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다음 날 같은 시간.이번에는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어젯밤 도현의 목소리만 듣고 잠들었던 기억 때문인지, 오늘도 자연스럽게 같은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계를 몇 번이나 확인하다 밤 열한 시가 되자마자 통화 버튼을 눌렀다.연결음이 세 번 울렸다.그리고 끊겼다.나는 화면을 내려다봤다.실수인가 싶어 다시 걸었다.이번에도 세 번.또 끊겼다.순간 이상하게 기분이 상했다.어제는 자기가 먼저 전화해서 자세까지 정해 놓고, 오늘은 내가 전화하니까 받지도 않는다고?그 생각을 하는 순간 메시지가 왔다.[회의 중.]딱 세 글자.설명도 없었다.언제 끝나는지도,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말도 없었다.나는 답장을 쓰려다 지웠다.[알겠어요.]썼다가 지우고.[끝나면 연락해요.]그것도 지웠다.결국 휴대전화를 침대 위에 던졌다.“됐어.”혼잣말을 하고도 계속 화면이 신경 쓰였다.십 분.이십 분.아무 연락도 없었다.괜히 더 화가 났다.그러면서도 한쪽에서는 내가 왜 이러는지 알고 있었다.도현이 전화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회의 중이라고 말했고, 지금은 업무 시간이었다.그런데 머리로 아는 것과 기분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삼십 분쯤 지나 휴대전화가 울렸다.차도현.나는 두 번 울릴 때까지 일부러 받지 않았다.세 번째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네.”“화났습니까?”첫마디부터 그거였다.“아니요.”“거짓말.”“…조금.”도현이 잠시 조용했다.“제가 전화를 끊어서?”“두 번이나요.”“회의 중이었습니다.”“알아요.”“그런데도 화났습니까?”말투에 비난은 없었다.정말 이유를 알고 싶은 목소리였다.나는 베개를 끌어안았다.“어제는 주인님이 원할 때 전화했잖아요.”“네.”“그래서 오늘도…”말끝이 흐려졌다.도현이 대신 말했다.“제가 바로 받을 거라고 생각했습니까?”정곡이었다.나는 입술을 삐죽였다.“그럴 수도 있죠.”“그럴 수 있습니다.”뜻밖에 바로 인정했다.“하지만 저도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그 말이 이
240화 이후 도현은 정말 숫자를 없앴다.그런데 숫자가 사라지자 더 위험한 게 생겼다.목소리였다.출장 중인 도현이 밤 열한 시에 전화를 걸었다.“지금 혼자입니까?”“네.”“문 잠갔습니까?”“네.”잠시 정적이 흘렀다.“오늘은 얼굴 안 봅니다.”“영상통화 안 해요?”“네.”“왜?”“당신이 제 표정을 보지 않고도 제 말을 원하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낮아진 목소리에 손끝이 괜히 긴장했다.“싫으면 끊으십시오.”“안 끊어요.”“그럼 침대 끝에 앉으십시오.”나는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움직였다.“앉았어요.”“손은 무릎 위.”“네.”“등 기대지 마십시오.”보이지도 않는데 자세가 저절로 바로잡혔다.“주인님.”“네.”“지금 웃고 있죠?”“조금.”“진짜 얄미워.”“그 말은 허락합니다.”도현의 숨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가까웠다.“눈을 감으십시오.”“안대도 없는데?”“그래서 더 중요합니다.”나는 눈을 감았다.“오늘의 명령은 하나입니다.”“뭔데요?”“제가 없는 방에서도 제가 있다고 상상하지 마십시오.”뜻밖이었다.“그럼?”“제가 없는 건 없는 겁니다.”잠시 뒤 그가 덧붙였다.“대신 제가 필요하면 직접 말하십시오.”나는 침묵했다.“서윤.”“…필요해요.”“무엇이?”“주인님 목소리.”전화기 너머로 낮은 숨이 섞였다.“그럼 오늘은 여기 있습니다.”그날 밤 가장 강한 건 손이 아니라, 아무것도 만질 수 없는 거리였다.
다음 날 아침, 도현은 먼저 일어나 있었다.식탁 위에는 커피 두 잔과 작은 카드 한 장이 놓여 있었다.“또 카드?”“읽어 보십시오.”앞면에는 숫자가 없었다.뒷면에는 한 줄만 적혀 있었다.[다음 명령은 내일도 선택한 뒤에.]나는 카드를 뒤집어 봤다.“이게 뭐예요?”“어제 생각했습니다.”“피곤하다며.”“그래서 더.”도현은 내 맞은편에 앉았다.“우리가 관계에 익숙해질수록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늘어납니다.”“뭘요?”“당신이 원할 거라는 것.”그가 잠시 멈췄다.“제가 원할 거라는 것.”어제의 거절이 떠올랐다.“그래서 매일 다시 묻자?”“네.”“좀 귀찮은데.”“알고 있습니다.”“그래도 해야 해요?”“저는 하고 싶습니다.”나는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그럼 오늘은?”도현의 시선이 깊어졌다.“지금 묻습니까?”“네.”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잠시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오늘은 원합니다.”“뭘요?”도현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이번에는 내가 그가 하던 질문을 돌려줬다.“구체적으로 말해요.”입가에 작은 미소가 생겼다.“당신이 제 앞에서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그건 늘 하잖아요.”“오늘은 조금 더 명확하게.”“어떻게?”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에 섰다.“침실 문까지는 제가 가지 않겠습니다.”“또 제가 와야 돼요?”“네.”“안 가면?”“오늘은 끝입니다.”그는 먼저 침실로 들어갔다.문은 닫지 않았다.나는 혼자 식탁에 남았다.일어나지 않아도 됐다.누가 잡으러 오지도 않을 것이다.몇 초.십 초.도현은 돌아오지 않았다.나는 결국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침실 문 앞에 도착하자 그는 안쪽에 서 있었다.손 하나 뻗지 않았다.“여기까지 왔어요.”“알고 있습니다.”“이제요?”그가 물었다.“들어올 겁니까?”나는 문턱 앞에서 잠시 멈췄다.그리고 한 걸음 들어갔다.“네.”도현의 눈빛이 짙어졌다.“확실합니까?”“네.”“오늘의 색깔.”“초록색.”
며칠 뒤 반대 상황이 찾아왔다.이번에는 내가 먼저 보관함을 열었다.도현은 문 앞에서 내 손을 바라봤다.“오늘은 안 됩니다.”“…뭐?”예상하지 못했다.“왜요?”“피곤합니다.”“도현 씨가요?”“네.”나는 괜히 당황했다.그가 거절할 거라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다.“진짜 피곤해서?”도현의 눈빛이 변했다.“다른 이유가 있어야 합니까?”“아니, 그냥…”말을 하다 멈췄다.내가 지금 그가 나에게 했던 일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거절을 개인적인 거부로 받아들이고 이유를 찾는 것.“미안해요.”나는 보관함을 닫았다.“쉬어요.”도현은 침대에 앉았다.“서운합니까?”“조금.”“말해도 됩니다.”“제가 원할 때 도현 씨도 항상 원하는 줄 알았어요.”“대부분은 그렇습니다.”“오늘은 아니고?”“몸이 지쳤습니다.”그는 솔직했다.“억지로 시작하면 제가 집중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알겠어요.”나는 옆에 누웠다.도현이 물었다.“안아도 됩니까?”“응.”그의 팔이 허리를 감쌌다.“이상하네요.”“뭐가?”“거절당하면 불안해지는 기분.”“이제 알겠습니까?”“네.”도현이 아주 작게 웃었다.“좋은 학습이군요.”“놀리지 마요.”“미안합니다.”나는 그의 가슴을 가볍게 쳤다.“내일은?”“내일 상태를 보고 다시 선택하겠습니다.”그 말도 맞았다.미리 약속할 필요는 없었다.원하는지 그때 다시 묻는 것.결혼한 뒤에도, 오래 함께한 뒤에도.그 기본은 달라지지 않았다.
도현이 오랜만에 먼저 보관함을 열었다.“오늘 원합니까?”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아니요.”그의 손이 멈췄다.“알겠습니다.”그뿐이었다.보관함을 닫고 돌아섰다.“끝?”“네.”“왜 안 물어봐요?”“싫다고 했으니까.”“이유도?”“말하고 싶으면 들을 겁니다.”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내가 이상해졌다.“서운하지 않아요?”“조금.”“그런데?”“당신의 거절을 바꾸려고 하면 안 됩니다.”도현은 침대 반대편에 앉아 책을 펼쳤다.나는 한동안 그를 보다가 옆으로 갔다.“이유는 그냥 피곤해서예요.”“알겠습니다.”“주인님이 싫어서 아니고.”책장이 멈췄다.“그 말은 조금 고맙습니다.”“많이는 아니고?”“많이.”그제야 웃음이 났다.“안아 주는 건 괜찮아요.”도현은 책을 내려놓았다.“확실합니까?”“네.”그가 품을 열었다.나는 스스로 들어갔다.“이런 것도 매번 물을 거예요?”“당신이 싫다고 말한 직후니까 더.”“진짜 많이 변했네.”“좋습니까?”“가끔은 너무 조심해서 답답해요.”도현의 눈썹이 올라갔다.“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제가 괜찮다고 한 다음에는 좀 자신 있게.”“기억하겠습니다.”말이 끝나자 허리를 감싼 팔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이 정도?”“응.”“더?”“조금.”그는 내가 말한 만큼만 힘을 더했다.거절은 그날 밤 아무것도 끝내지 않았다.오히려 그 뒤에 무엇이 가능한지 더 분명하게 만들었다.
다음 날 파리 센터에 공식 경고장이 도착했다.프랑스 노동당국이 일부 직원들의 초과근무 기록을 조사하겠다는 통보였다.문제는 내 총괄실이었다.조직 축소 이후 남은 직원들이 업무를 떠안으며 주당 근무시간이 급증한 것이다.“제가 줄인 조직 때문에 생긴 거네요.”마르틴이 말했다.“맞지만, 관리자가 막지 못한 책임도 있습니다.”“총괄 책임입니다.”나는 바로 인정했다.도현에게 말하자 그는 첫마디부터 달랐다.“사람을 다시 늘리십시오.”“아직 조사도 안 끝났어요.”“기록만 봐도 과도합니다.”“조직 줄인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다시 늘리면 실패 인정이잖아요.”도현의 표정이 굳었다.“사람이 지쳐 있는데 체면을 먼저 생각합니까?”말이 세게 들어왔다.“체면 때문만은 아니에요.”“그럼?”“또 조직이 커지면 예전으로 돌아갈까 봐.”“인원을 늘리는 것과 권한을 가져오는 것은 다릅니다.”그는 정확히 구분했다.나는 총괄실 인원을 일부 복원하되 결재 권한은 늘리지 않는 구조를 만들었다.초과근무 수당도 소급 지급했다.노동당국 조사는 경고 없이 종결됐다.직원 간담회에서 한 사람이 말했다.“총괄님이 사람을 줄이면서 효율을 강조했을 때 솔직히 버티라는 뜻으로 들렸습니다.”가슴이 아팠다.“미안합니다.”이번에는 ‘대표니까 책임진다’는 말 대신 구체적으로 약속했다.“앞으로 조직 개편 후 한 달 동안 근무시간을 주 단위로 확인하겠습니다.”집으로 돌아오자 도현이 물었다.“힘듭니까?”“네.”“오늘은 뭘 원합니까?”나는 한참 고민했다.“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요.”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진짜 아무것도?”“네.”“주인님도 쉬어요?”“오늘은 남편입니다.”그 말이 이상하게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