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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Kester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8-04 12:27:14

처음에는 자신의 목을 죄어오는 가혹한 계약서에 서명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안젤리나는 모린이라는 여자에게 순순히 승리를 쥐여줄 수 없었다.

결국 안젤리나는 알메로 가문에 남는 길을 택했다. 악스톤과의 결혼 생활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면, 남편이 다른 여자를 품에 안는 쓴잔을 마시는 것쯤은 견뎌내기로 결심했다.

단순히 악스톤을 향한 사랑 때문에 버티는 것만은 아니었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보아도 알메로 가문은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었고, 그 집안의 며느리로 사는 동안 안젤리나는 단 한 번도 물질적인 부족함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악스톤과 모린의 관계를 공식화하는 화려한 결혼식 따위는 없었다. 그저 양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반지를 교환하는 것으로 절차가 끝났을 뿐이었다.

자신의 방 안, 안젤리나는 시름에 잠긴 채 가슴께의 옷자락을 불끈 쥐고 앉아 있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세상 그 누구가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 되기를 바랐겠는가. 안젤리나 역시 수많은 아이를 낳아 알메로 가문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안젤리나가 생각하기에,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해서 완벽하지 않은 여자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결코 본인이 원해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었으니까.

불행한 처지를 자책하며 울어버린 지 어느덧 세 시간째. 밤 11시가 되어서야 그녀는 겨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문이 열리는 소리에 안젤리나는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악스톤과 모린이 아무렇지도 않게 방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두 사람은 지극히 다정하고 어울리는 한 쌍처럼 보였다.

“악스톤, 왜 저 여자를 우리 방으로 데려온 거예요?”

안젤리나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러졌다.

“토 달지 마, 안젤리나! 너랑 싸우는 것도 이제 지겹다. 나랑 모린은 오늘 여기서 쉴 테니까!”

악스톤은 안젤리나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무심하게 말했다.

“앉아, 여보. 눈치 볼 필요 없어. 이제 여기도 당신 집이고, 당신 방이니까.”

악스톤이 모린의 길고 부드러운 머릿결을 다정하게 쓸어넘겨 주며 말했다.

모린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지만 악스톤이 첩에게 보여주는 달콤한 태도를 바라보는 안젤리나의 심장은 질투라는 불길에 타들어 가는 듯했다.

“알겠어요. 내가 다른 방으로 갈게요.”

악스톤의 완고함과 맞서 싸울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안젤리나는 결국 물러서기로 했다. 이것이 자신의 정신 건강을 지키는 길일 테니까. 악스톤과 모린이 애정 행각을 벌이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나 가혹한 고문이었다.

“누구 맘대로 방에서 나간다는 거지? 넌 여기 그대로 있어! 저기 바닥에서 자도록 해!”

악스톤이 침대 옆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단호하게 명령했다.

안젤리나는 흠칫 놀랐다. 저들과 한방에서 자라니? 악스톤의 요구는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말도 안 돼요, 악스톤! 난 당신들과 같은 방에서 잘 생각 없어요!”

안젤리나는 등 뒤로 손가락을 불끈 쥐며 거칠게 반박했다.

한편, 모린은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계속 화내봐, 악스톤 달링. 안젤리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어줘!’

모린은 악스톤과 안젤리나 사이의 갈등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 그녀가 원하던 바였다. 안젤리나가 악악거릴수록 악스톤이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될 테니까.

“계약서 내용을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네 삶은 내 통제 아래에 있다!”

안젤리나에게 응징을 가하고 싶었던 악스톤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만해요, 안젤리나. 내 남편도 이제 쉬어야 해요. 자꾸 화를 돋우지 말아요. 당신이 늘 그렇게 반항적으로 구니까 악스톤이 나한테 마음을 돌린 거 아니겠어요?”

모린이 자신이 안젤리나보다 훨씬 더 나은 여자라는 것을 과시하듯 거들었다.

“입 다물어! 아무도 너한테 의견 안 물어봤어!”

안젤리나가 모린을 노려보며 날카롭게 고함을 질렀다.

“목소리 낮춰, 안젤리나. 모린 말이 맞아. 넌 정말 구제 불능일 정도로 반항적인 아내야! 계속 서 있지 말고 당장 누워. 더 이상 소란 피우지 마라!”

말을 마친 악스톤은 안젤리나의 시선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침대로 올라가 새신부를 끌어안았다.

모린이 잠시 안젤리나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불쌍한 여자를 비웃는 교활한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피어올랐다.

안젤리나는 신혼부부의 침대를 등지고 모로 누웠다. 그녀의 마른 몸은 머리 끝까지 덮은 두꺼운 흰색 이불 속에 파묻혀 있었다.

화려한 침대 위에서 쪽쪽거리며 입을 맞추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린의 교태 섞인 신음은 악스톤의 욕망을 더욱 불태우려는 듯 의도적으로 방 안을 울렸다. 두 사람은 뜨거운 첫날밤을 치르고 있는 듯했다.

“이렇게 달콤한 입술은 처음이야, 모린. 당신의 아름다운 몸을 보니 이 나쁜 손이 가만있질 못하겠어. 당신은 정말 최고야, 모린.”

안젤리나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두꺼운 이불 속에서 그녀는 소리 없이 오열했다. 자신의 감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모린을 칭찬하는 악스톤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악몽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안젤리나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소리를 직접 들어야만 했다. 그것도 악스톤과의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한 바로 그 침대 위에서. 지난 3년간 그들의 신혼을 지켜봐 준 소중한 공간이, 이제는 염치없이 악스톤을 빼앗아 간 여자에게 점령당해 버렸다.

.

다음 날 아침, 악스톤은 안젤리나에게 자신과 모린을 위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라고 요구했다. 당연히 안젤리나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 다투는 것조차 지칠 대로 지쳐 있었기에 결국 식탁을 차리기로 했다.

그녀는 접시 위에 버터와 땅콩버터를 바른 식빵을 하나씩 차곡차곡 놓았다. 그리고 저당 우유 두 잔을 함께 준비했다.

뒤편에서 겹쳐 들리는 발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식탁으로 다가오는 이들이 누구인지 안젤리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악스톤과 모린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순간 전날 밤의 잔인했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밤늦게까지 사랑을 나눈 모양이었지만, 악스톤은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다.

모린의 모습은 완벽함 그 자체였다. 길고 차분하게 늘어뜨린 젖은 머리에 화려하고 예쁜 메이크업, 무늬 없는 매젠타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몸에서는 고급 향수 냄새가 물씬 풍겼다.

안젤리나는 자신의 차림새를 모린과 비교해 보기 시작했다. 결과는 현저한 차이였다. 수수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모습은, 확실히 악스톤 같은 CEO 옆에 서기엔 어울리지 않는 듯해 보였다.

‘내가 그동안 외모에 너무 무심했던 걸까? 그래서 악스톤의 눈에 더 이상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게 된 걸까...’

안젤리나는 속으로 씁쓸하게 읊조렸다.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어서 알메로 가문의 새 며느리를 모시지 않고 뭐 하느냐!”

에블린이 식탁에 합류하며 안젤리나를 꾸짖었다. 나이 든 여인은 모린의 옆자리에 앉았다.

“어머님... 아침 일찍 일어나셨네요?”

모린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내가 할 소리를 네가 하는구나. 신혼인데 둘만의 시간을 더 즐기지 않고 왜 벌써 나왔니.”

에블린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녀는 모린이 첫 손주를 가졌다는 소식을 하루빨리 듣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회사에 일이 좀 많아서요, 어머니.”

악스톤이 대답했다.

“에휴, 이 녀석아. 우리 사랑스러운 새 며느리랑 신혼여행이라도 갈 수 있게 빨리 일정 좀 비워두려무나.”

“노력해 볼게요, 어머니.”

악스톤이 음식을 씹으며 미소를 지었다.

“명심해라, 악스톤. 하루빨리 모린이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어머니의 말을 들은 안젤리나는 침을 가슴 무겁게 삼켰다. 마음이 가시방석처럼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걱정 마세요, 어머니. 제 자궁은 그동안 건강하게 잘 관리해 왔으니까요.”

모린이 안젤리나를 향해 오만한 시선을 던졌다.

“조만간 좋은 소식 들려드릴 테니 염려 마세요. 그래야 악스톤이 절 더 사랑해 주죠.”

모린이 덧붙였다.

“악스톤뿐만이 아니다. 우리 알메로 가문 전체가 널 끔찍이 아껴줄 게다, 모린.”

“아... 벌써부터 아이가 기다려지네요.”

모린은 알메로 가문으로부터 받게 될 수많은 선물과 특혜를 떠올리며 벌써부터 행복한 상상에 빠져들었다.

식탁 옆에 멍하니 서 있는 안젤리나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자신이 마치 유령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그 자리에서 벗어나 저들의 화기애애한 대화를 피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상처를 집안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이 정도 시련 따위로 자신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안젤리나는 의자를 뒤로 빼고 앉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에블린의 험악한 눈빛에 순간 흠칫하며 긴장하고 말았다.

“누가 너더러 식탁에 같이 앉으라고 했느냐?”

에블린이 날카롭게 물었다.

“전 여전히 악스톤의 아내예요, 어머님. 제가 여기 앉는 건 당연한 권리입니다.”

안젤리나는 담담하게 받아치고는, 악스톤의 바로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괜찮아요, 어머니. 안젤리나도 같이 앉게 두세요.”

모린이 너그러운 척 말을 거들었다.

“모린, 넌 어쩜 이리 마음씨까지 비단결 같니. 이번에는 악스톤이 여자를 아주 잘 골랐어.”

에블린은 새 며느리의 겉모습에 감탄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남의 남편을 빼앗은 여자 중에 좋은 여자는 없어요, 어머님.’

안젤리나는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속으로만 읊조렸다.

지금은 시어머니가 마음껏 모린을 띄워주게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두고 봐라. 머지않아, 안젤리나는 자신의 행복을 짓밟은 저 간사한 여자에게 반드시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만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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