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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 주인 없는 집.

Penulis: 기봉이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8-05 17:58:56

왜 밥을 먹자고 했지.

김치통만 건네주고 보내도 됐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어제오늘 김치 때문에 고생하셨고, 제가 채영 씨 대신 밥 한 끼 정도는 살 수 있잖아요. 하하.”

유진이 멋쩍은 내 웃음을 지켜보던 그때, 초인종이 또다시 울렸다.

인터폰 화면엔 헬멧을 쓴 배달 기사가 서 있었다.

‘아차, 배달.’

유진이 말했다.

“배달시키신 거 아녜요?”

“아! 그러긴 했는데! 마침 오셨으니까!”

“배달 음식은 어쩌려고요?”

“이따 저녁에 먹으면 되죠!”

그래, 그저 정상적인 호의일 수 있었다.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뛰는 심장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리는 것 같아 아찔했다.

유진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내 현관으로 향하며 말했다.

“배달은 제가 받을게요. 준비하세요.”

***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황급히 씻었다.

거울 속의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상기되어 있었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옷장을 뒤졌다.

채영의 취향이 가득한 옷들 사이에서 가장 무난한 옷을 꺼내 입었다.

거울 앞에 서자 헛웃음이 나왔다.

흰 티셔츠에 청바지라니.

ㅡ

집을 나서자, 완연한 봄기운이 끼쳐왔다.

길가에는 노란 개나리가 흐드러졌고,

벚나무 가지 끝에는 당장이라도 터질 듯 꽃봉오리들이 맺혀 있었다.

나란히 걷는 우리 사이에 1미터 남짓한 거리가 있었지만,

그 공간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찬 거 같았다.

계속되는 정적에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거 같았다.

그래서 어렵게 말했다.

“곧 벚꽃이 피겠네요. 저 봉우리들이 다 터져서 울창해지면… 생각만 해도 좀 설레지 않아요?”

유진은 대답 없이 앞만 보고 걸었다.

내 발소리와 그녀의 발소리가 불규칙하게 섞이는 정적 속에서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몇 초의 정적 끝에 유진이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설레서 좋으시겠어요. 그 꽃, 이모랑 보러 가실 테니.”

“그건… 뭐, 그렇겠죠.”

“예쁘긴 하겠네요. 분홍 꽃잎 아래서 두 분이 웃고 있으면.”

유진이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았다.

봄볕을 받은 그녀의 눈동자가 빛났다.

시골에서 보았던 그 분위기와 함께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근데, 그거 알아요? 꽃이 피는 건 설레는데, 지는 건 한순간인 거.”

낮고 단조로운 목소리, 분위기랑 같이 조금 차가운 말투였다.

난 고민 끝에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꽃이 져도 해마다 꽃은 다시 피우잖아요.”

그러자 그녀는 다시 무심하듯 대답했다.

“올해의 꽃과 내년의 꽃이 같나요.”

***

유진이 해장국 김 사이로 숟가락을 쥔 내 손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손 예쁘네요.”

느닷없는 말에 기침이 나왔다.

“쿨럭! 네?”

그녀는 다시 한번 내 손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모가 그러던데요. 규현 씨 손재주 좋다고. 조형하신다면서요?”

“아, 네. 그냥 조금씩 해요. 피규어 같은 거.”

고개를 숙이며 말끝을 흐렸다.

한 달에 100만 원도 못 버는 아마추어 예술가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보고 싶다.”

나도 모르게 숟가락질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빛은 알 수 없었다.

“뭘 보고 싶다는 거예요?”

“만드신 작품이요.”

그녀의 대답에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었다.

다시 한번 이성보다 먼저 말이 터져 나온 건,

갈증을 이기지 못한 호기심이었던 것일까.

“유진 씨, 혹시 술 좋아하세요?”

“좋아해요.”

“그럼… 술 한잔할래요?”

유진은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스스로 말하고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

“좋아요. 저도 오늘 공부하기 싫었거든요.”

***

정신을 차렸을 땐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관자놀이를 관통하는 듯한 통증에 미간이 저절로 구겨졌다.

팔이 아팠다.

“아오, 팔이야.”

고개를 팔 쪽으로 돌렸을 때, 나는 숨이 절로 멈췄다.

옆에서 숨결이 느껴졌다.

채영이 아니다.

유진이 내 팔을 베고 누워있었다.

순간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뭐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이명이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황급하게 내 몸을 살폈다.

윗옷에서 시작해 바지, 벨트에 이르기까지 그대로였다.

유진 역시 어제 차림 그대로 이불을 덮고 있었다.

“후우…….”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지만, 안심도 잠시였다.

필름이 끊겼던 어젯밤의 기억 조각들이 깨진 유리 파편처럼 머릿속을 찔렀다.

시끄러운 술집.

잔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유진이 내게 외쳤던.

ㅡ채널 이름 알려 주세요! 구독할게요!

ㅡ동영상마다 댓글 달면 믿어줄래요?!

나는 조심스럽게 팔을 뺐다.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와 헬스장으로 향했다.

몸을 혹사하면 가라앉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도어락을 열었을 때, 나는 다시 멈춰 서야 했다.

나서는 안 되는 냄새.

구수한 음식 냄새가 나고 있었다.

냄새에 이끌려 주방으로 향하자, 거짓말처럼 유진이 있었다.

채영이 입던 베이지색 앞치마를 두른 채 능숙한 손놀림으로 국자를 휘젓고 있는 뒷모습.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마치 원래부터 여기 살던 사람처럼.

내 시선은 유진의 뒷모습에서 주방 여기저기로 옮겨갔다.

채영이 골라놓은 식기,

채영 취향의 조명과 주방.

채영이 사다 놓은 경차 한 대보다 비싼 식탁.

다시 시선이 유진의 뒷모습에 꽂혔다.

모든 것의 중심에 유진이 서 있었다.

유진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셨어요?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잔잔한 미소와 함께 그녀는 여유로워 보였다.

나는 멍하니 서서 떨리는 목소리를 뱉었다.

“이게 지금……. 아직도 안 갔어요?”

유진은 대답 대신 국자를 냄비 위에 걸쳐 두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내 얼굴에 머물렀다가

천천히 목선을 타고 내려가 운동으로 불거진 근육을 훑은 뒤,

다시 천천히 내 눈으로 올라왔다.

“어제 기억 안 나요?”

잠깐 멈췄다가, 덧붙였다.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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