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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 삼촌?

作者: 기봉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5 17:59:03

기억나지 않느냐니, 무슨 소리지.

유진은 나를 빤히 응시하다가 이내 피식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요, 기억 안 나면 어쩔 수 없죠. 억지로 떠올리진 마세요. 무서운 기억일 수도 있으니까.”

유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뒤돌았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앉으세요.”

유진이 차려준 해장국 앞에 앉았을 때, 혼란을 깬 건 내 휴대폰 진동이었다.

채영에게서 걸려 온 전화에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과 함께 허둥지둥 휴대폰을 들었다.

“어, 응.”

“잘 잤어? 나 지금 친구들이랑 온천 왔어. 여기 너무 좋다. 조만간 같이 오자.”

“으응.”

“당신 목소리가 이상한데?”

눈앞에 앉은 유진은 조용히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서둘러 통화를 마무리했다.

“아냐, 좀 피곤해서 더 잘게. 재밌게 놀고 이따 전화해요.”

통화를 마치자, 유진이 숟가락을 들었다.

식탁 위로는 수저 소리만 계속됐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었다.

난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 어제 우리 너무 취했나 봐요.”

나는 비겁한 질문을 했다.

결론에 가린 질문을.

“같은 침대에서 자고…. 정말 미안해요. 내가 다른 방에서 잤어야 했는데, 필름이 끊겨서.”

유진의 손이 멈췄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맑다 못해 시린 눈동자로 날 보던 그녀는 비웃듯 입을 열었다.

“필름이 끊기면, 사람이 바뀌나 봐요.”

유진이 낮게 다시 읊조렸다.

“어제 삼촌은, 지금처럼 그렇게 죄지은 표정 아니었는데.”

그녀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상체를 내 쪽으로 살짝 기울였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향기가 훅 끼쳤다.

이 집 어디에도 없어야 할 향기가.

“이모는 삼촌이 착해서 좋대요. 잘생기고, 고분고분하고, 말 잘 듣고.”

유진이 손을 대리석 식탁 위에 올리며 덧붙였다.

“근데 어제 삼촌은 전혀 안 착했어. 내 얼굴을 조각하듯이 훑으면서, 이건 이모한테는 없는 선이라고….”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슴이 뜨거웠다.

유진은 내 표정을 감상하듯 조용히 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내 안색을 그저 창밖의 풍경을 무심히 보기라도 하는 듯 평온한 목소리와 함께.

“아하하, 그냥 부탁 때문이었겠죠.”

“네?”

“제 부탁 때문에 그러셨던 거죠? 술김에 제가 떼를 썼거든요. 저 만들어달라고.”

순간, 뇌리에 벼락이 치는 것 같았다.

시끄러운 술집 조명 아래서 상체를 내 쪽으로 바짝 기울인 채 눈을 빛내던 유진의 얼굴이 스쳤다.

ㅡ저 만들어 주세요.

세상에 하나뿐인 모습으로.

끊겼던 필름의 한 조각이 떠올랐다.

‘맞아, 그랬어.’

그때, 유진이 식탁에 올려뒀던 손을 천천히 뻗었다.

대리석 식탁 위, 매끄러운 패턴을 따라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미끄러져 왔다.

내 손가락 끝 근처에서 멈춘 그녀의 손끝.

닿을 듯 말 듯, 체온마저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지독한 거리 끝에 유진의 검지 손끝이 내 검지 끝에 아주 살짝 닿았다.

아찔했다.

살과 살이 맞닿는 면적은 고작 몇 밀리미터도 되지 않았지만, 그 지점에서부터 온몸의 신경이 마비되는 기분이었다.

“그냥 제 부탁을 들어주시려고 그러셨던 거잖아요? 착.하.시.니.까.”

유진의 목소리가 귓가에 끈적하게 감겼다.

그래, 그랬던 것 같다.

그저 여자친구 조카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호의였을 뿐이다.

나는 그녀가 던져준 합리화를 허겁지겁 집어삼켰다.

그래, 내 잘못이 아니라 술과 유진의 부탁이 만든 상황이었을 뿐일 것이다.

“그럼… 같이 잤던 건?”

나는 마지막 남은 의구심을 뱉었다.

유진은 손가락을 떼지 않은 채, 오히려 내 손끝을 지그시 누르며 피식 웃었다.

“삼촌 소파에서 잔다고 고집 피웠는데, 제가 낯선 공간에 혼자 자는 걸 좀 무서워해요.”

“.......”

“어릴 때부터 그랬거든요. 그래서 옆에만 있어 달라고 했어요.”

“그래요?”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러니 마저 먹죠. 어제 점심만 먹고 바로 작업하자고 하셨잖아요.”

“아, 네.”

***

작업실.

“이렇게 하고 있으면 돼요?”

내 시선이 유진의 어깨를 타고 쇄골, 그리고 가슴 부근에서 멈춘 채 떨렸다.

“아… 네.”

나는 손을 어쩌지 못한 채 굳어 있었다.

모든 게 다 이상했다.

그런데, 유진이 몸을 일으켜 내게 다가왔다.

“삼촌, 손이 왜 그렇게 떨려요? 비율 본다면서요. 어제처럼… 만져봐야죠.”

그녀는 망설임 없이 내 손을 잡아 제 허리로 가져갔다.

***

“후우! 후우—!”

심장이 흉곽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땀에 젖은 침대 시트.

어둠 속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순간적으로 옆을 보았다.

아무도 없음에 깊은 한숨이 터졌다.

“후.”

나는 축축해진 이마를 짚으며 다시 침대에 몸을 뉘었다.

작업실에서 유진의 허리에 손을 올린 기억이 너무나 생생해서 오히려 현실이 비현실 같았다.

“역시 그건 꿈… 이었나.”

그때, 닫혀 있던 방문이 천천히 열렸다.

끼익—.

유진이었다.

“꺽?”

꿈이 아니었다고.

그녀는 내 하얀 와이셔츠를 걸치고 있었다.

손끝을 넘어 길게 내려온 소매.

그리고 셔츠 밑단 아래로 가차 없이 드러난 하얀 허벅지.

그건 채영이 내 셔츠를 입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기괴할 정도로 자극적인 모습이었다.

“일어났어요?”

채영의 공간.

채영의 침대.

그리고 난 채영의 남자.

그런데, 모든 것의 중심에 유진이 내 셔츠를 입고 서 있었다.

식탁 위에는 유진이 차린 아침상이 놓여 있었다.

깨작대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있으려고요?”

내가 묻자, 젓가락질하던 유진이 멈칫하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투명한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쳤다.

“삼촌이 그랬잖아요. 피규어 제작 구도 잡힐 때까지 한 발짝도 나가지 말라고.”

“…내가요…?”

“네, 삼촌이 그랬으면서 왜 딴소리예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유진 씨. 여기는 이모랑 내가 사는 집인데.”

그래, 아무리 채영의 조카라도 이건 아니다.

그런데 유진은 아무렇지 않게 밥알을 씹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여기에 이모는 없는데요?”

그녀의 태연함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거 같던 그때였다.

탁. 타닥—.

거실 통창 밖에서 무언가 유리를 두드리는 기묘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지?”

“벚꽃 폈어요.”

유진이 밥을 먹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햇살을 받은 와이셔츠가 투명하게 비치며 그녀 몸의 곡선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나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도 이미 너무 많은 걸 본 기분이었다.

“밥 먹고 같이 가요.”

“네? 어딜 가요?”

내가 반문하자, 유진이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방금까지의 차가움은 어디 가고 억울함이 가득한 ‘여자의 눈빛’이었다.

“설마! 아무리 ‘피규어’ 작업 때문이라도,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요?”

파괴적이었다.

그녀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서늘하게 느껴지는 체온과 그녀의 차가운 시선이 이상하게도 내게는 뜨거웠다.

“며칠 뒤면 이모 와요. 그럼 나랑 올해의 이 벚꽃은 못 봐요. 그래도 안 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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