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화요일 아침 8시 30분, 회의실 맨 뒤 의자가 하나 비어 있었다.
은채는 자료를 넘기다 그 자리를 확인했다. 응급의학과 권해진이 도착하기 전이었다. 휴대전화에는 응급실에서 인계를 마치고 올라온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문정원이 시작 시간을 2분 늦췄다. 그 짧은 기다림에도 누군가의 환자를 대신 보는 사람이 있었다.
윤미경은 중환자실의 담당 간호사와 업무를 조정하고 참석했다. 영상의학과 박준영은 다음 시술 전 40분을 비웠고, 정형외과 유진욱은 전날 공유받은 도윤의 영상에 표시를 해 왔다. 정소민 앞에는 마취 기록이, 혈액은행 담당자 앞에는 혈액제제 출고 시각이 놓였다.
민재는 노트북 옆에 앉았다. 은채가 발표 화면을 열려 하자 그가 먼저 연결선을 끼웠다.
“오늘 교수님들 다 계시네요.”
목요일 아침, 박연실은 은채가 커튼을 열자마자 코를 가리켰다.“오늘은 이거 얘기부터 해요.”수술 후 2일째였다. 감압관이 없는 쪽 콧구멍으로 숨을 쉬려다 입을 벌리고 자게 된다고 했다. 간밤에는 관이 당겨 한 번 깼다. 민재가 배액 기록을 확인하는 동안 은채는 배를 진찰하고 메스꺼움과 통증의 변화를 물었다.배액은 줄었고 구역질은 없었다. 복부 팽만과 통증도 나아지고 있었다. 혈액검사와 수분 상태, 수술 후 경과를 함께 보며 감압관을 제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문정원과 계획을 확인한 뒤 병동에서 관을 뺐다.연실은 테이프 자국을 만지려다 간호사의 안내를 듣고 손을 내렸다. 잠시 아무 말 없이 코로 숨을 들이마셨다.“이렇게 생겼었지, 내 얼굴이.”아들 지완이 휴대전화 카메라를 거울로 켜 주었다. 연실은 화면을 보더니 입술의 마른 부분부터 가리켰다. 관 하나가 없어졌다고 곧바로 환자복을 벗을 수는 없었지만, 자기 얼굴을 다시 보는 표정은 분명히 달랐다.은채는 조금씩 마시는 것을 시작한 뒤 구토와 불편감이 생기는지 보겠다고 설명했다. 먹는 양은 견디는 정도에 맞춰 늘릴 계획이었다. 장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과 오늘 무엇을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했다.“한 번에 많이 먹어야 힘나는 거 아니에요?”지완이 묻자 연실이 먼저 대답했다.“넌 왜 뭐든 한꺼번에 하려고 그래.”은채는 웃음을 삼켰다. 어머니가 환자가 된 뒤 아들은 먹이고 눕히는 일에서라도 결과를 빨리 만들고 싶어 했다. 그녀는 조금 먹고 반응을 보는 것도 회복 과정이라고
수요일 오후, 한도윤의 휠체어는 침대에서 두 걸음쯤 떨어진 곳에 멈췄다.멀어진 거리는 짧았지만 환자의 셔츠 등판에는 땀이 배어 있었다. 은채는 골반 출혈 뒤 외과 경과를 확인하러 왔다가 재활치료사와 간호사가 이동을 돕는 장면을 보았다. 침대 높이와 휠체어 위치를 맞추는 데만 꽤 시간이 들었다.“여기서 잠깐 쉬겠습니다.”치료사가 말했다. 도윤은 팔걸이를 잡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왼쪽 다리에 체중이 실리지 않도록 지시를 따르느라 상체에 힘이 몰려 있었다. 몸이 한쪽으로 기울자 그는 반사적으로 발을 디디려다 멈췄다.“그쪽으로 버티시면 안 됩니다. 제가 받칠게요.”도윤은 손가락을 더 굳게 말았다. 은채는 옆으로 비켜섰다. 치료사가 확보한 공간에 의사라는 이유로 끼어들면 오히려 이동 경로가 좁아졌다.“통증이 어디가 달라졌습니까?”그녀가 물었다. 도윤은 수술한 골반 주위가 당기고, 팔이 피곤하다고 구분해서 답했다. 새로 번지는 다리 통증이나 감각 변화는 없었다. 숨을 몰아쉬던 속도도 쉬면서 가라앉았다.치료사는 정형외과에서 정한 체중부하 제한을 다시 확인했다. 왼발을 바닥에 가볍게 대는 것과 몸무게를 싣는 것은 달랐다. 한 번 잘 옮겼다고 그다음부터 혼자 해도 되는 단계도 아니었다.“구급차에서 사람 옮길 땐 제가 방향을 다 정했는데.”도윤이 말했다.“지금도 어디가 불편한지는 직접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저희가 대신 알 수는 없으니까요.”치료사의 답에 도윤은 한동안 팔걸이를 보고 있었다. 잠깐 더 쉬고
수요일 오전 8시 40분, 승필은 수술실 앞에서 아내에게 거울을 맡겼다.“오늘은 이거 안 가져가도 되겠지.”“안에서 당신이 볼 일이 어딨어.”주희가 거울을 가방에 넣었다. 손잡이에 휴지가 감겨 있었다. 병실에서 쓰기 편하게 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감아 둔 것이었다.은채는 그 물건을 보다가 처음 상처를 보여 달라고 했던 날을 떠올렸다. 환자는 이제 자기 몸에 어떤 상처가 있는지 알고 수술실에 들어가고 있었다.성형외과 전문의가 예정한 수술 범위를 다시 설명했다. 당겨도 무리가 없는 부분은 주변 조직으로 닫고, 넓게 남은 왼쪽 서혜부 쪽 결손은 허벅지에서 얇은 피부를 떼어 덮을 계획이었다. 상처의 최종 상태가 좋지 않으면 예정대로 덮지 않을 수도 있었다.“옮긴 피부를 며칠 동안 붙잡아 두는 드레싱을 합니다. 그 밑을 매일 열어 보여 드리기는 어렵습니다.”“그럼 썩는지 어떻게 알아요?”승필이 물었다. 이번에는 그 단어를 피하지 않았다.“바깥의 출혈이나 분비물, 새로 심해지는 통증과 열, 주변 상태를 확인합니다. 문제가 의심되면 예정 날짜를 기다리지 않고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상처 관리와 달라지는 점을 설명드릴게요.”은채는 수술 뒤 관찰 계획을 확인한 뒤 승필에게 다가갔다. 환자는 간밤에 잘 잤다고 했지만 목소리는 조금 높았다.“피부 떼는 데도 많이 아프겠죠?”“그 부위가 더 따갑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통증 조절을 따로 보고, 드레싱도 그곳에 맞게 하겠습니다.”
박연실이 회복실에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물이었다.은채는 침상 곁에서 이름을 부르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는지 확인했다. 환자는 병원이라는 답을 한 뒤 목이 마르다고 다시 말했다. 코에는 감압관이 붙어 있었고, 입술은 말라 있었다.“지금 바로 많이 드실 수는 없습니다. 입안부터 적셔 드릴게요. 수술 이야기는 조금 더 또렷해지면 다시 하겠습니다.”연실은 눈을 감았다 뜨며 이불 위로 배 쪽을 가리켰다.“잘랐어요?”짧은 질문에는 마취가 깨기 전부터 붙들고 있었을 생각이 들어 있었다. 은채는 잘라 낸 장의 길이와 이어 붙인 사실을 설명했다. 환자가 어디까지 기억하는지 확인하자, 연실은 같은 질문을 한 번 더 했다. 은채는 목소리 크기를 높이는 대신 똑같은 내용을 천천히 반복했다.기억해야 할 내용을 각성 직후 한 번 말하고 끝낼 수는 없었다.회복실 간호사가 통증과 메스꺼움을 확인했다. 통증 조절 뒤 연실의 찡그린 얼굴이 풀렸다. 은채는 말을 걸었을 때 눈을 뜨는지 살피고 호흡과 혈압도 다시 확인했다. 은채는 간호사에게 병동 인계 때 남길 내용을 확인하고 다음 환자를 보러 갔다.오후 4시가 넘어 외과 일반병동으로 옮긴 뒤 다시 찾아갔을 때, 연실은 아들의 말을 끊고 있었다.“그러니까 내가 25cm가 없다는 거잖아.”“없는데 이어 놨다고.”“너 자꾸 없어도 된다는 식으로 말하지 마.”지완이 난처한 얼굴로 은채를 보았다. 그는 설명을 틀리게 전달하고 싶지 않아 단어 하나하나를 붙들고 있었다
수술 전 확인 절차에서 환자와 수술 범위, 알레르기와 예방항생제 투여를 점검했다. 오후 12시 20분, 첫 절개가 들어갔다.은채는 모니터보다 먼저 수술대 위 환자의 배를 보았다. 소독액에 물든 오래된 흉터 아래로 장이 부풀어 있었다. 안전하게 들어갈 공간을 정하는 일이 수술의 첫 문제였다. 문정원은 예전 절개 상단 부근에서 층을 확인하며 접근했고, 은채가 반대쪽을 받쳤다.“바로 아래 붙어 있습니다.”복벽 안쪽에 소장 표면이 가까이 닿아 있었다. 은채는 견인 방향을 바꾸어 장벽을 함께 당기지 않도록 했다. 붙은 면을 확인하지 않고 길게 열었다면 아직 살릴 수 있는 장부터 다칠 수 있었다.정소민이 머리맡에서 혈압과 수액 반응을 알려 주었다. 현재 순환은 유지되고 있었다. 장을 보기 위한 시간을 확보했다고 해서 몸의 상태가 저절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었다. 마취과는 소변량과 체온, 필요한 수액을 계속 평가하고 있었다.복강으로 들어가자 팽창한 소장이 절개창 가까이 올라왔다. 은채는 따뜻한 젖은 거즈로 보호하며, 팽팽한 장벽에 힘이 몰리지 않게 받치는 면을 넓혔다.민재가 흡인기를 들었다. 붉은 기가 섞인 액체가 고여 있었지만, 장 내용물이 쏟아진 상태는 아니었다. 정원은 필요한 시야를 만들고 부푼 장에서 가늘어진 장으로 넘어가는 지점을 찾았다.한쪽은 골반 안으로 잡혀 있었다.은채가 손을 멈췄다. 당겨서 나오지 않는다고 더 세게 잡아당길 수 있는 구간이 아니었다. 장벽 표면은 팽팽했고, 깊은 곳에서 접힌 방향이 잘 보이지 않았다.“아래에서 걸려 있습니다. 반대쪽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오전 10시 40분, 은채가 응급실 커튼을 열었을 때 환자는 눈을 감고 있었다.침대 발치에 놓인 가방에서 악보 한 귀퉁이가 나와 있었다. 표지에 연필로 이름을 크게 써 둔 악보였다. 박연실. 64세의 환자는 은채가 이름을 부르자 바로 눈을 떴다.“아까보다 좀 나아요. 토하고 나니까.”그렇게 말하면서도 오른손은 아랫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민재는 먼저 확인한 병력을 짧게 전했다. 새벽 5시쯤 배가 쥐어짜이듯 아프기 시작했고, 간격을 두고 오던 통증이 오전 9시가 지나면서 계속 이어졌다. 두 차례 토한 뒤 오전 10시 20분에 응급실로 왔다. 초기 수액과 진통제를 투여했고 혈액검사는 진행 중이었다.“예전에 배 수술하셨다고요?”“자궁 뗐어요. 12년 됐나. 그다음엔 아무 일도 없었는데.”은채가 담요를 내려도 되는지 묻자 연실이 손으로 가장자리를 걷었다. 배꼽 아래 정중앙으로 오래된 흉터가 있었다. 배는 부풀어 있었고, 넓게 불편하던 부위와 달리 오른쪽 아래를 살짝 눌렀을 때는 복벽이 단단하게 버텼다. 손을 깊이 밀어 넣지 않아도 환자의 표정이 달라졌다.“여기가 제일 아프세요?”연실은 대답 대신 짧게 끄덕였다. 은채가 손을 떼자 그제야 말을 이었다.“그런데 아침에 화장실은 갔어요. 막혔으면 못 가는 거 아닌가?”“막힌 위치보다 아래에 있던 내용물은 나올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괜찮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은채는 서혜부도 확인했다. 겉에서 만져지는 탈장 덩이는 없었다. 병력만으로 유착 때문이라고 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