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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조수현

Autor: 6jay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09-16 08:02:49

새벽 5시, 성북동 대저택 지하 종합상황실.

전면 벽면을 채운 모니터에 해경 레이더망의 붉은색 침투 궤적이 선명하게 점멸했다.

[충남 서산 대산항 인근 갯벌: 무등록 목선 접안 확인. 탈옥범 조수현 및 무장 괴한 6명 상륙 후 서울 방면 고속 이동 중.]

화면을 보던 시후의 눈길이 서울 방면으로 이어진 궤적에 멎었다. 상황실 직원들도 그가 다음 지시를 내리기를 기다렸다.

“윤 실장. 성북동 전 구역에 코드 블랙 발령해.”

시후의 낮고 엄중한 명령이 떨어졌다.

“특수 경호팀 50명 전원 실탄 무장 배치하고, 외곽 전기 철조망 전압 최대로 올려라. 단 한 마리의 쥐새끼도 살아서 정원을 밟지 못하게 해.”

윤 실장은 저택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확인했다. 주방과 숙소에 있던 직원들이 차례로 안전한 쪽으로 옮겨졌다. 은서는 화면 한쪽에서 자신에게 코트를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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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빠의 방에는 창문이 없다   제54화. 숙청

    밤 10시, 서울 성북동 서경그룹 본가 대저택.현관에 들어선 은서는 습관처럼 안쪽 계단을 먼저 봤다. 조수현이 사람을 세워 놓고 기다리던 자리였다. 오늘은 사용인 한 명이 코트를 받으러 나왔을 뿐이었다.“따뜻한 것 좀 드시겠습니까?”은서는 대답이 늦었다. 무엇을 잘못했느냐는 말보다 차를 마시겠느냐는 말을 먼저 듣는 건 이 집에서 낯선 일이었다. 신발을 벗으며 괜찮다고 했다가 다시 돌아봤다.“아니요. 부탁드릴게요.”사용인은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곧바로 차를 가지러 갔다. 은서는 빈손을 무릎에 얹었다. 이 집에서 자신의 대답만 듣고 움직이는 뒷모습을 오래 따라봤다. 찻잔이 나오기까지 꽤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컵을 든 채 앉은 소파 옆에는 장식장이 비어 있었다. 조수현이 자기 취향으로 골랐던 도자기들이 치워진 자리였다. 어머니가 쓰던 물건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 사실 때문에 홀가분하기만 하지는 않았다.시후는 병원에서 온 연락을 복도에서 받았다. 은서는 멀리서 그의 등을 봤다. 회의장에서는 아버지에게 한마디도 지지 않던 남자가, 막상 의식 상태를 묻는 목소리는 낮았다.통화를 마치고 돌아오자 은서가 먼저 물었다.“당장 위독하신 건 아니죠?”“검사를 더 받는다.”“다행이에요.”그 말이 강문혁을 용서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시후도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않은 듯했다. 컵을 내려놓는 은서의 손을 잠깐 감쌌다가 거뒀다.“피곤하면 먼저 올라가.”“조금만 여기 앉아 있다가요.”어린 날에는 허락 없이 앉지 못하던 자리였다. 은서는 등을 소파에 붙였다. 시후는 재촉하지 않고 옆에 앉았다. 침묵이 길어져도 누군

  • 오빠의 방에는 창문이 없다   제53화. 주총

    인터폰의 잡음 너머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시후가 몸을 일으켜 스피커 음량을 높였다. 은서도 침대에 기대앉았다. 윤 실장이 서울의 회의 소집 공문을 막 확인했다고 했다.“시간부터 말해.”시후가 협탁의 시계를 보며 물었다. 통화 화면에는 제네바와 서울 시각이 나란히 떠 있었다.— 부사장님! 서울의 강문혁 명예회장이 태강그룹 잔존 이사들과 결탁하여, 내일 오전 긴급 임시주총을 열고 부사장님의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및 은서 팀장의 상속권 박탈 쿠데타를 상정했습니다!“서울 시간 내일 오전 9시입니다. 기존 위임장에 이의를 제기하며 참석자들을 다시 모으고 있습니다.”시후는 비행 시간을 계산하고 곧바로 출발 준비를 시켰다. 은서는 그가 통화를 마치기 전에 카일에게 연락했다. 잠이 덜 깬 목소리가 들렸지만 사정을 듣자 바로 짧아졌다.“개인 신탁 자산에 관한 확인서와 주식 취득 내역이 필요해요.”“매입을 위임하신 물량은 결제가 끝났습니다. 담당자가 원본 대조까지 해 드리지요.”광산 인수와 함께 준비했던 지분 매입이었다. 은서는 추가 취득한 보통주 5%를 기존의 의결권 있는 우선주 10%와 나란히 적었다. 자기 몫은 합계 15%. 누구에게 잠시 빌린 의결권인지, 실제 소유한 주식인지부터 분리했다.시후가 그 메모를 내려다봤다.“내가 처리해도 된다.”“제 재산을 빼앗겠다는 말이에요. 저도 같이 설명할게요.”은서는 날짜가 다른 두 확인서를 위아래로 나눠 넣었다. 펼쳤을 때 어떤 취득이 먼저였는지 보이도록 했다. 남이 정리한 순서보다 자신이 설명할 순서로 챙겨야 덜 떨릴 것 같았다.이번에는 그가 서류를 가져가지 않았다. 빈 가방을 열어 은서 앞에 놓았다

  • 오빠의 방에는 창문이 없다   제52화. 날개

    밤 11시, 스위스 제네바 레만 호숫가 프라이빗 펜트하우스 마스터 스위트.천장부터 바닥까지 이어진 전면 통유리창 너머로, 조명을 받아 에메랄드빛으로 솟구치는 제네바 분수와 호수의 야경이 환상적으로 펼쳐져 있었다. 은서는 순백의 실크 로브를 가볍게 걸친 채 와인 잔을 쥐고 창가에 서 있었다. 1,200억 원대 광산 지분의 단독 주인이 되어 서경의 족쇄 없이도 스스로 우뚝 선 여자의 뒤태는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시고 고혹적이었다.아래쪽 산책로로 사람들이 지나갔다. 목도리를 두른 여자가 걸음을 늦추자 옆의 남자도 멈췄다. 무슨 말을 나눴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뒤 둘은 각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은서는 유리창에 비친 제 모습을 봤다. 주머니 속 어머니의 편지는 저녁 식사 뒤 금고에 옮겨 놓았다. 복사본을 만드는 동안에도 문장을 외우듯 읽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라는 대목에서 자꾸 손이 멎었다.오늘 오후에는 광산 관리인과 첫 통화를 했다. 통역을 사이에 두고 같은 말을 두 번씩 주고받느라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전화를 끊자 서경 직원이 아니라 한은서를 찾는 연락이 또 들어왔다.광산을 얻은 것이 기뻤다가도 앞으로 맡을 일이 겁났다. 시후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 그런데 광산에서 돌아온 뒤로 그는 줄곧 입을 다물고 있었다. 먼저 말을 걸려 할 때마다 목 안이 막혔다.식탁에 놓인 그의 접시는 거의 비지 않았다. 은서가 내일 일정을 묻자 그는 윤 실장에게 물으라는 말만 했다. 평소라면 먼저 가져갔을 서류 가방도 건드리지 않았다.시후가 자신을 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늘 감시하는 듯한 시선이 갑자기 사라졌는데도 편하지 않았다. 은서는 잔을 내려놓으려다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벅, 벅.묵직한 카펫을 밟는 발소리와 함께, 서늘한 시더우드 향이 은서의 숨결을 덮쳐왔다.시후의 큰 손이 은서의 가느다란

  • 오빠의 방에는 창문이 없다   제51화. 광산

    해발 3,200m, 알프스 마터호른 북벽 깊숙한 빙하 동굴.카일 폰 로젠버그 백작이 이끄는 스위스 연방 탐사팀의 고출력 제논 탐조등이 동굴 내부를 비추는 순간, 동굴 안의 모든 이들이 숨을 들이켰다. 수천 년간 얼어붙어 있던 영구 동토의 암벽 틈새로, 탐조등을 따라 초록빛이 길게 번졌다. 바위가 꺾인 안쪽에도 같은 빛이 이어져 있었다. 수만 캐럿 규모로 추정되는 최상급 알프스산 천연 에메랄드 원석 암맥이었다.“세상에…… 이건 신이 빚어낸 기적입니다.”은서는 안전모 아래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겼다. 반짝이는 벽을 바로 만지려던 손을 거두고 탐사 책임자를 돌아봤다.“어머니가 조사한 구역부터 보여 주세요.”말이 동굴 벽에 닿아 되돌아왔다. 은서는 자기 목소리에 놀랐다가 도면 앞으로 다가섰다. 어머니가 이곳에서 어떤 판단을 했는지, 오늘은 그 흔적을 따라가 볼 수 있었다.책임자가 펼친 도면에는 오래된 필체와 최근 측량선이 겹쳐 있었다. 어머니는 빛이 강한 곳보다 갈라짐이 많은 암벽에 표시를 남겨 두었다. 무리해서 캐내지 말라는 짧은 메모도 있었다.은서는 사진을 확대했다. 세공할 돌 하나를 아끼던 어머니가 산속에서도 같은 고민을 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재산 목록으로 읽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사람의 흔적이었다.“이 구역은 얼마나 손댔나요?”“소규모 조사만 했습니다. 본격적인 채굴은 소유권 정리 뒤로 미뤘고요.”“그럼 먼저 안전 상태와 기존 작업자 명단을 받고 싶어요. 생산량은 그다음에 논의할게요.”카일이 통역에게 말을 전하는 동안 시후는 조금 떨어져 서 있었다. 은서는 그에게 설명을 대신해 달라고 하지 않았다. 알아듣지 못한 용어는 다시 물었고, 답을 들은 뒤에야 도면의

  • 오빠의 방에는 창문이 없다   제50화. 산장

    쾅-!산장의 묵직한 오크나무 문이 닫히고, 빗장이 걸렸다.쿠구구구궁-!수백 톤의 눈이 협곡으로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문짝까지 울렸다. 한참 뒤 굉음이 잦아들었다. 은서는 귀를 기울였지만 문 너머에서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해발 3,200m, 알프스의 눈보라 속에 고립된 외딴 목조 산장(Refuge).바깥으로 통하는 길은 수 미터의 눈 아래 파묻혀 있었다. 위성 통신도 연결되지 않았다. 닫힌 문 안에서 두 사람은 서로가 내는 소리에만 의지해야 했다.은서는 문 안쪽 바닥에 주저앉았다. 귀가 먹먹했다. 밖의 굉음이 멎은 뒤에도 머릿속에서는 계속 같은 소리가 울렸다.시후가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고 손가락을 펴 보라고 했다. 은서는 장갑을 벗으려다 실패했다. 그가 도와주자 손끝이 얼얼하게 드러났다.“윤 실장님은요?”“다른 대피로로 빠진다는 연락을 받았다.”“확실해요?”“마지막 교신은 그랬어. 연결되면 다시 확인한다.”시후도 확답하지 못했다. 은서는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려다 말았다. 두 사람의 호흡이 하얗게 보였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려다 무릎에 힘이 풀려 다시 앉았다.산장에는 비상 물품이 든 장과 난로가 있었다. 시후가 담요를 꺼내 곁에 뒀다. 은서는 그가 움직이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머니의 광산에 왔다는 사실은 멀어지고, 오늘 밤을 어떻게 버틸지가 더 가까워졌다.손에 쥐고 있던 가방은 차에 남겨뒀다. 은서는 빈 무릎을 내려다보다가 시후의 얼굴을 봤다. 그도 가방에 대해 묻지 않았다. 지금 잃어버린 물건을 세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함께 알고 있었다.“하…… 읏, 추워요…….”

  • 오빠의 방에는 창문이 없다   제49화. 눈사태

    쿠구구궁-!해발 3,000m, 알프스 마터호른으로 향하는 산악 협곡 도로.출발 전부터 일정은 몇 번 바뀌었다. 시후는 위험 구간 확인이 끝날 때까지 광산 쪽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은서는 차 안에서 서류를 덮었다. 종이로 확인한 권리를 실제 장소에서 확인하려던 길이었다.눈이 굵어지면서 창밖의 형태가 흐려졌다. 윤 실장이 속도를 낮췄다. 터널에 진입하기 전 대기 지점에서 현지 팀의 확인을 받을 예정이었다.“오늘 못 가면 돌아와도 돼요.”은서가 말했다. 시후가 그녀를 봤다.“금고는 거기 있잖아요. 날짜 때문에 무리할 필요는 없어요.”시후는 짧게 알겠다고 했다. 은서는 그 말이 마음에 놓였다. 무조건 가겠다고 우기지 않은 것도, 자신이 겁먹었다고 비웃지 않은 것도 다행이었다.차가 굽이를 돌자 협곡 아래가 보였다. 은서는 저도 모르게 손잡이를 잡았다. 시후가 손을 내밀었고, 그녀는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았다. 창밖이 낯설어도 차 안의 손은 익숙했다.윤 실장이 앞쪽 차량과 연락했다. 확인 지점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 들렸다. 은서는 보온병의 뚜껑을 닫고 가방에 넣었다. 손가락을 장갑 안으로 밀어 넣을 때 작은 경보음이 들렸다.칼바람과 함께 백색 눈보라가 시야를 가로막는 가운데, 시후와 은서가 탑승한 특수 방탄 SUV 행렬이 얼어붙은 절벽 도로를 간격을 두고 움직이고 있었다. 차 안에서 은서의 차가운 손을 쥐고 있던 시후의 미간이 일순간 굳어졌다.삐이이익-!차량 전방 하부의 금속 탐지 레이더가 적색 경보음을 울렸다.“급제동!”끼이이익-!운전석의 윤태준 실장이 핸들을 꺾으며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50m 앞 터널 입구의 도로 아스팔트가 화염과 함께 솟구쳐 올랐다.콰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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