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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18,500원

Author: 핸드드립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6 09:00:10

제9화 18,500원

나는 그 남자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다시 살펴봤다. 이름은 윤도하. 프로필 사진은 한 장, 그것도 본인 얼굴이 아니었다. 어딘가의 카페 창가, 창밖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상태 메시지는 없었다. 카카오스토리도 없었다. SNS 링크도, 인스타그램 아이디도, 아무것도 없었다.

“……심심하게 사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프로필을 눌렀다. 사진은 여전히 한 장이었다. “그래도 카페는 괜찮네.”

나는 무심코 중얼거리다 문득 깨달았다.

“잠깐.” 내가 왜 남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형사처럼 분석하고 있지?

나는 황급히 뒤로 가기를 눌렀다.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3초 뒤 다시 들었다.

“…….” 이번에는 더 자세히 봤다. 프로필 사진. 배경 사진. 이름. 상태 메시지. 그리고 카카오톡 프로필에서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는 손을 멈췄다.

“어?”

노래가 좋았다. 정확히 내 취향이었다.

“이 노래도 듣네.”

나는 잠시 음악을 들었다. 잔잔했다. 시끄럽지 않고,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악이었다. '취향이 좀 비슷한가?'

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나는 그대로 굳었다.

“…….” '어쩌면.'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좀 잘 맞을지도…….'

“미쳤나?” 나는 즉시 휴대폰을 뒤집었다. 심장이 괜히 빨리 뛰었다.

“강시우.” 나는 진지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정신 차려.”

윤도하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능력을 썼으니까. 그게 전부였다. 운명도 아니고, 첫눈에 반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인연도 아니었다. 내가 멋있어서도 아니다. 아마 내가 길거리에서 갑자기 그를 붙잡고 눈을 마주친 순간, 속으로 이상한 말을 외쳤기 때문일 것이다. '유혹한다.'

“…….” 생각할수록 부끄러웠다. 나는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을 덮었다. 마치 흑역사가 실시간으로 재생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자꾸 윤도하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트에서 내가 연락처를 거절했을 때 그는 그냥 알겠다고 말했다. 억지로 붙잡지도 않았다. 서운해하는 표정은 지었지만, 내가 싫다고 하자 그냥 돌아섰다. 그리고 내가 다시 불렀을 때 그렇게 좋아했다. 고작 카카오톡 하나 알려준 건데.

“…….” 나는 이불 밖으로 손을 뻗어 휴대폰을 다시 집어 들고 윤도하의 프로필을 눌렀다. 음악이 다시 흘러나왔다.

“좋네.”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부모님을 제외하면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확실한 호감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내가 좋아했던 사람은 많았다. 아흔아홉 명이나 됐으니까. 아니, 이제 백 명이다. 하지만 그건 전부 내 쪽이었다. 내가 좋아했다. 내가 설렜다. 내가 고백했다. 그리고 차였다. 항상 그랬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서 먼저 연락처를 물어보고, 내가 한마디 했다고 좋아하고, 내가 돌아서면 아쉬워하는 것. 그런 건 나에게 너무 낯선 일이었다. 마치 평생 을의 자리만 앉아본 사람이 처음으로 갑의 의자에 앉아본 기분이랄까.

“……그래서 그런가.” 나는 휴대폰 화면을 바라봤다. 처음 겪어 보는 상황이라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았다. 그럴 수 있었다. 그게 정상이다. 아마도.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신기해서 그런 거야.”

그리고 윤도하의 프로필을 다시 눌렀다. 음악이 처음부터 재생됐다.

“…….” 나는 천장을 바라봤다. “신기한 게 왜 자꾸 듣고 싶지?”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띠링. 나는 즉시 몸을 일으켰다.

“!”

윤도하였다.

윤도하

혹시 저녁 드셨어요?

나는 메시지를 한참 바라봤다. 평범한 질문이었다.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답장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입력창을 눌렀다. 네. 삭제했다. 아직이요. 삭제했다. 왜요? 삭제했다.

“아, 뭐라고 보내.” 나는 머리를 감쌌다. 답장 하나에 국가고시 답안 작성하는 심정이었다.

한참 뒤 조심스럽게 답장을 보냈다.

[강시우] 아직요.

보내자마자 후회했다.

“너무 바로 보냈나?”

휴대폰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바로 답장이 왔다.

[윤도하] 저도 아직인데. 같이 드실래요?

“…….” 나는 화면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 심장이 조금 빨리 뛰기 시작했다.

“왜?”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니.”

다시 휴대폰을 봤다. 같이 드실래요? 평범한 문장이었다. 그냥 밥 한번 먹자는 말이었다. 그런데 나는 한참 동안 답장을 하지 못했다.

결국 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왜.”

“현우야.”

“또 무슨 사고 쳤어?”

나는 잠시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자랑 밥 먹는 건.”

“…….”

“…….”

“너 드디어 게이 됐냐?”

“아니거든!”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상담 신청 3초 만에 기각이었다.

다시 윤도하의 메시지를 바라봤다. 한참을 고민했다. 정확히 2분 37초 동안. 그리고 답장을 보냈다.

[강시우] 네. 좋아요.

메시지가 전송됐다. 나는 화면을 바라보다 천천히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

첫 번째 남자는 어떻게 피할지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뭘 입고 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큰일 났네.”

강시우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기분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래.' 나는 애써 가볍게 생각했다. '그동안 현우한테 돈을 얼마나 썼는데.' 치킨, 피자, 삼겹살, 여행 가서 숙소비까지. 생각해 보면 지난 일주일 동안 현우는 나 때문에 꽤 호의호식을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현우를 먹여 살렸다.

“이번에는 내가 밥 한 번 얻어먹는 거지 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윤도하는 나를 좋아하고 있다. 그러니까 밥 한 끼 정도 얻어먹는 건 괜찮다. 아주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데이트? 절대 아니다. 나는 단순히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밥을 얻어먹는 것뿐이다.

'……근데 이거 데이트랑 뭐가 다르지?'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하지 마.”

약속 장소에서 윤도하를 만났다. 나는 멀리서 그를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생각보다 멀쩡하게 입고 왔네.'

아니, 마트에서 봤을 때도 멀쩡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깔끔한 셔츠에 검은 바지. 딱히 꾸민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대충 입은 것도 아니었다.

윤도하도 나를 발견하고 웃었다.

“오셨어요?”

“네.”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니요. 저도 방금 왔어요.”

“…….” 둘 다 거짓말이었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2분 먼저 왔다. 윤도하는 나보다 먼저 와 있었다. 눈치 게임에서 둘 다 패배자였다.

나는 괜히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그럼 갈까요?”

“네.”

그렇게 우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나란히 걸었다.

“…….”

“…….”

'왜 이렇게 조용하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평소라면, 상대가 여자였다면, 이미 열두 가지 정도 질문했을 것이다. 혈액형이 뭐예요? 취미가 뭐예요? 주말에는 뭐 하세요? 파스타 좋아하세요? 혹시 이상형이…….

“…….”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지금은 그런 질문을 하면 안 된다. 너무 적극적으로 보일 수 있다. 아니, 왜 내가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지?

우리는 계속 걸었다. 윤도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 근처 자주 오세요?”

“아니요. 처음이에요.”

“아.”

“왜요?”

“그냥 맛집 검색하다가 찾았어요.”

“아.”

그리고 다시 조용. 나는 바닥을 바라봤다. '대화가 왜 이렇게 어렵지?'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소개팅을 백 번 했다. 정확히 말하면 백 번 차인 남자다. 그런데도 남자 한 명과 밥 먹으러 가는 게 제일 어색했다.

'내 경험치 어디 갔냐?' 백전백패의 베테랑 소개팅러도 이 앞에서는 신입이었다.

식당에 들어갔다. 조용한 양식집이었다. 테이블 사이 간격도 적당했고 조명도 은은했다.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데이트하기 좋겠네.'

“…….” 나는 급하게 생각을 지웠다. '데이트 아니라고.'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았다. 메뉴판을 펼쳤다. 나는 고민하지 않았다.

“저는 까르보나라요.”

“아.” 윤도하가 메뉴판을 내려다봤다. “저도 그거 먹으려고 했는데.”

나는 고개를 들었다.

“진짜요?”

“네.”

“취향이 같네요.”

말하고 나서 내가 먼저 당황했다.

“아니.”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윤도하는 작게 웃었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나는 괜히 메뉴판을 다시 펼쳤다. '왜 웃어.' '그냥 말했을 뿐인데.'

주문을 마치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때 윤도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네?”

“어제는.”

나는 순간 긴장했다.

“네.”

“왜 그러셨어요?”

“…….” 왔다. 드디어 물어본다. 나는 이미 머릿속에서 준비한 답변을 꺼냈다.

“아.” 나는 괜히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제가 좀 사정이 있어서요.”

“아.”

윤도하는 잠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무슨 사정인데요? 왜 저를 붙잡았어요? 왜 갑자기 눈을 그렇게 쳐다봤어요? 왜 도망갔어요?

하지만 윤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끝이었다.

“……네?”

“네?”

“아니요.”

“……?”

나는 괜히 당황했다. '안 물어봐?' 아니, 안 물어보는 게 정상이다. 내 사정을 왜 캐묻겠어. 그런데 나는 조금 더 물어볼 줄 알았다.

“더 안 궁금하세요?”

내가 묻고 나서도 이상했다.

윤도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궁금하긴 한데요.”

“그럼요?”

“말하기 싫어 보이셔서요.”

“…….”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

“나중에 말해 주고 싶으시면 듣겠습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정상이다.'

첫 번째 남자는 내가 말하지도 않은 걸 궁금해했다. 어디 갔는지, 누구랑 있는지, 왜 답장이 늦는지. 그런데 윤도하는 궁금해하면서도 내가 싫어하는 건 묻지 않았다. '이게 원래 정상적인 거구나.' 나는 조금 늦게 깨달았다.

음식이 나왔다. 윤도하와 나는 똑같은 까르보나라를 주문했다. 접시까지 똑같았다. 나는 포크를 들다가 피식 웃었다.

“우리 좀 웃기네요.”

“뭐가요?”

“아니.” 나는 두 접시를 번갈아 바라봤다. “둘이 똑같은 거 시켜 놓고.”

윤도하도 자기 접시와 내 접시를 보고 작게 웃었다.

“그러네요.”

“보통 이런 거 먹을 때 취향 많이 갈리지 않아요?”

“그런가요?”

“저는 주변에 토마토 파스타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저도 토마토보다 크림이 좋아요.”

나는 포크를 멈췄다.

“진짜요?”

“네.”

“저도요.”

“…….”

“아니.” 나는 급하게 말을 이었다. “이런 걸로 좋아하지 마세요.”

윤도하가 웃음을 참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제가 좋아한다고 했나요?”

“…….”

“…….”

“안 했네요.”

나는 조용히 파스타를 먹기 시작했다. '미친놈.' 자폭도 이런 자폭이 없었다.

윤도하가 작게 웃었다. 나는 괜히 물을 마셨다.

“근데.”

“네.”

“커피는 뭐 좋아하세요?”

“아메리카노요.”

나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아.”

윤도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왜요?”

“아니요.”

“혹시 아메리카노 싫어하세요?”

“네.”

“아.”

“저는 라떼 좋아해요.”

“그렇군요.”

이번에는 윤도하가 살짝 웃었다.

“취향이 다르네요.”

나는 괜히 억울해졌다.

“그럴 수도 있죠.”

“네.”

“모든 게 다 같을 수는 없잖아요.”

“그렇죠.”

“그렇다고 아메리카노 좋아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니고.”

“네.”

“왜 웃어요?”

“안 웃었는데요.”

“웃었잖아요.”

“아닙니다.”

“방금 입꼬리 올라갔는데.”

“그걸 보셨어요?”

“…….” 나는 입을 다물었다. 감시 카메라 저리 가라 수준의 관찰력이었다.

잠시 후 윤도하가 말했다.

“라떼 좋아하시는구나.”

“네.”

“다음에는 라떼 맛있는 곳 가면 되겠네요.”

나는 포크를 멈췄다.

“다음에요?”

“아.” 윤도하도 잠시 멈췄다. “싫으시면 안 가도 되고요.”

“…….” 나는 다시 파스타를 입에 넣었다. “싫다고 안 했는데요.”

“그럼.”

“그냥.” 나는 괜히 접시를 내려다봤다. “맛있으면 갈 수도 있죠.”

“네.”

윤도하가 웃었다. 이번에는 나도 웃었다.

그 뒤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영화 이야기. 드라마 이야기. 여행 이야기. 나는 혼자 여행 가는 건 별로라고 했다. 윤도하는 혼자 여행을 가끔 간다고 했다.

“안 심심해요?”

“심심하면 숙소에서 자요.”

“그게 여행이에요?”

“그럼요.”

“저는 여행 가서 숙소에 있으면 손해 보는 느낌인데.”

“쉬러 가는 건데요.”

“그래도 관광지는 봐야죠.”

“사람 많은 데 싫어해서요.”

“저는 사람 많은 데 괜찮은데.”

“그럼 다음에는 사람 없는 데 가면 되겠네요.”

“…….” 나는 고개를 들었다. “또 다음이에요?”

윤도하가 멈칫했다.

“죄송합니다.”

“아니요.”

“부담스러우셨으면…….”

“아니.” 나는 급하게 말을 끊었다. “그런 건 아니고.”

'왜 자꾸 다음을 약속해.' 아니, 좋아하니까 그렇겠지. 내가 능력을 썼으니까. 그걸 알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 기다려지는 것 같았다.

“…….” 나는 파스타를 괜히 돌돌 말았다.

식사를 마칠 때쯤 윤도하가 말했다.

“맛있게 드셨어요?”

“네.”

“다행이네요.”

그리고 직원이 계산서를 가져왔다. 나는 당연하게 생각했다. 윤도하가 계산할 거라고. 아니, 당연한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항상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밥을 샀으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사 주는 것,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윤도하가 나를 좋아하니까 윤도하가 계산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윤도하가 계산서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더치페이.”

“네?”

“괜찮으시죠?”

“…….” 나는 잠시 멈췄다. “아.”

윤도하가 나를 바라봤다.

“혹시 불편하세요?”

“아니요.” 나는 즉시 웃었다. “괜찮죠.”

“다행이네요.”

“네네.”

너무 괜찮았다. 괜찮아야 했다. 더치페이가 뭐가 문제야. 요즘 세상에 각자 먹은 건 각자 내는 거지. 아주 합리적이다. 건전하다. 평등하다.

나는 환하게 웃었다.

“당연히 괜찮죠.”

“그럼 제가 먼저 계산하고 금액 보내드릴게요.”

“네.”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계산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띠링.

윤도하

18,500원이에요.

나는 바로 송금했다.

18,500원 송금 완료

그리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 조금. 아주 조금 서운했다. 아니, 서운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얻어먹기로 한 것도 아니고 윤도하가 사준다고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괜히 파스타를 떠올렸다. 같은 메뉴를 시켰다. 취향도 비슷했다. 대화도 나쁘지 않았다. 심지어 다음에 라테를 마시러 가자는 얘기까지 했다. 그런데 18,500원.

나는 다시 송금 내역을 확인했다. '내가 왜 이걸 확인하고 있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강시우.' 정신 차려. 윤도하는 그냥 정상적인 사람이다. 첫 번째 남자처럼 집착하지도 않고, 과하게 들이대지도 않고, 남의 사생활을 캐묻지도 않는다. 그리고 밥값도 정확하게 나눈다.

…….

“너무 정상적인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윤도하가 고개를 들었다.

“네?”

“아닙니다.” 나는 급하게 웃었다. “그냥.”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 밖으로 나오자 윤도하가 나를 바라봤다.

“그럼 들어가세요.”

“네.”

“조심히 가시고요.”

“도하 씨도요.”

“네.”

그리고 윤도하는 정말로 그대로 돌아섰다. 나는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 붙잡지 않는다. 더 같이 있자고 하지 않는다. 택시 타고 가라고 하지 않는다. 집에 데려다준다고도 하지 않는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휴대폰을 확인했다. 18,500원.

“…….”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맨날 내가 샀는데.”

그리고 잠시 후 나는 혼자 깜짝 놀랐다.

“……잠깐.” 내가 지금 윤도하를 내가 좋아하는 사람처럼 생각한 거야?

나는 그대로 굳었다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나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절대 아니야.”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18,500원만큼, 정확한 계산처럼 정직하게, 조금 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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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화 왜 하필 옆집이냐나는 현우에게 술을 한 잔 따라주고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했다. 꿈. 정체불명의 남자. 계약서. 남자 100명을 꼬실 수 있는 능력. 휴대폰 문자. 옆집 남자. 아침부터 시작된 추격전. 그리고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까지.설명을 모두 끝냈을 때 현우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이해했어?”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응.”나는 안도했다. 역시 김현우였다. 내 절친. 적어도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인간.“다행이다.”“너 이거 주작이지?”“…….” 나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아니.”“솔직히 말해.”“진짜라고.”“카메라 어디 있어?”“없어.”현우가 주변을 둘러봤다. 천장, TV, 냉장고 위, 심지어 화장실 쪽까지.“유튜브 찍는 거 아니야?”“내가 무슨 유튜버야.”“요즘은 다 찍잖아.”“내가 남자한테 쫓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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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화 현우는 나의 방패다나는 퇴근을 하고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현우를 기다렸다. 혼자 집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했다. 아니, 정확히는 혼자 그 남자와 마주치는 게 위험했다. 아침에 이미 한 번 도망쳤다. 버스도 세 번 놓쳤다. 골목까지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결국 지각까지 했다.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나는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주변을 살폈다. 왼쪽, 없음. 오른쪽, 없음. 뒤쪽, ……없음. 다시 왼쪽을 봤다. 혹시 모르니까. 없었다. '좋아.' 일단 근처에는 없는 것 같았다.나는 휴대폰을 꺼내 현우에게 문자를 보냈다.[시우] 어디쯤이야?잠시 후 답장이 왔다.[현우] 거의 다 왔어.[시우] 몇 정거장?[현우] 두 정거장.나는 다시 주변을 살폈다. '두 정거장.' 버스로는 얼마 안 걸린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시우] 빨리 와.[현우] 왜?[시우] 그냥 기다리고 있어.잠시 후.[현우] 미친 놈.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래.” 미친놈처럼 보이는 건 상관없었다. 남자한테 쫓기는 것보다는 낫다.그때 저 멀리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김현우.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벌렸다.“현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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