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콰앙-!
오페라 가르니에 그랜드 볼룸의 화려한 샹들리에 수십 개가 일제히 폭발하듯 꺼져버렸다. 칠흑 같은 암흑과 함께 최루탄 연기가 피어오르며, 수백 명의 귀족들과 사교계 명사들의 비명으로 연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테라스에서 은서를 안고 있던 시후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였다.
방금 전까지 난간에 밀착돼 있던 은서의 허벅지 안쪽이 아직 젖어 있었다. 시후는 그 감각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은서를 번쩍 안아 들었다.
“윤 실장, 2층 VIP 영빈실 방탄 도어 개방해.”
시후는 은서를 안고 어둠 속을 질주하여, 3중 방탄 처리된 2층 전용 영빈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철컥.
“여기서 문 잠그고 1초도 나오지 마라.”
“오빠, 혼자 가면 안 돼요! 밑에 무장한 놈들이……!”
은서가 창백해진
오전 9시, 펜트하우스 45층 마스터 베드룸.외부로 난 창문이 없어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방 안, 협탁의 스탠드 불빛만이 킹사이즈 침대 위를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온몸에 시후가 새겨놓은 붉은 키스마크와 나른한 열병을 안은 채 눈을 뜬 은서의 뺨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남자의 긴 팔이 은서의 가느다란 허리를 빈틈없이 감싸 안고 있었다.시후가 천천히 눈을 뜨더니, 은서의 이마와 콧날, 그리고 붉게 부어오른 입술을 깊고 달콤하게 훔쳤다.“잘 잤나, 내 아내.”은서는 그 호칭에 눈을 내렸다. 아직 식도 올리지 않았고 세상 앞에서 정리할 일도 남아 있었다. 그런데 사적인 한마디는 너무 쉽게 아침을 달라 보이게 했다.“그렇게 부르면 다 끝난 것 같잖아요.”시후가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싫은가.”“싫다는 말은 아니에요.”은서는 한참 머뭇거리다 그의 이름을 부르려 했다. 입에 익은 오빠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호칭 하나를 바꾸는 것도 이토록 어려운데, 남자가 부르는 아내라는 이름에는 얼마나 많은 일이 건너뛰어져 있는 걸까. 그녀는 다음 말을 고르느라 컵 가장자리만 만졌다.은서는 이불 끝을 잡았다. 좋은 말에 기대었다가 또 자기 마음을 설명할 기회를 놓칠까 봐 겁이 났다. 시후는 그 망설임을 피곤한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더 자도 된다고 했다.그녀가 고개를 젓자 그가 물을 건넸다. 은서는 한 모금 마시고 컵을 내려놓았다. 아침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막상 그의 얼굴을 보니 무엇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다.시후의 낮고 다정한 중저음이 은서의 가슴을 저릿하게 울렸다. 남자는 은서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려 욕실의 대형 대리석 자쿠지로 데려갔다. 따스한 온수가 채워진 욕조 속에서, 시후는 스펀지로 은서의 가녀린 어
그날 낮, 은서는 스튜디오 모니터로 주총 중계를 보았다. 화면에 잡힌 시후의 얼굴은 방 안에서 보던 것과 달랐다. 발언을 듣고 손을 들어 순서를 정할 때조차 표정이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투표가 끝나고 회장 추대가 확정되자 객석에서 사람들이 일어났다. 은서는 박수를 치려다 손을 내렸다. 방 안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실감 났다. 그의 중요한 날을 같은 건물도 아닌 화면 속에서 보고 있었다.잠시 뒤 통신기에 연락이 왔다.— 끝났다.시후의 목소리였다. 다른 사람을 거치지 않고 알려 주겠다는 말을 지켰다.“축하해요.”— 보고 있었나.“네. 넥타이 조금 돌아갔어요.”그가 화면 밖에서 넥타이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그려졌다. 짧은 침묵 뒤에 낮은 웃음이 들렸다. 은서는 그 소리가 좋아 잠시 말을 잊었다.전화를 끊고 저녁이 올 때까지 작업대 앞에 앉아 있었다. 반지를 만들고 남은 가루를 닦고, 흩어진 도구를 제자리에 놓았다. 시후의 반지가 그의 손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 자꾸 생각났다.그가 돌아오면 가까이 앉아 오늘 일을 듣고 싶었다. 그렇다고 방을 나가고 싶다는 말을 거둘 생각은 없었다. 시후가 그 둘을 같은 뜻으로 듣지 않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연습하듯 문장을 고르는데 문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은서는 고개를 들었다.***철컥- 쿵!밤 11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서경 펜트하우스 45층 ‘창문 없는 방’.서경그룹 긴급 주주총회에서 단독 회장으로 추대되며 가문과 그룹 전체를 완벽히 손아귀에 넣은 강시후가 집무실 문을 잠갔다. 중앙 콘솔의 적색 레버가 내려가며, 45층으로 향하는 모든 비상계단과 전용 엘리베이터의 영구 락다운이 발동되었다. 외부의 그 어떤 빛도, 세상의 어떤 소음도 침범할
철컥- 삐빅.스튜디오의 방탄 철문이 열리는 순간, 안에서 숨을 죽인 채 떨고 있던 은서가 튕겨 나가듯 달려 나왔다.“오빠……!”은서의 가녀린 두 팔이 시후의 피 묻은 가슴팍을 부서져라 끌어안았다. 시후의 넓은 품 안에서 사시나무 떨듯 울음을 터뜨리는 은서의 눈물방울이 남자의 찢겨진 셔츠를 적셨다.“다쳤어요……? 피가 나잖아요……!”은서가 떨리는 손으로 시후의 얼굴과 손등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오열했다. 10년 동안 자신을 옭아매던 폭군. 하지만 그 남자는 오늘 밤에도 오직 자신 하나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어둠 속에서 피비린내 나는 지옥을 홀로 건너왔다.시후가 그녀의 얼굴에 눌린 보호구 자국을 닦아 줬다. 은서는 그가 움직일 때마다 셔츠에 번진 피를 봤다. 누구의 피인지, 얼마나 다쳤는지 묻고 싶었지만 같은 말만 나왔다.“돌아와서 말하라고 했잖아요.”“돌아왔다.”짧은 대답이 끝나도 은서는 손을 놓지 않았다. 문밖에서 들리던 소리가 아직 몸 안에 남아 있었다. 눈앞에 선 사람을 만지고 있는데도 조금 전의 기다림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려웠다.그가 대답했는데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잠긴 문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은서는 그의 손을 잡아 제 뺨에 댔다. 차가운 손바닥이 조금씩 따뜻해졌다.윤 실장이 의료진을 들여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은서는 들어오시라고 곧바로 답했다. 시후는 됐다고 하려다가 그녀의 눈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간단한 확인이 끝날 때까지 은서는 옆에 앉아 있었다.“저 때문이에요?”갑자기 튀어나온 질문에 시후가 고개를 돌렸다.“뭐가.&r
보고가 끝나자 시후는 은서를 침대에서 일으켰다.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 입히고 실내화를 밀어 주었다. 손놀림이 급했지만 그녀가 균형을 잡을 때까지 팔을 놓지 않았다.은서는 벽의 표시등을 봤다. 조금 전까지 나가지 못하게 하던 문이 이번에는 밖의 위험 때문에 열리지 않았다. 이유가 바뀌었는데도 갇혀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였다.“윤 실장님은 어디 계세요?”“밖의 제어실을 확인 중이다.”“문을 못 열면 어떻게 해요?”시후는 대답 대신 비상 통신기를 그녀에게 쥐여 줬다. 설명서를 펼쳐 보여 주는 손끝이 굳어 있었다. 은서는 두 번 누를 필요 없이 한 번이면 된다는 설명을 듣고 버튼의 위치를 익혔다.천장 쪽에서 낯선 소리가 났다. 시후의 시선이 즉시 올라갔다. 은서는 그보다 먼저 책상에서 손을 떼고 물러났다. 파리에서 눈을 감기 직전에 들었던 공기 소리가 떠올랐다.치이익-!새벽 2시 30분, 펜트하우스 45층 천장 매립형 공조 배관에서 백색 신경 마취 가스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삐이이익-!적색 비상등이 점멸하며 45층 전체의 중앙 전력이 차단되었다. 시후는 지체 없이 협탁 아래 비치된 비상용 호흡 보호구를 은서의 얼굴에 밀착시켰다.“오빠……”“아무 소리도 내지 마라.”시후가 은서의 가녀린 몸을 번쩍 안아 올려, 안쪽 완전 밀폐형 방탄 스튜디오로 밀어 넣었다.철컥-!육중한 삼중 빗장을 걸어 잠근 시후가 마이크를 통해 나직하게 속삭였다.— 내가 문을 열 때까지 절대 나오지 마라.— 제 말 들려요?은서는 통신기의 버튼을 눌렀다. 문밖에서 응답이 바로 돌아왔다.
감금 사흘째, 펜트하우스 45층 ‘창문 없는 방’.식사가 들어오는 횟수로 하루를 셌다. 처음에는 문이 열릴 때마다 밖을 보았지만 곧 그만뒀다. 트레이를 든 사람 뒤로 늘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아틀리에 소식은 인쇄된 보고서로만 들어왔다. 은서가 질문을 적어 내보내면 몇 시간 뒤 답이 돌아왔다. 직원의 목소리를 한 번 듣는 데 필요한 일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첫날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둘째 날에는 손이 굳는 것 같아 도구를 꺼냈다. 마음이 편해서 작업하는 것은 아니었다. 원석을 쥐고 단면을 살피는 동안만큼은 시후의 표정 대신 자신이 보아야 할 것을 볼 수 있었다.남자의 반지를 만들기로 한 것은 그가 잠든 손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자기 마음대로 만들고 싶은 물건이 떠올랐다. 크기는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장식의 모양을 정하는 데 오래 걸렸다.얇은 고리를 여러 개 이어 붙인 스케치를 그렸다가 지웠다. 끊어질 것처럼 약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서로 맞물린 부분이 무게를 나누도록 다시 그렸다. 그가 그 차이를 알아볼지는 몰랐다.한은서의 ‘EUN’이 밀라노 비엔날레 대상을 석권했다는 뉴스가 연일 나갔다. 은서는 그 소식을 보고서로 받았다. 축하하는 사람들의 표정도 목소리도 이 방까지 오지는 않았다. 은서는 촛불 조명 아래, 프라이빗 스튜디오의 세공 작업대 앞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녀의 섬세한 손가락 끝에서 마터호른 에메랄드 원석이 깎여나가며, 쇠사슬을 형상화한 백금 밴드 중앙에 박힌 매혹적인 반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영원한 족쇄(Eternal Shackle).’벅, 벅.묵직한 구두 소리가 함께 문이 열리고, 시후가 최고급 프렌치 만찬 트레이와 와인을 들고 들어왔다. 단추를 세 개 풀어헤친 블랙 실크 셔츠 사이로 조각 같은 가슴 근육이 드러나
철컥- 삐빅.오전 7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서경 펜트하우스 45층.이탈리아 코모 호수에서 날아온 전용기가 인천공항에 닿자, 시후는 대기 차량으로 은서를 한남동에 데려왔다. 그는 은서를 안아 올려 45층 ‘창문 없는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육중한 삼중 티타늄 방음 도어가 닫히며 붉은색 전자 잠금장치가 차갑게 맞물렸다.외부의 햇빛도, 세상의 어떤 소음도 닿지 않는 짙은 암흑과 정적. 시후는 집무실 책상 위에 은서의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올려두더니, 전원을 끄고 서랍 깊숙이 넣어 잠갔다.은서는 처음에는 휴식을 시키려는 줄 알았다. 비행 내내 시후는 착륙하면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자라고 했다. 그 말대로 짐을 풀기도 전에 끌려 들어왔지만, 잠깐만 쉬고 나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전화기까지 가져갔다. 아틀리에에 무사히 돌아왔다고 알릴 수 있게 잠깐 달라고 했을 때도 시후는 들은 척하지 않았다. 노트북이 서랍에 들어가고 열쇠가 돌아가는 순간, 은서는 침대에서 일어났다.“직원들이 기다려요. 아직 연락도 못 했어요.”“내가 전했다.”“제가 직접 말해야죠.”은서가 손을 내밀자 시후는 열쇠를 지닌 채 서랍 앞에서 비켜섰다. 그녀가 책상 쪽으로 움직이려 하자 그가 돌아서서 앞을 막았다.은서는 방 안을 다시 봤다. 작업대에는 새 확대경과 원석이 놓여 있었다. 전용기에 오르기 전부터 누군가 이곳을 준비했을 것이다. 코모 호수에서 나온 그날부터, 시후는 자신을 다시 밖으로 내보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오빠, 지금 뭐 하는 거예요?”은서는 다가오는 시후를 바라봤다.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는 동안에도 그의 눈은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코모 호수에서 데려온 뒤 줄곧 저런 얼굴이었다. 잠깐 한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