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준은 손에 힘을 풀었다.그녀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어쩌다가 온기를 찾은 심장이 다시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고월영은 그가 정신을 판 사이에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가보겠….”“전하!”밖에서 지언이 다급히 안으로 달려왔다.“전하, 안비마마께서 자결하셨습니다!”그날 밤 현왕부 사람들은 모두 궁으로 몰려갔다.고월영도 강현우의 부탁으로 함께 궁으로 갔다.다행히 안비는 자결 시도만 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안비는 고월영을 보자마자 버럭 화를 냈다.“저년이 내 궁에 어쩐 일이야? 누가 저년을 들여보냈어? 여봐라! 당장 저년을 밖으로 끌고 나가!”궁녀와 태감들이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하지만 현장에는 현왕과 여왕도 함께 있었다.강현준이 싸늘한 눈빛을 보내자 그들은 전부 고개를 숙이고 구석으로 물러섰다.고월영은 홀로 궁을 나갈 수는 없으니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그녀는 따분한 얼굴로 안비 궁 안의 시설들을 구경했다.방 안에는 안비의 울음소리만 들렸다.두 아들은 멀뚱멀뚱 서서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한참을 울던 안비는 아들들이 반응이 없자 목청을 높였다.결국 마음이 약해진 강현우가 말했다.“어머니, 형님도 너무 화가 나셔서 그런 거지 않습니까. 며칠만 참고 기다리면 금족령은 금방 풀릴 겁니다.”안비는 조심스럽게 강현준의 표정을 살폈지만 그는 줄곧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그녀는 더 구슬피 울며 말했다.“그래도 이 어미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은 우리 현우밖에 없구나. 아들이라고 둘밖에 없는데 현준이는….”강현준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현왕은 원래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면 한 마디도 꺼내지 않는 성격이었다.안비는 더 큰소리로 통곡했다.이 왕조에는 귀비가 없었다. 황후 다음으로 귀한 위치가 비였다. 현왕이 공훈을 많이 세웠기에 안비도 궁 안에서 모두에게 떠받들리는 존재가 되었다.그런 존재가 통곡하고 있자 안비 궁 궁인들의 눈에도
시안이 자결했을 때 방 문은 안으로 잠겨 있었다.진심으로 죽음을 택했기 때문이었다.정말 죽으려는 사람은 절대 방해 받지 않을 시간과 환경을 마련하고 행한다. 일부러 누군가가 발견해 주기를 바라고 행한 게 아니라면 이 상황이 말이 되지 않았다.“내 궁에서 그딴 불경한 소리를 지껄이다니!”안비의 두 눈에 당황함이 스쳤다.고월영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제 질문이 불편하셨다면 송구합니다. 다른 뜻은 없었어요.”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품에서 약을 꺼내 강현우에게 건넸다.“현우 오라버니, 이걸 마마께 드리세요. 멍자국을 없애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멍자국?”강현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안비는 아무리 봐도 어디 다친 것 같은 반응은 아니었다.고월영이 말했다.“목을 매달았다면 온몸의 중량이 저 천으로 쏠립니다. 그 과정에서 목덜미에 압박흔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이 약을 발라드리면 멍이 사라질 겁니다. 약을 안 바르면 나중에 흉터가 남을 수도 있어요.”모두의 시선이 안비의 목덜미로 향했다.안비는 밤중이라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하얗고 긴 목덜미가 그대로 드러났다.안비는 당황한 얼굴로 목덜미를 가렸다.“어머니….”강현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갑자기 실망감이 몰려왔다.“나… 난 괜찮다. 사실 바로 발견돼서….”“참. 너는 이 밤중에 마마께서 나쁜 생각을 하실 줄 어떻게 알고 침소로 뛰어들어왔느냐?”고월영은 어린 궁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겁에 질린 어린 궁녀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안비의 눈치를 보려고 했는데 고월영이 앞으로 나서며 시선을 가렸다.“설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월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네 이년, 무슨 망언을 하는 것이냐!”안비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고월영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한발 다가섰다.“말해 보거라! 너는 어쩌다가 마마의 침소로 들어오게 된 것이냐!”“너 이….”강현준이 싸늘한 시선이 날아오자 안비는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아 버렸다.그는 고
말을 마친 강현준은 뒤돌아섰다.“현준아!”안비가 다급히 붙잡으려 달려갔지만 강현준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지금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날 수 있을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현준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단지 너와 현우가 너무 보고 싶어서….”안타깝게도 그 말은 이미 멀리 가버린 강현준에게 닿지는 않았다.안비는 고개를 돌리고 마지막 희망을 강현우에게 걸었다.그녀는 달려가서 강현우의 손을 잡으려 했다.“현우….”강현우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현우 너마저 이 어미를 버리는 것이냐!”안비가 울며 울부짖었다.강현우는 그 모습을 낯선 눈빛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그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그토록 자식을 아끼던 어머니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왜 이렇게 된 걸까?약병을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결국 그는 쥐고 있던 약병이 그의 손 안에서 깨졌다.“현우야!”안비는 아들의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하지만 강현우도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밀치고 가버렸다.두 아들이 모두 그녀를 버리고 가버린 것이다.“현우야!”여왕마저 떠난 뒤, 그녀는 무기력하게 바닥으로 주저앉아 흐느꼈다.고월영은 그 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뒤돌아섰다.등 뒤에서 안비의 외침이 들려왔다.“고월영, 이 악랄한 년! 넌 곱게 죽지 못할 거야!”걸음을 멈춘 고월영은 고개를 돌리고 담담히 말했다.“세상에 들통나지 않을 거짓말은 없어요, 마마. 무슨 일이든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요.”“양심도 없는 년! 어찌 나한테 이렇게 대할 수 있느냐!”안비는 두 아들이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모든 원인이 고월영에게 있다고 생각했다.세상에 어찌 이렇듯 매정하고 악랄한 여자가 있단 말인가!고월영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안비를 바라보고는 걸음을 옮겼다.뒤에서 안비의 처절한 저주가 들려왔다.“언젠가 넌 나보다 더 비참한 처지가 될 것이야!”“모두에게 버림을 받을 것이고 모두가 널 혐오할 것이야!”“고월영, 이 죽일
황족들 사이의 암투는 예전부터 존재해 오던 것이었다.황족과 혼인한 여자는 살기 위해서 그런 것들을 몸에 익혀야 했다.그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다른 여자보다 더 많이 총애를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황족 남자들이 황위를 위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그들의 싸움은 피를 흘리지만 여자들 사이의 암투는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고월영은 반항을 포기하고 몸에 긴장을 풀었다.주변을 돌던 호위 무사들은 둘을 보고 멀리 피해서 도망갔다.남령국에서 여왕비의 명성은 아마 눈앞의 이 남자로 인해 바닥으로 추락한지 오래였다.“황족으로 사는 삶은 저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전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그래도 나를 위해서….”“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 살고 싶습니다. 저는 이런 삶의 방식이 너무 싫어요! 게다가 전하께서도 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으셨잖습니까.”지금 하는 모든 말은 의미가 없었다.고월영은 원망이 아닌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전하의 이 현왕부에서 저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전하의 세력 범위 안에서요. 벌써 잊으셨나요?”잊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이 왕부의 상공에 얼마나 거대한 먹구름이 끼었는지 처음으로 확인했다.더 이상 현왕부에는 따뜻한 햇살이 비치지 않을 것 같았다.고월영은 그를 부드럽게 밀치고 갈 길을 가버렸다.그는 홀로 정원에 남아 고독을 달랬다.고월영이 영하각으로 돌아오니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무아린이었다.“어머니께서는 무안희를 버리셨습니다. 저에게 돌아가서 성녀의 자리를 물려받으라고 하더군요.”무아린은 작별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그래서 떠나려고요?”고월영은 무아린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마다 각자의 선택이 있는 법이다.“저에게는 선택지가 없습니다. 돌아가지 않으면 갈 곳도 없고요.”어머니가 그녀를 마음먹고 찾으면 어디로 도망가도 소용없었다.며칠 돌아가는 시간만 늦출 뿐이었다.무안희마저 백단교 사람들의 마수를 피해가지 못했는데 무아린은 자신이 없었다.“오라버니랑은 이
“아가씨, 이것 하나만 명심하셔야 해요. 눈가에 눈물점이 있는 분이 오늘 아가씨와 혼례를 올릴 부군이랍니다.”시녀는 출발하기 전 이제는 몇 번 반복했을지 모르는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다.“아가씨, 짓꿎은 형님께서 초야에 장난을 칠 수도 있으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계셔야 해요!”고월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오늘은 그와 강현우가 마침내 혼례를 올리는 날이다.그녀의 부군이 될 사람에게는 쌍둥이 형제가 있었는데 둘은 생김새가 거의 똑같다고 했다.유일하게 그들을 분간할 수 있는 것이 강현우의 눈가에 있는 눈물점이었다.강현우는 온화한 성격에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형 강현준은 남령국의 전신(戦神)으로 추앙받는 현왕(玄王) 전하로, 수많은 오랑캐의 목을 벤 잔인하고 거친 성격의 소유자로 전해진다.고월영은 비록 현왕 전하를 알현한 적은 없지만 두 사람의 성격으로 미루어 볼 때 분간하기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부군을 못 알아보는 새신부가 어디 있다고!분장을 담당했던 시녀들이 물러가고 정신없는 혼례 절차를 끝낸 끝에 드디어 밤이 돌아왔다.홀로 신방에 남은 고월영은 굳게 닫힌 방 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곧 강현우와 초야를 치를 것을 생각하니 괜히 긴장되고 손발이 떨렸다.처음은 많이 아프다고 들었는데….깊은 밤.문이 열리고 훤칠한 그림자가 방 안에 드리웠다.짓꿎은 장난을 치는 무리들도 없었고 그는 홀로 신혼 방으로 돌아왔다.그의 등장과 함께 농후한 술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취했을까?고월영은 긴장한 듯 두 손을 교차하고 그가 다가와 주기를 기다렸다.남자는 바로 다가오지 않고 술잔에 술을 두잔 따랐다.그리고 술잔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왔다.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 보기도 전에 냉랭한 기운이 먼저 느껴졌다.그가 고개를 숙이고 접근해 오자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두근두근 뛰었다.“많이 긴장한 것 같군.”남자는 술기운이 올라와서 그런지 평소보다 목소리가 많이 가라앉은 상태였다.손끝이 떨리고 정신이 아득해졌다.고월영이 아는
고월영은 이대로 기절할 것 같았다.남자의 정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마치 전장에서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적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장군이 이런 모습일까 싶었다.그가 줄곧 후방에 있었기에 고월영은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그녀가 매번 고개를 돌리려 할 때마다 그가 입술을 부딪혀 왔다.그 뒤로는 더 무시무시한 공세의 연속이었다.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느낌이었다.결국 그녀는 기진맥진하여 까무러치듯 잠이 들었다.그렇게 얼마를 잤을까… 아침이 왔다.고월영은 잠결에 자신을 보듬는 손길이 느껴졌다.더 이상 거칠지 않고 마치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이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전하?”고월영이 당황하며 눈을 번쩍 떴다.“전하!”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완벽에 가까운 그의 얼굴이었다.눈가의 눈물점이 선명하게 보였다.고월영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눈물점을 힘껏 문질렀다.색상이 날아가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려 넣은 점이 아닌 건 확실해졌다.그녀는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왜 그래? 어제 내가 너무 거칠어서 많이 놀란 건가?”강현우가 손을 뻗어 그녀의 입술을 살짝 쓰다듬었다.그의 미소는 여전히 부드럽고 온화했다.“미안해. 어제 술을 좀 마셨더니… 그리고 처음이라 내가 자제를 좀 못 했군.”이 사람도 처음이었구나.고월영의 창백한 얼굴에 홍조가 피어났다.“겁낼 거 없어. 앞으로 많이 자제할 테니.”강현우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입술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보드라운 그의 입술이 목선을 타고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자… 잠깐만요!”고월영은 새된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았다.“얼굴… 다시 한 번만 보게 해주세요.”그녀는 약간 넋을 잃은 표정으로 눈가의 눈물점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어쩐 일인지 조금 전의 온화한 기운은 싹 사라지고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강현우는 그녀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만약 이 눈물점이 사라진다면 내 부인은 그래도 나를 알아볼 수
고월영은 강현우와 강현준이 외모가 많이 비슷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쌍둥이라도 이 정도로 똑같을 줄이야!그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계단을 내려왔다.차갑고 냉철하며 음산하기까지 한 분위기!한번 눈이 마주치면 저절로 시선을 피하게 하는 압도적인 기운을 가진 존재였다.황족의 타고난 기품과 자신감, 그리고 주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압도적인 존재감까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저절로 숨이 안 쉬어졌다.역시 그녀의 부군과는 분위기 자체가 다른 사람이었다.고월영은 서둘러 그에게 예를 취했다.“현왕 전하를 뵙습니다.”하지만 상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그는 사뿐이 걸어서 그녀를 지나쳤다. 마치 고월영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듯했다.그는 마차에 올라 가림천을 내렸다.고월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동행하기로 한 호위 무사 지언이 그녀에게 다가오며 말했다.“왕비 마마, 준비한 마차에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시간이 촉박한데 지금 수리가 가능하겠느냐?”고월영은 조바심이 났다.혼례 다음 날 입궐하여 황제 폐하와 황후마마께 인사를 올리는 건 황가에 시집 온 여인이라면 절대 태만할 수 없는 행사였다.“수리는 어렵지 않지만 제 시간에 맞출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현왕 전화와 같은 마차를 타시고 입궐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네요.”현왕과 같은 마차를?저쪽을 보니 크고 화려한 마차가 눈에 보였다. 하지만 고월영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어쩐 일인지 그분을 보면 온몸이 긴장하고 두려움이 앞섰다.지언은 그녀가 말이 없자 다시금 재촉했다.“지체할 시간이 없사옵니다. 왕비마마, 어서 가시지요!”그렇게 고월영은 강현준의 마차에 오르게 되었다.마차 공간이 커서 두 사람이 타도 전혀 비좁지 않았다. 강현준은 상석에 앉아 있었고 고월영은 최대한 그와 멀리 떨어져서 앉았다.거대한 압박감에 그녀는 숨 쉬는 것조차 눈치가 보였다.“혀… 현왕 전하, 혹시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그는 아까부터 그녀를 뚫어져라 빤히 바
“송구합니다!”고월영은 허둥지둥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그런데 또 하필이면 마차가 흔들거리며 다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이번에는 아예 강현준의 몸으로 쓰러졌다.손에 무언가가 잡힌 것 같았는데 천을 사이에 두고 딱딱하고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아!”고월영은 화들짝 놀라며 다급히 손을 거두었다.그녀의 작은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게 상기되었다.아무리 실수였다지만 어떻게 하필이면 거기를….가장 두려운 것은 실수로 잠깐 스친 것뿐인데 물건이 딱딱하게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었다.그것은 옷을 뚫고 나올 기세로 높이 솟아 있었다.고월영은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고개를 푹 숙였다.“어제 혼례를 올린 여왕비가 감히 대놓고 이 몸을 유혹하려 하다니. 이 죄를 어떻게 물어야 할까?”“현왕 전하, 그런 거 아닙니다!”고월영은 다급히 손을 내밀어 그를 밀치며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하지만 강현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그런 게 아니라니?”현왕은 눈을 가늘게 뜨고 비꼬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그럼 조금 전에 만진 건 뭐지?”“고의는 아니옵니다!”고월영은 얼굴에서 불이 날 것 같았다.고의가 아니라는 말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남자에게 커다란 굴욕감을 선사한 것도 사실이었다.게다가 상대는 부군의 형님이 되시는 현왕 전하라니!그래도 이건 사고였다고!“현왕 전하….”“그 말을 이 몸이 어찌 믿을까?”강현준이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들어올렸다. 고월영은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고개를 들자 무시무시한 눈빛과 마주했다.가녀린 몸은 긴장감에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강현준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서 목덜미로 내려왔다.하얗고 가녀린 목덜미는 그가 조금만 힘을 줘서 잡으면 으스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고개를 들고 있는 까닭에 고월영의 옷섶이 약간 벌어졌다.현왕의 각도에서 보면 눈부시게 하얀 쇄골이 은은하게 보였다.눈처럼 하얀 피부에는 어젯밤 남자가 남긴 흔적들이 적나라하게 남아 있었다.강현준의 눈빛이 탁해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