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실버레인이 만장일치로 고른 노래였다.
연습실에서 부르던 제목은 ‘엄마’였다.
해외에서 먼저 활동하기로 정하면서, 은우는 그 제목에 영어 옷을 한 겹 입혔다.
엄마이자 친구.
마더 마이 프랜드.
제목을 바꾸자는 말에 멤버들은 처음엔 고개를 갸웃했지만, 영어로 소리 내 읽어 보고는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부모가 있었고, 그중에서 우린 엄마의 배 속에서 태어났다.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인 줄 알았죠.”
지금은 한 사람의 아내, 한 사람의 엄마, 어쩌면 누군가의 할머니일 수도 있다.
“모두 꿈 많은 소녀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깨달아도 섣불리 말을 못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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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우를 비롯한 실버레인은 깜짝 놀랐다.곤의 손에서 미끄러진 숟가락이 접시 위로 떨어졌다.“우리가 빌보드에 차트인했다고요?”“그래.”“글로벌 200 차트인가요?”“아니. 메인 차트. 빌보드 핫 100.”실버레인은 경직에 걸린 듯 다들 가만히 있었다.식탁 아래의 사랑이만 영문을 모른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3.2.1.“우와와와와!”은우를 비롯한 모든 멤버들이 두 손을 하늘 높이 들고 기쁨을 누렸다.곤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거실을 뛰어다녔다.체인쏘마저 곤에게 붙잡혀 같이 방방 뛰었다.더블유는 그 자리에서 한 바퀴 턴을 돌았다.윙스의 마지막 동작이었다.사랑이가 덩달아 컹컹 짖으며 곤의 뒤를 쫓았다.반쯤 무너져 있던 팬케이크 탑이 그 바람에 마저 무너졌다.아래층에서 천장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다.“형! 우리 빌보드래요, 빌보드!”“알아, 곤아. 나도 들었어.”“이게 말이 돼?”“우리가 빌보드에 오르다니.”지훈은 강기연의 핸드폰을 빼앗듯 받아 들고 화면을 손가락으로 몇 번이나 키웠다.체인쏘는 말없이 그 화면을 캡처하고 또 캡처했다.그때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화면에 뜬 이름은 조이였다.지훈이 스피커 버튼을 누르자마자 고함이 터져 나왔다.[은우! 듣고 있지? 핫 100이야, 핫 100!][우리 사무실 지금 난리 났어. 다들 일은 안 하고 너희 노래만 틀어!]“조이도 몰랐어?”[알았으면 내가 제일 먼저 말했겠지! 나도 방금 봤단 말이야!]조이의 목소리는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고마워, 조이.”[고맙긴! 이건 순수하게 너희 거라니까!]전화를 끊고 나서도 조이의 웃음소리가 귀에 남았다.곧이어 한국에서도 메시지가 들어왔다.[곽영범: 강 실장. 이 정도면 진행시킨 보람이 있는 거 아닌가?]강기연은 그 메시지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피식 웃었다.결재 서류에 도장 말고는 칭찬 한 줄 남긴 적 없는 사람이었다.그렇게 웃는 강기연의 눈가가 붉었다.“누나, 울어요?”“안 울거든?”강기연은 괜히 핸
예전엔 게시물 댓글에도 다 답글을 달아 주고, 좋아요도 꼬박꼬박 눌렀지만, 이제는 시간이 없었다.아예 좋아요와 댓글을 전문적으로 달아 줘야 하는 알바를 뽑아야 할 지경이었다.알림은 무음으로 돌려 놔도 화면 위로 쉬지 않고 쏟아졌다.강기연은 계정 관리를 맡길 사람을 따로 구하자고 했다.은우는 고개를 저었다.“회사 계정은 그렇게 해요. 근데 제 계정 답글은 제가 달게요.”그래서 은우는 잠들기 전 딱 열 개씩은 직접 답글을 달았다.얼굴 없는 채널에서 댓글 하나를 기다리던 밤들을, 은우는 아직 잊지 않았다.답글을 받은 팬들은 그 캡처를 액자처럼 간직했다.어젯밤 답글을 단 댓글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딸이 알려 줘서 들었어요. 덕분에 딸이랑 처음으로 같은 노래를 불렀어요.’투어의 마지막 도시는 다시 뉴욕이었다.처음 열 명 앞에서 노래하던 바로 그 도시였다.이번 숙소는 브로드웨이 극장가 바로 옆이었다.20억쯤 되니 상승세가 다소 누그러들기 시작했다.“아··· 오늘은 100만밖에 안 올랐네요··· 쩝.”곤이 말한 100만은 조회 수가 아니라 추천 수였다.그 말인즉슨 조회 수는 그보다 더 많다는 뜻이었다.은우가 곤을 놀렸다.“언제는 100만 조회 수만 돼도 소원이 없다더니?”“형.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거예요!”&n
실버레인이 만장일치로 고른 노래였다.연습실에서 부르던 제목은 ‘엄마’였다.해외에서 먼저 활동하기로 정하면서, 은우는 그 제목에 영어 옷을 한 겹 입혔다.엄마이자 친구.마더 마이 프랜드.제목을 바꾸자는 말에 멤버들은 처음엔 고개를 갸웃했지만, 영어로 소리 내 읽어 보고는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부모가 있었고, 그중에서 우린 엄마의 배 속에서 태어났다.“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인 줄 알았죠.”지금은 한 사람의 아내, 한 사람의 엄마, 어쩌면 누군가의 할머니일 수도 있다.“모두 꿈 많은 소녀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깨달아도 섣불리 말을 못 했어요.”“내 또래의 엄마는 무얼 하며 지냈을까?”지금은 시대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 유행어도 뒤처지고, 기계도 잘 다루지 못해서 바보처럼 보이고 답답하지 않은가?하지만 내 또래였다면···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이기도 하니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엄마의 시대에 살아도 즐거울 테고, 지금 시대에 살아도 즐겁지 않겠는가?“그게 내가 나를 사랑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나는 곧 당신의 분신이고, 당신의 자랑이 곧 나니까.”가사에는 강기연의 이름이 한 글자도 들어가지 않았다.그래도 은우는 부를 때마다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최종 믹스를 처음 들은 날, 강기연은 집무실에서 이어폰을 빼며
실버레인은 약속대로 3개월 후에 앨범을 냈다.하지만 국내에서 활동한다고는 안 했다.음악 방송 출연표의 실버레인 칸은 끝까지 비어 있었다.팬들이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사전 녹화 공지 대신 올라온 건, 처음 보는 영어 이름의 뮤튜브 계정 하나였다.- 음방 안 해요?ㅠㅠ- 해외 가서 뭐 하는데ㄴ기다려 보자 3개월 뒤라고 했을 때도 믿었잖아이러한 상황에서 실버레인은 다른 그룹과 차별화된 전략을 펼쳤다.다른 그룹들과 가수들이 국내 방송 무대에 집중할 때 실버레인은 뮤튜브에 올인했다.이유는 간단했다.외국에서의 뮤튜브 조회 수는 어지간한 국내 콘텐츠 조회 수보다 높기 때문이었다.철저하게 로컬라이징 전략을 취했다.그 나라의 언어에 맞게끔 노래를 번역하거나, 그들의 기호를 생각해서 만드는 것이 로컬라이징이 아니었다.아주 쉬우면서도 간단한 방법.외국에서 활동하는 계정을 하나 만들었다.처음 이 이야기를 꺼낸 건 은우였다.석 달 전, 강기연의 집무실에서였다.“새 계정? 네 계정 팔로워만 250만이 넘는데?”“그러니까 새로 만들어야 해요. 제 계정은 이미 ‘한국 아이돌 표은우’ 계정이거든요.”“그게 무슨 차이인데?”“알고리즘은 계정이 어디서 왔는지부터 봐요. 이번엔 처음부터 해외에서 태어난 계정이어야 해요. 그리고···.”은우가 잠시 말을 골랐다.“이번엔 저 혼자가 아
대중들은 스타에 열광한다.“뮤진스! 뮤진스!”“지저귀는 새처럼~”“짹짹! 짹짹!”음악 방송 공개홀이 함성으로 들썩였다.후렴마다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짹짹’은 멤버 잭의 이름에서 따온 응원법이었다.응원봉 수천 개가 박자에 맞춰 파도처럼 일렁였다.기사마다 ‘역대급 대진표’라고 떠들던 그 컴백 대전이 한창이었다.같은 주에 이름을 올린 팀만 열 손가락이 모자랐다.그중에서도 뮤진스의 컴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일정이었다.다른 기획사들이 날짜를 피해 갈 정도였으니까.그리고 출연자 명단 어디에도 실버레인의 이름은 없었다.석 달 전 표은우가 답글로 못 박은 바로 그 주였는데도.혜성같이 등장하진 않았다.대형 기획사에서 철저하게 준비했다.연습생을 고르는 데만 몇 년, 데뷔조의 합을 맞추는 데 또 몇 년이 걸렸다.노래 한 곡, 손짓 하나까지 회사가 쌓아 온 공식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었다.뮤진스는 바야흐로 차세대 걸그룹 전쟁의 서막을 열었고, 세상에 없던 새로운 걸그룹이 탄생했다.무대가 끝나자 카메라가 멤버들의 얼굴을 한 명씩 차례로 잡았다.이른바 엔딩 요정이었다.화면 가득 얼굴이 잡힐 때마다 객석의 함성이 한 번 더 치솟았다.“됐어!”뮤진스 사장은 무대를 마친 그녀들을 보고 주먹을 꽉 쥐었다.무대 옆 모니터 앞에서 내내 팔짱을 끼고 있던 참이었다.이번 음반도 상당
은우가 노트북 화면을 멤버들 쪽으로 돌렸다.화면에는 다섯 곡의 파트 칸이 텅 비어 있었다.“그리고 이번엔 메인 파트나 서브 파트를 명확히 나누지 않을 거야. 각자의 취향이 담긴 곡이지만, 곡의 내용이나 흐름을 보고 파트를 분배하자. 랩 파트도 마찬가지고, 아예 랩이 없을 수도 있고.”“헐. 그럼 난 어떡해?”“노래해야죠.”“아씨- 나 노래 잘 못하는데···.”“두팔이 형. 그게 아이돌 입에서 나올 말이에요?”이번엔 곤이 아닌 지훈이가 발끈했다.지훈이는 아이돌이 노래를 못한다는 말을 굉장히 듣기 싫어했다.학교에서 보컬 수업을 들으며 지훈은 그런 말을 질리도록 들었다.아이돌은 얼굴로 노래한다는 말, 춤추는 가수라는 말.그럴 때마다 지훈은 은우가 부른 노래를 틀었다.“벌스 하나 정도 완창하면 좋긴 한데, 그게 불가능하면 몇 마디라도 하는 게 좋지. 너의 새로운 모습도 보여 줄 수 있을 테니까.”“알았어.”체인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메인 보컬이 후렴을 다 가져가고, 래퍼는 벌스 하나, 막내는 한 줄.그게 아이돌 파트 분배의 오래된 공식이었다.은우는 그 공식이 실버레인을 다섯 명이 아니라 한 명과 네 명으로 보이게 한다고 생각했다.곡마다 그 곡에 제일 어울리는 목소리가 앞에 서면 됐다.멤버마다 몇 초를 불렀는지까지 팬들이 재는 시대였다.래퍼가 노래 한 소절을 제대로 소화하면, 그 몇 초가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