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제 37화 눈이 감춘 시선밤이 깊어질수록 눈은 더욱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하얀 눈송이는 마당과 지붕을 천천히 덮으며 낮에 남아 있던 흔적들을 조금씩 감추고 있었지만 진안은 그 눈이 아무것도 감추지 못한다고 생각했다.그의 시선은 창밖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마당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으며 담장 너머로 이어진 나무들 또한 눈을 뒤집어쓴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진안은 그 고요함을 믿지 않았다.조금 전까지 분명히 기척이 있었다.구간에서 집 쪽으로 이어진 발자국은 아직 선명했으며 자신이 밖으로 나갔을 때 들렸던 발소리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을 따라 움직였다.그리고 자신이 멈추자 상대 역시 움직임을 멈췄다.그것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정확했다.진안은 천천히 창가에서 몸을 돌렸다.세린은 방 안쪽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 밖을 보고 있어요?”진안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아까부터 계속 그러고 있잖아요.”“볼 것이 있어서 그렇소.”세린은 의아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하지만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하얀 눈과 어두운 담장뿐이었다.“저는 아무것도 안 보여요.”진안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그게 다행이오.” “왜요?”“보이는 거리에 있다면 너무 가까운 것이니까.”세린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진안은 그녀가 걱정하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상대가 자신을 보고 있다면 자신 역시 상대의 움직임을 살펴야 했으며 지금처럼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내어줄 수 있었다.“오늘 밤에는 밖으로 나오지 마시오.”“진안은요?” “필요하면 나갈 것이오.”“그럼 저만 안 나가라는 거잖아요.” “그렇소.”세린은 조금 못마땅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그게 공평해요?”진안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공평한 일을 찾는 게 아니라 안전한 일을 찾는 것이오.”세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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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36화 발자국이 향한 곳마구간에서 집을 향해 이어진 발자국을 바라보는 순간, 진안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희게 쌓인 눈 위로 새겨진 발자국은 아직 가장자리가 무너지지 않았고, 발자국 안쪽에도 눈이 다시 내려앉은 흔적이 거의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은 흔적이었다.진안은 문 앞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그는 곧장 발자국을 따라가지 않았다.대신 처음 흔적이 생긴 위치부터 바라보았다.마구간 문.말 네 마리가 있는 안쪽.그리고 마구간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길.시선이 천천히 그 사이를 오갔다.무언가 이상했다.어제 발견한 흔적은 마구간 주변에서 끊겨 있었다.그런데 지금은 마구간 안쪽에서부터 집을 향해 발자국이 이어지고 있었다.상대가 어제와 같은 사람이라면, 왜 굳이 오늘은 마구간 안까지 들어온 것일까.진안은 천천히 한 걸음 다가갔다.첫 번째 발자국의 깊이를 살폈다.발 전체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그러나 두 번째 발자국은 첫 번째보다 얕았다.세 번째는 다시 깊었다.진안은 눈을 가늘게 떴다.걸음이 일정하지 않았다.단순히 걷는 사람이 아니었다.무언가를 확인하면서 걸었던 흔적에 가까웠다.그는 발자국 옆의 눈을 손끝으로 살짝 건드렸다.눈이 무너지는 정도를 확인한 뒤, 다시 발자국 안쪽을 살폈다.“……조금 전이군.”뒤에서 세린의 목소리가 들렸다.“뭐가요?”진안은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이 발자국.” 세린이 가까이 다가왔다.하지만 진안은 그녀가 너무 가까이 오지 않도록 손을 들어 막았다. “잠깐.”세린이 멈췄다. “왜요?”“흔적을 밟으면 안 되오.”그 말에 세린은 바닥을 내려다보았다.그제야 발자국이 얼마나 선명한지 알 수 있었다.“누가 왔던 거예요?”진안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발자국을 바라보며 천천히 생각을 이어갔다.어젯밤 담장 너머에서 보았던 그림자.담장 바깥의 희미한 발자국.마구간 근처에서 발견했던 흙자국. 검은 실밥.그리고 오늘 새롭게 나타난 발자국.각각 따로 놓고 보면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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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35화 눈 속에 감춰진 것하진이 떠난 뒤에도 집 안에는 그의 흔적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따뜻한 차가 담겨 있던 찻잔과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방 안의 공기, 그리고 조금 전까지 이어졌던 대화의 여운이 조용한 집 안에 남아 있었지만, 세린은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 않았다.무엇이 마음에 걸리는지는 알 수 없었다.그저 문밖으로 사라진 하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순간부터,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아주 얇은 안개처럼 마음 한쪽에 내려앉아 있었다.세린은 그 생각을 애써 떨쳐내며 찻잔을 하나씩 정리했다.“오늘은 눈이 더 많이 내리려나 봐요.”창가에 서 있던 이모가 바깥을 바라보며 말했다.세린도 자연스럽게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하늘은 어느새 짙은 회색으로 가라앉아 있었고, 낮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굵어져 지붕과 담장 위에 소리 없이 쌓이고 있었다.“그러게요.” 세린이 작게 대답했다.그때였다. 사각.아주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세린의 손이 멈췄다.눈 위를 밟는 소리였다.그녀는 잠시 움직이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사각. 이번에는 조금 더 분명했다.세린은 창밖을 바라보았다.하지만 눈발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 마당 끝조차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누가 밖에 있나?”이모가 묻자 세린은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요.”그녀가 창가로 한 걸음 다가가려던 순간—진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의자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세린이 그를 돌아보았다.진안은 아무 말 없이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평소와 다르지 않은 얼굴이었다.그러나 세린은 알 수 있었다.저 눈빛은 평소와 달랐다.무언가를 듣고 있었다.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진안은 천천히 문을 열었다.차가운 바람이 안으로 밀려들며 그의 긴 머리카락을가볍게 흔들렸다.그는 한동안 마당을 바라보았다.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하얀 눈발 사이로 나무와 담장이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사라지고 있었다.진안은 말없이 마당을 훑었다.하진이 걸어간 흔적이 있었다.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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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34화 서로를 경계하는 눈하진이 집 안으로 들어선 뒤, 숙모는 곧장 난롯가 가까운 자리를 내주었다.“밖이 꽤 춥지요? 이쪽으로 앉으세요.”“감사합니다.”하진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앉았다.숙모가 따뜻한 차를 내오고, 숙부도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세린은 그 옆에 앉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처음에는 평범한 대화였다.청하의 날씨와 장터 이야기, 겨울이 깊어지면서 길이 얼마나 미끄러워졌는지, 최근 들어 마을을 오가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는 이야기까지.하진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차분하게 대답했다.“청하 쪽은 여전히 사람이 많더군요.”“그렇지. 겨울이 되면 장사하는 사람들도 일찍 문을 닫는다던데.”“예. 해가 짧아져서 그런지 저녁이 되면 금세 한산해집니다.”숙모가 세린을 바라보았다.“세린도 청하에서 꽤 돌아다녔다고 하더라.”“네. 생각보다 볼 게 많았어요.”“말도 데려왔고?”“네. 맡겨두었던 말도 데려왔어요.”“그 말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지?”“처음에는 다리를 잘 딛지 못했는데 이제는 꽤 괜찮아요.”숙부가 웃었다.“세린이 말 하나는 참 잘 돌보지.”“숙부님.”“왜 그러느냐. 틀린 말도 아닌데.”숙모가 웃으며 거들었다.“어릴 때부터 말만 보면 하루 종일 마구간에 붙어 있었잖니.” “그건 옛날 이야기예요.”“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세린이 입술을 조금 삐죽였다.“말이 아픈데 어떻게 그냥 둬요.”하진이 그 말을 듣고 조용히 웃었다.“말을 꽤 아끼는 모양입니다.”“네.” 세린이 대답했다.“말은 말을 하지 못하니까 더 자세히 봐줘야 해요.”그 순간이었다.방 한쪽에 있던 진안의 시선이 아주 짧게 세린에게 향했다.그리고 곧바로 하진에게로 옮겨갔다.하진이 웃고 있는 모습을 본 진안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가라앉았다. 세린은 그것을 보았다.진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평소보다 조금 강하게. 탁.작은 소리였지만, 세린은 고개를 돌렸다.“진안?” “……왜 그러시오?”“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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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33화 눈 내리는 오후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점심이 가까워질 때까지도 좀처럼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하얀 눈송이들은 잿빛 하늘 아래에서 천천히 흩날리며 지붕과 담장, 마당의 나무들 위에 포근한 겨울빛을 내려놓고 있었다.세린은 두꺼운 겉옷의 깃을 여미고 마구간으로 향했다.며칠 전 청하에서 돌아온 뒤로 마구간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탓에, 오늘은 아침부터 말들의 상태를 확인할 생각이었다.문을 열자 따뜻한 숨결이 희미한 김이 되어 피어올랐다.마구간 안에는 네 마리의 말이 나란히 서 있었다.세린이 들어오는 기척을 알아챈 듯 가장 가까이에 있던 말 한 마리가 고개를 들었고, 세린은 자연스럽게 그 앞으로 다가가 목덜미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잘 있었어?” 말이 낮게 숨을 내쉬었다.세린은 말의 갈기를 정리해주며 몸 곳곳을 살폈다.다친 곳은 없는지, 발굽은 괜찮은지, 먹이는 제대로 먹었는지 하나씩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한 듯 작게 웃었다.“다들 괜찮네.” 네 마리의 말 가운데에는 세린이평 소 타고 다니는 말도 있었고, 청하에 맡겨두었다가 얼마 전 데려온 말도 있었다.특히 청하에 맡겼던 말은 한동안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했지만, 이제는 이전보다 훨씬 편안하게 서 있었고 걸음에도 불편한 기색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세린은 말의 앞다리를 조심스럽게 살펴본 뒤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렸다.“이제 괜찮은 것 같아.”말은 대답이라도 하듯 고개를 한 번 흔들었다.세린은 웃으며 먹이를 챙겨주었다.그러다 문득 청하에서 보냈던 시간이 떠올랐다.넓은 시장에 늘어서 있던 가게들,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던 거리, 따뜻한 차를 내어주던 찻집과 겨울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작은 물길까지.짧은 시간이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이 기억에 남았다.무엇보다 오랜만에 혼자 마을을 돌아다니며 아무것도 서두르지 않고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세린은 말의 목을 쓰다듬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다음에는 조금 더 오래 있어도 좋을 것 같은데.”그때였다. 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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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32화 눈 위에 남은 흔적다음 날 아침, 밤새 내린 눈이 마당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처마 끝에는 투명한 고드름이 길게 매달려 있었고, 지붕 위에 내려앉은 눈은 아침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바람이 한 번 불어올 때마다 나뭇가지 위에 쌓여 있던 눈이 가볍게 흩어졌다.세린은 이른 시간부터 마구간에 나와 있었다.어제 먼 길을 함께 달려온 두 마리의 말에게 먹이를 주고 물을 갈아준 뒤, 말들의 몸을 차례로 살폈다.청하에서 데려온 말은 며칠 전까지 다리를 제대로 딛지 못했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져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도 불편한 기색이 거의 없었다.세린은 말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이제 정말 괜찮아졌네.”말이 낮게 숨을 내쉬었다.“그래도 며칠은 푹 쉬자. 먼 길 다녀왔으니까.”옆에 있던 다른 말도 세린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너도.” 세린은 두 마리의 말에게 번갈아 손을 내밀었다.청하에서 며칠 동안 머물며 두 마리를 돌보느라 정신없이 지냈지만, 막상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나니 그 시간이 꽤 오래된 일처럼 느껴졌다.청하의 넓은 거리와 사람들.겨울 아침마다 피어오르던 가게의 따뜻한 김.시장 안쪽에서 들려오던 상인들의 목소리.그리고 작은 다리 아래로 조용히 흐르던 물소리.생각할수록 다시 가보고 싶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을 떠올리면 마지막에는 늘 같은 사람이 생각났다.진안. 세린은 잠시 고개를 들었다.어제 집에 돌아와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이 떠올랐다.청하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씩 이야기하자 진안은 별다른 표정도 짓지 않고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가끔 질문을 던졌고, 가끔은 세린이 예상하지 못한 말로 받아치기도 했다.처음에는 무뚝뚝하고 어려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와 대화하는 일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오히려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세린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작게 중얼거렸다.“다음에는 정말 같이 가면 좋을 텐데.”“어디를 말하는 거요?”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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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49화 이상한 흔적다섯 사람은 골목을 빠져나왔다.하지만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조금 전 발견한 검은 자국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악령의 기운.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분명 다른 기운이 섞여 있었다.류현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어두운 골목은 이미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했다.“…….”태혁이 물었다.“왜?”“아무것도 아니야.”류현은 다시 걸었다.이준은 휴대폰을 확인했다.“기운이 완전히 사라졌어.”아린이 말했다.“정말 아무것도 안 남은 거야?”“응.”“그럼 우리가 본 건 뭐였을까?”이준은 대답하지 못했다.채아도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검은 자국.붉은 선.그리고.자신들이 다가가자 갑자기 움직였던 기운.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했다.“저기.”채아가 입을 열었다.모두가 바라봤다.“아까 그 검은 자국.”“응.”“누군가가 일부러 남겨놓은 것 같지 않아?”태혁이 잠시 생각했다.“나도 그렇게 느꼈어.”아린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누가 남긴 건데?”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류현이 말했다.“그걸 알아내야 해.”* 다음 날.학교.채아는 교실 창가에 앉아 있었다.주변에서는 학생들이 평소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어제의 일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하지만.채아에게는 그렇지 않았다.자신과 류현이 악령과 싸웠던 장소.그리고.그 모습을 봤던 학생.채아는 교실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그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채아가 옆자리 학생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어제 학교 끝나고 무슨 일 있었어?”“어제?”“응.”학생은 고개를 저었다.“별일 없었는데?”“그래?”“왜?”“아니야.”채아는 더 묻지 않았다.그때.교실 문이 열렸다.학생 한 명이 들어왔다.채아는 무심코 그쪽을 바라봤다.순간.눈이 마주쳤다.어제.그 학생이었다.채아의 표정이 굳었다.학생도 채아를 보자 잠시 멈췄다.그러더니.고개를 돌리고 자리로 향했다.“…….”채아는 아무 말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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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48화 남겨진 흔적48화. 남겨진 흔적공터를 빠져나온 류현과 채아는 곧바로 팀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문이 열리자.태혁이 가장 먼저 고개를 들었다.“왔어?”류현은 대답하기 전에 주변을 살폈다.이준과 아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무슨 일이야?”이준이 물었다.류현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악령이 여러 마리 나타났어.”태혁의 표정이 굳었다.“여러 마리?”“응.”채아가 이어 말했다.“한두 마리가 아니었어.”아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둘 다 다친 데는 없어?”“괜찮아.”채아가 대답했다.류현도 고개를 끄덕였다.“큰 부상은 없어.”이준은 두 사람의 말을 듣고 휴대폰을 꺼냈다.“그럼 이것부터 봐.”화면에는 조금 전 이준이 확인했던 지도와 비슷한 화면이 떠 있었다.하지만.이번에는 표시가 훨씬 많았다.태혁이 화면을 들여다봤다.“이게 다 뭐야?”“기척이 감지된 곳.”이준이 말했다.“조금 전보다 늘었어.”채아의 표정이 굳었다.“얼마나?”“정확하게 세기는 어려워.”이준이 화면을 확대했다.“기운이 계속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어.”류현이 화면을 바라봤다.“같은 종류야?”“비슷해.”이준이 대답했다.“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아.”아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럼 여러 종류의 악령이 동시에 나타난 거야?”이준은 잠시 생각했다.“아직은 그렇게 단정할 수 없어.”태혁이 팔짱을 꼈다.“왜 이렇게 복잡해?”“악령이 나타나는 방식이 평소랑 달라.”이준이 화면을 가리켰다.“보통은 기운이 한곳에서 강해졌다가 약해져.”“그런데?”“이번에는.”이준의 손가락이 지도 위를 움직였다.“기운이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어.”채아가 화면을 자세히 바라봤다.표시된 점들이.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자세히 보니.한쪽 방향으로 조금씩 이어지고 있었다.“……이쪽.”채아가 말했다.“응.”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렇게 보고 있어.”류현이 물었다.“어디로 이어져?”이준이 화면을 확대했다.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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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47화 포위47화. 포위이번에는 하나가 아니었다.류현은 눈앞에 나타난 검은 기운들을 바라봤다.하나.둘.셋.그리고.그 뒤쪽에서도 또 다른 기척이 느껴졌다.“…….”채아도 주변을 살폈다.공터를 둘러싼 어둠 속에서 검은 기운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류현 오빠.”“응.”“몇 마리야?”류현은 대답하지 않았다.정확하게 세는 것조차 어려웠다.검은 기운들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한곳에 머무르지 않았다.공터의 앞쪽.오른쪽.뒤쪽.그리고 왼쪽.마치.두 사람을 가운데에 가둬 놓으려는 것처럼.채아가 작게 숨을 들이켰다.“우리 포위하려는 것 같아.”“맞아.”류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절대 가운데서 움직이지 마.”“응.”채아는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공터에는 아무도 없었다.늦은 시간이라 주변도 조용했다.덕분에 다른 사람이 전투에 휘말릴 걱정은 없었다.하지만.그만큼 두 사람이 모든 공격을 직접 막아야 했다.스르르.검은 기운 하나가 앞으로 움직였다.류현이 손을 들어 올렸다.“온다.”순간.검은 그림자가 바닥을 박차고 달려들었다.류현이 정면에서 막아냈다.콰앙!검은 기운과 류현의 힘이 부딪혔다.충격이 주변으로 퍼졌다.류현이 한 걸음 뒤로 밀려났다.하지만.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오른쪽!”채아가 외쳤다.류현이 몸을 돌렸다.두 번째 악령이 바로 옆에서 달려들고 있었다.류현이 팔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쾅!이번에는 충격이 더 컸다.류현의 발이 바닥을 끌었다.그 순간.뒤쪽에서 또 다른 기척이 느껴졌다.“뒤!”채아가 힘을 뻗었다.쿠웅!검은 기운이 채아의 힘에 막혔다.악령이 뒤로 밀려났다.하지만.채아가 숨을 돌릴 틈도 없었다.왼쪽에서 또 다른 악령이 나타났다.“……!”채아가 몸을 돌렸다.검은 기운이 빠르게 다가왔다.채아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쾅!공격이 막혔다.하지만.이번에는 힘의 차이가 컸다.채아의 몸이 뒤로 밀렸다.“윽……!”채아는 이를 악물었다.발을 바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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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46화 보이지 않는 존재류현과 류채아가 동시에 골목을 빠져나왔다.“저쪽이야!”조금 전 두 사람을 찾아왔던 학생이 숨을 몰아쉬며 방향을 가리켰다.“검은 게…… 저쪽 학생들을 따라갔어!”류현의 눈빛이 즉시 바뀌었다.“채아.” “응.”“앞으로.”두 사람은 동시에 달리기 시작했다.학생은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있었다.따라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더 이상 이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하지만.조금 전 자신을 향해 움직이던 검은 기운.그리고.자신 앞을 막아섰던 류채아의 모습이 떠올랐다.“…….”학생은 결국 두 사람의 뒤를 바라봤다.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움직였다.이번에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조금 떨어진 거리에서.두 사람이 향하는 곳을 따라갔다.학교 근처의 길.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삼삼오오 걸어가고 있었다.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휴대폰을 보는 학생.친구와 장난을 치며 걷는 학생.평범한 오후였다.하지만. 그들 뒤.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곳에서 검은 기운이 움직이고 있었다.스르르.바닥을 따라 흐르던 기운이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한 학생의 바로 뒤.검은 그림자가 손을 뻗었다그 순간.“멈춰!” 쿠웅!강한 힘이 검은 기운을 밀어냈다.학생들의 주변 공기가 크게 흔들렸다.“뭐야?” “바람?”몇몇 학생들이 놀라 주변을 바라봤다.하지만.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검은 기운은 이미 뒤쪽으로 밀려나 있었다.그리고.채아가 학생들 사이에 서 있었다.“…….”학생들은 갑자기 달려온 채아를 이상하게 바라봤다.“류채아?”“왜 갑자기?”채아는 대답하지 않았다.시선은.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검은 기운이 다시 천천히 형태를 만들고 있었다.류현도 곧바로 채아 옆에 섰다.“봤어?”채아가 낮게 물었다.“응.” “저게 본체야?”“아직 모르겠어.”류현은 주변을 살폈다.“기운이 너무 불규칙해.”악령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검은 안개처럼 보이던 기운이.조금씩 사람의 형태를 이루었다.하지만.정확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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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45화 도망친 목격자다음 날 아침.류채아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교실 안에는 아직 많은 학생들이 오지 않았다.몇몇 학생들만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채아는 가방을 내려놓은 뒤 조용히 교실을 둘러봤다.“…….” 어제.공터에서 자신과 류현을 바라보던 학생.얼굴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하지만.이름은 알지 못했다.같은 학교 교복.그것밖에는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채아는 창밖을 바라봤다.‘누구였을까.’전투를 봤다.그것도.류현과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마지막에는 기억을 정리하는 장면까지 봤다.채아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기억을 지우는 걸 봤다는 건…….’그 자체로도 문제가 될 수 있었다.“류채아.”갑자기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채아가 고개를 들었다.류현이었다.채아가 작게 놀랐다.“류현 오빠?”“잠깐 나와.”채아는 주변을 한번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응.” 두 사람은 복도로 나왔다.아직 등교 시간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 복도에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다.채아가 물었다.“찾았어?”류현은 고개를 저었다.“아직.”“그럼 왜 불렀어?”“얼굴은 기억하지?”“응.” “나도.”채아가 잠시 생각했다.“그런데 같은 학년인지도 모르잖아.”“알아.”“그럼 어떻게 찾으려고?”류현은 잠시 주변을 살폈다.“일단 반응을 보면 돼.”채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반응?”“어제 우리를 본 사람이면.”류현이 말했다.“오늘 우리를 보고 평소처럼 행동하기 어려울 거야.”채아는 잠시 생각했다.그 말은 맞았다.어제 공터에서 벌어진 일을 본 학생이라면.자신과 류현을 다시 보는 순간.놀라거나 피하려 할 가능성이 컸다.“그럼.” 채아가 말했다.“학생들을 계속 보는 거야?”“아니.” 류현은 짧게 대답했다.“우리 주변을 보는 거지.”채아는 작게 웃었다.“그게 더 이상한데.”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잠시 뒤.등교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학생들이 하나둘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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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44화 공터의 목격자학교가 끝난 뒤.류채아와 류현은 평소보다 천천히 학교 정문을 벗어났다.채아는 가방끈을 잡은 채 주변을 살폈다.사람들은 평소처럼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그리고 길을 따라 걸어가는 다른 학생들.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하지만.채아는 계속 같은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누군가 자신들을 보고 있었다.한 명이 아니었다.채아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낮게 말했다.“류현 오빠.” “응.”“아까부터.” “알아.”류현은 앞을 바라본 채 대답했다.채아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몇 명이야?”“정확히는 모르겠어.”“많아?”류현의 시선이 잠시 주변으로 향했다.“적지는 않아.”채아의 표정이 굳었다.둘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학교에서 조금씩 멀어졌다.사람이 많은 길을 지나.상점이 줄어든 곳으로 향했다.그리고.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주변은 점점 조용해졌다.류현이 낮게 말했다.“계속 따라오고 있어.”“응.” “그럼 확인하자.”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방향을 바꿨다.사람들이 다니는 큰길을 벗어나.한적한 길로 들어섰다.조금 더 걸어가자.넓은 공터가 보였다.잡초가 듬성듬성 자라 있었고.주변에는 오래된 나무와 낮은 담장이 있었다.사람이 자주 다니는 장소는 아니었다.채아가 걸음을 멈췄다.류현도 함께 멈췄다.“여기면 되겠지.”채아가 주변을 둘러봤다.“사람 없어.”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조용히 말했다.“나와.” 잠시.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바람이 공터 위를 스쳐 지나갔다.그때.낮은 담장 뒤에서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리고.나무 뒤.공터 입구.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채아의 눈빛이 굳었다.“…….” 한 명. 두 명.다섯 명. 열 명.숫자는 계속 늘어났다.학생들은 공터 안으로 들어오며 두 사람을 천천히 둘러쌌다.류현은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사십 명.”채아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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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90화 오랜된 약속90화. 오래된 약속월하천궁에 남아 있던 봉인진이 완전히 사라졌다.하지만 신계의 존재들은 물러나지 않았다.그들은 다시 무기를 들어 올렸다.“봉인이 깨졌다면 직접 데려가겠다.”라에나는 레오르칸 앞에 섰다.“안 돼.”신계의 존재가 그녀를 바라봤다.“비켜라, 마지막 수호자.”라에나는 고개를 저었다.“싫어.”그 순간 거대한 늑대가 라에나의 옆으로 다가왔다.두 사람이 나란히 서자 금빛과 백색의 기운이 다시 퍼졌다.은빛 눈의 남자가 조용히 말했다.“지금 싸우면 월하천궁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라에나는 주변을 바라봤다.벽에는 이미 수많은 균열이 생겨 있었다.“그럼 어떻게 해야 해?”“중심부를 빠져나가야 한다.”레오르칸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어딘가에서 이상한 냄새를 맡은 듯했다.“왜 그래?”늑대는 대답 대신 통로 반대쪽을 바라봤다.그리고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라에나도 따라갔다.“어디로 가는 거야?”거대한 늑대는 오래된 벽 앞에서 멈췄다.그가 앞발로 바닥을 긁자 작은 틈이 드러났다.은빛 눈의 남자가 다가왔다.“……여기 있었군.”“뭐가?”남자는 바닥의 문양을 바라봤다.“탈출로다.”라에나는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레오르칸은 움직이지 않았다.그는 문양을 바라보며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달빛 아래.한 소녀가 자신의 목에 작은 장식을 걸어주고 있었다.“이걸 가지고 있어.”“왜?”“네가 길을 잃어도 내가 찾아갈 수 있도록.”기억이 끊겼다.레오르칸은 고개를 숙였다.라에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또 기억났어?”늑대는 그녀를 바라봤다.라에나는 그의 눈을 보며 말했다.“무슨 기억이었어?”잠시 후, 레오르칸의 몸에서 금빛이 번졌다.그리고 거대한 늑대의 모습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라에나는 놀라 한 걸음 물러났다.“레오르칸?”금빛이 그의 몸을 완전히 감쌌다.잠시 뒤 빛이 사라졌을 때,그 자리에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레오르칸이 서 있었다.라에나는 눈을 크게 떴다.“……돌아왔네.”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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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89화 다시 깨어난 힘89화. 다시 깨어난 힘월하천궁을 가득 채웠던 금빛과 백색의 빛이 천천히 가라앉았다.라에나는 눈을 뜨고 앞을 바라봤다.거대한 늑대는 여전히 그녀의 곁에 서 있었다.하지만 이전과 달랐다.금빛 눈동자에는 더욱 선명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레오르칸…….”늑대가 고개를 돌렸다.라에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이번에도 늑대는 피하지 않았다.그녀의 손끝이 커다란 머리에 닿았다.“괜찮아?”낮은 울음소리가 대답처럼 흘러나왔다.그르르르……라에나는 작게 안도했다.하지만 신계의 존재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늑대군주의 힘이 완전히 돌아오기 전에 막아야 한다.”그 말이 떨어지자 여러 개의 빛의 창이 공중에 나타났다.라에나는 놀라 뒤로 물러났다.“레오르칸!”거대한 늑대가 즉시 앞으로 뛰어올랐다.쾅!빛의 창 하나가 늑대의 앞발에 튕겨 나갔다.다른 창들이 연달아 날아왔다.하지만 늑대는 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하나씩 피해냈다.라에나는 그 움직임을 바라보다가 놀랐다.“엄청 빨라…….”거대한 몸집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늑대가 바닥을 박차고 앞으로 돌진했다.쿠웅!강한 충격에 신계의 존재들이 뒤로 밀려났다.그러나 그중 한 명이 손을 들어 올렸다.“봉인진을 펼쳐라.”바닥에 하얀 문양이 나타났다.라에나의 얼굴이 굳었다.“또 봉인하려는 거야?”은빛 눈의 남자가 외쳤다.“라에나! 레오르칸을 문양 밖으로 끌어내!”라에나는 곧바로 달려갔다.하지만 봉인진이 빠르게 커지고 있었다.거대한 늑대의 발밑까지 빛이 번졌다.라에나는 그의 목을 붙잡았다.“여기서 나가!”늑대가 움직이려 했지만 봉인진이 그의 몸을 붙잡았다.라에나는 손끝에 힘을 모았다.백색의 빛이 강하게 퍼졌다.“놓아줘!”콰앙!백색의 힘이 봉인진과 충돌했다.균열이 생겼다.신계의 존재들이 놀랐다.“수호자의 힘이…… 봉인을 깨고 있다?”라에나는 이를 악물고 힘을 더했다.“레오르칸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빛이 더욱 강해졌다.“그런데 왜 다시 데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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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88화 봉인을 깨는 빛88화. 봉인을 깨는 빛금빛이 거대한 늑대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라에나는 놀란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레오르칸……?”늑대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월하천궁 전체가 다시 흔들렸다.쿠웅!천장 위에서 작은 돌조각들이 떨어졌다.은빛 눈의 남자가 열린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시간이 없다.”“무슨 뜻이야?”“신계에서 이곳을 찾고 있다.”라에나의 표정이 굳었다.“그럼 우리도 빨리 나가야 하는 거 아니야?”“나가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남자의 시선이 레오르칸에게 향했다.“봉인이 완전히 깨지면 신계는 그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라에나는 거대한 늑대를 바라봤다.“그럼 다시 봉인하려고 할 거야?”남자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레오르칸이 몸을 일으켰다.금빛 기운이 더욱 강해졌다.우우우—거대한 늑대가 낮게 울부짖자 월하천궁의 벽에 새겨진 늑대 문양들이 차례로 빛났다.라에나는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괜찮아?”늑대가 고개를 돌렸다.금빛 눈동자가 라에나를 바라봤다.그 순간 라에나의 손끝에서도 백색의 빛이 흘러나왔다.두 힘이 서로를 알아보듯 이어졌다.은빛 눈의 남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역시…….”“왜?”“두 사람의 힘이 다시 연결되고 있다.”라에나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연결된다고?”남자가 설명하려는 순간,콰아앙!열린 문 너머에서 거대한 빛이 폭발했다.하얀 갑옷을 입은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라에나는 숨을 삼켰다.“저 사람들이…… 신계에서 온 자들이야?”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늑대군주 레오르칸.”그 이름이 울려 퍼지는 순간 거대한 늑대가 낮게 으르렁거렸다.“수천 년 전 끝나지 않은 일이 있다.”라에나는 레오르칸 앞에 섰다.“그를 데려가게 둘 수 없어.”신계의 존재가 그녀를 바라봤다.“마지막 수호자여, 네가 그를 감싸는 순간 너 역시 적이 된다.”라에나는 잠시 흔들렸다.하지만 곧 고개를 들었다.“그가 정말 나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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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87화 신계의 흔적87화. 신계의 흔적쿠우웅—월하천궁 깊은 곳에서 거대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라에나는 문에서 흘러나오는 밝은 빛에 눈을 가늘게 떴다.“신계에 있었다는 건…… 누가 레오르칸을 봉인했다는 거야?”은빛 눈의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거대한 늑대를 바라보았다.“그때의 일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군.”늑대의 입에서 낮은 으르렁거림이 흘러나왔다.그르르르……라에나는 조심스럽게 레오르칸의 곁으로 다가갔다.“괜찮아?”거대한 늑대가 그녀를 바라봤다.금빛 눈동자에는 분노와 혼란이 섞여 있었다.그 순간 열린 문 너머에서 희미한 장면이 나타났다.하얀 궁전.끝없이 펼쳐진 구름.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둘러싸고 있었다.라에나는 숨을 삼켰다.“저곳이…… 신계?”장면 속에는 레오르칸이 있었다.하지만 지금과는 달랐다.그는 인간의 모습으로 서 있었고,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다.그 앞에는 흰 여우가 서 있었다.라에나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나야.”장면 속 여우가 레오르칸에게 다가갔다.그리고 무언가를 건넸다.하지만 그 순간 신계의 하늘에서 빛이 쏟아졌다.콰아앙!레오르칸이 흰 여우를 뒤로 밀어냈다.빛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라에나가 놀라 외쳤다.“레오르칸!”거대한 늑대가 갑자기 고통스러운 듯 몸을 낮췄다.라에나는 그의 곁으로 달려갔다.“괜찮아?”늑대의 금빛 눈이 흔들렸다.그리고 짧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신계의 누군가가 차갑게 말했다.“늑대군주는 반드시 봉인해야 한다.”또 다른 목소리가 이어졌다.“그 힘을 그대로 두면 신계마저 위협받을 것이다.”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목소리가 들렸다.“라에나를 데려가라.”라에나의 얼굴이 굳었다.“……뭐?”그녀의 이름이 분명히 들렸다.레오르칸도 그 순간 고개를 들었다.은빛 눈의 남자가 낮게 말했다.“이제 알겠나.”라에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신계가…… 나까지 알고 있었던 거야?”“그래.”“그럼 레오르칸이 봉인된 이유도…… 나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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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86화 이름을 부른 자86화. 이름을 부른 자“늦었군…… 레오르칸.”어둠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라에나는 숨을 멈췄다.거대한 늑대의 몸이 순간 굳었다.라에나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늑대가 앞발을 내밀어 그녀를 막았다.“레오르칸?”낮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그르르르……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검은 옷.검은 머리카락.그리고 눈에 띄는 은빛 눈동자.그는 거대한 늑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수천 년이 지나도 그 눈은 변하지 않았군.”라에나는 긴장한 채 물었다.“당신은 누구야?”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라에나를 바라봤다.“그리고…… 마지막 수호자까지 돌아왔군.”라에나의 표정이 굳었다.“나를 알아?”“알고말고.”남자가 천천히 말했다.“너는 과거에도 그를 따라다녔으니까.”라에나는 거대한 늑대를 바라봤다.“정말 내가…… 그때도 레오르칸과 함께 있었어?”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네가 없었다면 그는 왕좌를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그 순간 레오르칸이 크게 으르렁거렸다.쿠르르르—남자는 웃음을 거두었다.“여전히 그녀를 지키는군.”라에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아려왔다.“그럼 당신은 레오르칸이 늑대군주였다는 걸 알고 있는 거야?”“그뿐만이 아니다.”남자가 한 걸음 다가왔다.“나는 그가 왜 봉인되었는지도 알고 있다.”라에나의 눈이 커졌다.거대한 늑대가 즉시 앞으로 뛰어들었다.쾅!남자의 앞을 막아섰다.남자는 피하지 않았다.“왜 그러지?”늑대가 낮게 으르렁거렸다.“그 이야기는 아직 하지 않겠다는 건가?”그 말에 라에나는 레오르칸을 바라봤다.“봉인…….”그녀가 조용히 말했다.“레오르칸이 왜 봉인됐는지, 정말 알고 있는 거야?”남자는 잠시 침묵했다.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알고 있다.”“말해줘.”“지금은 안 된다.”“왜?”남자의 시선이 라에나에게 향했다.“그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네 기억도 함께 깨어날 테니까.”라에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남자의 뒤쪽에서 검은 기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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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85화 깨어난 존재85화. 깨어난 존재쿵.월하천궁 깊은 곳에서 또다시 울림이 퍼졌다.거대한 늑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금빛 눈동자가 어둠 속 한곳을 향했다.라에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저쪽에서 소리가 나는 거야?”늑대가 낮게 울었다.그르르르……그리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잠깐, 같이 가.”라에나가 뒤따르자 늑대는 잠시 멈췄다.마치 그녀가 따라오는지 확인하는 듯했다.라에나는 작게 웃었다.“나 두고 가지 마.”거대한 늑대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뒤에서는 흑월족의 남자가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정말 돌아왔군.”라에나가 돌아봤다.“무슨 말이야?”“수천 년 전, 마지막으로 그 모습을 본 이후 처음이다.”라에나의 표정이 굳었다.“그럼 정말로…… 레오르칸이 전설 속 늑대군주였다는 거야?”남자는 잠시 침묵했다.“아직 모든 진실을 확인한 것은 아니다.”“하지만?”“저 힘과 저 모습은 그때와 같다.”라에나는 다시 늑대를 바라봤다.그때 앞쪽에서 거대한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문에는 검은 초승달이 새겨져 있었다.거대한 늑대가 문 앞에 서자 문이 스스로 열렸다.쿠우웅—안쪽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라에나는 몸을 움츠렸다.“안에 뭐가 있는 거지?”대답은 없었다.늑대가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라에나도 뒤따라 들어섰다.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중앙에 놓인 검은 돌 하나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거대한 늑대가 돌 앞에 다가가자 돌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늑대군주여.”라에나의 눈이 커졌다.“너의 시간이 다시 시작되었다.”늑대가 낮게 으르렁거렸다.그러자 검은 돌 위에 오래된 문장이 떠올랐다.‘달이 선택한 자가 돌아오면 봉인은 끝난다.’라에나는 그 문장을 읽고 숨을 삼켰다.“달이 선택한 자…….”그녀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자 백색의 빛이 희미하게 피어올랐다.그 순간 검은 돌이 크게 흔들렸다.쿠웅!방 전체가 진동했다.그리고 월하천궁 가장 깊은 곳에서,무언가가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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