싶은 거 없어?”머릿속에서 열심히 궁리하던 성연이 잠시 생각하다가 눈을 번쩍 뜨고는 말했다.“나는 해산물 정식이 먹을래요.”말하는 도중 입술까지 핥는 모습이 꽤나 먹고 싶은 모양이다.무진이 바로 대답하고 기사에게 해산물 레스토랑에 가자고 지시했다.무진은 성연을 북성에 있는 해산물 전문 레스토랑으로 데려갔다.북성에 문을 연 지 십여 년이 된 이 해산물 레스토랑은 맛있다고 꽤나 소문이 난 집이었다.상류층 인사들에게 입소문 난 레스토랑의 내부는 아주 고급스러웠으며, 국빈급 만찬요리를 내놓기로 유명했다.직원의 안내로 성연과 무진이 자리에 앉았다.성연은 레스토랑 내부를 훑어보았다.그러다 이 레스토랑 내부에 장식품들이 모두 오래된 골동품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식탁까지 상품의 박달나무다.이 장식품들만으로도 그
무진도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성연과의 산책으로 마음이 아주 가벼워졌다.하루 종일 바쁘게 보낸 뒤, 성연과 오붓하게 보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그리고 왠지 모르지만, 무진이 곁에 있으면 성연은 아무것도 마음 쓸 필요가 없는 듯한 기분이다. 안심하고 모든 걸 무진에게 맡기면 되는 듯한 느낌.그래서인지 성연의 온몸이 나른해지며 걷는 걸음도 일정하지 않았다. 마치 뼈가 없는 듯이 무진의 손을 붙잡은 채 허리를 안고 앞으로 걸어가는 성연의 온몸이 무진의 몸을 누르는 듯하다.코끝으로 전해지는 옅은 향기가 무진의 심신을 편안하면서 즐겁게 했다.거리를 걷는 동안, 주위의 사람들 모두 무진과 성연에게 눈길을 주었다.우선, 두 사람의 외모가 정말 뛰어났다. 아무렇게 사진 한 장을 찍어도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의 생김새다.또 다들 궁금한 표정이다. 도대체 무진과 성연이 어떤 관계인지.그도 그럴 것이 한 사람은 교복을 입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양복을 입고 있는 아주 이상한 조합이었으니까.무진은 성숙해 보이는 외모이긴 하나 나이가 많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딱 봐도 기운이 아주 강해 보였다. 성연은 아주 예쁘게 생겼지만 아직 풋풋한 청소년의 기운이 느껴진다. 무진에 비해 다소 앳되어 보이는 모습.구석에 있던 두 여자애가 작은 소리로 토론하기 시작했다.“저 두 사람, 동작이 저렇게 친밀한 걸 보니 딱 봐도 커플이겠지? 아저씨가 어리고 귀여운 여자와 함께 한 모습이 정말 잘 어울린다. 바로 내 심장을 찔렀어.” 여자아이가 성연과 무진을 보면서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하지만 그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아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두 사람의 나이차를 봐. 그리고 옷차림도. 딱 봐도 남매구만. 잘생긴 남자는 아마 저 여자애 오빠일 거야. 남매 관계가 아주 친밀하고, 아주 정상이네.”결국 무진은 너무 성숙해 보이고, 좀 판에 찍은 듯해서 성연의 남자친구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말.저들이 보기에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무슨 오빠야? 저 남자 눈빛
말하면서 자신과 무진이 이런 모습으로 거리를 걷다니 좀 이상한 기분이었다.마침 옆에 옷가게가 보이자 성연은 속으로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그리고 아예 무진에게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요.”성연은 바로 옷 가게 문을 밀고 들어갔다.옷걸이에 걸린 옷들 중에서 원피스 하나를 대충 골라 피팅 룸에 들어가 갈아입었다.갈아입은 성연이 밖으로 나오자 고개를 들던 무진의 눈에 감탄의 빛이 서렸다.성연의 분위기가 완전히 변했다. 성연이 입은 오프 숄더 형태의 붉은색 원피스는 상당히 독특한 디자인이었다. 아랫부분의 트임 디자인은 뽀얀 긴 다리를 드러내었고, 포니테일로 묶었던 머리를 풀자 완전 여리여리한 어린 숙녀였다.몸매도 상당히 좋아서 어느 일류 모델에게도 뒤지지 않았다.이때 옷 가게 주인이 다가와 성연이 입은 모습을 보고 칭찬했다.“선생님, 여자친구 분이 이 옷을 입으니 너무 예뻐요. 몸매가 정말 좋군요.”“감사합니다.”성연은 조금도 겸손하지 않게 말했다.성연의 외모와 몸매에는 마대를 씌워도 보기 좋을 것이다.무진의 정장 슈트에 맞춰 주기 위해 성연이 고른 것은 도발적인 스타일의 스커트였다.성연의 지금 옷차림을 보면 아무도 그녀를 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여자친구란 말을 들은 무진의 표정이 한층 부드러워졌다.결국 두 사람의 관계를 잘못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터.이렇게 성연은 의상으로 이미지 변신의 효과가 아주 뚜렷하다는 게 증명되었다.가게 주인이 계속 옆에서 칭찬했다.“두 분 분위기가 정말 좋으시네요. 두 분 외모가 이렇게 훌륭하시니, 나중에 태어나는 아기도 틀림없이 매우 사랑스럽겠어요.”성연은 가게 주인이 이 방면으로 화제를 끌고 갈 줄은 몰랐다.억지웃음을 지으며 손사레를 쳤다.“아니 뭘 벌써? 아직 멀었어요.” 옆에 선 무진이 성연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분부대로 하지요.”가게 주인이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다들 그러는데, 얇은 입술의 남성은 차가운 성정이지만, 한 번 사랑에 빠지면 죽을 때까지 간대요. 아가씨
사실 성연은 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냥 지금 이 느낌이 꽤 괜찮게 느껴진다는 것 외에.그리고 왠지 무진에게 맞추고 싶어서 그랬을 뿐이었다. 행동을 하기 전에 어떤 결과도 고려하지 않았고, 어떤 속셈 같은 것도 생각지 않았다. 그저 익숙한 대로 자연스럽게 그때의 상황 순응했을 뿐.성연은 언제나 마음이 내키면 내키는 대로 해왔다. 다른 것은 여태껏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이리저리 걸어가던 두 사람은 영화관 앞을 지나갔다.성연이 무진을 잡아 세우자, 무진도 성연을 따라 발걸음을 멈춰 세우며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성연이 옆에 있는 영화관을 가리키며 물었다.“무진 씨, 이런 곳에 가 본 적이 있어요?”영화관을 한 번 쓱 쳐다본 무진이 고개를 저었다.‘하긴, 명문재벌 가문의 도련님이니.’성연이 속으로 혀를 찼다.어려서부터 후계자로 키워졌고, 둘째, 셋째 작은할아버지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에 어디든 마음 편히 드나들진 못했을 것이다.영화를 본다든지 하는 일은 더욱 힘들었을 터.강무진의 하루하루는 수업과 서류로 가득 차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함께 지내며 살펴보니, 강무진이 얼마나 재미없는 생활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효율성만 고려한 완전 틀에 박힌 듯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오직 집과 회사만 왔다갔다하며 개인 여가생활이나 오락 활동과는 담 쌓은 생활이었다.사실 무진은 나이도 많지 않으면서 마치 늙은이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성연이 적극적으로 제안했다.“가요, 내가 당신 데리고 영화 관람 체험을 하러 갈게요. 예전 시골에서 학교를 다닐 때, 친구들과 자주 영화를 보러 갔었어요.”이전의 시간을 언급하는 성연의 얼굴에 약간의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시골의 학생들은 진실하고 대범했었다. 도시의 아이들처럼 그렇게 옹졸하지 않았다.시골에서는 서로 쉽게 하나가 되어 어울릴 수 있었는데…….이전의 성연은 친구가 아주 많았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북성에 오면서 오랫동안 친구들에게 연락하지 못했다.이런 생각들을 하니 영화를 보러
무진과 성연이 영화표를 구매했다.어쩌면 별로 인기 없는 영화인지. 영화관 안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관람객은 영화관의 절반 정도밖에 차지 않았다.하지만 이 정도면 영화 보는 분위기는 충분했다.성연과 함께 영화를 보며 무진은 잘 참았다.미스터리 영화였지만 무진은 그다지 스릴감을 느끼지 못했다.영화 스토리는 시작만 보고도 결말이 어떨지 짐작이 갔다.확실히 영화는 재미없었다.그러나 성연과 함께 있으니 이것도 꽤 괜찮은 느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두 사람 사이에 마침내 데이트 느낌을 가지게 되었으니까.영화는 볼 필요도 없었다. 그저 성연이만 쳐다봐도 아주 눈과 마음이 즐거웠으니까.무진은 아예 턱을 괸 채 성연만 바라보았다. 팝콘을 집어먹으며 스크린을 쳐다보는 성연은 꽤나 진지해 보였다.입안 가득 먹이를 문 햄스터처럼 볼이 불룩한 것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무진이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볼을 폭 찔렀다.고개를 돌린 성연이 왜 그러냐는 듯 눈빛으로 무진에게 물었다.무진이 그녀 앞에 있는 팝콘을 가리키자 성연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팝콘 부스러기가 뺨에 묻은 줄 알고 있는 성연에게 무진이 대신 팝콘을 건넸다.사실, 성연이 너무 사랑스러웠을 뿐이다. 다시 영화에 몰입하는 성연을 본 무진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손을 거두었다.한 시간 반이 흐른 후, 드디어 영화가 끝났다.영화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잇달아 일어나 나갔다.영화관을 나와서 마지막 남은 팝콘까지 다 먹어 치운 성연이 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이 영화, 스토리가 별로야. 예고편은 아주 재미있을 것 같더니, 본편은 좀 실망스럽네. 완전 사기야.”처음 영화가 시작될 때 꽤 기대했는데, 막상 보니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아주 나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대했던 것과의 격차가 좀 심했다. 그러나 오랜만에 영화를 본데다 비교적 깔끔한 영화다 보니 나름 괜찮은 경험이었다. “다음에 보고 싶은 게 있으면 평론을 먼저 보고 오자.” 무진
이튿날 깨어나 원기를 완전히 회복한 성연은 늘 그랬듯이 학교로 등교했다.무진은 당연히 회사로 출근했다.자료들을 모두 수집하고 정리한 손건호가 대표실로 들어와 무진을 불렀다.“보스, 곧 회의가 시작됩니다.”고개를 끄덕인 무진이 의자에서 일어나 손건호의 손에 들린 자료를 받아 들고 회의실로 갔다.WS그룹에서는 최근 남성 시계를 새로 출시했다.오늘 아침 회의는 바로 이번 신제품의 홍보모델을 선정하기 위해 열렸다.“총괄대표님…….”무진이 들어오자 자리에 앉아 있던 고위 임원들이 모두 일어나 무진에게 인사했다.예전과 달리 지금 무진은 이미 WS그룹에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실권자였다.옆에 앉아서 방청만 할 뿐 아무런 의견조차 낼 수 없던 그 무능한 인물이 아니었다.무진의 능력과 엄청난 수완을 확인한 후, 모두 무진에게 납작 엎드렸다. 무진 밑에서는 어떤 업무도 감히 대충할 수 없었다. 다음 번 자리를 빼야 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닐까 두려워하며 말이다. “앉으시죠.”무진이 담담하게 말하고는 상석에 앉았다. “강 총괄대표님, 이번에 추려본 홍보모델 후보 명단입니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습니다. 한 번 훑어보십시오.” 한 임원이 일어나 전전긍긍하며 손에 든 자료를 무진에게 건네주었다.홍보모델을 선정하는 것 같은 사소한 일은 평소라면 무진도 담당 부서에 맡긴다.이런 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회사에 남아 있을 필요도 없을 테니까.손 가는 대로 모델후보들에 대한 자료를 넘기던 무진은 그냥 보기만 할 생각이었다.그런데 돌연 소지한의 이름이 명단에 있는 것을 보자 잠시 손을 멈추었다.그런 무진을 본 임원이 입을 열었다.“대표님, 제 생각엔, 이번 신제품의 홍보모델로 소지한 T가 아주 적합한 것 같습니다. 소지한 씨의 이미지와도 아주 잘 어울리고 말입니다.” “고성재도 괜찮아요. 지금 여자애들은 이런 여리여리한 어린 남자애들을 더 좋아합니다. 소지한의 영향력도 물론 크지만 영화에 적합할 뿐이에요. 이런 홍보모델로는 고성재가 더 낫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보스 무진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비서 손건호가 바로 물었다.“보스, 무슨 까닭으로 이런 결정을 하신 겁니까? 제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소지한은 분명히 작은 사모님과 알고 지내는 사이입니다.”담담하게 비서를 힐끗 쳐다보며 무진이 대답해 주었다. “적은 가까이.”‘성연이 소지한과의 관계를 자신에게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나 혼자 알아보는 수밖에.’소지한의 어디가 그렇게 대단한지 알아볼 참이다.손건호는 곧바로 무진의 뜻을 알아차렸다.‘지금까지 아무 말 안하더니, 지금 보니 우리 보스, 이 일에 엄청 신경을 쓰고 있군.’‘여태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던 거야.’‘아니, 질투심이 폭발한 거, 맞지?’손건호는 공적인 업무를 이용해서 자신의 연적을 정탐하는 보스를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만약 예전에 보스에게 이런 말을 말했더라면 틀림없이 자신을 바보 멍청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보니, 역시 세상사 돌고 도니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법이다.특히나 사랑이라는 건 너무 심오하지 않은가.WS그룹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성연은 그 시각에 호텔에서 소지한이 디자인한 옷을 입고 계속 촬영 중이었다.더 이상 옷을 바꿔 입지 않아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옷을 갈아입었다.여자들은 모두 예쁜 옷을 좋아한다지만, 이렇듯 수없이 갈아입으면서 비로소 알았다.새 옷으로 갈아 입는 일도 육체노동이라는 걸.이번 한 번으로 충분히 겪어봤으니 두 번 다시는 체험하고 싶지 않았다.중간 브레이크 타임에 소지한이 성연이 가장 좋아하는 패션후르츠주스 한 잔을 들고 다가왔다.눈으로 주스를 확인한 성연이 즉시 손을 저으며 말했다.“커피. 정신 좀 차리게.”물론 성연은 버텨낼 수 있지만, 프로 모델이 아니다.그래서 자신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촬영에 영향을 줄까 우려했다.“너무 힘든 거 아니야? 아니면 내일 다시 할까.”소지한이 성연의 어깨를 주무르며 물었다.허심탄회하게 말해서 성연이 촬영한 결과가 확
‘그런 예민주가 이렇게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어?’‘결국 5년 동안이나 무진 씨 애인 노릇에 만족해 있었다니!’‘심지어는 오늘 같은 이런 악랄한 짓까지 저지를 정도가 되었으니. 스승님이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송성연, 너 지금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예민주가 언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까? 연거푸 따귀를 맞은 데다가, 지금은 또 성연의 냉소와 신랄한 조롱을 들어야 했다.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예민주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원래의 정돈된 헤어 스타일과 잘 차려 입은 옷차림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온몸에 지금 낭패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회의실. 두 시간의 긴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 무진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당황한 표정의 손건호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무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평소라면 손건호가 절대 이렇게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텐데...’“보스, 예민주 씨가 맞았습니다!”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손건호가 급히 보고했다.“뭐라고?” 무진이 되물었다.“보스, 빨리 사무실로 가 보십시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방금 회의가 끝나갈 때, 손건호는 자료를 찾으러 먼저 회의실에서 나왔다.뜻밖에도 부리나케 달려온 비서실의 비서가 이 일을 알려주었다.무진의 눈동자가 어두워지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아무도 막지 않았어?”무진이 왜 아무도 막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손건호도 대답하기가 곤란했다.‘막고 싶어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대표실은 원래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모님(!)이 갑자기 뛰어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대비도 하지 못했어요.’‘안에서 예민주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안에서 문을 잠궜기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그러나 결국 손건호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표실 앞으로 다가간 무진의 귀에 울음 소리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리게 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아이의 몸에 난 상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그리고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성연은 범인이 바로 예민주라고 생각했다.‘방금 전에도 애들 앞에서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였어. 눈앞에 두 아이만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그런 여자가 뭘 못하겠어?’‘이 순하기만 한 두 녀석은 엉뚱한 짓을 한 적이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어.’‘충분히 사랑을 받았지만, 그걸 믿고 교만했던 적은 없었어.’‘밖에서는 더 영리하고 깜찍해서 누구나 좋아해. 척 봐도 좋아할 수밖에 없어.’‘그런데 여기에 와서 온몸에 멍이 들다니!’성연의 가슴에서 다시 분노가 폭발했다.딸아이를 가볍게 내려 놓은 성연은,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사무를 보면서 말했다.“동생을 잘 보고 있어. 너희가 당한 억울한 일을 엄마는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엄마, 저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야! 엄마가 반드시 혼내줘!”여전히 품에 안긴 채, 사진은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두 눈에 가득한 억울함을 지금 열심히 엄마에게 표현하려고 했다.“걱정 마. 엄마가 저 여자를 혼내줄게!”바로 일어선 성연이 성큼성큼 예민주 쪽으로 걸어갔다.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예민주는 성연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서한기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예민주가 어떻게 훈련으로 단련된 남자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놔! 너희들 뭐 하려는 거야?”예민주의 눈빛에는 걱정과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에 가슴은 두근거리면서 발걸음마저 비틀거렸다.짝! 짝!“이건 네게 주는 교훈이자 경고야. 내 아이는 절대 네가 건드릴 수 없어!”“네가 뭔데? 무진 씨 옆에 이미 5년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내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지.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어!”“이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경고야! 아이들은 바로 내 마지노선이야. 네가 또 손을 대면 절대 지금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성연은 목소리는 마치 서릿발 같았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싸늘한 기운에 무더운 날씨조차 얼음 세상으로 변하는 듯했
“오빠, 아빠가 정말, 정말로 우리를 안 받아들일까? 우리가 방금 아빠를 찾았는데.”작은 얼굴에 슬픔을 가득 담은 채, 사진은 간절한 시선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예민주는 지금 자신의 말을 자화자찬하며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팔짱을 낀 채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승자의 기운이 가득했다.잠시 후 자신에게 벌어질 참상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겠지만...대표 집무실 바깥.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표실을 향해 다가갔다.쾅-단숨에 집무실 문 앞에 선 성연은 아무런 노크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다.“너 이 새끼, 정말...”아이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예민주의 말이 성연의 귀에 몹시 거슬렸다.“예민주, 뭐 하는 거야!”자신의 아이들이 눈물 자국이 가득한 채 구석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엄마의 본능이 단숨에 뿜어져 나왔다.“내 애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단숨에 앞으로 나아간 성연은 두 손으로 예민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한 손으로 멱살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네가 뭔데 내 아이를 혼을 내?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성연의 차가운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온몸의 분노가 곧 폭발할 듯이!잇달아 따귀를 때렸지만 때리는 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엄마!” 성연이 다시 손을 들고 예민주의 뺨을 때리려고 할 때, 문득 익숙한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성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잠시 멈칫하던 성연은 계속 두드려 맞느라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예민주를 밀쳐낸 뒤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아가,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성연은 두 손으로 사진을 꼭 껴안은 채 자책했다. 지금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방금 전 예민주를 때릴 때의 그 무시무시한 기세도 모두 사라졌다.슬퍼하는 성연을 보면서, 사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그러나 엄마가 온 뒤에는 그래도 많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성연이
사진은 눈앞의 이 여자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예민주의 말은 걸러서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역시 어린아이였다.“오빠, 우리 아빠가 정말 우리를 이렇게 싫어해?”눈물이 그렁그렁한 여동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당신은 어른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겁니까? 당신이 뭔데, 여기서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겁니까?”지금 예민주 때문에 완전히 분통이 터진 사무는,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한 기세로 똑바로 예민주를 노려보았다.사무의 눈빛에 대해서 예민주는 처음부터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매번 저 자식의 눈을 볼 때마다, 정말 무진 오빠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았어. 무진 오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야.’사무가 거기에 서 있을 때는 그야말로 무진의 축소판이었다. 무진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도 성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몇 번 사무 저 새끼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정말 아이러니했어.’‘처음 만났을 때 빨리 도망칠 걸. 정말 후회가 되네.’‘5년 전에 분명히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됐는데, 왜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있는 거야?’‘송성연은 왜 이 두 아이를 낳았지? 무진 씨에게 이미 버림받았는데, 해외에서 편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아?’‘그 여자의 능력이라면 낯선 나라에서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어.’‘왜 운성시에 미련이 남은 거야?’“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 결국 예민주는 참을 수가 없었다.사무는 아직 그런 내막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분노한 상태였다.“내 여동생에게 사과하세요!”“이 새끼,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야?”예민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사무를 조롱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생아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나한테 이렇게 날뛰다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 아니야?”“이 못된 아줌마!”사진은 지금 지쳤지만 이 여자와 오빠가 이렇게 싸우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따라서 외쳤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