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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숟가락으로 먹여줘

빠르게, 육한정의 손가락이 멈춰버렸다. 그는 그녀의 얼굴에 씌워진 면사포를 치우지 않았다.

그는 눈동자를 드리운 채 잠이 든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가 눈을 뜨길 바랐다. 그녀의 눈동자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아기 고양이처럼 순진하고 맑은 눈동자였다. 고개를 들어 쳐다볼 때마다 아기고양이가 할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청순하기도 섹시하기도 했다.

육한정의 그녀의 목에 남은 빨간 자국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피부는 무척이나 약했다. 살짝 졸랐을 뿐인데 이렇게 자국이 남다니.

육한정은 몸을 돌려 소파로 돌아가 누웠다.

그의 수면장애는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다. 그녀가 은침으로 치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의술은 꽤 정밀했다. 방금 정말로 그녀의 손바닥에서 잠시 잠이 들었다.

10분 정도? 10분도 제대로 자지 못한 지 오래였다.

육한정은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의 가녀린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생각했다. 어떻게 손이 저렇게 작고 부드럽지?

다음 날 새벽.

하서관은 식탁에 앉아 메이드가 타준 대추차를 마시고 있었다. 육노인이 웃는 얼굴로 그녀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서관아. 나는 너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어. 앞으로 한정이가 너 괴롭히면 할머니한테 말해. 내가 대신 혼내줄 테니까… 마셔, 쭉 들이켜. 대추차 많이 마시고 우리는 꼭 일찍 애 낳자. 여럿이로. 한쪽에는 우리 한정이 닮은 아들, 한쪽에는 우리 서관이 닮은 딸…"

육노인의 머리는 벌써 하얗게 셌지만, 정신은 멀쩡했다. 육노인은 무척이나 자상하고 다정했다. 하서관도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조금 웃긴 할머니라는 점만 빼고.

그때 메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육한정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하서관은 고개를 들었다. 육한정은 하얀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다. 직장인 룩의 정석이었다. 다림질했는지 옷에 주름조차 없었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카펫으로 걸어 나왔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우아했다.

나이가 좀 든 유모가 그를 따라 나왔다. 손에는 침대 시트가 들려져 있었다. 침대 시트에는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유모가 웃으며 육노인에게 연신 축하 말을 건넸다. "어르신, 축하드려요. 이제 손자 보실 일만 남으셨네요."

"좋네 좋아. 집사! 보너스!"

육노인이 호쾌하게 하인들에게 보너스를 뿌렸다.

하서관은 한눈에 알아봤다. 유모가 거둔 것이 어젯밤 그들이 쓰던 침대 시트라는 것을. 어제 아무 일도 없었는데 어… 어디서?

그때 육한정이 그녀의 옆에 멈추어 섰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그녀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그랬어요. 괜한 짓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그의 말은 너무 직설적이었다. 하서관은 연애 한 번 못해본 숙맥이었다. 그녀의 하얀 귓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두 사람의 자세가 무척이나 친밀했다. 육한정이 고개를 숙이고 하서관에게 귓속말을 하는 모습이 신혼부부가 깨를 볶는 모습처럼 보였다.

육노인은 손으로 자기의 눈을 가렸다. "난 아무것도 못 봤으니까, 아니, 아니, 안보이니까 너네 하던 거 계속해."

육노인은 손가락을 살짝 피더니 틈 사이로 그들을 훔쳐보았다.

빨개진 하서관의 귓불을 보자 육한정은 눈썹을 들썩였다. 그에게서 성숙한 남자의 사악함이 느껴졌다. "아직 20살 생일 지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남자 없었죠?"

육한정은 27살이었다. 속된 말로 한창 날릴 나이, 성숙하고 멋있을 나이다.

그는 그 물음을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두 사람의 거리가 무척이나 가까웠다. 그의 따뜻한 숨이 그녀의 가녀린 몸에 쏟아졌다. 하서관에게는 지금 피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먹을래요?"

하서관은 몸을 돌리더니 숟가락에 있던 대추차를 그의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그의 입을 막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한쪽에 서 있던 집사가 소리치기 시작했다. "사모님! 그거 사모님이 쓰던 숟가락인데!"

도련님에게는 심한 결벽증이 있다. 방금 그 숟가락은 사모님이 쓰던 숟가락이고. 집사는 입사심할 물을 준비하러 갔다.

하서관의 긴 속눈썹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그의 입을 막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자신이 쓰던 숟가락을 그의 입에 넣다니… 이게…

육한정은 옆에 꼿꼿이 서 있었다. 그는 자기의 눈썹을 쓸어 넘기더니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그 대추차를 삼켜버렸다.

그 모습이 집사를 깜짝 놀라게 했다. 도련님이 왜… 저러시지? 도련님, 결벽증 있으시잖아요. 혹시 까먹으신 거예요?

육노인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육노인의 나이는 일흔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사람 보는 눈이 정확했다. 처음 본 순간부터 하서관이 마음에 들었다. 이 여자애가 손자의 운명의 상대임이 분명했다.

"됐어됐어. 둘이 같은 대추차를 마셨으니 곧 우리 손주가 서관이의 배속으로 들어가겠구나." 육노인이 아이처럼 기뻐했다.

하서관은 손에는 육한정에게 대추차를 먹인 숟가락이 들려있었다. 그녀는 반 그릇이나 남은 대추차를 바라보았다. 이걸 마셔? 말아?

그때 육한정이 자리에 앉았다. 그는 그녀를 쳐다보니 다정하게 말했다. "왜 안 먹어요? 얼른 먹어요. 식기 전에요."

"…"

하서관은 알고 있었다. 육한정이 일부러 그랬다는걸. 내가 썼던 숟가락을 썼으니, 나도 그가 썼던 숟가락을 쓰라는 뜻이다.

간접…키스를 하는 것과 만찬가지다.

"그래, 서관아. 왜 안 먹어? 얼른 먹어. 조금 이따가 한 그릇 더 떠줄게." 육노인이 그녀에게 말했다.

하서관은 빠르게 숟가락을 들어 남은 대추차를 한입에 삼켜버렸다. "저 배불러요. 할머니. 그만 먹을래요."

애교부리는 여자애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육한정이 입꼬리를 올렸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침을 먹은 후, 육노인이 하서관에게 물었다. "서관아, 이따가 어디 갈 거니?"

하서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 저 친정집에 다녀올게요."

"당연히 가야지. 한정아, 너 서관이랑 같이 가라. 선물도 좀 들고. 명색이 사위인데 선물은 가져야지." 육노인이 육한정을 불러세웠다.

하서관이 제지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육한정이 이리로 걸어오고 있었다. "알겠어. 같이 갈게."

두 사람은 유란원을 빠져나왔다. 잔디에 도착한 그는 젠틀하게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타요."

하서관은 손을 휘적거렸다. "여기라면 할머니도 못 보실 텐데요. 뭐. 볼일 보세요. 전 택시타고 친정집으로 갈게요."

육한정의 눈썹이 들썩거렸다. "할머니 앞에서 연기해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빨리 타요. 같은 말 세 번 반복하게 하지 말고."

정말 막무가내인 남자다.

하지만 하서관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어제 말했던 제안을 받아들인단다!

하서관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고분고분 차에 탔다.

집으로 가는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하서관은 고개를 창문 쪽으로 돌렸다.

반짝이는 차창에 육한정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남자는 열심히 운전하고 있었다. 두 손이 여유롭게 핸들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능숙하게 운전을 해냈다.

남자의 튼실한 손목에 채워진 명품 시계가 하서관의 눈에 들어왔다. 20억이 넘는 시계였다.

그의 신분이 무엇인지 하서관은 알지 못했다. 그녀는 두 사람이 서로 협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하씨 집안에서 작업하는 게 더 편해진다.

하서관은 창밖을 질주하고 있는 풍경에 시선을 멈추었다.

반 시간 뒤, 차가 하씨 저택 앞에 멈추어 섰다. 하서관이 고개 숙여 안전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벨트는 풀리지 않았다.

"내가 해줄게요." 육한정이 상체를 숙였다.

하서관은 손을 놓은 채 육한정이 안전벨트를 풀어주기를 기다렸다.

육한정은 어제 이미 하서관의 몸에서 나는 향기를 맡았다. 둘이 가까이 붙어있는 탓에 그의 코끝에 하서관의 향기가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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