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센터 닥터E

외상센터 닥터E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21
Par:  6jayMis à jour à l'inst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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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사고경위서에 서명하지 않아 청해병원 외상센터로 밀려난 서은채. ‘문제 의사’라는 낙인에도 그녀는 시시각각 변하는 환자에게서 답을 찾아 생명을 지킨다. 냉정한 흉부외과 의사 강태오와 협진을 거듭하며 쌓은 신뢰는, 어느새 두 사람의 심박수까지 흔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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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itre 1

001화. 발령장보다 먼저 온 환자

“지금 혈압이 얼마라고요?”

서은채는 캐리어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간호사실 앞 전화기를 든 남자가 검지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병원 간 전원을 알리는 화면에 환자의 나이와 손상 부위가 떠 있었다.

임기석, 52세. 항만 작업 중 압착 손상. 우측 혈흉. 오른쪽 폐와 가슴벽 사이에 피가 고인 상태였다.

“출발할 때는 90 넘었고, 지금은 70대랍니다.”

“흉관으로 나온 양은요?”

“출발 전에 1리터 조금 넘게. 이후에도 계속 나오는 중이래요.”

오후 5시 12분. 첫 근무를 시작한 지 40분도 지나지 않았다.

외상소생구역 쪽에서 호출음이 났다. 남자는 전화기에 도착 시간을 다시 물었고, 다른 간호사는 보온 장비의 전원을 켰다. 은채가 벗어놓았던 흰 가운을 의자에 걸었다.

“전임의 서은채입니다. 오늘부터 근무해요.”

“아, 본원에서 오신.”

상대의 시선이 명찰과 캐리어 사이를 움직였다.

본원에서 오신.

발령장을 받았을 때도, 임용 서류를 제출할 때도 들었던 말이었다. 그 뒤에 붙을 이야기가 무엇인지 은채는 대충 알고 있었다.

상급자에게 대들었다. 사고 경위서 제출을 거부했다. 결국 청해까지 내려왔다.

경위서의 서명란을 비워 돌려준 지 2주 만에 파견 명령이 났다. 자신이 확인한 적 없는 사실 밑에 이름을 쓸 수는 없었다.

청해에 도착하자 자신보다 소문이 먼저 와 있었다. 은채는 캐리어 쪽을 보던 남자의 시선을 지나 환자 화면으로 몸을 돌렸다.

“문정원 교수님께는 말씀드렸어요?”

“지금 통화하겠습니다. 환자 오면 외상팀 호출도 같이 해주세요.”

“이미 돌렸습니다.”

은채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문정원의 번호를 눌렀다.

통화는 바로 연결됐다.

“임기석 환자, 저도 소생구역으로 가겠습니다.”

―응급의학과 권해진 선생이 먼저 보고 있어. 나도 내려가는 중이고. 서 선생은 복부 평가부터 맡아.

“네.”

―처음 왔으니까 기구 위치 모르면 바로 물어. 찾느라 시간 쓰지 말고.

은채는 통화를 마치고 운동화 끈을 확인했다. 캐리어를 어디에 둘지 잠깐 망설이자 간호사가 안쪽을 가리켰다.

“그건 제가 치워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문이 열렸다.

들것을 미는 구급대원의 소매 끝이 젖어 있었다. 환자의 몸에서는 바닷물보다 짙은 쇠 냄새가 났다. 오른쪽 가슴의 관이 배액통으로 이어져 있었고, 통 안의 붉은 액체가 들것의 움직임에 따라 기울었다.

“임기석 씨, 항만 설비 정비하다가 적재물하고 난간 사이에 끼었습니다.”

구급대원 한도윤이 인계를 시작했다.

“인근 병원에서 흉관 삽입하고 수혈 시작했습니다. 이송 중 혈압 다시 떨어졌고, 질문에는 답하지만 대답이 짧아졌습니다.”

은채는 환자를 침대로 옮기는 쪽에 붙었다. 몸을 함께 이동시키자 잘린 작업복 밑으로 오른쪽 옆구리의 멍이 드러났다. 갈비뼈 아래까지 이어진 흔적이었다.

권해진이 환자의 머리맡으로 들어갔다.

“임기석 씨. 여기는 청해병원입니다. 제 말 들리세요?”

환자가 입을 벌렸다. 산소마스크 안쪽에 희미하게 김이 서렸다.

“추……워.”

“따뜻하게 해드릴게요. 지금 어디가 제일 아프세요?”

가슴 쪽으로 움직이던 손이 중간에서 떨어졌다.

은채는 도윤을 돌아봤다.

“배는 어땠어요?”

“처음에는 옆구리도 아프다고 했습니다. 이송 중에는 숨쉬기 힘들다는 말이 더 많았고요.”

“맞은 건 오른쪽 가슴만이에요?”

“작업반장 말로는 상체 전체가 눌렸습니다. 빠져나올 때 골반 쪽은 걸리지 않았다고 했고요.”

권해진이 기도 확보를 준비하는 동안 간호사들은 환자 확인과 채혈, 수혈 준비를 나누어 진행했다. 한 사람이 시간을 소리 내어 불렀다. 은채는 침대 옆 초음파 장비를 당겼다.

젤을 바른 탐촉자가 옆구리에 닿자 환자의 배에 힘이 들어갔다.

“임기석 씨, 배도 확인할게요.”

간의 윤곽과 오른쪽 신장 사이에 어두운 공간이 잡혔다. 은채는 각도를 바꿨다. 한 화면만으로 결론 내리지 않고 다른 위치에서도 확인했다. 골반 쪽에도 액체가 보였다.

그사이 문정원이 들어왔다. 머리카락을 묶은 자국이 수술모 가장자리 밖으로 조금 남아 있었다.

“복부는?”

“복강 내 액체 있습니다. 오른쪽 위하고 골반 쪽입니다.”

문정원이 화면을 직접 확인했다.

“전원 병원 기록 줘봐.”

은채는 전달받은 종이를 펼쳤다. 초기 초음파에는 복부 평가가 제한적이었다는 문장이 있었다. 흉부 처치 뒤 잠깐 올랐던 혈압이 다시 떨어졌고, 정밀검사보다 전원이 우선됐다는 경과도 남아 있었다.

복부 평가는 끝나지 않은 채였다. 은채는 종이를 짚은 손을 멈추고, 환자의 옆구리와 초음파에 보인 액체를 다시 봤다. 가슴의 배액만 보고 넘길 수 없었다.

“복부 출혈도 같이 봐야 합니다.”

“동의해. 흉부외과는?”

권해진이 짧게 답했다.

“강 교수 올라오는 중입니다.”

강 교수.

설마 그 강 교수일까. 은채는 환자의 맥박을 보고 생각을 끊었다.

혈압이 수혈에 잠깐 반응했다가 다시 내려갔다. 환자의 손끝이 차가웠다. 가슴에서 빠져나온 피만큼의 문제로 설명하기에는 복부 소견이 걸렸다.

“CT실에 연락할까요?”

전공의가 물었다. 환자의 상태를 다시 확인하던 문정원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검사실까지 데려갈 수 없어. 수술실 준비부터 확인해.”

은채가 전화기를 받았다. 외상 전용 수술실 한 곳은 다른 환자의 처치 후 정리가 끝나가고 있었다. 마취팀과 기구팀 모두 들어올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문정원은 그 내용을 확인한 뒤 복부 응급수술 준비를 지시했다. 권해진은 환자의 의식과 호흡이 더 나빠지기 전에 기도를 확보하기로 했다.

역할이 정해지자 사람들의 움직임이 한 방향으로 모였다.

은채는 환자 곁에서 잠시 비켰다. 도윤이 전달할 물건을 담은 봉투를 들고 있었다. 휴대전화와 열쇠, 반으로 접힌 작업장 출입증이었다. 장갑은 한 짝뿐이었다.

“보호자 연락은 됐습니까?”

“아내분이 오고 있습니다. 환자분 휴대전화로 제가 통화했고, 병원 쪽에도 번호 전달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도윤은 떠나기 전에 환자를 한 번 더 봤다.

“말 잘하셨는데.”

도윤은 환자가 보이는 문 앞에서 잠깐 발을 떼지 못했다.

은채는 봉투를 인계하는 간호사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권해진이 기도에 관을 넣는 기관삽관을 마치고 호흡 상태를 확인했다. 환자의 목소리 대신 기계가 보내는 숨소리가 들렸다.

문정원이 은채를 불렀다.

“서 선생. 복부 쪽에서 예상하는 건?”

“손상 부위로 보면 간 출혈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초음파로 장기 손상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열어서 확인해야 합니다.”

“흉부 출혈이 먼저 잡히면?”

“그때 혈압이 반응해도 복부를 놓을 수는 없습니다. 액체가 있고, 지금까지 수혈에 대한 반응도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문정원은 은채가 가리킨 복부 소견을 다시 확인했다.

“복부를 확인해준 덕분에 함께 준비할 수 있겠어. 들어가서 나랑 같이 보자.”

은채는 환자 팔의 확인띠를 다시 봤다. 임기석. 이름을 기억했다. 처음 보는 병원에서 첫 수술을 한다는 긴장보다, 이 사람이 다음 장소까지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가까웠다.

자동문이 열렸다.

“배액 추이부터 알려주세요.”

낮고 또렷한 목소리였다.

은채가 고개를 들었다. 짙은 남색 수술복 차림의 남자가 가운 없이 걸어 들어왔다. 그는 눈인사보다 먼저 배액통을 들여다봤다. 간호사가 통을 보여주며 이송 뒤에 늘어난 양을 덧붙였다.

강태오였다.

3주 전 학술 모임에서, 은채가 발표한 야간 응급수술 사례에 끝까지 질문을 던졌던 사람.

지원 인력이 없으면 계획을 바꿨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은채는 계획을 바꾸는 동안 기다릴 수 없는 환자도 있다고 대답했다. 이후의 대화는 끝내 좋은 표정으로 마무리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명찰에 잠시 머물렀다.

“서은채 선생?”

은채는 인사 대신 초음파 화면을 가리켰다.

“복부에도 출혈이 의심됩니다.”

“확인했습니다.”

태오는 화면을 보고, 문정원이 설명하는 현재 상태를 들었다. 은채의 명찰에 머물렀던 시선은 이미 환자에게 돌아가 있었다. 그녀도 초음파 화면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러나 은채에게는 달랐다. 그가 다음에 할 말이 벌써 들리는 것 같았다.

기다릴 수 없었다는 말로 판단을 정당화하면 안 됩니다.

그날 들었던 문장이 머릿속을 스쳤다.

태오가 환자 쪽으로 붙으며 물었다.

“복부는 누가 들어갑니까?”

“저하고 서 선생.”

문정원의 답에 그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은채를 똑바로 보았다.

“복부 평가부터 들을게요.”

은채의 마스크 안으로 더운 숨이 찼다.

그가 또 자신의 판단을 몰아붙일까 봐 준비했던 말이 있었다. 은채는 그것부터 버렸다. 수혈에 잠깐 올랐던 혈압이 다시 내려가는 화면이 두 사람 사이에 있었다.

“가슴 쪽 출혈만 보고 끝낼 수는 없습니다.”

그녀는 초음파에 잡힌 액체를 짚었다.

“처음 이송받았을 때와 달라진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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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화. 발령장보다 먼저 온 환자
“지금 혈압이 얼마라고요?”서은채는 캐리어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간호사실 앞 전화기를 든 남자가 검지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병원 간 전원을 알리는 화면에 환자의 나이와 손상 부위가 떠 있었다.임기석, 52세. 항만 작업 중 압착 손상. 우측 혈흉. 오른쪽 폐와 가슴벽 사이에 피가 고인 상태였다.“출발할 때는 90 넘었고, 지금은 70대랍니다.”“흉관으로 나온 양은요?”“출발 전에 1리터 조금 넘게. 이후에도 계속 나오는 중이래요.”오후 5시 12분. 첫 근무를 시작한 지 40분도 지나지 않았다.외상소생구역 쪽에서 호출음이 났다. 남자는 전화기에 도착 시간을 다시 물었고, 다른 간호사는 보온 장비의 전원을 켰다. 은채가 벗어놓았던 흰 가운을 의자에 걸었다.“전임의 서은채입니다. 오늘부터 근무해요.”“아, 본원에서 오신.”상대의 시선이 명찰과 캐리어 사이를 움직였다.본원에서 오신.발령장을 받았을 때도, 임용 서류를 제출할 때도 들었던 말이었다. 그 뒤에 붙을 이야기가 무엇인지 은채는 대충 알고 있었다.상급자에게 대들었다. 사고 경위서 제출을 거부했다. 결국 청해까지 내려왔다.경위서의 서명란을 비워 돌려준 지 2주 만에 파견 명령이 났다. 자신이 확인한 적 없는 사실 밑에 이름을 쓸 수는 없었다.청해에 도착하자 자신보다 소문이 먼저 와 있었다. 은채는 캐리어 쪽을 보던 남자의 시선을 지나 환자 화면으로 몸을 돌렸다.“문정원 교수님께는 말씀드렸어요?”“지금 통화하겠습니다. 환자 오면 외상팀 호출도 같이 해주세요.”“이미 돌렸습니다.”은채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문정원의 번호를 눌렀다.통화는 바로 연결됐다.“임기석 환자, 저도 소생구역으로 가겠습니다.”―응급의학과 권해진 선생이 먼저 보고 있어. 나도 내려가는 중이고. 서 선생은 복부 평가부터 맡아.“네.”―처음 왔으니까 기구 위치 모르면 바로 물어. 찾느라 시간 쓰지 말고.은채는 통화를 마치고 운동화 끈을 확인했다. 캐리어를 어디에 둘지 잠깐 망설이자 간호사가 안쪽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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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화. 아침과 다른 사진
검사실로 이동하는 동안 혜린은 휴대전화를 들고 있지 않았다.간호사가 상태를 확인하며 침대 옆을 따라갔다. 은채는 출발 직전 환자를 다시 보고, 변화가 생기면 바로 알려달라고 했다. 지금은 혈압과 의식이 유지되고 있어 재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송현섭은 검사실 쪽과 직접 연락을 맞췄다.“서 선생은 결과 보고 바로 상의해요. 문 교수님한테도 지금까지 전달했습니다.”“네.”그는 다른 환자의 진료를 마무리하러 갔다. 은채는 혜린의 초기 진찰 옆에 방금 아팠던 범위를 적었다. 맥박이 변한 시각과 진통제를 투여한 시각도 나란히 놓고, 새 영상이 올라올 화면을 열어뒀다.민재가 화면 옆에 종이를 놓았다.“투여한 약하고 반응 정리했습니다. 통증은 잠깐 줄었다가 다시 커졌고요.”“고마워요.”“처음부터 수술할 정도였던 건 아니죠?”민재는 적어 온 기록으로 시선을 내렸다. 자신이 놓친 변화가 있었는지 첫 진찰 내용부터 훑었다.“첫 영상에 장이 뚫렸다는 확실한 소견이나 큰 출혈은 없었어요. 진찰도 지금하고 달랐고요.”“그럼 이런 경우는 언제까지 보면 되나요?”“시간 하나로 정할 수는 없겠죠. 그래서 환자를 계속 보는 거고.”민재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불안이 남았다.은채는 말을 조금 바꿨다.“지금처럼 새로 생긴 걸 찾으면 알려줘요. 그것만 제때 해도 다음 판단이 달라집니다.”그는 메모한 종이를 다시 읽었다. 은채는 종이를 돌려주지 않았다. 자기 기록 옆에 나란히 놓았다.오후 4시 40분, 검사가 끝났다는 연락이 왔다.새 영상이 화면에 뜨는 동안 은채는 영상의학과에 다시 연결했다. 전화를 받은 박준영 교수도 두 검사를 나란히 열고 있었다.“오전보다 복강 내 액체가 늘었습니다.”그가 먼저 말했다.은채는 같은 위치로 화면을 옮겼다. 장 사이에 보이는 액체가 이전보다 분명했다.“이쪽 장간막도 변화가 커졌네요.”“네. 그리고 이 구간 장벽을 보세요.”준영이 위치를 짚어줬다. 주변 장과 달리 조영되는 양상이 좋지 않았다. 은채가 앞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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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화. 남겨야 할 것
화면에 비친 배 안에는 액체가 고여 있었다.혜린의 혈압과 호흡이 유지되는 것을 확인한 팀은 작은 절개로 카메라를 넣는 복강경으로 먼저 안쪽을 살폈다. 은채는 문정원과 함께 장의 상태를 확인했다. 영상에서 의심했던 부근으로 접근하자 주변과 다른 빛깔의 구간이 보였다.장이 배 안에 매달리는 장간막에 손상이 있었다. 그곳에서 혈액을 공급받는 소장 일부가 제 색을 잃고 있었다.은채는 바로 잘라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장의 어느 부분까지 영향을 받았는지, 주변에 다른 손상은 없는지 확인이 필요했다.문정원이 화면을 보며 물었다.“어디부터 볼래?”“전체 확인하면서 손상 범위부터 잡겠습니다.”은채가 카메라 방향을 조정했다. 민재는 보조 위치에서 그녀의 지시를 기다렸다. 첫날 수술에서는 스스로 따라가느라 바빴던 은채가 오늘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말해야 했다.“류 선생, 그쪽 조금만.”민재의 손이 멈췄다. 어느 방향을 말하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은채는 곧바로 고쳤다.“지금보다 왼쪽으로 조금 옮겨주세요. 제가 보는 곳이 가려져요.”“네.”시야가 정리됐다.문정원은 그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대신 은채가 놓칠 수 있는 부위를 짚었다. 두 사람은 장간막 손상 주변을 평가하고 필요한 처치를 위해 절개를 넓혀 접근하기로 했다.개복으로 전환하는 이유를 팀에 공유한 뒤 준비가 바뀌었다. 계획이 달라졌다고 수술실이 당황하지는 않았다. 마취팀은 환자의 상태를 알려줬고, 기구팀은 다음에 필요한 것을 준비했다.손상 부위를 직접 확인하자 상태가 더 분명해졌다.은채가 의심했던 부분은 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손상은 생각보다 깊었고, 일부에서는 장벽이 버티지 못한 작은 구멍도 확인됐다. 주변의 오염을 통제하고 생명력이 없는 부위를 치료해야 했다.은채는 오전 영상에서 확정할 수 없었던 부분과 지금 손상을 머릿속에서 맞췄다.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멍뿐이었다. 혜린은 자기 발로 차에서 나왔고 몇 시간 전까지 가게에 보낼 파일을 찾고 있었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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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화. 먼저 부른 이름
은채가 수술 기록을 마무리하는 동안 류민재는 한 줄을 지웠다.‘초기 CT 특이 소견 없었으나.’그는 오전 판독문을 다시 열었다. 장간막 주위의 변화와 소량의 복강 내 액체가 기록돼 있었다. 수술까지 오기 전에 남아 있던 의심이었다.민재가 문장을 고쳤다.“관찰 중 증상과 영상 소견이 변해서 수술한 경과로 적었습니다.”은채는 수정한 문장을 읽었다. 같은 수술도 처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앞선 의료진이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일처럼 바뀔 수 있었다.“그게 실제 경과하고 맞아요. 먼저 찾아서 고쳤네요.”그녀는 자기 기록에도 낮 동안의 관찰과 협진 의견을 포함했다. 마지막에 수술한 사람만 남으면 환자가 수술실에 오기까지의 판단이 사라졌다.문정원이 서류를 확인하고 필요한 부분을 보탰다. 그녀가 민재에게 물었다.“다음에 비슷한 환자 오면?”민재의 자세가 굳었다.“첫 영상에서 큰 손상이 없더라도 증상 변화를 계속 확인하겠습니다.”“그리고?”“달라지면 기다리지 않고 보고하겠습니다.”문정원은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지나서 아프다고 하는데 진통제 들었는지만 보지 말고, 환자도 같이 봐.”민재는 그 말을 적었다. 은채는 그가 긴장한 채로라도 질문을 피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한 번 배웠다고 다음부터 모든 판단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었다.오후 8시가 조금 지나 혜린이 회복실에서 병동으로 옮겨갔다. 은채는 병동에서 환자 상태와 수술 후 계획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확인했다.혜진은 침대 옆에 작은 가방을 놓고 앉아 있었다. 혜린은 눈을 뜨고 있었지만 오래 이야기하기에는 피곤해 보였다.“배는 좀 어떠세요?”“수술한 데가 아파요. 아까처럼 안에서 막 아픈 거랑은 조금 달라요.”은채는 통증과 다른 불편을 확인하고, 담당 간호사와 치료 계획을 다시 맞췄다. 열이 나는지, 통증이 어떻게 변하는지, 회복 과정에서 무엇을 볼 것인지 짧게 설명했다.혜린은 이번에는 휴대전화를 찾지 않았다.대신 언니에게 물었다.“정민 씨가 뭐래?”“잘 보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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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화. 다시 들어갑니다
수요일 아침, 은채는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휴대전화에는 새 호출이 없었다. 오늘 거즈를 꺼낼 임기석의 이름을 떠올리며 은채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전날 밤보다 몸은 가벼웠지만, 첫 거즈를 걷어낼 순간이 자꾸 앞서 떠올랐다.병원에 들어가서는 혜린의 경과부터 확인했다. 밤사이 수술 계획을 다시 바꿀 만한 큰 변화는 없었다. 혜린은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자세를 바꾸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많이 당겨요?”“안 움직이고 싶어요.”은채는 통증 조절과 현재 상태를 확인하고, 움직일 때 도움을 받도록 말했다. 혜진은 침대 옆에서 필요한 물건을 챙겼다.혜린이 휴대전화를 가리켰다.“오늘은 언니가 들고 있어요.”“잘 맡기셨네요.”“잠금까지 걸어놨어요. 제 건데.”은채가 작게 웃었다. 농담할 수 있다는 사실은 반가웠다. 그것만으로 회복을 다 평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전날 수술실로 갈 때의 얼굴과는 달랐다.그녀는 필요한 내용을 확인하고 중환자실로 향했다.임기석은 여전히 인공호흡기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흉관과 복부의 임시 폐쇄 장치도 그대로였다. 체온과 검사 결과, 출혈 추이를 밤사이 담당팀과 함께 확인했다.미경이 오전 근무로 돌아와 있었다.“오늘 다시 들어가시죠?”“네. 문 교수님하고 최종 확인하고 있습니다.”미경은 이전에 적어둔 메모와 현재 기록을 나란히 놓았다. 이틀 전부터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짧게 짚어줬다. 은채는 필요한 부분을 받아 적고 수술실에 전달할 내용을 정리했다.태오도 흉부 상태를 다시 확인했다. 당장 흉부를 재수술해야 할 소견은 없었다. 그는 문정원과 계획을 맞춘 뒤 은채에게 말했다.“가슴 쪽은 계속 추적하겠습니다. 복부 수술 중 호흡 상태 변화 있으면 연락 주세요.”“알겠습니다.”은채는 흉부 계획을 인계 항목에 덧붙였다. 서로 맡을 범위가 분명해지자 복부 재수술 준비에 집중할 수 있었다.면회가 허용된 짧은 시간 동안 선옥이 남편 옆에 섰다. 전날 밤보다 신발 뒤축이 가지런했다. 손가방 대신 작은 천 가방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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