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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새로운 사랑

하소정은 충격을 받았다. 좋아했던 기생오라비한테 거절당하고, 하서관한테 모욕당하고… 그녀는 화를 내며 술집을 뛰쳐나왔다.

그때, 양아치 몇 명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그들을 그대로 하소정을 둘러싸며 음흉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가씨, 혼자 왔어요? 우리가 놀아줄까요?”

하씨 집안의 공주였던 그녀는 어릴 때부터 집안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위험을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당신들 누구야! 필요 없으니까 얼른 꺼져! 살려주세요!”

하소정에게는 기사가 있었다. 위험에 빠진 하소정을 보자 기사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그 손 놔!”

하지만 양아치들은 손쉽게 기사를 쓰러트렸다. 그들은 기사를 발로 몇 번 차기까지 했다.

하소정의 호흡이 얕아지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양아치들은 하소정의 입을 막더니 그녀를 으슥한 골목으로 끌고 갔다. 그들은 손을 내밀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우리가 놀아줄게요. 기념사진도 찍어주고. 보고 싶을 때마다 전화할게요. 하하하하!”

양아치들이 불순하게 웃어댔다.

입을 막힌 하소정은 아무 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신분이 낮은 남자, 그녀가 평소에 제일 싫어하는 인간들이었다. 그녀는 해성의 사대가문에 시집갈 사람이다. 그녀는 이런 추잡한 남자들에게 과분한 존재다. 그들에게는 하소정의 털끝 하나 건드릴 자격도 없다.

지금 그들은 그녀의 얼굴을 만지고 있었다. 뼛속부터 느껴지는 한기에 그녀는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녀는 울면서 그들에게 애원했다.

“아가씨, 치마가 이쁜데? 술집에 남자 꼬시러 왔죠? 우리가 그냥 벗겨줄게요.”

오늘 육한정을 위해서 한껏 꾸미고 온 건 사실이다. 누군가 자신의 옷을 잡아당기는 느낌에 그녀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쳤다. 눈물이 ‘와’하고 쏟아졌다.

싫어! 안돼!

그때 귓가에 듣기 좋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놓아주자.”

양아치들이 손을 놓더니 하소정이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하소정의 얼굴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그녀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도 못한 채 고개를 들었다. 아름다운 얼굴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곽… 곽서택이다!

하소정의 눈동자가 멍해졌다. 그녀는 곽서택을 알고 있었다. 해성의 작은 왕,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곽서택은 손에 담배를 꽂은채로 하소정의 앞에 다가왔다. 그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씨 집안 둘째 따님, 이건 경고예요. 다가가지 말아야 할 사람 주위에 그만 얼쩡거려요. 그러다 큰코다쳐요.”

말을 끝낸 후, 곽서택은 담배를 바닥에 버려버리고는 발로 불을 껐다. “가자.”

모든 사람이 떠났다.

하소정은 처참한 모습으로 바닥에 앉아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죽었다 살아난 기분이었다. 어쩌다 곽서택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호화로운 차 한 대가 그녀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하소정은 고개를 들었다. 서서히 내려오는 창문 사이로 결점 없는 얼굴이 드러났다. 육한정…이다.

육한정이라니!

유란원으로 돌아오자 하서관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음성 메세지를 보냈다. ‘미령아, 고마웠어.’

이옥란은 연예계의 고인물이다. 그녀에게는 인맥이 많았다. 법적으로도 아는 사람이 많았다. 그녀에 관한 추문이 조금이라도 올라오면 바로 중간에서 처리가 된다. 이번 왕대표 사건이 실시간 검색어 1위가 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한 사람 덕분이다.

바로 하서관의 제일 친한 친구 여미령이다.

하서관과 여미령은 유치원 때부터 친구였다. 둘이 함께라면 못 할 말이 없었다. 나중에 할아버지 사건이 터졌을 때도 여미령은 그녀를 믿어주었다.

아홉 살, 그녀가 시골로 보내졌을 때 여미령은 울면서 그녀와 작별 인사를 했다. 매년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여미령은 그녀를 찾아와 놀곤 했다.

빠르게, 답장이 왔다. 하서관은 그녀의 음성메세지를 눌러보았다. 여미령의 달콤한 목소리가 울려 펴졌다. ‘서관아,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고마워해. 걱정하지 마. 이번 일 우리 매니저한테 직접 부탁한 거니까. 하진국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거야.”

여미령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좋았다. 남자들이 들으면 환장할 목소리였다.

물론, 여미령의 목소리는 그녀의 얼굴과 맞먹었다. 해성의 제일 미녀라 불리우는 그녀는 이 년 전에 연예계에 데뷔했다. 지금 그녀는 인기가 뜨거운 ‘4 대미인’이 되었다.

여미령의 손길에 하진국은 아무 단서도 잡을 수가 있었다. 물론 이옥란은 그녀를 의심하겠지만, 하진국은 절대로 그녀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시골에서 올라온 그녀에게 연예계를 쥐락펴락할 힘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것이다.

하서관은 너무 감동스러웠다. ‘미령아, 해성에는 언제 돌아 올거야?’

여미령이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요염해졌다. ‘왜? 나 보고 싶어? 새로운 사랑을 찾았다는 소문이 있던데. 어떻게 나 같은 옛사랑이 그립겠어?

새로운 사랑?

하서관이 칼답을 했다. ‘아니야.’

‘너 당황했지. 당황했네, 당황했어.’ 여미령이 대답했다.

하서관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여미령의 음성 메세지가 따라왔다. ‘솔직하게 말해. 네가 스폰하고 다닌다던 그 기생오라비에 대해 얘기 좀 해봐.’

역시나, 여미령이 말한 사람은 육한정이었다.

여미령은 해성에서 제일가는 미인이다. 레드카펫을 걷는 그녀에겐 분위기가 넘쳐흐른다. 하지만 그녀는 가십거리를 좋아한다. 아마 누가 그녀한테 알려줬겠지.

그때 방문이 갑자기 열렸다. 늠름한 몸집의 사람이 걸어들어왔다. 육한정이 서재에서 돌아왔다.

제 발이 저린 걸까, 방금까지 침대에 엎드려 있던 그녀가 순식간에 일어섰다.

육한정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검은색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남자의 치명적인 쇄골이 드러났다. 그때, 그가 고개를 돌려 침대맡에 서 있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미처 거두지 못한 하서관의 시선이 한순간에 그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두 눈이 마주치자 육한정이 입꼬리를 올렸다.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니요.” 하서관이 그의 눈빛을 피했다.

그때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자가 날라왔다.

육한정의 시선이 그녀의 핸드폰에 멈추었다. “왜 문자 확인 안 해요?”

“지금 확인 할 거예요.”

하서관은 자신에게 날라 온 음성메시지를 확인했다. ‘서관아, 난 네 눈 믿어. 네가 스폰한다던 그 기생오라비 되게 잘생기고 분위기 있지?”

여미령의 말랑한 말투에 하서관의 얼굴이 ‘펑’하고 터져버렸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하마터면 핸드폰까지 던질뻔했다.

빠르게, 다음 음성메세지가 자동 재생되었다. ‘서관아, 기억하지? 옛날에 몰래 훔쳐볼 때 약속했잖아. 꼭…’

방안은 무척이나 적막했다.

하서관은 핸드폰을 이불 안에 집어넣었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친구끼리 이런 말 하는 건 상관없는데… 당사자한테 들키다니… 너무 껄끄러웠다.

“저기… 나 먼저… 샤워할게요.”

하서관은 쏜살같이 욕실로 도망쳤다.

그녀는 세면대에서 수건을 꺼내고 있었다. 손가락에서 열이 나는 것만 같았다. 그때, 반짝이는 거울로 육한정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묵직한 발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두 손을 주머니에 꽂더니 문에 반쯤 기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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