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제8화 왜 안오지?
시우는 그대로 도망쳤다. 남자가 완전히 보이지 않는 곳까지, 한참을 달린 뒤에야 멈췄다.
“하아… 하아…”
나는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
다시 한번 주위를 살폈다. 없다.
“안 쫓아오는 건가?”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첫 번째 남자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뒤부터 나를 따라왔다. 버스 정류장까지 찾아왔다. 집 앞에도 있었다. 문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그런데 이번 남자는? 내가 갑자기 붙잡았다. 이상한 소리를 했다. 그리고 그대로 도망쳤다. 그런데 안 따라온다.
“……이상한데.”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집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뒤를 돌아봤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도. 편의점 유리창에 비친 뒤쪽을 확인하면서도. 심지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첩보영화 주인공처럼 온갖 각도로 미행을 체크했지만, 정작 나를 미행하는 건 아무도 없었다.
“……없다.”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갔다. “없어.” 우리 층에 도착했다. “진짜 없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철컥, 문을 잠갔다. 잠금장치를 한 번,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그리고 문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주저앉았다.
“다행이다.”
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었다. 아니, 이 정도면 성공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능력에 감사했다.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도 좀 배우는 게 있겠지.”
첫 번째 남자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적당히 호감만 생기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거다. 일주일 뒤, 자동으로 끝. 완벽했다.
“이 정도면 할 만한데?”
나는 그날 밤 오랜만에 편하게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휴대폰을 확인했다. 없다. 문자도, 전화도, 카카오톡 친구 추가도, 아무것도 없었다.
“…….”
나는 출근 준비를 했다. 출근길에도 확인했다. 없다. 버스 안에서도 확인했다. 없다. 회사에 도착해서도 확인했다. 여전히 없었다.
“…….”
나는 휴대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컴퓨터를 켰다. 일을 시작했다. 5분 뒤, 휴대폰을 확인했다. 없었다. 10분 뒤, 또 확인했다. 역시 없었다.
“왜 없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쯤 되면 능력을 걱정하는 건지 남자를 걱정하는 건지 나조차 헷갈리기 시작했다.
옆자리 직원이 나를 바라봤다.
“강시우 씨.”
“네?”
“누구 기다려요?”
“아니요.”
“근데 아까부터 휴대폰만 계속 보시는데.”
나는 즉시 휴대폰을 뒤집었다.
“안 봤는데요.”
“방금 봤잖아요.”
“시간 확인한 겁니다.”
“시계 있는데요?”
나는 벽을 바라봤다.
“……그러네요.” 완벽하게 패배한 알리바이였다.
점심시간에도 없었다. 오후에도 없었다. 퇴근 시간이 됐다.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여전히 조용했다.
“…….”
이쯤 되니 슬슬 이상했다. 아니, 처음에는 조용해서 좋았다. 그런데 너무 조용했다. 마치 알람이 안 울리는 걸 확인하려고 밤새 시계만 보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설마.”
나는 휴대폰을 켜서 시스템을 확인했다.
【대상 002】
【유효기간 : 6일 3시간 12분】
“능력은 정상인데?”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정상이다. 분명히 대상도 지정됐다. 유효기간도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왜 아무 일도 없지? 첫 번째 남자는 능력이 발동하자마자 나를 찾아왔다. 두 번째 남자는 ……그냥 자기 할 일 하는 건가?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정상이지.”
그렇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길에서 처음 본 남자가 갑자기 도망갔다고 해서 쫓아오지 않는다. 번호도 모르는데 연락할 수도 없다. 집도 모른다. 회사도 모른다.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
나는 잠시 멈췄다가 천천히 휴대폰을 바라봤다.
“그럼.”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시 찾아가야 하나?
“……미쳤냐?”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왜 찾아가?”
연락도 안 오고, 따라오지도 않고, 집 앞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완벽하다. 그냥 일주일만 기다리면 된다.
“그래. 이게 내가 원했던 거야.”
그리고 퇴근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옆에 내려놓았다.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
나는 휴대폰을 들어 확인했다. 없다.
“…….”
다시 내려놓았다. 3분 뒤 또 확인했다. 없다.
“왜 자꾸 확인해?”
나는 혼잣말을 하며 휴대폰을 뒤집었다. 이번에는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잠들기 전까지 계속 생각났다. 길에서 갑자기 나를 붙잡았을 때 그 남자가 지었던 어리둥절한 표정이.
“…….”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내가 왜 저 인간 걱정을 하고 있지?”
휴대폰이 울렸다. 띠링! 나는 거의 침대에서 튀어 올랐다.
“왔어?!”
다급하게 화면을 확인했다.
김현우
야 치킨 먹을래?
“…….” 기대가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실제로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천장을 바라봤다.
“현우야.”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왜.”
“너밖에 없다.”
“갑자기?”
“치킨 사줄게.”
“뭐야. 또 무슨 일인데?”
나는 잠시 고민하다 아주 작게 말했다.
“……아무 일도 없어.”
“그게 왜?”
“그러니까 이상하다고.”
“미친놈아.”
현우가 전화를 끊었다. 나는 다시 휴대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아무 일도 없는 게 정상이다. 정상인데. 왜 이렇게 신경 쓰이지?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현우에게 너무 많은 돈을 썼다. 치킨. 피자. 한우. 여행. 심지어 마지막에는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까지 내가 샀다. 생각해 보니 일주일 동안 남자 한 명 피하려다가 다른 남자 하나를 먹여 살렸다. 나는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 다시 확인했다. “현우 이 새끼.”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능력의 최대 수혜자는 현우였다. 오늘은 무조건 집에서 밥을 해 먹어야 했다. 나는 지갑을 꼭 쥐고 마트로 향했다.
한참 장을 보고 있었다. 돼지고기. 계란. 라면. 김치. 그리고 현우가 혹시 몰라서 사다 놓으라고 한 맥주 안주.
“지가 사 먹지.”
나는 과자를 다시 진열대에 올려놓았다. 그때였다. 뒤에서 누군가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저기…….”
“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가 잠시 멈췄다.
“……누구세요?”
남자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네?”
“어제 저 붙잡고…….”
“…….”
남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눈 마주치셨던 분 맞죠?”
“헉.”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남자가 눈을 크게 떴다.
“헉이요?”
“아니요.”
“…….”
'큰일이다.' 하필 여기서, 마트에서. 인생은 이렇게 좁은 동선을 가진 무대극이었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 네. 어제 그…….”
“맞죠?”
“맞습니다.”
“다행이다.”
남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시작됐다.'
나는 장바구니를 슬쩍 뒤쪽으로 옮겼다. 언제든 도망칠 수 있도록.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좀 급해서.”
“급한 일이 있으셨나 봐요.”
“네.”
“그런데 왜 저한테…….”
“그건 묻지 마세요.”
“네?”
“아닙니다.” 나는 황급히 말을 돌렸다. “아무튼 죄송했습니다.”
“저기.” 남자가 나를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잠깐 대화 가능하실까요?”
“안 됩니다.” 너무 빨랐다.
남자가 눈을 깜빡였다.
“아.”
“아니.” 나는 급하게 덧붙였다. “제가 지금 빨리 장을 보고 집에 가야 해서요.”
“아.”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네.”
“그럼…….” 남자가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연락처라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즉시 대답했다.
“안 됩니다.”
“…….”
“절대 안 됩니다.”
“아직 한 번밖에 안 물어봤는데요.”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선제적 거절이었다. 예방 접종처럼.
“……네.”
남자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알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게 끝이었다. 붙잡지도 않았다. 왜 안 되냐고 따지지도 않았다. 집이 어디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냥 “그럼 장 잘 보세요.” 라고 말한 뒤 돌아섰다.
“…….” 나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뭐야?' 이렇게 쉽게?
나는 잠시 멈칫했다. 첫 번째 남자가 떠올랐다.
'친구 집에서 재울 건 아니죠?'
'오늘 저녁에는 만날 수 있을까요?'
'집에 안 계신 것 같아서요.'
“…….”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 사람은 조금 특이했던 거다. 원래는 이게 정상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너무 정상적이었다. '능력이 제대로 걸린 거 맞나?'
나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대상 002】
【유효기간 : 5일 22시간 32분】
정상이었다. 분명히 아주 정상적으로 능력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왜 그냥 가?
나는 멀어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무심코 입을 열었다.
“저기요.”
남자가 멈추고 돌아봤다.
“네?”
나는 그대로 굳었다. '왜 불렀지?'
남자가 나를 바라봤다. 기다리는 눈빛이었다. 나는 장바구니 손잡이를 꽉 잡았다.
“……저.”
“네.”
“카톡은 알려드릴게요.”
“진짜요?” 남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와.”
나는 움찔했다.
“뭘 그렇게까지 감사해요?”
“아니, 그냥…… 좋잖아요.”
“…….” 나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번호는 안 됩니다.”
“네.”
“전화하지 마세요.”
“네.”
“집에 찾아오면 안 됩니다.”
남자가 잠시 멈칫했다.
“……집은 모르는데요.”
“아.”
“그리고 회사도 모르고.”
“알았어요.”
“차단할 수도 있어요.”
“그건 조금 슬픈데요.”
“…….”
나는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줬다. 남자는 휴대폰에 뭔가를 입력했다. 잠시 후 내 휴대폰이 울렸다.
띠링.
[새로운 친구] 안녕하세요.
나는 화면을 바라보다 남자를 바라봤다.
“…….”
“감사합니다.”
“그렇게 감사할 일인가.”
“저한테는요.”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황급히 말했다.
“장 잘 보세요.”
“시우 씨도요.”
“제 이름은 어떻게…….” 나는 말을 멈췄다. “아.”
카카오톡 프로필. 유출 경로가 밝혀지는 데 3초도 안 걸렸다.
“그럼 연락할게요.”
“너무 자주는 하지 마세요.”
“네.”
남자는 웃으며 정말로 그대로 돌아섰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소파에 앉아 한참 동안 휴대폰을 바라봤다.
“하…….”
내가 왜 그랬지? 번호를 안 알려주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왜 카카오톡은 알려줬어?
“강시우.” 나는 내 이름을 부르며 고개를 저었다. “정신 차려.”
하지만 이상하게 조금 미안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이다. 어제는 길거리에서 갑자기 붙잡혔다. 오늘은 마트에서 다시 만났다. 연락처를 물어봤다가 거절당했다. 그냥 돌아가려는데 이번에는 내가 불렀다. '저 카톡은 알려드릴게요.'
“……미친놈.” 나는 얼굴을 감쌌다.
내가 능력만 안 걸었으면 저 사람은 지금 나한테 아무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그냥 길에서 이상한 남자를 만났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내가, 내 사정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끌어들였다.
“…….”
첫 번째 남자와는 달랐다. 그 사람은 솔직히 말하면 능력 때문이라고 해도 조금 무서웠다. 하지만 이번 남자는 적어도 내가 싫다고 하면 물러났다. 억지로 따라오지도 않았다. 집까지 찾아올 것 같지도 않았다.
“……정상인이네.”
나는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휴대폰이 울렸다.
띠링.
[???] 집에는 잘 들어가셨어요?
“…….”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한참을 바라봤다.
첫 문자였다. 고작 집에 잘 들어갔냐는 문자. 평범한 문자였다.
[강시우] 네. 잘 들어왔습니다.
잠시 후.
[???] 다행이네요. 저도 이제 집에 왔어요.
끝. 그게 전부였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
1분. 2분. 5분. 아무 문자도 오지 않았다. 나는 결국 휴대폰을 다시 들었다.
“끝?”
아무리 기다려도 끝이었다. 나는 천천히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이번에는 정말로 집까지 찾아오거나, 문자를 수십 통씩 보내거나, 현우를 질투하거나,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휴대폰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인간이란 참 간사한 존재였다. 쫓아오면 무섭다고 도망치고, 안 쫓아오면 왜 안 쫓아오냐고 서운해하니까.
몇 분 뒤 다시 화면을 확인했다. 새로운 메시지는 여전히 없었다.
나는 천장을 바라봤다.
“…….”
그리고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왜 안 오지?”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번 대상은 첫 번째 남자와 다르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게, 왜인지 조금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제9화 18,500원나는 그 남자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다시 살펴봤다. 이름은 윤도하. 프로필 사진은 한 장, 그것도 본인 얼굴이 아니었다. 어딘가의 카페 창가, 창밖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상태 메시지는 없었다. 카카오스토리도 없었다. SNS 링크도, 인스타그램 아이디도, 아무것도 없었다.“……심심하게 사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프로필을 눌렀다. 사진은 여전히 한 장이었다. “그래도 카페는 괜찮네.”나는 무심코 중얼거리다 문득 깨달았다.“잠깐.” 내가 왜 남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형사처럼 분석하고 있지?나는 황급히 뒤로 가기를 눌렀다.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3초 뒤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더 자세히 봤다. 프로필 사진. 배경 사진. 이름. 상태 메시지. 그리고 카카오톡 프로필에서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왔다.나는 손을 멈췄다.“어?”노래가 좋았다. 정확히 내 취향이었다.“이 노래도 듣네.”나는 잠시 음악을 들었다. 잔잔했다. 시끄럽지 않고,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악이었다. '취향이 좀 비슷한가?'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나는 그대로 굳었다.“…….” '어쩌면.'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좀 잘 맞을지도…….'“미쳤나?” 나는 즉시 휴대폰을 뒤집었다. 심장이 괜히 빨리 뛰었다.“강시우.” 나는 진지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정신 차려.”윤도하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능력을 썼으니까.
제8화 왜 안오지?시우는 그대로 도망쳤다. 남자가 완전히 보이지 않는 곳까지, 한참을 달린 뒤에야 멈췄다.“하아… 하아…”나는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다시 한번 주위를 살폈다. 없다.“안 쫓아오는 건가?”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첫 번째 남자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뒤부터 나를 따라왔다. 버스 정류장까지 찾아왔다. 집 앞에도 있었다. 문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그런데 이번 남자는? 내가 갑자기 붙잡았다. 이상한 소리를 했다. 그리고 그대로 도망쳤다. 그런데 안 따라온다.“……이상한데.”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집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뒤를 돌아봤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도. 편의점 유리창에 비친 뒤쪽을 확인하면서도. 심지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첩보영화 주인공처럼 온갖 각도로 미행을 체크했지만, 정작 나를 미행하는 건 아무도 없었다.“……없다.”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갔다. “없어.” 우리 층에 도착했다. “진짜 없다.”나는 현관문을 열고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철컥, 문을 잠갔다. 잠금장치를 한 번,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그리고 문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주저앉았다.“다행이다.”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었다. 아니, 이 정도면 성공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능력에 감사했다.“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도 좀 배우는 게 있겠지.”
제7화 아무나 붙잡았다그렇게 점점 나의 연애 불가 마감 기한이 다가왔다.【남은 시간 : 3시간 42분 18초】“…….” 나는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한숨을 쉬었다. “젠장.”48시간. 처음에는 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지나가 보니 생각보다 짧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생각만 하다가 48시간이 증발했다. 마치 마감 전날 밤샘 과제처럼, 시간은 계획한 순간에는 안 가다가 손 놓는 순간 광속으로 사라졌다.나는 지난 이틀 동안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첫 번째 후보, 잘생긴 남자.“안 돼.” 너무 위험하다. 괜히 능력이 제대로 발동해서 나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면 어쩌지?두 번째 후보, 평범한 회사원.“더 안 돼.” 회사에서 계속 마주친다. 옆집 남자로 이미 평생 쓸 고생을 다 썼다.세 번째 후보, 멀리 사는 남자.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교통비가 들잖아.”능력에 걸린 남자가 나를 만나러 올 수도 있었다. KTX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심지어 해외에 있어도.[대상 002] 한국에 계시죠?[대상 002] 저 지금 공항이에요.“으아아아악!” 나는 후보에서 즉시 삭제했다. 국경까지 넘어올 기세라면 이건 연애가
제6화 선택하지 않겠습니다그 뒤로 나는 현우와 일주일 밤을 함께 보냈다. 정확히 말하면, 현우가 우리 집에 눌러앉아 일주일을 함께 살았다. 세입자도 이렇게 안 산다.처음에는 현우도 하루 이틀 정도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둘째 날이 되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오늘도 오는 거지?”“…….”셋째 날.“현우야, 오늘 저녁 뭐 먹고 싶어?”“너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넷째 날.“치킨?”“어제도 먹었는데.”“피자?”“그제 먹었는데.”“한우?”“……몇 시까지 갈까?”배신이 이렇게 쉬웠다. 나는 현우의 식비를 대가로 안전을 확보했다. 사실상 인간 보디가드를 한우로 매수한 셈이었다. 문제는 이 보디가드도 완벽한 방패는 못 됐다는 것이다.띠링.[옆집 남자] 오늘도 친구분이랑 계세요?“…….” 나는 휴대폰을 뒤집었다.현우
제5화 왜 하필 옆집이냐나는 현우에게 술을 한 잔 따라주고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했다. 꿈. 정체불명의 남자. 계약서. 남자 100명을 꼬실 수 있는 능력. 휴대폰 문자. 옆집 남자. 아침부터 시작된 추격전. 그리고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까지.설명을 모두 끝냈을 때 현우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이해했어?”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응.”나는 안도했다. 역시 김현우였다. 내 절친. 적어도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인간.“다행이다.”“너 이거 주작이지?”“…….” 나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아니.”“솔직히 말해.”“진짜라고.”“카메라 어디 있어?”“없어.”현우가 주변을 둘러봤다. 천장, TV, 냉장고 위, 심지어 화장실 쪽까지.“유튜브 찍는 거 아니야?”“내가 무슨 유튜버야.”“요즘은 다 찍잖아.”“내가 남자한테 쫓기는
제4화 현우는 나의 방패다나는 퇴근을 하고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현우를 기다렸다. 혼자 집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했다. 아니, 정확히는 혼자 그 남자와 마주치는 게 위험했다. 아침에 이미 한 번 도망쳤다. 버스도 세 번 놓쳤다. 골목까지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결국 지각까지 했다.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나는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주변을 살폈다. 왼쪽, 없음. 오른쪽, 없음. 뒤쪽, ……없음. 다시 왼쪽을 봤다. 혹시 모르니까. 없었다. '좋아.' 일단 근처에는 없는 것 같았다.나는 휴대폰을 꺼내 현우에게 문자를 보냈다.[시우] 어디쯤이야?잠시 후 답장이 왔다.[현우] 거의 다 왔어.[시우] 몇 정거장?[현우] 두 정거장.나는 다시 주변을 살폈다. '두 정거장.' 버스로는 얼마 안 걸린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시우] 빨리 와.[현우] 왜?[시우] 그냥 기다리고 있어.잠시 후.[현우] 미친 놈.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래.” 미친놈처럼 보이는 건 상관없었다. 남자한테 쫓기는 것보다는 낫다.그때 저 멀리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김현우.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벌렸다.“현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