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공간 속 영기와 령수를 그렇게 많이 마시고 이미 그녀를 주인으로 인지하고 있음에도 녀석은 주인의 명에 쉽사리 따르지 않았다.그러나 녀석은 온사를 떠날 생각도 없었다. 충왕은 온사처럼 부유하고 자비로운 주인은 또 처음이었다.녀석은 이곳의 령수와 영기가 좋았다.그래서 온사가 녀석을 공간에 집어넣은 순간에 바로 옛주인인 창청람을 버리기로 작심한 것이다.아마 창청람은 지금도 자신의 충왕을 되찾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주인을 쉽게 포기한다는 것은 녀석을 길들이기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랬기에 온사는 일찍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충왕이 대야 속 독소를 흡수한 후, 그녀는 약병에 담긴 독액을 대야에 부었다.위험을 감지한 충왕이 귀를 찌를 것 같은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고막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온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빈 약병을 내려놓은 그녀는 깨끗한 단도를 꺼내 주저없이 자신의 손가락을 찔렀다. 선혈이 방울방울 흘러 대야 속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독액과 섞여서 충왕을 완전히 포위했다.충왕이 날개를 펼쳐 도망치려는 끼미를 보이자 그녀는 신속히 덮개를 덮어 버렸다.“안에서 얌전히 있어. 만약 융합에 성공하면 너는 새 삶을 얻게 될 것이고 나를 위해 쓰이게 되겠지. 만약 융합이 실패한다면 넌 죽을 거야. 나야 다른 충왕을 구해오면 그만이니까. 어차피 꼭 네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단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너에게 달렸어.”마지막 경고를 남긴 후, 온사는 누각을 나갔다. 심지어 누각에 깃들어 있던 영기마저 모두 차단하고 충왕에게 더 이상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대야 속 충왕은 영기가 사라진 것을 감지한 후 조바심이 났다.녀석은 온사를 재촉하듯 아찔한 비명을 질러댔지만 아무리 불러도 온사는 돌아오지 않았다.장장 한 시진이 지나 대야 속 독액에 온갖 고초를 겪은 충왕은 드디어 자신이 지시에 따르지 않는다면 온사는 더 이상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을 인지했다.누각 밖에서 소식을 기다리던 온사도 녀석의
“어디 보자… 뭘 선택하면 좋을까? 혈월은 적당하지 않고… 절정초는 감정이 있는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독약이고…”“남은 건 단장초가 있겠네. 그렇다면 단장초와 칠심해당으로 하자!”맹독의 약초를 고른 후, 온사는 공간의 힘을 빌어 그것들을 누각 안으로 옮기고 작업을 시작했다.단장초와 칠심해당을 바로 결합하면 독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독소를 채취한 후에 다른 약재와 결합하면 그보다 더 강력한 독성을 가진 독약을 만들 수 있었다.다만 약초의 비례와 보조 약재는 여러 차례의 실험을 거쳐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하니 서둘러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충왕을 독성과 융합시킬 시간이 부족했다.온사는 그런 생각을 하며 서둘러 움직였고 동시에 누각 안의 독충들을 모두 불러와서 자신을 돕게 했다.그렇게 누각 안은 분주히 돌아치고 있었다.두 시진 후, 온사는 투명한 액체가 담긴 약병을 하나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이게 바로 배합에 성공한 맹독이었다.“한번 해보자.”그녀는 작은 화분에 독액을 조심스레 부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생기가 넘치던 화분이 무서운 속도로 시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죽어 버렸다.그 모습을 본 온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내가 예상했던 효과야. 해독제도 이미 만들었으니 이제 하나만 남았네.”그녀는 약병을 가지고 현재까지 조련 중인 충왕을 불렀다.충왕은 공간 안에서 그녀의 령수와 영기를 마신 이후로 옛 주인을 잊고 그녀를 주인으로 인지하고 있었다.온사는 만일을 대비하기 위해 이번 융합 과정에서 자신의 피를 섞었다. 완전히 충왕을 자신에게 복종시키기 위함이었다.충왕이 일층 누각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독충을 육성할 때 쓰는 독이 담긴 대야를 꺼냈다.세숫대야 크기의 대야는 예전에도 수많은 독충들을 육성하기 위해 쓰였기에 온갖 독성과 벌레들의 기운이 묻어 있었다.온사는 녀석을 독충들의 충왕으로 만들 생각이었기에 일부러 다른 녀석들의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그리고 여분의 독소들은 충왕이 독성
온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약충 소환사 말씀인가요?”“어쩌면 범씨 일족 중에 소환사가 있을지도 모르지.”그게 아니라면 일반인은 절대 이런 진을 쳐놓지 않았을 것이다.벌레의 접근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하면 구충제를 뿌려도 됐을 것인데 관저의 저택에 뿌려진 것은 독가루였다.게다가 독성이 온사의 독충보다 더 독한 독가루였으니 이 정도로 완벽한 대비라면 약충에 대해 잘 아는 자가 틀림없었다.어쩌면 경성에 있는 자들이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북진연이 말했다.“범충은 경성에 있는 그자들과 분명히 연관이 있어. 전에는 확실치 않았지만 이제 확신이 섰군.”범충은 지역 왕 행세를 했을뿐더러 약충 소환자와 결탁하였으니 필히 제거해야 할 인물임이 확실해졌다.“범충의 배후에 있는 소환사도 독을 쓸 줄 알아. 네 독충들이 제압당했으니 네게는 영향이 없는 거겠지?”결심이 선 북진연은 온사에게 물었다.온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걱정 마세요. 저는 저와 운명을 함께하는 벌레가 없으니, 독충들이 다 사라진다고 해도 저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습니다.”심혈을 기울여 육성한 벌레가 사라진다면 가슴은 아플 테지만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그리고 너무 심려치 마세요. 지부가 관저 밖에 뿌린 독가루가 강하긴 하지만 제게 조금만 시간을 주신다면… 하루… 아니 하룻밤만 주신다면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그래, 그럼 그건 너에게 맡기지.”북진연은 온사의 실력을 전혀 의심치 않았다.그래서 온사가 하룻밤 안에 해결이 가능하다고 하니 주저없이 이 일을 그녀에게 맡겼다.“오늘 밤, 내가 친히 밖에서 보초를 서겠다. 걱정 말거라. 아무도 너를 방해하지 못하게 할 터이니.”“예.”그렇게 막사 안에는 온사 홀로 남게 되었다.그녀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옥패 공간 안으로 진입했다.새로운 독약을 조제하거나 새로운 맹독의 독충을 육성하는 것은 하룻밤이라는 시간에 할 수 없는 것이었다.하룻밤이 아니라 하루 종일 연구해도 부족했다.새로운
“그래?”범충은 그럴수록 궁금증이 일었지만 눈치가 있으니 일부러 머뭇거리는 척을 했다.“국공부에 추문이 존재했을 줄이야. 자네가 내게 그 일을 말하면 진국공부에 큰 피해가 갈 정도인가?”온옥지는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괜찮습니다. 어차피 그 애가 진국공부의 체면을 바닥에 처박았으니까요.”범충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창주가 비록 경성과 많이 떨어져 있지만 그에게도 소식통이 있고 진국공 가문의 소문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적어도 몇 달 전에 그 복명성녀가 중상을 입고 가문에서 쫓겨난 이후로 폐하께서 직접 나서서 진국공부를 처벌한 사실은 그 역시 아는 사실이었다.그가 보기에 진국공부도 호랑이 소굴이 틀림없었다. 그 안에서 아무 일도 겪지 않았다면 성녀가 귀한 진국공부 적녀의 신분을 버리고 결연히 출가의 길을 걷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상대에 따라 말은 가려서 해야 하는 법.그를 속이기에 눈앞의 어린 녀석은 아직 부족했다.“그랬군. 혹시 내게 그 사정을 들려줄 수 있는가?”온옥지가 사실을 말할 거라는 기대는 없지만 진실이 섞인 거짓이라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그에게서 설명을 들으면 범충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었다.그렇게 범충은 차를 마시며 온옥지에게서 속 좁고 시기심 많은 성녀가 총애를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형제들을 배척하고 여동생을 시해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섭정왕을 홀려 집안 사람들을 상대했으며 결국 아버지는 병환에 들고 진국공부는 점점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말도 덧붙였다.이야기를 다 들은 범충은 속으로 혀를 찼다.물론 이야기속 불효녀가 기가 차서가 아니라 눈앞의 청년이 어이가 없었다.‘내 이 녀석을 너무 얕잡아보았군.’아무리 진실이 섞인 거짓이라고는 해도 이야기 속에 진실은 1할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았다.게다가 친동생인 온옥지가 이 정도로 여동생을 모함하는 것을 보면 마치 집안에서 후계 전쟁이라도 펼친 것 같았다.그게 아니라면 친형제끼리 이 정도로 싸
그래서 온사는 똑같이 독이 든 약을 만들고 둘에게 다른 선택지를 주었다. 이는 두 사람을 이간질하기 위함이었다.대화를 통해 범숙취와 범수란이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온사와 북진연은 이 점을 이용해 그들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킴과 동시에 두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지 지켜보기로 했다.그리고 결론은 범수란이 범숙취보다 더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상 그녀보다 독한 사람은 범숙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이 둘은 내가 잘 감시하고 있을 테니 전하는 걱정 말고 범충과 범씨 일족의 사람들을 상대하세요.”온사가 말했다.이쪽에서 인질을 둘이나 잡고 있는 상황이니 저쪽이 훨씬 더 불리한 상황이었다.그러나 이때의 온사는 성내에 그녀의 한 옛 지인이 지부의 관저에서 범충과 차를 마시며 바둑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진국공의 넷째 공자께서 이리도 뛰어난 인재일 줄은 정말 몰랐군요. 오늘 한수 배워갑니다.”범충의 치하에 온옥지는 이동식 의자에 앉아 겸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과찬이십니다, 지부 나으리. 나으리께서 제게 삼수나 양보하셨기에 제가 간신히 이길 수 있었던 것이지요.”“에이. 난 공자보다 나이를 서른 살이나 더 먹은 노인네인데 당연히 그 정도는 양보해 드려야지요. 그러지 않았다면 설령 이겼다고 해도 부끄러웠을 것입니다.”범충은 수염을 매만지며 싱글벙글 웃었다.온옥지는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겉보기에는 겸손하게 행동하고 있지만 그의 타고난 오만함이 범충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그러나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눈앞의 어린 녀석이 출신으로 치면 자신보다 위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조정의 절반을 장악한 진국공, 비록 최근에 힘이 많이 빠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무시할 수 없는 권력자임은 확실했다.범충은 손에 든 찻잔을 내려놓고 계속해서 말했다.“듣기로 공자께서 창주로 온 이유가 찾고자 하는 약재가 있어서라지요. 제가 공자를 도와 좀 알아봐 드릴까요?”“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정말 독이 들었잖아?’범수란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곧이어 온몸에 한기가 퍼지기 시작했다.“왜 이렇게 꾸물거리지? 정녕 죽고 싶은 게냐!”북진연은 눈을 매섭게 치켜뜨며 살기를 드러냈다.그 말을 들은 범수란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몸에서 전해지는 극심한 고통이 이걸 다 먹지 않는다면 그녀가 죽을 것임을 알려주고 있었다.하지만 이걸 계속 먹는다면….범수란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범숙취를 힐끗 보고는 허겁지겁 남은 약찌꺼기를 먹기 시작했다.‘윽! 너무 역겨워! 토할 것 같아!’범수란은 입을 틀어막고 뒤돌아서 그것을 토해내려 했다.그러나 곧이어 헛구역질과 함께 가슴이 찔린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푸흡!범수란은 그대로 먹은 것을 토하고 말았다.약찌꺼기와 피가 뒤섞인 토사물을 보고 있던 그녀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그대로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온사, 다 먹였다.”온사가 부탁한 임무를 완수한 그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막사 안에서 줄곧 이곳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온사가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잘하셨습니다, 전하.”온사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이제 그 범 지부와 유리한 협상을 진행할 수 있겠군요.”일족의 아이가 둘이나 그들의 손에 잡혀 있으니 범충도 경거망동 할 수는 없을 것이다.그랬다. 온사와 북진연은 범숙취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었다.비록 그가 극구 부인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혜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북기군의 영지에서 감시 수단이 없을 수가 없었다.감시할 흑기군을 모두 물린 것도 두 사람에게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어 그들을 떠보기 위함이었다.역시나 그들이 예상했던 대로 범숙취와 범수란은 함정에 걸려들었다.범수란은 제치고 범숙취만 놓고 말하면 그는 남루한 모습으로 온사와 북진연의 눈을 가리려 했지만 오랜 시간 무공을 연마한 북진연이 그 하찮은 눈속임에 넘어갔을 리 없었다.그에게서 풍기는 기운부터가 수상했다.낮에는 깨어 있기에 자신의 기운을 감추었지만 그가 잠들고 난 후에는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