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서아는 태준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십 년 동안 오빠 곁에서 묵묵히 자신을 챙기던 강태준과 지금의 남자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나 지금 감금한 거예요?”
태준은 커프스링크를 풀며 소파 쪽으로 걸어갔다.
“네가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뭐라고요?”
“단어는 중요하지 않아. 도현이가 돌아올 때까지 넌 내 시야 밖으로 못 나가.”
“미쳤어. 당신 정말 미쳤어.”
서아가 휴대전화를 꺼내 112를 누르려 했지만 통화 연결 표시는 뜨지 않았다. 저택 안에서 개인 회선이 차단된 듯했다.
태준이 다가와 휴대전화를 가져갔다. 억지로 비트는 동작조차 없었다. 서아가 쥔 힘이 빠지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손에서 빼냈을 뿐이었다.
“돌려줘요.”
“안 돼.”
“소리 지르면 사람들이 들을 거예요.”
“여긴 담 밖까지 거리가 멀어. 네가 목만 상해.”
태준은 손끝으로 서아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힘을 주지는 않았지만 시선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기운 빼지 마. 난 너한테 화내고 싶지 않아.”
“이미 충분히 화내고 있잖아요. 소리만 안 지르면 폭력이 아닌 줄 알아요?”
태준의 눈매가 아주 조금 굳었다.
“네가 다치지 않는 방식으로 막고 있는 거야.”
“막는다는 말부터 잘못됐어요. 난 당신 허락을 받아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니까.”
태준은 한동안 서아를 바라보다 휴대전화를 안주머니에 넣었다.
“저녁은 방으로 올려 보낼게. 배는 곯지 마.”
그는 뺨을 한번 쓸어내리고 서재로 올라갔다.
잠시 뒤 고용인이 토마토 비프 스튜와 따뜻한 빵을 방으로 가져왔다. 서아는 손도 대지 않았다. 대신 창문과 욕실 환기구, 연결된 드레스룸까지 살폈다. 통창은 두꺼운 강화유리였고, 테라스 문은 제어 패널 없이는 열리지 않았다.
복도에서 마주친 고용인에게 조용히 도움을 청해 보기도 했다. 중년의 여자는 미안한 얼굴로 고개만 저었다.
“저희 가족이 태강 쪽에서 일합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태준은 이 집의 문뿐 아니라 사람들의 사정까지 잠가 둔 셈이었다.
서아는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았다. 두려움보다 먼저 분노가 치밀었다.
저 남자의 손에 얌전히 붙들려 있을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직접 밖으로 나가 오빠를 찾아야 했다.
방으로 돌아온 서아는 저택 안의 소리를 세었다. 자정 무렵 고용인들이 숙소동으로 이동했고, 한 시에는 경호원 둘이 정문 쪽으로 교대했다. 주방에서는 새벽 배송을 준비하는 조리사가 두 시 반쯤 불을 껐다.
낮에 지나치며 본 비상문이 떠올랐다. 전자식이 아니라 안쪽 수동 빗장으로 잠그는 문이었다.
새벽 세 시.
저택의 조명이 대부분 꺼지고 복도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서아는 낮에 봐 둔 주방 뒤편 식자재 반입구로 조심스럽게 향했다.
조리사들이 아침 배송에 대비해 수동 빗장을 끝까지 채우지 않는 작은 철문이었다.
서아는 신발을 손에 든 채 틈으로 빠져나왔다.
찬 공기가 맨발을 찔렀다. 서아는 정원의 나무 그림자를 따라 숨을 죽이고 달렸다. 멀리 거대한 철문과 보행자용 출입구가 보였다.
조금만 더 가면 됐다.
보행자용 출입구 옆에는 외부 호출 버튼과 수동 개폐 레버가 있었다. 서아는 손에 든 신발을 내려놓고 레버를 잡았다. 차갑게 식은 금속이 손바닥에 닿았다.
레버를 내리려는 순간, 강한 전조등이 켜졌다.
눈부신 빛이 정문 앞을 환하게 밝혔다.
철문 바깥에 검은 세단이 비스듬히 서 있었다. 보닛에 기대 있던 남자가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구두 끝으로 껐다.
강태준이었다.
그의 손에는 서아의 코트와 양말이 들려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서아가 이곳까지 오기를 처음부터 기다린 듯했다.
서아는 레버를 더 세게 잡아당겼다. 잠금 장치가 안쪽에서 버티며 금속음만 냈다. 태준은 휴대전화 화면을 한 번 누르더니 보행자 출입구의 이중 잠금 표시를 보여 주었다. 수동 레버조차 중앙 시스템에 묶여 있었다.
“문 열어.”
“열어 주면 어디로 갈 건데?”
“그건 내가 정해요.”
“아니. 지금은 내가 정해.”
그는 서두르지 않고 철문 앞으로 다가왔다. 시선이 흙투성이가 된 서아의 발에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천천히 올라왔다.
“어디 가려고 했어, 서아야?”
“경찰서든 오빠 집이든, 당신 없는 곳이면 어디든.”
태준의 눈빛이 잠깐 굳었다. 그는 철문 너머로 코트를 내밀었다.
“일단 입어. 화낼 힘도 남아 있어야 하니까.”
서아는 받지 않았다.
서아는 철문 손잡이를 붙든 채 움직이지 못했다. 출입구는 눈앞에 있었지만, 처음부터 열릴 가능성은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태준은 열린 문 앞에 서서도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예전이라면 비밀번호를 알아냈을 것이다. 문이 잠겨 있어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열었을 남자였다.지금은 서아의 허락을 기다리고 있었다.“들어와요.”말을 듣고도 그는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왜 부른 건지 먼저 말해.”“내가 또 거절할까 봐 무서워요?”태준은 잠시 침묵했다.“응.”솔직한 대답에 서아는 문을 조금 더 열었다.“돌려받을 물건은 당신이에요.”태준의 눈이 흔들렸다. 손에 들고 있던 작은 봉투가 구겨졌다.“이건 뭐예요?”“저택과 비밀방 열쇠. 네 자료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는 장소의 출입 권한도 전부 정리해 왔어. 네가 직접 확인하고 싶으면 확인해.”태준은 봉투를 문 안쪽 바닥에 내려놓았다. 허락 없이 서아의 손에 쥐여 주지도 않았다.서아는 그가 오해하기 전에 말을 이었다.“용서했다는 뜻은 아니에요. 당신이 한 일을 사랑이라고 예쁘게 포장할 생각도 없고요.”“알아.”“그래도 내 마음이 당신한테 가는 걸 부정하지 않기로 했어요.”“그 마음이 죄책감이면 받아들이지 않을게.”“오빠를 구해 준 빚 때문에 부른 거 아니에요. 한 달 동안 당신과 완전히 떨어져 지내 봤는데도 계속 생각났어요. 그래서 부른 거예요.”태준의 굳은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서아는 두 사람 사이의 문턱을 내려다보았다.“대신 조건이 있어요.”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내 휴대전화에 손대지 않기. 위치 추적하지 않기. 내 친구와 직장에 개입하지 않기. 어디를 가든 허락을 요구하지 않기.”서아는 한 항목씩 또렷하게 말했다.“내가 싫다고 하면 멈추고, 나가라고 하면 나가요. 화가 나도 사람을 건드리지 말고, 불안하면 감시하지 말고 나한테 말해요. 다시 한 번 문을 잠그면 그때는 정말 끝이에요.”태준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었다.“전부 지킬게.”서아는 곧바로 믿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지난 십 년은 약속 한마디로 지워질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앞으로의 행동으로 증명해야 할 일이었다.“자신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문이 열리자 서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도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수척해졌지만 분명 살아 있는 얼굴이었다.“서아야!”“오빠!”서아는 가방을 떨어뜨리고 달려갔다. 도현의 품에 안기는 순간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도현은 여동생의 등을 쓸어내리며 연신 미안하다고 말했다. 서아의 목에 남은 가느다란 상처와 야윈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의 표정이 무너졌다.“혼자 두고 사라져서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살아 있으면 됐어. 돌아왔으면 됐어.”공항 근처 카페에서 도현은 그동안의 일을 설명했다. 태준이 비자금 조직의 눈을 돌리고, 안전가옥과 도피 경로를 마련하고, 마지막에는 승계권까지 포기했다는 이야기였다.서아도 저택에서 있었던 일을 숨기지 않았다. 위치 추적과 두 번의 탈출, 비밀방에 있던 십 년의 기록까지 모두 말했다.도현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 자식이 널 그렇게 보고 있었다는 걸 전혀 몰랐어.”“오빠가 부탁했잖아. 나를 지켜 달라고.”“지키라는 말이 가두라는 뜻은 아니었어.”도현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태준이가 내 목숨을 살린 건 사실이야. 그래도 네가 그 빚까지 대신 갚을 필요는 없어. 네 마음이 아니면 돌아가지 마.”서아는 오빠의 말을 들으면서도 태준의 잘못을 지우지 않았다.그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것과, 자신에게서 선택권을 빼앗은 것은 동시에 존재하는 사실이었다.도현은 귀국한 날 오후 태준의 병실을 찾았다.문이 닫힌 뒤 둔탁한 소리가 한 번 들렸다.“내 동생을 십 년이나 감시해 놓고 친구라고 할 수 있어?”도현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복도까지 새어 나왔다.태준은 변명하지 않았다.“미안하다.”“서아가 용서하지 않으면 다시는 앞에 나타나지 마.”“그래.”“네가 구해 준 내 목숨 때문에 서아가 흔들리게 만들지도 말고.”“그럴 생각 없어.”“다시 한 번 몰래 따라붙는 순간, 친구고 뭐고 끝이야.”“이미 끝나도 할 말 없다.”잠시 뒤 도현이 병실에서 나왔다. 굳은 주먹 관절이
수술은 세 시간 넘게 이어졌다.지훈과 태준의 비서가 병원으로 달려왔다. 비서는 수술실 앞에서도 검찰과 통화를 이어 갔다. 태준이 납치 조직의 차량을 확인한 직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비자금 자료를 즉시 제출하라고 미리 지시했다는 설명이었다.“부사장님은 오늘 밤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까지 생각하고 움직이셨습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서아의 손이 더 세게 떨렸다.서아는 응급실 앞 의자에 앉아 피로 얼룩진 손을 내려다보았다. 몇 번을 씻어도 손톱 사이에 붉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의사는 칼이 장기를 비켜 갔고 출혈도 잡혔다고 설명했다. 왼팔 신경에도 큰 손상은 없지만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말을 들은 뒤에야 굳어 있던 숨이 풀렸다.서아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밤새 뻣뻣하게 굳어 있던 어깨가 떨리며 내려앉았다. 안도한 순간 오히려 눈물이 더 거세게 쏟아졌다. 지훈이 말없이 휴지를 건넸다. 서아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 들었다.지훈은 서아 옆에 앉아 한참 말없이 기다렸다.“그 사람이 널 구한 것과, 너한테 한 일이 없어지는 건 별개야.”“알아요.”“그러니까 죄책감 때문에 결정하지 마.”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느끼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엔 너무 많은 것이 뒤엉켜 있었다.태준은 다음 날 오후에 의식을 찾았다.서아가 병실에 들어서자 그가 먼저 물었다.“넌 괜찮아?”“왜 또 내 걱정부터 해요?”서아는 침대 옆에 서서 울음을 참았다.“날 가두고 망가뜨린 나쁜 사람이면 끝까지 나빠야지. 왜 나 때문에 칼까지 맞아요?”태준은 힘없이 웃었다.“널 지키는 것 말고는 제대로 해 본 게 없어서.”“그 방식이 잘못됐잖아요.”“알아.”이번에는 변명하지 않았다.그가 협탁 위 서류철을 가리켰다.“비자금 장부 원본이야. 페이퍼컴퍼니 실소유주 명단과 회장 측 비선 조직 자료까지 전부 검찰에 넘겼어. 내 명의로 보유한 의결권도 동결했고, 전략총괄 부사장 사임서도 제출했어.”서아는 서류철을 바라보았다.그 자료가
오피스텔로 돌아온 뒤 사흘이 지났다.서아는 다시 출근했고, 밀린 원고를 정리하고, 퇴근길에는 혼자 지하철을 탔다. 아무도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회사로 돌아온 첫날, 지훈은 말없이 따뜻한 커피를 건넸다. 직위 해제는 취소됐고 중단됐던 프로젝트도 재개됐지만, 눈 밑에는 며칠간의 피로가 남아 있었다.“선배, 미안해요.”“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야.”“나 때문에 회사까지…….”“강태준이 한 일을 네 책임으로 돌리지 마.”지훈은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경찰에 신고할 생각은 없어?”서아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오빠의 안전과 비자금 사건이 정리되기 전에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도 아직 무슨 선택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휴대전화에서 위치 추적 프로그램은 사라져 있었다. 서아는 새 비밀번호를 설정하고 오피스텔 도어록도 교체했다. 밤마다 창문과 현관을 두 번씩 확인했지만, 낯선 차량이나 경호원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강태준에게서는 전화도 메시지도 오지 않았다.그토록 원했던 자유였다.그런데 일상 곳곳에 빈자리가 느껴졌다. 사옥 앞 검은 세단도, 귀가했는지 확인하는 짧은 연락도 없었다. 십 년 동안 모르는 사이 스며든 존재가 한순간에 빠져나가자 익숙했던 풍경까지 낯설었다.서아는 그 감정을 그리움이라고 부르지 않았다.감금에서 벗어난 뒤 찾아오는 혼란일 뿐이라고 생각했다.사흘째 밤, 야근을 마치고 오피스텔 복도로 들어섰다.고장 난 센서등이 두 번 깜빡였다. 비상계단 문 옆에 낯선 남자 둘이 서 있었다.서아가 뒤돌아서는 순간 한 명이 입을 막았고, 다른 한 명이 팔을 등 뒤로 꺾었다. 휴대전화가 바닥에 떨어져 화면이 깨졌다.“장부 어디 있어.”귓가에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윤도현이 넘긴 원본 위치만 말하면 살려 줄게.”오빠를 노리던 사람들이었다.“가만있어.”코끝에 독한 약품 냄새가 닿았다.서아는 가방을 휘두르고 난간을 붙잡았다. 발뒤꿈치로 남자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입을 막은 손이 더 세게 눌렸다
다음 날 아침, 서아는 작은 여행 가방에 자신의 물건을 담았다.많은 것은 필요 없었다. 이 저택에 있던 옷과 화장품 대부분은 태준이 준비한 것이었다. 자신의 휴대전화와 지갑, 처음 입고 왔던 옷만 챙겼다.드레스룸에 걸린 연보라색 원피스 앞에서 잠시 손이 멈췄다. 태준을 속이기 위해 골랐던 옷이었다. 그날의 입맞춤과 그가 멈춰 섰던 순간이 떠올랐지만, 서아는 끝내 옷을 두고 문을 닫았다.침대 옆에는 태준이 다시 돌려준 휴대전화가 놓여 있었다. 위치 추적 프로그램은 삭제돼 있었고, 보안 업체의 원격 접근 권한도 모두 해제돼 있었다. 그래도 서아는 전원을 끄고 가방에 넣었다.가방을 끌고 1층으로 내려가자 고용인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누구도 서아를 막지는 않았지만, 모두 태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태준은 거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넥타이도 매지 않은 채 셔츠 소매만 걷어 올린 모습이었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얼굴이었다.“어디 가려고.”“내 집이요.”“안 된다고 했어.”“어젯밤에는 내일 다시 물으라고 했잖아요.”“밤새 생각해도 위험해.”“대신 안전한 곳을 정해 주겠다는 말도 하지 마요. 호텔도, 다른 집도 싫어요. 내 집으로 갈 거예요.”“경호만 붙이게 해.”“싫어요.”“당신한테 허락받으려고 내려온 거 아니에요.”서아는 현관 쪽으로 걸었다. 문은 여전히 잠겨 있었다. 손잡이를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열어요.”태준이 다가왔다. 서아는 손잡이를 붙든 채 그를 돌아보았다.“당신 곁에 있으면 난 내가 아닌 사람이 돼요.”목소리는 이상할 만큼 차분했다.“매일 의심하고, 도망칠 방법만 생각하고, 살아남으려고 당신이 원하는 척까지 했어요. 더 여기 있으면 정말 망가질 것 같아요.”태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서아는 울지 않았다. 분노도 남아 있지 않은 사람처럼 지쳐 있었다.“당신이 좋아한 게 웃고 살아 있는 윤서아라면, 이대로 두지 마요.”“밖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내가 도움을 요청할게요. 그때 와요.”“네가
서아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 천천히 일어섰다.다리에 힘이 풀려 책상을 짚어야 했지만, 태준에게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오빠를 살려준 건 고마워요.”목소리가 잠겼다.“사고를 위장해서 빼돌리고, 안전가옥까지 준비해 준 것도 들었어요. 당신이 아니었으면 오빠가 죽었을 거라는 것도 알아요.”태준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내가 오빠를 죽였다고 몰아세운 건 잘못했어요. 그건 사과할게요.”“사과하지 마.”태준의 목소리가 낮았다.“의심하게 만든 건 나야. 설명하지 않았고, 네가 가장 두려워할 만한 자료를 그대로 보게 했으니까.”“그래도 사실이 아닌 걸로 당신을 저주했어요.”“그보다 더한 말을 들어도 싸.”서아는 숨을 한번 고른 뒤 USB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하지만 그게 지난 십 년을 없던 일로 만들지는 않아요.”태준의 눈빛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내 주변 사람들을 치우고, 내 전화를 보고, 지금은 문까지 잠갔어요. 오빠를 구했다는 사실이 그 모든 일을 정당화해 주진 않아요.”“알아.”“당신은 뭘 후회해요?”태준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네가 나를 두려워하게 만든 것. 네가 스스로를 미끼로 써야 했던 것. 네가 울 때도 놓지 못한 것.”“그럼 나를 원한 건 후회하지 않아요?”“그건 후회할 수 없어.”예상은 했지만, 직접 듣고 나니 더 아팠다.“정말 알아요?”서아가 한 걸음 다가갔다.“당신은 계속 보호라고 했잖아요. 내가 위험해서, 오빠가 부탁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그건 명분이었어.”태준의 대답은 낮고 선명했다.“도현이가 널 부탁한 건 사실이야. 외부 위협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하지만 널 이 집에 가둔 건 도현이 때문이 아니야.”“그럼요?”“내가 그러고 싶었어.”서아의 표정이 굳었다.“십 년 동안 네가 다른 사람과 웃고, 내가 모르는 곳으로 돌아가는 걸 지켜보는 데 지쳤어. 위험이 생겼다는 걸 알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널 지킬 수 있다는 안도감이 아니었어.”태준은 자조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