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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화 남겨진 문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5 20:53:25

희미한 어둠 속에서 누군가 계속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채아…….”

처음에는 꿈인 줄 알았다.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

그리고 다급하게 떨리는 목소리.

“채아, 제발 눈 떠 봐.”

채아의 손가락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무거운 눈꺼풀이 천천히 떨렸다.

“……으윽……”

작은 신음과 함께 채아가 겨우 눈을 떴다.

눈앞에는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아지트였다.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채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가장 먼저 보인 사람은 류현이었다.

소파 옆 의자에 앉아 있던 류현은 채아가 눈을 뜨는 순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채아?”

목소리가 평소보다 훨씬 급했다. “정신 들어?”

채아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류현…… 오빠?” “응. 나야.”

그제야 주변에 이준과 태혁, 아린도 있다는 것이 보였다.

네 사람 모두 지쳐 보였다.

옷은 먼지가 묻어 있었고, 얼굴에는 피곤함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채아가 깨어난 순간 모두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아린이 가장 먼저 웃으며 말했다.

“깼다…… 다행이다.”

이준도 길게 숨을 내쉬었다.

“진짜 걱정했잖아.”

태혁은 벽에 기대 있던 몸을 바로 세웠다.

“몇 시간이나 안 일어나서 놀랐어.”

채아는 천천히 몸을 움직이려 했다.

“……으윽.”

순간 온몸이 아릿하게 아파왔다.

채아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류현이 즉시 손을 내밀었다.

“움직이지 마.” “괜찮아…….” “안 괜찮아.”

채아는 그제야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팔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고, 손에도 깨끗하게 붕대가 둘러져 있었다.

다리 역시 붕대로 감싸져 있었으며, 등에 감긴 붕대 때문에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당기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붕대를 바라보던 채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얼마나 정신 잃고 있었어?”

이준이 대답했다.

“반나절 정도.” “반나절……?”

채아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렇게 오래?”

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계속 열도 조금 있었고 몸도 너무 지쳐 있었어.”

채아는 천천히 기억을 떠올렸다. 검은 안개.

열린 문. 강해진 악령.

그리고 류현을 향해 날아가던 공격.

“……!” 채아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악령!”

몸을 급하게 일으키려는 순간 강한 통증이 다시 올라왔다.

“윽……!” “채아!”

류현이 얼른 어깨를 붙잡아 다시 눕혔다.

“왜 이렇게 급하게 일어나!”

“악령은…… 문은…… 다들 괜찮아?”

채아는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한 채 연달아 물었다.

류현은 잠시 채아를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

“다들 살아 있어.”

채아의 눈이 흔들렸다. “정말?” “응.”

“악령은?” 태혁이 대답했다. “사라졌어.”

채아는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준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문은 아직 남아 있어.”

방 안이 조용해졌다.

채아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안 닫혔어?”

류현이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는 아니야.”

“그럼 다시 악령이 나올 수도 있는 거야?”

“그 가능성도 있어.”

채아는 붕대가 감긴 손을 꽉 쥐려다가 힘없이 풀었다.

자신이 깨어 있는 동안에도 문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왠지 모르게 불안한 기분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때 류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채아가 류현을 바라봤다.

류현의 표정은 평소보다 훨씬 굳어 있었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류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네가 대신 맞아.”

채아는 눈을 깜빡였다.“…….” “왜.”

류현의 목소리에 조금씩 화가 섞이기 시작했다.

“내가 피했어야 했잖아.”

“오빠가…….” “그래서?”

류현이 말을 끊었다.

“그래서 네가 다쳐도 된다는 거야?”

채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류현은 답답한 듯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채아를 바라봤다.

“너 지금 네 몸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 “…….”

“다리도 제대로 못 걷고 있었고, 등에 큰 상처도 있었잖아.”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런데 왜 망설이지도 않고 앞으로 뛰어들어.”

채아는 힘없이 대답했다.

“류현 오빠가 다칠까 봐…….”

순간 류현의 말이 멈췄다.

채아는 시선을 피한 채 조용히 말했다.

“내가 막으면 될 줄 알았어.”

류현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바보 같게.”

채아가 작게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 “또 미안이야?”

류현이 다시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 하지 마.” “…….”

“다음부터는 절대 그렇게 하지 마. 알겠어?”

채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류현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화를 낸 것도 결국 채아가 크게 다친 것이 너무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아린이 분위기를 조금 바꾸려는 듯 물을 건넸다.

“목마르지?” “응…….”

채아가 물컵을 받으려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붕대가 감긴 손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컵이 살짝 흔들렸다.

류현이 재빨리 물컵을 잡았다.

“천천히.” “나 혼자 할 수 있는데.”

“지금은 아니야.” 채아는 작게 웃었다. “알겠어.”

물을 조금 마신 뒤 숨을 고르자 몸이 조금 안정되는 것 같았다.

그제야 채아는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많이 다쳤어?”

태혁이 웃으며 말했다.

“우린 괜찮아.”

이준이 바로 덧붙였다.

“괜찮기는. 전부 힘 다 빠졌잖아.”

“그래도 움직일 수는 있지.”

아린도 피곤한 웃음을 지었다.

이번 악령은 진짜 힘들었어.”

채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 때문에…….” “그 말 금지.”

아린이 바로 말했다.

“이번에는 진짜 금지야.”

채아가 멈칫했다.

아린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린 다 같이 싸웠고 다 같이 살아 돌아왔어.”

태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책임지려고 하지 마.”

이준은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문만 아니었으면 조금 마음 놓았을 텐데.”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창문으로 향했다.

밖은 이미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평범한 밤처럼 보였지만 아지트 안에는 긴장감이 남아 있었다.

류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쪽 기운은 계속 확인하고 있어.”

“계속?” “응.” 채아가 조용히 물었다.

“그 문…… 왜 나한테 반응하는 것 같다고 했어?”

류현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확실한 건 아니야.” “그래도.”

이준이 대신 말했다.

문이 열린 순간부터 채아의 혼과 비슷한 파동이 계속 느껴졌어.”

채아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이상했다.

처음 악령이 자신을 보며 이상한 혼의 흔적이 있다고

말했을 때부터 계속 마음에 걸렸다.

‘내 안에…… 다른 혼?’

생각할수록 알 수 없는 의문만 늘어났다.

그때였다. 깜빡.

아지트의 전등이 한 번 흔들렸다.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깜빡. 이번에는 두 번.

태혁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마 또?” 류현은 즉시 눈을 감았다.

혼의 흐름을 느끼는 듯 숨을 죽였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몇 초 뒤 류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

“……문이 움직였어.”

아린의 얼굴이 굳었다.

“다시 열리는 거야?” “아니.”

류현이 창문 쪽을 바라봤다.

“무언가가 안쪽에서 움직였어.”

채아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왠지 모르게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 순간 아주 짧은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끝없이 이어진 검은 공간.

그 중앙에 서 있는 한 사람.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채아가 갑자기 숨을 들이켰다. “……!”

류현이 바로 돌아봤다. “왜 그래?”

채아는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방금…… 봤어.” “뭘?” “문 안쪽.”

모두가 채아에게 집중했다.

채아는 천천히 말했다.

“누군가 있었어.”

이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사람?” “모르겠어.”

채아가 고개를 저었다.

“얼굴은 안 보였어.”

“악령은 아니었고?”

“느낌이 달랐어.”

방 안에는 다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태혁이 낮게 중얼거렸다.

“문 너머에 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건가…….”

아린은 채아의 손을 바라봤다.

“혹시 그 존재가 채아를 보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말에 채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류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섣불리 판단하지 마.”

하지만 그 자신도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창문 밖에서 바람이 세게 불었다.

휘이이잉— 커튼이 흔들렸다.

아지트 안의 공기가 순간 차가워졌다.

류현이 즉시 몸을 돌렸다. “전원 준비.”

이준과 태혁도 힘겹게 자세를 잡았다.

아린은 채아의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

“채아는 움직이지 마.”

채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시선은 창밖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멀리 어둠 속.

아무것도 없는 골목 끝에 아주 희미한 검은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찾았다.” 채아의 몸이 순간 굳었다.

그 목소리는 분명 처음 듣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만 들은 것 같았다.

“채아?” 류현이 걱정스럽게 불렀다.

채아는 천천히 창문을 바라본 채 대답했다.

“……문이.” “왜?” “나를 부르고 있어.”

순간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아지트 밖의 검은빛이 천천히 사라졌다.

그러나 불길한 기운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알지 못했다.

열린 문 너머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존재가,

조금씩 이 세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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