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엽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 한지훈,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감히 내 요트에서 사람을 때리다니! 게다가 상대는 백영그룹 황태자라고!”짝!한지훈은 다가가서 놈의 귀뺨을 날렸다. 강력한 한방에 양천엽은 그 자리에서 이빨이 부러지며 피를 토했다.“다시 한번 묻는다. 네가 했어?”한지훈이 싸늘하게 물었다.“아니야!”양천엽은 지금 잘못을 인정하면 끝장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한지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밖에서 해적 한 명을 끌고 들어왔다. 그리고 놈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물었다.“누가 보내서 왔어?”겁에 질린 해적이 울먹이며 말했다.“해성 형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형님,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저도 돈을 받고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절대 사람을 해칠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머릿수만 채우려고 온 거라고요….”“해성 형님이 누구지? 이 요트에 있어?”한지훈이 물었다.해적이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있긴 한데 형님이 죽여버렸잖아요…..”한지훈은 처음으로 당황했다.일이 이렇게 흘러간다고?그 시각,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양천엽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와 거래를 한 자가 죽었으니 증거는 사라진 셈이었다.다행인 건 아직 돈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하마터면 이대로 꼬리가 밟힐 뻔했다.한지훈도 더 이상 증거를 캐낼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한지훈! 어떻게 날 의심할 수가 있어? 내가 그런 비겁한 사람으로 보여?”양천엽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소리쳤다.한지훈은 인상을 찌푸리고 양천엽을 노려보며 말했다.“적당히 해.”말을 마친 그는 다시 갑판으로 나갔다.그 시각 요트 주변에는 이미 경찰을 태운 보트가 배회하고 있었다.보트에서 무장 해경들이 요트로 올라왔다.그들은 신속하게 현장을 정리했다.한지훈을 발견한 강우연이 울먹이며 달려와서 그의 품에 안겼다.“지훈 씨, 정말 무서웠어요….”한지훈은 웃으며 그녀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괜찮아
며칠 뒤, 정오.오군 부두에 호화 요트 한척이 상륙했다.그것은 백영그룹에서 보낸 요트였다.갑판의 최전방에 하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싸늘한 풍채를 자랑하며 서 있었다.그는 다름 아닌 이틀 전 요트에서 한지훈에게 먼지 나도록 맞았던 백청강이었다.이틀이 지나 상처를 회복한 그에게서는 전에 없던 살기가 풍기고 있었다.“한지훈, 내가 돌아왔어. 누가 이길지 두고 보자고.”남자는 살기가 뚝뚝 흐르는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그의 뒤로 짙은 회색의 한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따르고 있었다. 깡마른 체형에 얼핏 보면 인자해 보이지만 주변으로 강압적인 기운이 풍기고 있었다.“셋째 도련님, 부친께서는 오군에서 크게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일을 해결하라고 하셨습니다.”“알아요. 하지만 화가 나는 걸 어떡해요.”백청강은 망원경으로 전방에 있는 고층건물을 노려보며 분개해서 말했다.“무슨 일이 있어도 다친 자존심은 회복해야겠어요. 백영그룹의 권위에 도전한 자는 상응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죠! 걱정 마세요. 백 명의 이미지에 먹칠하는 일은 하지 않을 거예요.”중년 남자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당부했다.“도련님의 뜻이 정 그렇다면야 따를 수밖에 없지요.”백청강은 눈앞의 고층건물을 노려보며 살기를 번뜩였다.지난번 사건이 있은 뒤, 양천엽은 회사에 틀어박혀 회사 업무에 몰두했다. 그가 창립한 천용그룹은 심기일전으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이날 아침, 양천엽은 부하직원들을 데리고 부두로 가서 백청강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그는 멀리서 갑판 위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고 온몸에 긴장을 곤두세웠다.지난번에 일이 실패로 돌아간 뒤로 백청강이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일을 성공시켜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그는 완전히 백청강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고 백영그룹과의 인연도 여기서 끝이 나는 것이다.양천엽은 오늘을 위해 이틀 동안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이번에 백영에서 오군에 상업 회담을 오는 일을 빌미
백청강은 양천엽이 준비한 밴에 올라타고 어딘가로 향했다. 가는 내내 그는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백 대표님, 이번에는 강운그룹을 어떻게 요리하실 생각인가요? 바로 인수에 들어가실 겁니까?”양천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백청강은 창밖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리고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양 대표, 뭐가 그렇게 급해?”양천엽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다급히 해명했다.“오해세요. 저도 일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런 거죠. 성공적으로 강운을 인수한다면 강우연은 대표님 손바닥 안에 있는 거 아닙니까. 물론 차질이 생기더라도 제쪽에서 미리 대비해 두겠습니다.”백청강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그에게 말했다.“일단 강운그룹으로 가서 얘기하자고.”“네.”양천엽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백청강을 태운 차가 강운그룹 본사 건물 앞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백청강은 건물을 바라보며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양천엽과 이현철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강운그룹 경비원들은 그 기세를 보고 다급히 달려와서 인사했다.양천엽이 앞장서서 백청강을 안내하며 건물로 들어갔다.안내데스크 직원은 양천엽과 백청강을 보자 곧바로 회장 비서실에 사실을 알렸다.잠시 후, 양천엽이 신비의 남자와 함께 그룹을 방문했다는 소식은 회사 전체에 퍼졌다.한편, 한지훈은 오늘 기분이 무척 좋았다. 아침에 강우연을 회사에 데려다주고 바로 떠나지 않고 그녀의 옆을 지켰다.결혼식이 곧 다가오는만큼, 업무는 용이에게 맡기고 강우연과 시간을 더 보내려고 내린 결정이었다.최근에 그가 자주 회사에 방문했기에 어느새 강운 직원들과도 많이 친해졌다.그가 몇몇 직원들과 함께 탕비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입구에 강문복과 강희연이 나타났다.“강 이사님이 급하게 어디를 가시는 걸까요?”한 직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그런데 이때, 무언가를 발견한 한지훈이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옆에 있던 직원은 그에게서 풍기는 살벌한 기운에 놀라서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한지훈이 지켜보
강운그룹 회의실.강우연은 오늘 검은 정장 치마에 흰 셔츠를 맞춰 입고 위에 베이지 톤의 정장 외투를 걸쳤다. 머리는 굵은 웨이브로 마무리하고 하얗고 투명한 피부를 강조한 메이크업에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며 회의실로 들어와서 앉았다.어떤 남자가 봐도 군침을 흘릴만한 외모를 그녀는 가지고 있었다.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백청강은 벌써 탐욕스러운 눈을 하고 그녀를 대놓고 관찰했다.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에는 이 여자를 가질 것이다!그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상석에는 강문복이 앉고 강희연이 그의 옆에 앉았다. 물론 회사의 고위 임원들도 자리했다.“우연아, 네가 담당자니까 얘기는 너랑 백 대표님이 하고 있어. 우린 이만 나가볼게.”자리에서 일어선 강문복이 사람들에게 나가라는 눈짓을 보냈다.이곳으로 오기 전, 양천엽이 미리 언질을 해뒀기 때문이었다.조건이 좀 의아하긴 했지만 백영과 손을 잡을 수 있다면 강운그룹에는 큰 기회가 되는 셈이었다.강문복은 내키지 않았지만 약속했던 대로 사람들을 끌고 회의실을 나갔다.“백 대표님, 그래서 어떤 사업을 저희랑 하고 싶으시다는 거죠?”강우연이 커피잔을 입가로 가져가며 담담히 물었다.그녀는 눈앞의 이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탐욕을 숨기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저 눈빛만 봐도 소름이 돋았다. 그가 백영그룹의 황태자만 아니었다면 오늘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지난번 요트에서 벌어진 일도 그렇고 그에게 좋은 기억은 없었다.그날 이후, 한지훈은 그녀에게 백청강과 양천엽을 경계하라고 말했었다.백청강도 커피를 한모금 마시더니 고개를 들고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우연 씨 미모는 여전하네요. 요트에서 그렇게 헤어지고 아쉬웠었거든요. 밤낮 가리지 않고 우연 씨가 떠올라서 미치는 줄 알았어요. 물론 오늘은 강운그룹이랑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온 거예요.”“그래요, 우연 씨. 백 대표님은 백영그룹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나온 거예요. 강운에 대해 잘 알아야 같이 사업도 하는 거죠. 이 사업이 성공하
강우연도 이것이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역시 우리 우연 씨는 얼굴도 예쁘고 시원시원하시네요.”백청강이 능글맞게 웃으며 양천엽에게 눈치를 주었다.그러자 양천엽이 간사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우연 씨, 백 대표님의 뜻은 아주 간단해요. 강운그룹을 인수하는 겁니다. 우연 씨 생각은 어떠한가요?”대놓고 너희 회사를 삼키겠다고 선포한 것이었다.강우연은 입가에 희미한 조소를 머금고 둘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강운을 인수하고 싶다고요? 그건 백영의 뜻인가요?”“우연 씨, 생각해 봐요. 백영그룹은 H시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이에요. 방대한 인맥과 자금력을 가졌죠. 백영이 강운을 인수하면 그때부터 강운은 든든한 후원자가 생기는 거예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요?”양천엽이 능구렁이처럼 간사하게 웃었다.백청강은 상석에 앉아 강우연의 매끈한 다리를 감상했다.“강우연 씨, 가격은 만족스럽게 쳐드릴 거예요. 절대 가격으로 실망할 일 없다는 얘기예요.”“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하네요. 강운은 인수 제안을 거절하겠습니다.”강우연이 대놓고 거절하자 순식간에 회의실 안에 냉기가 감돌았다.“가격만 합리적이면 성사 안 될 장사는 없다고 생각해요. 원하는 가격을 말해 보세요.”백청강이 탐욕스럽게 그녀의 가슴과 다리를 훑으며 말했다.“죄송하지만 같이 사업을 하는 거면 몰라도 인수는 절대 안 됩니다.”강우연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싸늘하게 말했다.“살펴 가세요.”백청강이 인상을 확 구기며 음침하게 물었다.“강우연 씨, 지금 나의 제안을 거절한 건가요?”“거절하면 안 되는 제안이었나요?”강우연이 냉소를 지으며 받차쳤다“나를 거절한 사람은 우연 씨가 처음이네요. 상황을 잘 분석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길 바랍니다. 나는 백영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왔어요. 백영이 강운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걸 영광으로 생각해야죠. 나를 더 이상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네요.”적나라한 협박이 담긴 말이었다.강우연도 인상을 찌푸리고 차갑게 말했다.“누가 와도 답은 같아요. 인
“아이고, 우연 씨. 사실 백 대표님도 강운을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생각해 봐요. 인수 제안에 동의하면 백영그룹이 강운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업계 1위도 노려볼 수 있고 강우연 씨도 부장에서 승진도 해야죠.”옆에 있던 양천엽이 이때다 싶어 끼어들었다.그는 백청강의 강압적인 태도를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그가 계획했던 것과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이다.“아니요! 강운은 인수 제안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에요!”강우연이 분노한 얼굴로 목청을 높였다.“그럼 협상은 이로써 끝이로군요.”백청강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거만하게 말했다.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옆에 있던 이현철에게 말했다.“아저씨, 저 여자 끌고 가세요.”이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강우연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중년 남자에게서 커다란 위협을 느꼈다.“아가씨, 미안하게 됐어.”말을 마친 이현철이 강우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그런데 이때,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지훈이 안으로 뛰어들어왔다.그는 얼굴에 태연한 미소를 머금고 강우연에게 말을 걸었다.“여보, 나 찾았어?”모두가 당황한 표정으로 갑자기 나타난 한지훈을 바라보았다.분노와 긴장, 당혹스러운 표정이 뒤섞였다.한지훈은 담담하게 안으로 들어오며 회의실 문을 잠갔다.“여보, 무슨 일 있어?”이미 밖에서 듣고 있던 한지훈이었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 강우연에게 물었다.“한지훈? 제 발로 찾아왔네.”백청강은 한지훈이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그는 음침하게 굳은 얼굴로 한지훈을 가리켰다.반면 양천엽은 한지훈을 보고 저도 모르게 뒤로 두 발 물러섰다.이런 상황에서 그는 조용히 관망하는 것을 택했다.“뭐야? 백 대표가 여긴 어쩐 일이야? 올 때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어? 그럼 마중이라도 나갔을 텐데.”한지훈이 피식거리며 백청강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어깨를 꽉 껴안았다.백청강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이
위기에 처했던 강우연은 구명줄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는 한지훈에게 눈치를 보내며 싸늘하게 말했다.“백영에서 우리 강운그룹을 인수하고 싶대요. 나는 안 된다고 거절했고요.”한지훈은 고개를 돌리고 백청강에게 물었다.“백 대표, 강운을 인수할 생각이야?”백청강은 가까이 다가온 한지훈의 얼굴을 보고 짜증스럽게 대꾸했다.“그래! 뭐 문제 있어? 네가 여기 책임자라도 돼?”“그래, 맞아.”한지훈이 말했다.“협상은 나랑 할까?”백청강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강우연을 바라봤다.“강우연 씨, 이건 무슨 상황입니까?”강우연은 팔짱을 끼고 소파에 앉으며 차갑게 말했다.“남편이랑 얘기해 보세요.”백청강도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어쩔 수 없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한지훈은 피식 웃고는 이현철이 움직일 기미가 안 보이자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갑자기 얘기하기가 싫어졌네.”“지금 장난해?”백청강이 버럭 화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나한테 장난친 놈들이 다 어떻게 됐는지 네가 봤어야 했는데!”한지훈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몰라. 알고 싶지도 않고. 지난번에 내가 누구를 개 패듯이 때렸던 것만 기억나. 그때도 얘기했을 텐데. 우리를 귀찮게 하지 말라고. 안 그러면 죽여버리겠다고.”백청강이 분노에 치를 떨며 고함쳤다.“좋아! 그렇게 나온다 그거지? 아저씨, 저 인간에게 나와 대적한 대가가 어떤 건지 제대로 보여주세요!”옆에 있던 이현철이 그제야 앞으로 나섰다. 순식간에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압도적인 기운이 한지훈을 덮쳤다.이현철은 주먹이 강렬한 기를 담아 한지훈의 가슴을 향해 휘둘렀다.백청강은 피식피식 웃으며 구경하고 있었다.‘그러길래 얌전히 있었어야지!’그는 벌써 한지훈이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 애원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양천엽도 속으로 냉소를 짓고 있었다. 이현철이 어느 정도 실력인지 가늠이 되지는 않지만 백가의 가주 신변을 지키던 사람이라면 절세의 고수라는 건
백청강은 버럭 화를 내며 한지훈을 가리켰다.“아저씨, 당장 저 녀석의 사지를 찢어버리라니까요?”백청강은 이미 한지훈을 자신의 가장 큰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한지훈이 살아 있는 한, 이 분을 삭힐 수 없었다.이한철은 더 이상 공격을 시전하지 않고 백청강에게 다가가서 귓속말로 말했다.“도련님, 저 자는 일반인이 아닙니다. 이곳에서 싸워 봐야 득 될 게 없으니 돌아가서 다시 의논하는 게 좋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백청강은 인상을 잔뜩 구겼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다.“강우연 씨, 3일 줄 테니 잘 고민하고 답을 주길 바랄게요. 3일 뒤에 다시 오죠.”백청강은 이 말을 남기고 씩씩거리며 회의실을 나갔다.모두가 떠난 뒤, 긴장이 풀린 강우연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온몸을 떨었다.한지훈은 다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당신 왜 그래?”“물 좀 줘요.”한지훈이 물컵을 건네자 그녀는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켰다.한편, 호텔로 돌아온 백청강은 눈에 보이는 물건은 죄다 집어던졌다.“왜 안 된다는 건데요! 대체 그놈이 뭐길래!”“도련님, 그자의 배경을 잘 조사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실력으로 치면 저와 대등하거나 더 강한 자예요. 어린 나이에 그 정도 실력을 가지고 오군에만 생활했을 수는 없습니다. 아마 숨겨진 세가의 후손이 수련을 하러 범부로 위장했을 수도 있어요.”백청강이 온갖 진상을 부리는 동안에도 이한철은 한치 동요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그 대단한 가문이 누군데요! 당장 조사하세요!”백청강이 씩씩거리며 말했다.잠시 후,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비영, 사람 한 명 조사해 줘. 그리고 이쪽으로 암살자 몇 명도 보내줘!”전화를 끊은 백청강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피어났다.“개 자식! 내가 이대로 포기할 것 같아? 넌 죽었어!”화가 나는 건 나는 거고 천사 같은 강우연의 얼굴만 생각하면 욕망이 불끈거렸다.‘그 여자는 내 거야! 내 거로 만들 거라고!’이한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이 둘과 비교하면, 기자인 그녀는 마치 한 줌 모래처럼 미미한 존재였다.임설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오르자, 유 씨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아, 사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지금의 용국은 이미 몇 년 전의 용국이 아니야. 너도 알겠지만, 내 뒤에는 오대 명산이 있단 말이지.”“우리 오대 명산이 널 지지하는데, 뭐가 두려운 것이냐? 설령 용국 조정이라도 감히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줄곧 내가 한 말이었으니 잡으려면 나를 잡는 거지, 널 잡을 일은 없다.”임설은 그 말을 듣고 다소 안심한 듯 보였으나,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지만…… 유 씨 어르신, 그건 전부 어르신의 추측일 뿐이에요. 우리 손엔 아무 증거도 없잖아요!”“증거? 증거가 그렇게 중요해?”유 씨 노인은 냉소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무종 전체가 내 말에 동의한다면, 그게 바로 증거지!”비록 천릉자가 대량산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한지훈의 명예를 실추시키기만 한다면 국왕은 가장 중요한 의지를 잃게 된다.바로 이때, 국왕의 자리를 노린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이때, 산성시.산중에 위치한 호화로운 별장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젊은 여인에게 말했다.“선아, 며칠 전 장 도령께서 놀란 일이 있었단다.”“우리 천산 장씨 가문과는 대대로 교류가 깊었지. 어떤 의미에서든, 넌 가서 한 번은 그를 봐야 하지 않겠니?”“그리고 네 신분도 좀 자각해야 해. 진씨 가문의 큰 아가씨가 어찌 그리 속된 백성들처럼 옥기점 같은 데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냐!”이 중년 남자의 이름은 진천국, 산성 진씨 가문의 가주였다!진천국이라는 이름은 산성 전체에서 거의 군왕이나 다름없는 존재다.특히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 진천국의 사문은 현재 산성 최대의 종문인 천앙종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은 지금 천산 장씨 가문과 우호 관계를 다져가며, 혼인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만일 혼인이 성사된다면, 진씨 가문은
사실, 한지훈이 산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이미 유 씨 노인의 말을 다 듣고 있었다.오대명산과 무종 사람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어찌 한지훈이 모를 수 있을까!최근 이 시기 동안 천릉자의 기세가 드높다는 건, 곧 오대명산이 천릉자를 내세워 한지훈이 용국에 세운 공적을 지우려는 의도임을 뜻한다.게다가 이 기회에 국왕의 지위마저 위협하려는 것이었다.개인의 영예나 치욕 따위는 한지훈에게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국왕의 권위를 흔드는 일만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오대명산의 계략을 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천릉자의 기세가 가장 드높을 때 정면으로 한방 먹이는 것이었다!그리고, 천릉자가 살해당한 사건은 과연 큰 파장을 일으켰다!그 전에 오대명산은 이 일을 공개적으로 보도하게 하려고 수많은 언론 기자들을 초청했다.하지만 정작 결과는,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장에 와 있던 언론사 수가 너무 많았고, 모두가 생중계로 현장을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수많은 인플루언서들까지 합류하며 정보를 봉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이 사건은 마치 다리가 달린 듯, 하룻밤 사이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흥! 정말 웃기는군. 그 따위가 어찌 한지훈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한지훈보다 깨달음이 뛰어나다고? 타고난 자질이 낫다고? 결국 누가 죽였는지도 모른 채 죽어버렸잖아!”“흥, 내 보기엔 그냥 날뛰는 광대였을 뿐이지!”“날뛰는 광대? 그래도 광대는 멀쩡한 머리를 잃진 않겠지! 하하하…”온라인에서는 조롱이 난무했고, 항산의 사람들은 아예 모습을 드러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한순간에 오대명산의 기세는 급격히 꺾이고 말았다.그 뒤 한 달 동안, 모든 이들의 화제는 이 사건에 쏠렸다.오직 한지훈만이 조용히 천생서문에 기록된 내용을 따라 진지하게 약제를 조합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그에게는 강우연이 천신계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이런 화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게다가 천하 정세는 이미 크게 변하고 있었고,
그들은 누군가가 도중에 강탈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령풍이 자소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는 약속대로 천릉자에게 져주지 않을 가봐 걱정됐다. “여러분, 드디어 가장 관건적인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됐을지 함께 알아봅시다!”한 인터넷 BJ는 생방송을 켜고는 팬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시간은 1분 1초가 흘렀고, 모두들 손꼽아 승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산 길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걸어 나왔다. 다만, 천릉자와 장령풍 두 사람의 종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죠? 장 사부님이랑 천릉자 사부님은 왜 여태까지도 나오지 않는 거죠?”임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사람이 너무 격렬하게 싸운 나머지 모두 중상을 입어 전혀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필경 모두 동문 사람이기에 두 사람이 한판 붙게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둘 거야!”유 씨 어르신은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 알다시피 이번 대결은 5대 명산이 함께 손을 잡고 벌인 판이다. 게다가 천산 장 씨 집안도 이 계획에 얽혀있었기에, 절대 어떠한 실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위에는 또 수많은 고수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의외의 사고란 발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 씨 어르신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산길에서는 어두운 안색의 항산 제자 4명이 단대 하나를 들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내 카메라들은 일제히 그 단대에 초점을 뒀고, 모든 기자들은 순간 숨을 죽였다. 단대 위에는 머리 없는 시체 한 구가 누워 있었고 옆에는 웬 동그란 물건이 놓여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천릉자의 머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한편, 몇 명의 장 씨 집안 자제들 역시 단대 하나를 들고는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장령풍
그러나 한지훈은 장령풍을 투명 인간 취급한 체 눈 깜짝할 사이에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여전히 깊은 공포 속에 빠져 있었다. 사실 천릉자는 실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방금 그와의 정면승부에서, 그는 천릉자의 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두 사람의 실력은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천릉자의 촘촘한 검망을 깨뜨려 그의 머리를 아작 낸다는 건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최선을 다해봤자 기껏해야 천릉자에게 상처만 입힐 거라 확신했다. 천릉자를 죽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더욱 어려웠다. 모두들 알다시피 검망 아래에서는, 수천 갈래의 검의 습격을 마주해야 했다. 그 검망을 피해 사람을 죽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검방을 피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설사 2성 천신계 강자라 하더라도 밀집된 검망을 마주하게 되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게 되고 더욱이는 천릉자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지훈은? 오직 나뭇잎 하나만으로, 마치 어린애 장난처럼 닥치는 대로 나뭇잎을 던져 천릉자의 머리를 아작 냈다. 지금 이 순간, 산 전체는 비할 데 없이 조용했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줄곧 조용히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감히 고개 한번 들어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나서야 장령풍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한지훈의 자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는 비로소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장령풍, 오늘 벌어진 일을 소문내면 장 씨 집안은 멸망하게 되는 줄 알아!”“네... 저는... 아무것도 못 본겁니다!”크게 놀란 장령풍은 벌벌 떨었다. 한지훈의 경고는 그에게 있어서 성지였다. 한지훈은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용경과는 80리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오직 용국을 위해 복수
게다가 사방에서 한지훈을 헐뜯고 있는 발언들에 대해, 장령풍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한지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몇몇 명산 모두가 그의 적이었다. 그렇기에 한지훈이 남의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 자체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역외 강자조차도 흔들 수 없는 거물을, 누가 감히 건드리려 하겠는가? 그러나 옆에 있던 천릉자는, 장령풍의 표정 변화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한지훈의 정체가 뭐든, 자신이 쟁취해야 할 성과를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는 장령풍과 상의도 하지 않고 바로 손을 들었다. 곧이어 그물처럼 촘촘한 검망이 한지훈의 정수리 위에 펼쳐졌다. 그는 단 한 방에 한지훈을 산산조각 내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건드리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작정이었다. 온 하늘을 덮은 검망에도, 한지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나뭇가지에서 잎사귀 하나를 따냈다. 그러고 나서는 천릉자가 서있는 쪽으로 잎사귀를 가볍게 던졌다, 곧장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잎사귀에, 제대로 화가 난 천릉자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잎사귀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무종 모든 종사들의 장기였다. 그러나 종사계의 실력은, 그저 전신계와 같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성 천신계 고수인 자신이 뜻밖에도 전신계 같은 땅강아지한테 무시당하게 될 줄이야?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천릉자는 곧바로 또 하나의 검망을 휘두르며 사악한 웃음을 보였다. “네 이 녀석, 천신계 강자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오늘 내가 제대로 보여주마!”“죽어!”지금 이 순간, 천릉자는 이미 한지훈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눈 깜짝할 사이에 한지훈은 산산조각 나게 될 것이다. 예상치 못한 눈앞의 상황에 장령풍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전에 이미 한지훈의 전력을 직접 목격했었다. 모든 전투에서,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던졌었다.
천산 장 씨 집안과 항산 사이에는 서로 맺은 약속이 있었다. 오늘 이 자소화도 사실은 천릉자에게 주기로 내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소화 자체는 결코 희귀하지는 않지만, 꽃이 피기 전의 자소화를 찾는 건 매우 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대다수는 사람들에게 발견되기 전에, 산속의 맹수들에 의해 먹히고는 만다. 사실 천신계 강자에게 있어, 자소화의 장점은 셀 수 없이도 많았다.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순조롭게 2성 현급 천신계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이렇게 큰 유혹 앞에서, 장령풍은 장 씨 집안과 항산의 약속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고 오로지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생각뿐이었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천릉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령풍, 작은 것을 얻으려고 큰 것을 잃으려 하지는 마. 당시 한지훈의 그 사건도 장 씨 집안이 자초한 일이었어. 네가 자소화를 손에 넣는다면, 그동안 우리가 한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사실 전에 5대 명산, 항산 그리고 천산 장 씨 집안이 줄곧 천릉자를 치켜세운 이유는 그 배후에는 아주 큰 음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른바 불세출의 천재란 타이틀을 근본적으로 꾸며낸 것이다. 사실 천릉자는 이미 30년 전에 항산 문하에 들어선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항산은 줄곧 그를 중점 육성 대상으로 간주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4년 만에 단번에 천신 경계를 돌파하게 된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가짜였지만, 그 최종 목적은 천릉자를 이용하여 한지훈을 호되게 밟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금 유 씨 어르신의 발언과 언론을 통해 한지훈은 영원히 용국의 치욕이라는 이미지로 매장하려는 속셈이었다.그러려면 이 과정에서 천릉자의 후광을 더욱 밝게 비추어야 했다. 그의 후광으로 한지훈의 공적을 덮어 그를 폄하하고 말살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획이었다. “장 씨 집안의 계략이 뭐가 대수야? 난 지금 오직 이 자소화만 갖고 싶을 뿐이야!”장령풍은 여전히 굳은 표정
만약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이 내용이 보도된다면 전 세계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 될 것이다.필경 현재 용국은 물론, 심지어 전 세계가 모두 한지훈이 단지 일성 준 천신계의 실력으로 10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참살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 세계는, 한지훈과 용국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그 배후에 호천 창세가 손을 쓴 거라면 용국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한지훈은 또 어떻게 될까? 과연 누가 용국을 두려워하겠는가? 아마 그 누구도 한지훈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지 않을 것이다.“됐어, 한지훈 그 반역자에 대해서는 이쯤하자. 저 두 사람의 시합이나 지켜보자고!”유 씨 어르신은 의도적으로 반역자라는 세 글자를 강조하며, 한지훈의 못된 이미지를 제대로 박았다. 한편 그 시각, 한지훈도 어느새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은 여전히 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게다가 보아하니 장령풍의 상황은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새하얀 도포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장령풍은, 어느새 피범벅이 되었고 분노 가득한 두 눈동자는 천릉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반면 천릉자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여유롭게 한 손을 짊어진 채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듣기로는 너희 장 씨 집안 삼절진은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하다고 하던데, 오늘 보니 역시나 명실상부라 느껴지긴 하는구나. 하지만 다만 아쉬운 건, 넌 아직 제대로 불꽃이 튀지 않아 천절진의 위력은 크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앞으로 만약 10년만 더 지나게 된다면, 나중에 나의 천망 검진은 너를 더 이상 격파하기도 어렵게 될 거야. 하지만 어찌 됐든 그건 10년 후의 일이니, 오늘은 일단 이 자소화를 나한테 양보해!”이내 천릉자가 허리 굽혀 자소화를 따려는 순간, 숲속에서는 갑자기 우렁찬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오옥!”불곰보다도 몇 배나 더 큰 맹호 한 마리가 갑자기 숲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순간 천릉자와 장령풍 모두 멍해졌다. 전에 5대 명산 고수들이 이미 산꼭대기를
유 씨 어르신의 말에, 임설은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기가 돌아온 후, 모든 사람들의 몸에는 큰 변화가 생겼고 저항력도 강해졌을 뿐만 신체능력도 향상되었다.그러나 마찬가지로 맹수들도 더욱 강해졌다. 만약 임설이 맹호를 상대한다면, 그건 바로 먹잇감이 되는 것이었다.당시 한지훈의 일전도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상대하다니, 게다가 모두 한지훈보다 한두 단계 높은 경지의 고수들이라니. 비유하자면 당시의 한지훈은 마치 현재의 임설과도 같았고, 그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은 바로 맹호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들의 대결 결과는, 전혀 추측할 필요가 없이 다들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 당시 그 대결이 만약 오로지 한지훈의 소행이었다면, 이건 합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유 씨 어르신은 뒷짐을 진 채 오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해졌다. 필경 유 씨 어르신은 화산 고수중 한 명이었기에, 그의 말은 신빙성이 아주 높았다. 게다가 진정한 무도 중인 만이 한지훈이 당시 직면한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보통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유 씨 어르신은 이런 속임수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무종이 점점 강해지게 되면서, 현재 더욱 많은 일반인들이 모든 경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잘 알게 되었다. 천신경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전신계라 하더라도 작은 경계 사이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즉 천릉자는 비록 일성 준 천신의 최고 실력에 도달하긴 했지만, 그가 2성 천신계를 돌파하지 못한 이상, 2성 천신계 상대에게 있어 그는 마치 땅강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두 사람이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이 전혀 같은 수평선에 놓여있지 않는데,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는가? “어르신, 그 말씀은 전에 한지훈이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하여 모든 사람들을 속여왔다는 뜻인가요?”임설이 다시 물었다. “그래. 중요한 포인트를 짚었네. 너희들 아직도
임설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 “혹시 임설이니?”바로 이때, 임설의 뒤에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 씨 어르신?”고개를 돌린 임설은, 뒤에 선 노인을 보고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이내 급히 열정적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녀가 유 씨 어르신이라 부르는 이 사람은 바로, 세속에서 활동 중인 화산 강자이자 현재 무도 재판소의 부회장이기도 했다. 게다가 화산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에 유 씨 어르신은 세속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매체인으로서 임설 역시 유 씨 어르신이 낯설지는 않았다. 게다가 전에 그녀는, 유 씨 어르신의 인맥을 통해 5대 명산의 3기 다큐 영화까지 제작했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왜 여기 계신 거예요?”임설은 겉으로는 궁금해하는 척했지만, 사실 내심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이었기에, 같은 5대 명산인 화산에서 사람을 보내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난 단지 길을 가던 중 한번 와서 본 것일 뿐이야. 그나저나 이 아이들은 이젠 모두 어른이 되었는데, 이들이야말로 용국의 미래 희망이지!”유 씨 어르신은 눈을 지그시 뜨고는 산 꼭대기 쪽을 유유히 바라보았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임설은 급히 보조 카메라 감독을 불러 휴대폰으로 촬영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내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유 씨 어르신 가까이에 다가갔다. “어르신, 어르신의 경험으로 봤을 때 오늘 이 자소화, 과연 어느 집안이 가져갈 거라고 예상하시나요?”필경 유 씨 어르신의 신분 지위는 꽤나 높았기에, 아마 일부 내막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5대 명산끼리의 호흡은 결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령풍과 천릉자가 맞붙기도 전에, 아마 암암리에 모든 준비를 마쳤을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아이고, 그 질문은 좀 난처하네. 원칙부터 말하자면, 장 씨 집안 역사는 엄청 유구하지. 우리 용국의 많은 비진도 모두 장 씨 집안으로부터 전