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문이 열리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최미영은 열린 문 앞에 서서 두 사람을 번갈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강하은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손목은 여전히 강시혁의 손아귀에 붙들려 있었고, 두 사람의 거리는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웠다.
하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버린 순간에도 한 가지 생각만은 선명했다.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강시혁의 반응이 더 빨랐다.
그는 손목을 놓는 대신 하은을 제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녀를 가슴에 바짝 붙이고 팔로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아, 자신의 등 뒤에 완전히 가렸다.
동작은 유려하고 자연스러웠다.
마치 수없이 연습해 온 것처럼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어머니.”
강시혁의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리는 대신 몸을 살짝 틀어 하은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
“마침 오셨군요.”
최미영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날카로운 시선이 아들의 얼굴을 훑었다.
“안에서 뭐 하는 거야? 왜 둘이 단둘이 있는 거지?”
“하은이가 정원에서 손목을 다쳤습니다.
상처를 치료해 주느라 잠깐 들어와 있었습니다.”
강시혁은 지극히 담담하게 대답했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태도였다.
그는 고개를 살짝 숙여 품 안에 안긴 하은을 내려다보았다.
어머니 앞에서 보이는 그의 눈빛은 놀랄 만큼 다정했다.
“그렇지?”
강하은은 온몸이 굳었다.
목구멍에 무언가 걸린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술을 달싹인 끝에 겨우 대답했다.
“네.......”
힘없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최미영의 시선이 하은의 창백한 얼굴에 잠시 머물렀다가, 강시혁이 붙잡고 있는 손목으로 옮겨갔다.
소독약을 바른 자리에는 옅은 붉은 기가 남아 있었다.
“알았으니, 약까지 발랐으면 이제 나와.
최 씨 댁 아가씨가 밖에서 기다리고 계셔.”
“알겠습니다.”
강시혁은 대답하면서도 당장 하은을 놓아주지는 않았다.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하고, 두 사람만 들을 수 있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두려워하지 마.
내가 있잖아.”
다정한 위로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그러나 하은에게는 그 말조차 거부할 수 없는 명령처럼 느껴졌다.
“오늘 집에 돌아가면 1층 동쪽 객실로 옮겨.”
그가 목소리를 한층 낮췄다.
“내 서재와 가까우니까.”
강하은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왜요? 저는 지금 방도 괜찮아요.......”
“내가 그렇게 하라고 했잖아.”
강시혁의 어조는 여전히 평온했지만, 더는 반박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어머니께는 내가 설명할 테니 신경 쓰지 마.”
그는 하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천천히 손을 놓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흐트러진 넥타이를 정리하자, 방금 전까지 그녀를 끌어안고 있던 남자는 온데간데없었다.
눈앞에는 흠잡을 데 없는 K그룹의 후계자만이 서 있었다.
“가시죠, 어머니.”
그가 정중하게 손짓했다.
최미영은 못마땅한 듯 코웃음을 치고는 먼저 문밖으로 나갔다.
강시혁도 그 뒤를 따랐다.
하은의 옆을 지나던 그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따라와.”
짧은 한마디를 남긴 뒤,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강하은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속에서 요동치는 불안을 억누르며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
차에 오른 뒤, 강시혁은 뒷좌석에 앉았고 강하은은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차가 출발하자 그는 운전기사에게 목적지를 일렀다.
“인제병원으로 가세요.”
하은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인제병원은 그녀가 오늘 몰래 찾아가려던 곳이었다.
그곳에는 그녀가 남몰래 상담을 받아 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박 원장이 있었다.
오늘도 진정제를 처방받기 위해 따로 진료를 예약해 둔 참이었다.
그런데 강시혁이 함께 가게 될 줄은 몰랐다.
“오빠도 진료받으러 가시는 거예요?”
하은은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응.
어머니가 건강검진을 받으라고 하셔서.
박 원장님도 뵐 겸.”
강시혁은 별다른 감정 없이 대답했다.
하은의 마음속에 불안이 짙게 내려앉았다.
그가 정말 건강검진 때문에 가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병원에 가려던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 정문에 멈춰 섰다.
강시혁이 먼저 내렸고, 하은도 서둘러 뒤따라 내렸다.
두 사람은 로비로 들어가 최미영과 합류했다.
“시혁아, 너는 먼저 채혈하고 와.
나는 박 원장님을 만나 보약을 처방받을 테니.”
최미영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하은아, 너는 시혁이 따라가.
괜히 혼자 돌아다니지 말고.”
“네, 어머니.”
하은은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강시혁은 별다른 말 없이 그녀를 데리고 채혈실 쪽으로 향했다.
“여기서 기다려.”
그는 채혈실 앞에서 하은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른 데 가지 말고.”
“네.”
하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시혁이 채혈실 안으로 들어가자, 하은은 복도에 홀로 남았다.
손목의 상처는 이미 거의 아물었지만, 마음속 불안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곳에 온 목적을 들키면 안 됐다.
박 원장은 그녀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일들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강시혁이 병원에 함께 온 이상, 오늘 계획대로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잠시 후, 강시혁이 채혈을 마치고 나왔다.
“가자.”
그가 짧게 말했다.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실 거야.”
하은은 그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 원장의 진료실 앞에 도착했다.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최미영 님, 오셨군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하은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녀는 문틈으로 진료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최미영은 박 원장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박 원장 옆에는 흰색 원피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 서 있었다.
그 얼굴을 알아본 순간, 하은은 눈을 크게 떴다.
최미영이 강시혁의 혼담을 위해 살펴보던 명단에 있던 여자였다.
최 씨 댁 아가씨와는 또 다른, 정 씨 그룹의 큰딸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강시혁 역시 진료실 안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정 씨와 마주 선 채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시혁아, 이쪽은 정 씨 그룹의 큰딸이야.
전에 연회에서 만난 적 있지?”
최미영이 반가운 기색으로 소개했다.
“네, 뵌 적 있습니다.”
강시혁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다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길이 문 앞에 선 하은을 스치듯 지나갔다.
“연회에서 뵈었습니다.”
“강 사장님, 반갑습니다.”
정 씨도 예의 바르게 미소 지었다.
하은은 문 앞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박 원장을 만나러 온 목적을 들킬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자신이 모르는 사이 모든 일이 이미 정해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더 불편했다.
그때, 문 앞의 인기척을 느낀 최미영이 고개를 돌렸다.
“하은아?”
그녀의 시선이 문 앞에 멈춰 선 하은에게 꽂혔다.
“거기서 뭐 하고 있니?”
문이 열리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최미영은 열린 문 앞에 서서 두 사람을 번갈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강하은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손목은 여전히 강시혁의 손아귀에 붙들려 있었고, 두 사람의 거리는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웠다.하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버린 순간에도 한 가지 생각만은 선명했다.도망쳐야 한다.하지만 강시혁의 반응이 더 빨랐다.그는 손목을 놓는 대신 하은을 제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녀를 가슴에 바짝 붙이고 팔로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아, 자신의 등 뒤에 완전히 가렸다.동작은 유려하고 자연스러웠다. 마치 수없이 연습해 온 것처럼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어머니.”강시혁의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리는 대신 몸을 살짝 틀어 하은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마침 오셨군요.”최미영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날카로운 시선이 아들의 얼굴을 훑었다.“안에서 뭐 하는 거야? 왜 둘이 단둘이 있는 거지?”“하은이가 정원에서 손목을 다쳤습니다. 상처를 치료해 주느라 잠깐 들어와 있었습니다.”강시혁은 지극히 담담하게 대답했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태도였다.그는 고개를 살짝 숙여 품 안에 안긴 하은을 내려다보았다. 어머니 앞에서 보이는 그의 눈빛은 놀랄 만큼 다정했다.“그렇지?”강하은은 온몸이 굳었다. 목구멍에 무언가 걸린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입술을 달싹인 끝에 겨우 대답했다.“네.......”힘없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최미영의 시선이 하은의 창백한 얼굴에 잠시 머물렀다가, 강시혁이 붙잡고 있는 손목으로 옮겨갔다. 소독약을 바른 자리에는 옅은 붉은 기가 남아 있었다.“알았으니, 약까지 발랐으면 이제 나와. 최 씨 댁 아가씨가 밖에서 기다리고 계셔.”“알겠습니다.”강시혁은 대답하면서도 당장 하은을 놓아주지는 않았다.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하고, 두 사람만 들을 수 있을 만큼 낮은 목소리
“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강시혁은 찻잔을 들어 올렸다.혼담을 논의하는 그의 태도는 마치 업무를 처리하듯 담담했다.“지금 중요한 건 혼인입니다.최 씨 댁 큰딸부터 만나 보죠.”최미영은 한 번 더 따져 물으려 했지만, 강시혁이 화제를 돌리자 못마땅한 듯 코웃음을 치고는 입을 다물었다.강하은은 떡을 줍는 척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등 뒤의 셔츠는 이미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일주일 후, 성남의 고급 회원제 클럽.최미영이 주선한 첫 만남은 정원과 호수를 끼고 자리한 이곳에서 이루어졌다.구불구불한 회랑을 따라가면 물가를 마주한 별실들이 나타났다.짙은 회색 정장을 차려입은 강시혁은 자리에 앉은 뒤 줄곧 말이 없었다.맞은편에 앉은 최 씨 댁 큰딸이 파리에서의 유학 생활을 신나게 늘어놓는 동안에도 묵묵히 듣기만 했다.강하은은 회랑 모퉁이에 마련된 서빙대 옆에 서 있었다.겉으로는 오빠의 일정을 챙기는 여동생이었지만, 실상은 최미영이 첫 만남을 지켜보도록 붙여 놓은 감시역이었다.그녀는 찻잔이 놓인 쟁반을 든 채 나무 격자 사이로 안을 엿보았다.강시혁의 옆모습이 보였다.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맞은편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최 씨 댁 큰딸은 이야기에 한껏 들뜬 듯 몸을 가까이 기울이더니, 손끝으로 강시혁의 손등을 살짝 스쳤다.강시혁은 손을 피하지 않았다.그저 나른하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을 뿐이었다.강하은은 시선을 내리깔고 돌아서려 했다.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세게 잡은 건 아니었지만, 뿌리칠 틈은 없었다.그녀는 손목을 붙잡힌 채 회랑 안쪽의 작은 휴게실로 끌려갔다.문이 닫히며 가벼운 소리가 났다.“오빠.......”“앉아.”강시혁은 그녀의 손목을 놓아주고 소파 쪽으로 걸어가 앉았다.정장 소매의 단추를 풀고 왼쪽 소매를 걷어 올리자, 팔뚝 안쪽에 길게 긁힌 상처가 드러났다.상처 가장자리에는 아직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정원을 거닐다 마른 나뭇가지에 긁힌 모양이
강시혁이 라운지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접니다.” 그가 담담하게 대답했다.손에는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자료를 확인할 곳을 찾다가 안에 있던 의자가 넘어졌습니다.”최미영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안쪽을 들여다보려 했다.그러나 강시혁의 넓은 어깨가 시야를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혼자 있니?”“그럼요.”그가 손목시계를 들어 확인했다.“어머니, 연회도 열한 시면 끝납니다.저는 먼저 들어가겠습니다.”강하은은 라운지 안쪽에 몸을 숨긴 채, 하이힐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바닥에 주저앉았다.복도가 완전히 조용해지기를 기다린 뒤에야 벽을 짚고 일어섰다.그녀는 직원 전용 통로를 따라 고개를 숙인 채 2층으로 돌아갔다.그날 밤, 그녀는 오랫동안 샤워를 했다.피부가 붉어질 만큼 뜨거운 물로, 뼛속까지 무언가를 씻어 내려는 듯이.다음 날 오전, 강하은은 강시혁의 세탁물을 본관으로 가져다주었다.현관 신발장 위에 셔츠를 담은 종이봉투를 내려놓고 돌아서려던 순간, 봉투 입구에서 연분홍색 레이스 천 조각이 미끄러져 나왔다.그녀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그저께 밤, 강시혁의 방에 두고 온 것이었다.“물건 들고 거기서 뭐 하는 거야?”강시혁이 어느새 아래층으로 내려와 있었다.아침 햇살 아래, 그는 니트 홈웨어에 금테 안경을 쓴 채 블랙커피를 들고 있었다.느긋한 태도와 달리, 그에게서는 어딘가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그가 다가와 그녀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내렸다.봉투 밖으로 삐져나온 레이스 조각을 발견한 순간, 입꼬리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살짝 올라갔다.“정리하다가 떨어졌어.” 그의 목소리는 낮고 느긋했다.“하인들이 줍게 할 순 없잖아.”그가 손을 뻗었다.두 손가락으로 레이스 조각을 천천히 봉투 안으로 밀어 넣었다.그 과정에서 손끝이 그녀의 손등을 스쳤다.아주 느릿하게.“남은 건 저녁에 직접 가지러 와.”강하은은 귓불이 화끈거렸다.종이봉투를 끌어안은 채 거의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아침 햇살은 눈부시게 좋았지만
덜컥거리던 황동 손잡이가 멈췄다.강하은은 강시혁의 손에 입을 틀어막힌 채, 문짝에 못 박힌 인형처럼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블라인드 틈새로 보이는 문밖에는 최미영의 검은색 킬힐이 멈춰 서 있었다.화려한 드레스 자락이 문턱을 스쳤다.“시혁아?” 최미영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다급했다.“안에 있니?”라운지 안은 숨 막힐 듯한 적막만이 감돌았다.강하은의 귓가에 강시혁의 뜨겁고 불규칙한 숨결이 닿았다.그의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싼 채, 문과 그의 몸 사이에 그녀를 가두고 있었다.입을 틀어막고 있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그의 손끝이 턱선을 스치다 목덜미에 머물렀다.“가만히 있어.”그가 고개를 숙였다.입술이 그녀의 귓바퀴에 닿을 듯 말 듯 가까워졌다.말끝을 느릿하게 끄는 목소리에는 섬뜩한 흥미가 배어 있었다.“어머니가 갈 때까지——”“시혁아!”최미영의 목소리가 한 번 더 울렸다.이번엔 더 가까웠다.또각거리는 구두 굽 소리가 문밖을 서성였다.강시혁은 곧바로 손을 떼지 않았다.그가 낮게 웃었다.맞닿은 몸을 타고 그의 웃음이 희미하게 전해졌다.그는 느릿하게 무릎을 그녀의 두 다리 사이로 밀어 넣었다.하은이 숨을 들이켜자, 그가 그녀의 몸을 한 번 더 문짝에 짓눌렀다.“내가 나가서 열 테니까.” 그가 귓불을 스치며 속삭였다.“넌 얌전히 숨어 있어.”그가 마침내 그녀의 입에서 손을 떼고 문 쪽으로 돌아섰다.어느새 금테 안경을 다시 쓴 강시혁은 수트에 구김 하나 없이 말끔했다.철컥.문이 열렸다.강하은은 문에 등을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손가락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고개를 숙여 보니 옷매무새가 엉망이었다.드레스 자락은 허벅지 위까지 걷어 올려져 있었고, 쇄골 아래 발라 두었던 컨실러도 대부분 지워져, 푸르스름한 잇자국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허둥지둥 옷매무새를 다듬으려 했지만, 서두를수록 손이 꼬였다.드레스 등 뒤의 지퍼가 중간에 걸려 도무지 올라가지 않았다.그사이, 문 너머로 강시혁과 최미영의 대화가
K그룹 본사 최상층 연회장은 정재계 인사들의 웃음소리로 떠들썩했다.강하은은 복도 한쪽의 어둠 속에 서 있었다.다리는 아직도 어젯밤의 여운이 남은 듯 가늘게 떨렸다.쇄골 아래에는 붉은 잇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컨실러로 얼추 가렸지만, 은근한 통증은 여전했다.어젯밤, 강시혁은 술에 취해 있었다.어둠 속에서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귓가를 스쳤다. 짙은 위스키 향이 코끝을 파고들었다.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고,다른 손으로 어깨를 눌러 소파에 짓눌렀다.그녀가 몇 번이고 오빠를 불러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오히려 어깨를 깨물며 그녀를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끌어들였다.분명 술에 취해 사람을 잘못 본 거였을 것이다.강하은은 눈을 내리깔았다.열두 살 때, 자신이 강 씨 집안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양어머니 최미영은 그녀를 집에서 내쫓지는 않았다. 대신 가족카드를 모조리 회수하고, 3층의 공주 방에서 2층 구석방으로 내몰았다.그렇게 8년이 흘렀다.강하은은 얌전하고 순종적인 딸로 지내면서도 남몰래 생모의 행방을 수소문했다.강 씨 집안이 친딸을 찾아내기만 하면 이 집을 떠날 수 있으리라 믿었다.하지만 어젯밤의 일로, 조용히 이 집을 떠나려던 계획은 틀어지고 말았다.***또각또각. 구두 굽이 대리석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강하은은 반사적으로 기둥 뒤에 몸을 숨기려 했다.그러나 고개를 든 순간,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이쪽으로 다가오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강시혁이었다.그는 몸에 꼭 맞게 재단된 검은색 더블브레스트 수트를 입고 있었다.금테 안경 너머로 드러난 눈매는 깊고 차가웠다.아무도 몰랐다.K그룹의 완벽한 후계자가 불과 열여섯 시간 전, 자신의 여동생에게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마치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듯, 강시혁이 걸음을 멈췄다.그가 고개를 돌렸다.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꿰뚫는 시선이 정확히 강하은에게 꽂혔다.강하은은 황급히 몸을 돌려 복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